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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가 다쳤으니 빨리 와달라는 전화를 받는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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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가 다쳤으니 빨리 와달라는 전화를 받는다면

‘그날’ 이후로 낮시간 전화벨이 울리면 심장이 두근두근합니다. 아이가 학교에서 다쳤으니 빨리 오라는 전화, 연수자들이 가장 피하고 싶은 소식이 아닐까 싶습니다. 모든 것이 정상 궤도에 올라 순조롭던 연수 생활 6개 월차에 저는 불행히도 그 전화를 받았습니다.

◆ “아이가 다쳤습니다. 빨리 와주셔야겠어요”

새 학기가 시작하고 2주쯤 됐을까요, 아이 학교 방과 후 수업 디렉터가 전화를 걸어왔습니다. “@@이가 놀이터에서 놀다가 다쳤어요. 크게 다친 건 아닌데 피를 좀 흘리고, 찢어진 것 같고…. 학교 간호사가 응급처치하긴 했는데 병원에 가봐야 할 것 같고….”
유치원 다니는 둘째를 픽업해서 첫째아이 학교 주차장으로 막 진입하고 있는데 듣게 된 소식. 크게 안 다쳤는데 찢어졌다니? 병원에 가봐야 할 정도라니? “오마이갓, 나 거의 도착했어요”하며 헐레벌떡 뛰어갔습니다. 눈물을 꾹꾹 참던 아이는 엄마를 보자마자 울음보가 터져버렸죠. 학교 간호사가 지혈하고 있었는데, 턱밑 살이 손가락 두 마디는 벌어져 보였습니다. 상처도 상당히 깊어 보였고요. 놀이터에서 다쳤는데, 우리는 사고 순간에 보질 못했다. 미안하다. 아이가 말을 안 하는데, 어떻게 하다가 다쳤는지 좀 물어봐 달라는 게 선생님의 말이었습니다.
아이들이 두 팔로 매달려 건너가는 몽키바(monkey bar)에서 떨어졌는데, 연결부위에 튀어나온 볼트 부분에 턱이 부딪혀 찢어졌다는 게 아이의 설명. 기구가 왜 그렇게 방치돼 있었는지 등등 시시비비는 나중에 가리기로 하고 우리는 가까운 대형병원 응급실로 갔습니다. 방과 후 수업 디렉터는 급히 작성한 ‘Injury report’를 손에 쥐여주었습니다. 간단한 사고 경위와 학교에서 어떤 처치를 했는지(소독)를 적은 한장짜리 서류였습니다.

첫째아이 방과후수업 관리자에게서 받은 사고 리포트

(첫째아이 방과후수업 관리자에게서 받은 사고 리포트.)

벌어진 상처에 거즈를 뗐다 붙였다 하면서 두어 시간 기다린 끝에 겨우 소아응급실로 들어갔습니다. 명찰을 볼 여유가 없어 마주친 사람마다 열심히 설명했는데, 알고보니 간호사-의대 실습생-인턴 순서로 방에 들어오더군요. 이들을 모두 거친 후에 비로소 레지던트와 얘기를 나눌 수 있었습니다. Injury report를 보여주고 상처를 재차 소독한 후 몇 바늘 꿰매는 처치를 받았습니다. 꿰매는 의사보다 솜씨가 더 능숙한 건 간호사들이었습니다. 소아응급실 간호사들은 아이 눈 앞에 아이패드를 쓱 들이밀더니 혼 빼기에 주력했습니다. 가장 좋아하는 만화가 뭐냐?(마이 리틀 포니요), 오! 나도 그래. 제일 좋아하는 캐릭터는? 등등 말을 걸면서 오열을 미연에 방지하며 비교적 수월하게 치료를 마쳤습니다. 녹는 실로 꿰맸기 때문에 실밥 뽑으러 다시 올 필요는 없다, 흉은 좀 남겠지만 어리기 때문에 회복은 빠를거다, 이 정도 사고는 아주 경미한 것이고 매우 럭키한 것이니 걱정하지 마라….

◆ 사고 상세 리포트, 그리고 기관의 면책

사고 이튿날, 방과후수업 관리자는 사고에 대한 상세 리포트를 보내왔습니다. 전날의 간략 리포트보다 사고 경위가 더 상세히 기술된 것이었고, 이 리포트에 학부모가 사인을 하면 관할 교육청으로 보낼 거라고 했습니다. 방과후수업 운영자 라이선스를 교육청에서 관리하고 있고, 여기에 영향을 미치는 것이 아닐까 생각됐습니다. 아이들이 놀이터에서 놀다 본인 부주의로 다치는 것은 언제 어디서고 있을 수 있는 일이어서 시비하고싶진 않았으나, 얼마 전에도 같은 몽키바에서 다른 아이가 비슷한 사고를 당했다고 해서 그 점은 짚고 넘어가고 싶었습니다. 학교에 다시 가서 시설물을 확인해보았는데, 볼트 끝처리가 둥글게 되어있긴 했으나 상당히 돌출돼있어 부딪히면 다칠 가능성이 있어보였습니다. 이 점에 대해 시정이 필요해보인다는 의견을 남겼습니다.

후에 찾아보니, 방과후수업 등록 때 학부모들이 깨알 같은 면책조항에 서명하도록 요구했더군요. “방과후수업에서 발생하는 어떤 신체적 재산적 피해에 대해서도 수업 관리자들은 면책되며, 이 점에 대해 충분히 이해하고 내 아이를 보낼 것임을 확인하다”는 조항. 정규수업 시간에 다쳤다면 상황이 완전히 달랐을 거라고 하더군요. 소송 천국인 미국에서 소송도 가능했을 거라는 얘기. 방과후수업 관리자 측의 무조건적인 면책이 공정한지에 대한 의문이 여전히 가시지 않습니다만, 아이에게는 더욱더 조심하라고 주의를 주는 수밖에 없었습니다.

◆ 동생은 친구에게 팔과 등을 깨물려서 오는데…

어렵사리 보낸 둘째 유치원에서는 또 다른 이슈로 전화를 받았습니다. 아이가 친구에게 팔을 깨물렸다는 것이었습니다. 친구가 팔을 물었다, 심하진 않은데 자국이 좀 남았다…. 사실 며칠 전에 하원 후 목욕을 시키던 와중에 등에서 이빨자국을 발견하고 연락했던 터라 이번이 두 번째 깨물림 사고였습니다. 그리고는 며칠 후에 세 번째 깨물리는 사고가 발생, 우리는 더는 참지 않고 아이 유치원 지점을 관리하는 지역 디렉터에게 메일을 보냈습니다. 연속된 사고가 있었고 우리는 적절한 조치를 받지 못했다는 문제제기였습니다. 알고보니 이런 문제를 전문으로 대행해주는 변호사도 있었습니다. “To our knowledge, the daycare center owes children under their supervision a duty of reasonable care. And also if one child bites another, the center may be liable if it breached its duty of care to the child who was bitten.” 지점 담당자에게 참조(cc)도 잊지 않았습니다.

친구의 이빨자국이 선명하게 남은 둘째 아이의 팔. 부모가 걱정하건 말건, 어쨌든 즐거운 어린이.

(친구의 이빨자국이 선명하게 남은 둘째 아이의 팔. 부모가 걱정하건 말건, 어쨌든 즐거운 어린이.)

메일 이후 조치는 신속히 이뤄졌습니다. 우리는 지점 디렉터와 면담을 통해 △둘째가 속한 프리스쿨반을 두 개로 분반해 관리 인력을 1명 증원하고, △깨문 아이를 우리 아이로부터 분리하며, △해당 이슈가 일주일에 두 차례 이상 더 발생한다면 문제의 아이를 기관에서 내보내거나 추가 조치를 취하겠다는 약속을 받았습니다. 처음에는 저희 아이를 윗학년 반으로 바꾸는 게 어떻겠느냐는 제의를 받았었는데, 겨우 적응한 아이에게 공연히 적응 스트레스를 주는 것은 부당하다는 생각이 들어 거절했습니다. 유치원측에서는 깨무는 행동은 만3살 이후에는 대부분 사라지기 때문에 더 윗학년으로 옮기는 것을 옵션으로 제안했던 것이었고요.

깨무는 문제에 대해 이후 더 조사를 해보니, 미국 유치원은 이 문제를 아이들끼리 때리고 던져 다치는 상황과는 달리 보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습니다. 깨무는 행동을 구강기를 지나는 아이들이 자신의 의사를 표현하는 정상적인 방식 중 하나로 구분하면서 폭력과는 다른 범주에 넣고 있더군요. 때문에 깨물려 다친 경우에는 보통의 사고와는 달리 취급하며, 깨무는 아이가 자연스럽게 그 시기를 지나도록 독려해주고 피해 아이와 분리하는 정도를 최선의 조치로 취하고 있다는 사실도요. 깨문 아이의 신원은 절대 알려줄 수 없다는 점도 여러 차례 강조했습니다.

처음에는 적극적으로 어울려 놀지 못하던 둘째가 좀 익숙해졌다고 아이들 사이에 쑥 들어가면서 겪게 된 일이 아닐까 생각해보기로 했습니다. 실제 세 차례의 물림 이후에 추가적인 사고는 다행히 일어나지 않았고요. 같은 반 모든 아이들이 무사히 그 시기를 지나고 있는 게 아닌가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이 둘이 학교에서 크고 작은 사고를 당하면서 얻은 교훈은, 역시 모든 것은 서류(전화보다는 되도록 이메일)로 남길 것, 적절한 항의와 문제제기는 필요하다는 것, 항의를 할 때는 담당자와 그 상부에 꼭 참조(cc)를 보낼 것 등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