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반년 전의 일이다. 개학 전 아이들은 기대 반, 설렘 반이었다. 반대로 아내와 나의 걱정은
깊었다. 특히 1학년 둘째 여자 아이가 걱정거리였다. 한국에서도 학교생활에 애를 먹였던 아이였
기에 더 그랬다. 5학년 아들은 영어 학원이라도 다녔지만 둘째는 ‘A, B, C’도 모르는 까막눈이
었다. “둘째가 더 잘 적응할 것”이라는 주변의 말도 큰 위로가 되지 못했다.
우려는 현실이 됐다. 둘째는 “학교 가고 싶지 않다”며 아침마다 울었다. 학교 가는 것 자체가
스트레스다보니 아침밥도 먹지 못했다. 종종 토하기도 했다. 와이프가 싸 준 점심 도시락은 그대
로 되가져왔다. 그나마 집에 돌아와 먹는 저녁이 아이의 유일한 식사였다.
학교에선 우는 일이 많았다고 한다. 선생님이나 친구들과 문제가 아니었다. 낯선 환경이 주는
두려움 때문이었다. 공교롭게도 둘째 아이 반에는 한국인이 한명도 없었다. 그 답답함이 오죽했
을까. 아무 말도 알아듣지 못하는 곳에서 7~8시간을 보내는 것만큼 힘든 일이 있을까.
스트레스는 ‘울고 안 먹는’ 악순환으로 이어졌다. 선생님은 더 많은 관심과 배려를 쏟았다. 영어
를 하지 못하는 것은 문제가 안 된다며 안심시켰다. 그녀의 경험상 스트레스를 받는 아이들이
적잖았고 점점 나아질 것이라고 했다. 다만 그녀가 걱정한 것은 ‘밥’이었다. 밥을 거부하는 것은
더 큰 문제를 불러올 수 있는 만큼 ‘밥을 먹는 게 최우선’이라고 그녀는 강조했다. 그렇다고 선생
님이 밥을 떠 먹여 줄 수는 없다.(미국 학교 점심 시간의 경우 아이들이 식당에서 배식을 받아먹
거나 싸 가져간 도시락을 먹는 시스템이다. 선생님은 식당에 들어가지 않는다.)
그 때 도움을 준 게 급식 선생님이다. 둘째 아이가 ‘관심학생’이 되다보니 점심시간이 되면 옆자
리에 앉아 식사를 도왔다. 하루에 한 숟가락, 그 다음날 세 숟가락, 이렇게 양을 늘려갔다. 나름
‘고비’를 넘긴 시점이었다.
하지만 심리적 불안은 여전했다. 둘째 아이는 “왜 자기 주위엔 한국 사람이 없냐”고 하소연했다.
공교롭게도 큰 아이 반에는 한국인 친구가 2명 있었는데 그게 부러웠던 거다. 선생님과 얘기하고
싶어도 방법이 없으니 답답했던 거다.
그 때 하늘이 도운 것처럼 ‘우연’이 찾아왔다. 둘째 아이 반에 1년간 보조 교사가 오게 됐는데
바로 한국인이었던 것. 그 날 이후 아이 생활이 눈에 띄게 달라졌다. 학교생활에 재미를 느끼며
친구들과 소통도 시작했다. 미국 친구들 집에 가서 놀고 어울리고. 그러면서 영어도 조금씩 늘어
가는 듯 했다. 보조 교사가 가져온 ‘심리적 안정’이 준 변화였다. 영어 실력 향상을 위해선 한국
인 친구가 없는 게 낫다는 이들도 있지만 저학년의 경우 한국인 친구 1~2명이 있는 게 오히려 낫
다는 게 우리 부부가 내린 판단이다.
Tip)
1/ 미국 학교 급식은 한국 학교 급식에 비해 질이 매우 낮다. 핫도그 하나, 피자 한 조각 등이
점심 한 끼다. 그것도 유상 급식이다. 계좌에 돈을 넣어놓으면 아이들이 사 먹을 때 번호를
눌러 결제하는 방식이다. 한끼에 4달러 정도. 체감도는 꽤 비싼 편이다. 우리 아이들의 경우
급식을 먹으면서도 간식용 도시락(떡, 볶음밥)을 싸 갔다. 식사 대용이 아니어도 과자(스낵),
과일 등을 싸 가 간다. 미국 아이들도 좋아하는 김은 최고 인기 메뉴다. 간식은 보통 수업
시간에 먹는다.
2/ 아이가 둘 인 경우 영어 격차가 존재한다. 주변 연수생들을 봐도 비슷하다. 첫째는 보통 학
원을 보내지만 유치원생이거나 1~2학년인 둘째의 경우 백지상태로 오는 경우가 많다. 둘째
에게도 ‘영어 환경’을 접해주고 오라는 조언을 해 주고 싶다. 학원까지는 아니더라도 영어
비디오 정도면 괜찮을 듯 싶다. ‘YOUTUBE’ 등을 통해 영어에 노출시켜주는 것도 방법이다.
3/ 미국 아이들 생일파티는 주로 집에서 열린다.(고학년은 하지 않고 저학년만 한다). 파자마
파티 식으로 가볍게 하는 게 보통이다. 파자마 입혀서 약속 시간에 집에 데려다주고 끝나는
시간에 맞춰 데려 오면 된다. 집에 같이 머무를 수도 있지만 부모들이 그다지 원치 않는다.
선물은 거창한 것 대신 가벼운 소품을 주로 준다. 우리는 한국에서 사간 ‘연필 세트’ 등을
줬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