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와 단둘이 디즈니 크루즈
아이의 6살 생일을 맞아 지난 11월 크루즈 여행을 다녀왔습니다. 엘사, 라푼젤, 모아나 같은 디즈니 공주 캐릭터에 푹 빠져 있는 아이를 위해 디즈니 크루즈를 택했습니다. LG재단 연수기에도 몇 분이 올려주셨듯이 연수를 다녀온 선배들이 크루즈 여행을 ‘강추’했기에 연수기간 거주할 집을 정하기 전부터 디즈니 크루즈를 예약할 정도였습니다. 임박해질수록 가격만 올라갈 뿐이니깐요. 유치원 친구들과 헤어지는 걸 아쉬워하며 미국에 가는 걸 내켜하지 않는 딸을 구슬리는 데는 ‘디즈니 크루즈’만한 것도 없었습니다. 유튜브에 올라온 영상들을 보여주며 “미국 가면 이런 큰 배도 탈거야. 좋아하는 공주들도 여기에 다 모여 있어”라고 말하면 아이는 그제야 미국행에 대한 기대감이 조금 생기는 것 같았습니다.
제가 예약한 것은 지난해 여름 첫 출항한 ‘디즈니 위시(Wish)’ 호였습니다. 발코니가 있는 방에서의 4박 5일 비용은 당시 기준 3천 달러가 조금 넘었습니다. 모든 식사를 제공하는 ‘올 인클루시브’인 점을 감안하더라도, 여러 크루즈 라인 중에서도 디즈니 크루즈가 비싼 편이라고 합니다. ‘캐릭터’ 값이겠지요. 제가 거주하는 버지니아에서 출항지인 올랜도까지 왕복 비행기 비용과 나중에 ‘허리케인’ 변수로 추가 이용하게 된 호텔 1박 비용까지 하면 또 만만치 않은 비용을 추가로 지출했습니다.
디즈니 크루즈를 예약하면 탑승 30일 전 온라인 체크인을 통해 승선 시간을 정하게 되는데 승선 시간을 최대한 이른 시간으로 하는 것이 좋습니다. 출항은 오후 3시 30분이지만 오전 11시부터 출항 직전까지 그룹별로 나눠 승선하는데 일찍 배에 탈수록 즐길 수 있는 시간이 길어지기 때문입니다. 저희는 첫 그룹에 속해 승선했고 아이는 배에 오르자마자 텅 비어 있는 키즈 수영장으로 직행해 신나게 놀았습니다.
최근 들어 코로나로 인한 제약은 없다고 봐도 무방합니다. 다만 만 5세 이상의 경우 백신 접종 증명서를 제출해야 합니다. 제 아이의 경우 한국에서 백신 2차까지 맞았기에 탑승 요건은 충족했습니다. 지난 10월까지만 해도 탑승 직전 코로나 PCR 검사를 받고 ‘음성’ 결과를 제출해야 했지만 11월부터는 그마저도 사라져서 탑승 전 코로나 검사를 받지 않아도 됩니다.
아이와 단둘이 하는 여행이라 가족 단위 여행객으로 북적한 크루즈에서 쓸쓸하진 않을까 생각도 됐지만 첫날 저녁 디즈니의 섬세한 배려에 약간 소름이 돋았습니다. 크루즈에는 저녁 정찬 레스토랑이 3곳 있고 승객들은 디즈니가 정해준 순서에 따라 각 레스토랑을 골고루 이용하게 됩니다. 테이블도 지정이 돼 있습니다. 첫날 저녁 레스토랑에서 저희가 안내받은 테이블에는 딸-엄마 가족이 두 팀 더 있었습니다. 미시간주에서 온 간호사 엄마, 뉴욕에서 온 변호사 엄마, 버지니아에서 온 기자 엄마와 5~6살 딸들이 한 테이블에 앉게 된 것입니다. 이 멤버 구성은 마지막 날 저녁 식사까지 유지됐습니다. 또래 친구를 만난 딸들이 알아서 잘 놀아주는 덕분에 3명의 엄마들은 좀 더 품위 있게, 조금은 덜 외롭게 저녁 시간을 즐길 수 있었습니다. 엄마들은 “디즈니가 정말 섬세하다”고 모두 입을 모아 말했고요. 다음날 여행 일정과 크루즈 이용 팁을 공유한 것은 덤이었습니다.
사진 설명 : 디즈니크루즈의 출항 파티
저녁 시간마다 있는 1시간짜리 뮤지컬도 매번 챙겨봤습니다. 제가 있는 동안엔 알라딘, 인어공주 뮤지컬, 디즈니 캐릭터들의 모험을 담은 뮤지컬 등 총 3편이 공연됐습니다. 3층 크기의 대극장에서 실력있는 배우들이 나와 화려한 무대 설비를 배경으로 연기를 펼칩니다. 뉴욕 브로드웨이에서 본 알라딘과 비교하자면, 브로드웨이만큼은 아니지만 실망스럽지 않은 퍼포먼스를 보여줍니다. 저에겐 기대 이상이었습니다. 디즈니 공주들과의 만남도 있습니다. 아이는 지난 여름 할머니가 사준 신데렐라 드레스를 입고 엘사, 신데렐라, 벨, 모아나, 라푼젤과 사진을 찍었습니다. 미리 준비해간 컵에 공주들의 사인도 받았고요.
변수는 날씨였습니다. 플로리다에 허리케인이 찾아오면서 크루즈는 항로를 급작스럽게 변경했습니다. 당초 예정했던 정박지인 바하마 제도 낫소와 디즈니 사유섬(Castaway Cay) 등 2곳을 가지 않고 방향을 완전히 바꿔 멕시코의 코즈멜 섬 한 곳만을 가게 됐습니다. 나머지 날에는 배에서만 지냈지요. 크루즈가 허리케인을 요리조리 피해 간 덕에 다행히 매일 화창한 여름 날씨를 누렸지만, 기대가 컸던 디즈니섬에 못 간 것은 못내 아쉬웠습니다. 급기야 하선 하루 전날인 목요일에는 “금요일 오후 3시 이전에 비행기를 예약한 승객은 비행시간을 오후 6시 이후로 늦추라”는 안내 방송이 나왔습니다. 허리케인으로 크루즈 항구(Port Canavderal)가 폐쇄됐고 언제 열릴지 모른다는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었습니다. 비행기를 오후 3시 무렵으로 예약했던 저는 부랴부랴 익스피디아에 전화해 비행시간 변경을 알아봤고 금요일 저녁 비행기는 만석이라는 이야기에 눈물을 머금고 토요일 오후 비행기로 예약해야 했습니다. 올랜도 국제공항 인근 호텔 1박도 추가로 예약을 했고요. 정박지가 갑자기 바뀌는 등 일정 변경에 대해 컨시어지 데스크로 찾아가 항의하는 승객들도 있었지만, 자연 변수에 따라 여행 일정을 변경할 수 있다는 것이 크루즈 약관에 있다고 합니다. 당초 오전 8시가 하선 시간이었지만 항구가 늦게 열리면서 결국 오후 4시가 넘어서야 배에서 나오게 됐습니다. 그래도 그 덕에 아이는 배에서 내리기 직전까지 키즈 풀에서 친구들과(레스토랑에서 만난) 신나게 놀았습니다.
크루즈 여행은 배 안에서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는 장점이 있지만, 아이와 단둘이 여행하는 것이 크루즈에서라고 쉽지는 않습니다. 저 혼자 아이에게 온 신경을 집중해야 하니까요. 아이는 벌써 디즈니 크루즈 또 가고 싶다고 말하지만, 저는 당분간 재도전 생각은 없습니다. 그럼에도 디즈니 캐릭터들과 함께 지내는 그 기간은 어른인 저로서도 생각 이상으로 즐거웠기에 갈지 말지 고민하는 분들에게는 ‘한번쯤 가볼 만하다’고 추천하고 싶습니다.
사진 설명 : 멕시코 코즈멜 섬에 정박한 날 크루즈 앞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