얼마 전 도쿄 집에서 TV를 켰다가 깜짝 놀랐다. 한 방송사의 아침 정보 프로그램에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나와 있는 게 아닌가. NHK의 메인 뉴스에 출연한 아베 총리를 본적은 있지만 뉴스나 토론도 아니고 주부들이 주요 시청대상인 아침 정보프로에 총리가 직접 나오다니···. 마음을 가다듬고 무슨 얘기를 하나 귀를 기울여 봤더니 그의 입에서 가장 많이 나온 말은 ‘경제‘였다. 즉 ‘아베노믹스‘를 홍보하기 위해 발걸음을 한 것이다. 물론 북한 문제 등에 대해서도 언급했지만 많은 시간을 아베노믹스를 알리고 성과를 자랑하는 데 할애했다. 프로그램의 사회자들이 아베노믹스가 잘 진행되고 있다고 칭찬하면 아베 총리가 “여름부터는 아베노믹스의 효과가 소득증가 등을 통해 일반 국민들의 생활에까지 본격적으로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맞장구 치는 식으로 진행됐다. 마지막에는 아베 총리가 직접 해당 프로그램의 특유의 포즈(예능프로그램인 무한도전의 멤버들이 ‘무한도전‘을 외치면서 하는 포즈와 비슷한 것이라고 상상하면 된다)를 직접 따라하며 귀여운(?)모습을 선사하기도 했다.
나중에 일본 친구들 몇몇에게 물어보니 자기들도 아침 정보 프로그램에서 총리를 본 것은 생소하다며 놀랐다는 반응을 보였다.
곰곰히 생각해보면 아베 총리가 왜 이례적으로 아침 정보 프로그램에 발걸음을 했을지 짐작이 가기도 한다. 아베노믹스를 부르짖으며 엔화가치를 끌어내리고 주가를 올렸지만, 이게 어디 일반 국민, 특히 주부들에게 실감이 가는 지표던가. 가정 경제와 소비의 주체인 주부들에게 아베노믹스의 청사진을 직접 알려주고 싶었을 것이다.
지난 연말 이후 일본 방송뉴스나 신문에서 가장 많이 등장한 말이 아베노믹스다. 아베노믹스는 아베 정부가 일본 경제를 장기 디플레이션에서 건져내겠다며 내놓은 경제정책들이다. 아베노믹스의 핵심은 △금융완화 △재정지출 △성장전략으로 요약되는데 일본에서는 이 세가지 세부정책을 ‘세 개의 화살‘이라고 부른다. ‘돈을 찍어서라도 엔화가치를 끌어내리겠다‘ 무서운 발상이 금융정책에 해당할 것이고 ‘여성 노동력 활용을 높이겠다‘는 게 성장전략에 속할 것이다.
요즘 일본 방송 들은 ‘아베노믹스가 잘 진행되고 있다‘며 정책 효과를 칭찬하는데 열을 올리고 있다. 이런 보도를 보면 마치 아베노믹스가 일본을 살려낼 ‘마술 주문‘같이 비쳐지기도 한다. 조금만 좋은 쪽으로 해석될 여지가 있는 지표이면 아베노믹스와 연결시키는 분위기이다. 예를 들어 골든위크에 해외로 가던 사람들이 엔저 때문에 국내로 발길을 돌리고 있으니 ‘아베노믹스의 덕‘이라는 식이다.
특히 일본 국민들에게 ‘그 동안의 무기력에서 벗어나 디플레이션을 극복할 수 있다’는 희망을 주고 있다는 데 주목하는 목소리도 있다. 이에 따라 지난해 말 아베노믹스가 처음 등장했을 때는 ‘금융완화 정책‘ 등의 위험성에 대해서 경고하는 목소리도 적지 않았는데 이제는 이 마저 사라지고 있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일본 방송 들이 이런저런 지표와 현상을 증거로 들며 아베노믹스 칭송에 나서고 있지만 정작 뉴스 등에서 ‘살림살이가 정말로 나아졌어요‘라는 국민목소리나 ‘경영할 맛이 납니다‘라는 중소기업 관계자의 사례는 많이 등장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특히 실제로 일반 시민들을 만나보면 방송과 언론의 뜨거운 반응과 달리 아베노믹스의 효과를 아직 실감하지 못하겠다는 뜨뜻미지근한 반응들이 적지 않다. 예를 들어 최근에 만났던 일본 주부는 이렇게 얘기했다. 아베노믹스로 주가 오르면 부자들이 좋지 우리가 무슨 상관이에요. 소득이 달라진 게 없는데 소비를 늘리긴 뭘 늘리겠어요. 일본은 오랫동안 디플레이션을 겪으면서 노인을 중심으로 안쓰고 절약하는 데 익숙해 있어서 소비가 늘어날 지 모르겠어요.
도요타 등 대기업들이 일본 정부의 권유에 임금을 올리겠다고 나서고 있지만 이는 중소기업과는 거리가 있는 얘기이다. 얼마 전 얘기를 나눴던 중소기업 샐러리맨은 다음과 같은 의견을 들려줬다. 대기업이 임금을 올린다고 하는 데 우리 회사에는 그런 움직임이 없습니다. 그리고 대기업도 대부분 보너스를 올려주는 건데, 그런 효과가 우리 중소기업까지 올 지 모르겠어요.
중소기업 사장들은 아베노믹스에 대해 아예 노골적으로 불만을 표시하기도 한다. 후쿠오카에서 만났던 중소기업 사장의 얘기는 이랬다. 아베노믹스는 대기업만 좋은 정책이에요. 엔저 만들어놔서 수출하는 대기업만 좋은 거죠. 우리 회사는 원재료 수입하는데 엔저 때문에 비용이 20~30% 이상 올라갔어요. 그렇다고 우리가 납품하는 대기업에서 엔저 때문에 높아진 원가부담을 감안해 거래조건을 바꿔주는 것도 아니에요. 우리만 힘들어요. 이런 문제점에 대해서는 방송이나 언론에서 제대로 보도해주지도 않고 있어요. 아베노믹스에서는 수출 대기업이 좋아지면 그 낙수효과가 중소기업으로 내려갈 거라고 생각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아요. 이렇게 가다간 공장을 해외로 옮기는 것도 생각해봐야겠어요.
물론 아베노믹스에 찬성하고 이를 지지하는 일본 국민도 많다. 하지만 아베노믹스의 효과를 느끼지 못하고 있는 국민이나 중소기업이 적지 않음을 감안하면 방송 등의 ‘아베노믹스 칭송‘과 ‘일본 국민감정‘ 사이에 다소 온도차가 있어 보인다. 아베노믹스가 일본경제를 어떻게 바꾸어 놓을 지는 좀 더 지켜봐야 알 수 있겠지만 결국 `국민의 체감’과 `국민의 공감’이 경제정책의 성공 조건 중 하나가 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