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연수를 앞두고 가장 염려됐던 부분은 병원 진료다. 돌을 지나지도 않은 둘째 때문에 더 그랬다. 상대적으로 비싼 진료비도 진료비지만, 미국 병원은 진료를 받으려면 짧게는 1주일 길게는 2주까지도 기다려야 한다는 말을 많이 들어서다. 그렇지 않아도 감기다 뭐다 잔병치레를 많이 하는데, 열이라도 나면 어떻게 해야 하나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병을 키워 진료를 받는 방식인 것 같아 속이 터졌다. 아쉬운대로 주로 다니던 소아과 병원에 사정을 설명하고 감기약 등 의사 처방이 필요한 몇가지 약을 넉넉히 준비했지만 좀처럼 마음이 놓이지 않았다. 연수 생활 반년이 지난 지금 돌아보면 주변의 조언들이 틀린 말은 아닌 것 같다. 다만 들었던 얘기와 다른 부분도 적지 않다.
아파서 진료받고 싶다는데 3주 후에 오라는 병원
연수지인 노스캐롤라이나(NC) 채플힐(Chapel Hill)에선 우선 듣던 대로 간단한 병원 진료를 하더라도 예약이 필수다. 초진의 경우 진료 받는 날을 잡기가 좀더 까다롭다. 병원에 환자 기록이 없기 때문이라고 한다. 둘째의 경우 처음 진료 예약을 했을 때 가장 빠른 진료 일이 3주 후나 됐다. 그것도 환자들에게 인기가 없는 의사에 경우다. 환자들의 선호하는 의사는 한두 달 뒤에나 볼 수 있다고 했다.
물론 ‘Urgent Care’나 ‘Immediate Care’와 같이 당일 진료를 받을 수 있는 의료 기관도 있다. 우리나라로 치면 응급실과 같은 곳으로, 진료비 부담이 만만찮다. 기본 진료비가 200달러 안팎으로 검사나 주사, 처방 등이 더해지면 병원비는 입이 떡 벌어질 정도로 비싸진다. 일례로 둘째를 진료한 의사가 간단한 혈액 검사를 하고 싶다고 해서 ‘OK’했더니 기본 진료비만큼 비용이 추가 됐다. 아이가 병원을 너무 무서워한다며 테라피스트를 만나보도록 레퍼런스를 써주고, 체중이 지난번보다 줄었으니 영양 관련 진료를 위한 레퍼런스도 써준다고 하더니 이 또한 별도의 진료비가 부과됐다.
한인 소아과선 당일 진료도 가능
병원 진료 일정을 빨리 잡으려면 사전에 ‘체크업’을 해두면 좋다. 간략한 건강 검진과 같은 진료로 환자 차트를 만드는 과정이다. 150달러 정도 비용이 들긴 하지만 체크업을 했다면 모든 병원에 환자 정보가 공유돼 이후 진료가 필요하면 대체로 1주일 이내에 의사를 볼 수 있다. 둘째의 경우 예방접종을 위해 찾은 다른 병원 의사가 먼저 간 병원 의사에게 해줬던 아기 건강과 평소 생활 등과 관련한 정보를 모두 알고 있을 정도였다.
한인 의사가 운영하는 병원을 찾아보는 것도 좋다. 당일 진료를 봐주는 경우가 종종 있기 때문이다. ‘Zocdoc’과 같은 진료 예약 어플도 이용해 볼만하다. 비대면 진료는 당일, 일반 진료는 하루 이틀 후 예약을 잡을 수도 있다.
병원 진료와 관련한 인식을 바꾸는 것도 어느 정도 필요해 보인다. 우선 감기 등으로는 병원을 가봤자 해주는 게 없다. 한국 부모들이 가장 무서워하는 고열이 나도 이곳 의료진들은 별 반응이 없다. 평소 식단은 어떤지, 놀아주기 등 양육자가 어떻게 관계를 맺고 있는지, 건강에 위험이 될 만한 환경은 아닌지 등을 묻고 답하는 데 1시간 이상 시간을 들인다. 그러곤 물을 많이 먹이고, 타이레놀이나 브루펜 등 해열제를 잘 챙겨 먹이라는 말로 진료는 끝난다. 특히 항생제 처방은 웬만하면 하지 않는다고 한다. 항생제 내성이 생기는 것을 막고, 자기 면역력을 기르게 하는 방식인 셈으로 미국 현지 부모들은 이를 당연히 여기는 분위기다.
체크업을 해두면 빠른 예약 가능
다행인 것은 한국에선 한 달에 한 두 번씩 감기에 걸리던 초등학생 첫째까지 두 아이 모두 미국에선 잔병치레를 하지 않았다. 기침을 하거나 열이 오른 적이 몇 번 있지만, 신기하게도 해열제 한 두 번 먹으면 이내 괜찮아졌다. 약이 좋은 건지, 맑은 공기 덕분인지 아니면 운이 좋은 건지 이유는 모르겠다. 결과적으로 한국에서 챙겨온 약들은 쓸 일은 아직 없었다. 한국의 소아과 선생님이 “미국 가는데 왜 약을 챙겨가냐”고 한 말이 생각나 뒤늦게 머쓱해진다.
값비싼 병원비를 아끼는 방법도 있다. 미국 병원은 진료비를 사후에 지불하는데, 소득이 없는 경우 의료비 할인을 받을 수 있다. 한달 생활비가 얼마인지 묻고 별도의 확인 절차 없이 그 자리에서 할인율을 결정해 준다. 간단한 진료는 우리로 치면 보건소와 같은 곳을 이용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 보건소도 미리 체크업을 해두면 진료 예약시 빠른 날짜를 받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