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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와 단둘이 워싱턴 D.C 집구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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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에 미국 워싱턴 D.C에 연수를 온 후 넉달째에 접어들었습니다. 저는 아이와 단둘이 버지니아주에 머물고 있습니다. 요즘은 저처럼 엄마나 아빠 혼자서만 아이랑 미국에 연수를 오는 경우도 많은 것 같습니다. 당연히 쉽지는 않았습니다. 다른 분들은 시행착오를 덜 겪기 바라는 마음으로 ‘좌충우돌 내 집 마련기’를 전하고자 합니다.
 
연수 준비 첫번째는 ‘집 구하기’입니다. 많은 연수생들이 ‘시간 절약을 위해 한국에서 먼저 미국에서 정착할 곳을 구하느냐’, ‘안전하게 내가 직접 집 상태를 보고 계약하냐’는 고민에 빠집니다. 저는 최대한 미국에 빨리 정착하고자 출국 전 집을 정하기로 했습니다. 이후 고민은 아파트나 콘도, 타운하우스, 싱글하우스 중 어떤 주거 형태를 선택할 것인가입니다. ‘미국 하면 역시 하우스’라는 로망이 있었지만, 관리와 월세, 보안 등의 문제로 단념하고 아파트로 최종 결론 내렸습니다.

온라인 부동산정보 플랫폼 ‘질로우’ / 질로우 사이트 캡쳐

아이를 둔 연수생들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부분은 역시 ‘학군’입니다. 일단 ‘Zillow’, ‘Apartments.com’ 같은 부동산 사이트에서 워싱턴D.C로 출퇴근이 가까운 기준으로 검색을 시작했습니다. 해당 사이트에는 아파트마다 학교 정보 플랫폼인 ‘GreatSchools’를 통해 인근 학교 평점을 같이 볼 수 있습니다. GreatSchools은 해당 학교의 학업 성과 등에 따라서 1~10점으로 평가해놨습니다. 저는 이 중 7~10점 사이에 있는 초등학교 인근 아파트를 추렸습니다.
 그다음 고려한 점은 ‘연식’입니다. 미국 아파트들은 대개 오래된 아파트가 많습니다. 오래될 수록 목조 건물인 경우가 많고, 층간소음 문제도 커집니다. 전 연수생들로부터 ‘층간소음 때문에 괴로웠다’, ‘너무 시끄러워 위층에 올라갔더니 집에서 농구를 하고 있더라?’는 괴담 아닌 괴담을 많이 들었던 터였습니다. 5년 또는 10년 이내 비교적 최신 아파트로 설정해 후보군을 다시 좁혔습니다. 이렇게 하다 보니 사실 후보군이 몇 개 남지 않았습니다.

학교 정보 플랫폼 ‘그레이트스쿨스’/그레이트스쿨스 사이트 캡쳐

이제 그럼 제가 거주할 집 상태를 살펴보고 계약을 해야 합니다. 많은 연수생들이 미국에 있는 한인 리얼터를 통해 집을 계약합니다. 저도 리얼터에게 문의를 했습니다. 리얼터의 답변은 고맙게도 솔직했습니다.

“아파트는 사실상 제가 해드릴 수 있는 게 없습니다. 집 상태 대신 보는 것밖에 없어요. 근데 아파트는 요즘에 오피스랑 연락해서 화상으로도 볼 수 있구요. 계약도 사이트를 통해 본인이 직접 하셔야 합니다. 그런데 수수료는 제가 월세의 20~40%를 받아요.”

싱글하우스나 타운하우스는 리얼터가 집주인과 1대1로 계약 진행을 도와주지만, 아파트는 제가 온라인상에서 집 계약서를 작성해야 해서 리얼터가 할 일이 별로 없다는 얘기입니다.

고민하던 찰나 저는 운 좋게 미국에 사는 지인이 아파트를 대신 방문해 봐주기로 했습니다. 2개 아파트 중 한 곳을 최종 결정했고, 이제 아파트 오피스와 계약을 진행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때까지는 모든 게 순조로워 보였습니다. 아직 출국 전 까지 한 달이나 남았었죠. 결국 출국 나흘 전까지 집을 구하지 못해 동동거리게 될 줄은 그때는 몰랐습니다.

저는 아파트 오피스에서 요구하는 대로 직업과 연봉 등 개인 정보를 제공했습니다. 결과는 1차 ‘탈락’이었습니다. 아파트에서 요구하는 소득 기준에 맞지 않다는 이유였습니다. ‘아니, 렌트가 무슨 취업 면접도 아니고 탈락이라니!’ 마음의 상처를 입은채, 소득을 소극적으로 쓴 것 같아 재수정해 다시 지원서를 넣었습니다. 재심사 결과를 받기까지 또 2주 이상이 흘렀습니다. 수많은 메일이 오간 후 2주만에 받은 메일은 충격적이었습니다. 미국에서 다니는 회사와 미국 은행 계좌를 인증하라 했습니다. 화가 치밀어올랐습니다. 메일과 전화로 내가 외국인이고, 한국에 있다는 것을 그렇게 많이 설명했었는데. 다시 되돌이표로 온 기분이었습니다.

이제 정말 출국까지 일주일도 남지 않은 상황이었습니다. 저는 담당자에게 호기롭게 제안했습니다. ‘너희가 내가 월세를 못 낼까봐 걱정이 되는 것이라면 6개월치 렌트비를 한꺼번에 내겠다. 나머지도 6개월이 지나기 전에 한번에 다 내겠다.’ 그러나 돌아온 답변은 ‘NO’. 대신 그들은 저에게 렌트비의 적어도 4배 이상의 연봉을 받는 미국 현지 보증인을 요구했습니다. 원화로 연 1억 5000만원이 넘는 고액 연봉이었습니다. 기가 찼습니다. 미국에 지인들이 있었지만, 연봉을 물어보고 보증까지 서달라고 하는 것은 정말 미안한 일이었습니다. 낭떠러지 끝에 서 있는 순간, 정말 고맙게도 지인이 흔쾌히 보증을 서주겠다고 했습니다. 출국 이틀 전에 겨우 계약 승인을 받았습니다. 여기에 다다르기까지 아파트 오피스와 오고 간 메일을 살펴보니 40통이 넘었습니다.

한국과는 다른 미국 아파트의 모습

현재 사는 아파트는 어렵게 구한만큼 만족하며 지내고 있습니다. 다른 세입자들에게 물어보니 미국 계좌에 아파트에서 요구하는 일정액 이상의 현금을 보유하고 있는 것을 증명하는 것만으로도 승인을 쉽게 받은 사람도 있었습니다. 아파트마다 렌트 정책이 다르기도 합니다. 저는 한국에서 미리 집을 구하려다 보니 좀 더 어려움이 컸던 것 같습니다. 그럼에도 미리 집을 구하고 온 것에 대해 후회하지는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