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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몽같았던 나의 48시간 출국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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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7월 하순의 어느 날, 미국 미주리 해외 연수를 위해 인천공항에 도착했을 때만 해도, 앞으로 우리 가족에게 펼쳐질 황당한 일들을 예상하지 못했습니다. 저녁을 먹고 출발해 하룻밤 자고 일어나 환승편으로 갈아타고, 한두 시간 더 가면 끝이라 생각했죠. 하지만 출발부터 환승, 도착에 이르기까지 모든 과정에서 예상치 못한 돌발 변수가 생기면서 저희 가족은 악몽과도 같은 48시간을 거쳐 천신만고 끝에 현지 거주지에 도착할 수 있었습니다.

미국 생활이 반환점에 다다른 지금에서 돌이켜보면 미리 준비하고 침착하게 대응했으면 그렇게까지 고생은 안했을 것이란 생각이 강하게 듭니다. 이런 시행착오가 다른 분에게서 되풀이되는 일이 없기를 바라는 마음에 저의 우울했던 출국기를 공유합니다.

난생 처음 경험한 ‘오버부킹’

미국으로 연수를 떠나는 기자들은 대부분 한국 항공사를 이용합니다만 간혹 특이한 지역으로 연수를 떠나는 등 개인적인 사정에 따라 현지 항공사를 이용하기도 합니다. 저희 가족은 반려견을 데리고 가기 위해 미국 현지 항공사인 델타항공을 선택했습니다. 당시 반려동물(소형에 한해)이 승객과 함께 탑승할 수 있는 유일한 항공사가 델타였습니다.

여정은 저녁 7시 40분, 인천에서 애틀란타로 향하는 비행편으로 시작되었습니다. 한국과 미국의 시차를 감안하면 총 비행 시간은 약 15시간 정도였습니다. 애틀란타에서 환승 후 세인트루이스로 가는 밤 11시 비행기를 타고 한 시간 후 목적지에 도착하면 현지 지인이 공항으로 픽업을 나와 최종 목적지인 콜럼비아로 함께 이동하는 일정이었습니다. 10년전쯤 업무상 출장으로 애틀란타에서 환승할 때 1시간 정도 걸렸던 기억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번에는 가족도 함께였고, 다른 사람들의 조언도 많았기에 환승 시간을 여유 있게 3시간 넘게 잡았습니다. 항공권을 발권할 때까지만 해도 비행 일정은 순조롭게 진행될 것으로 보였습니다.

하지만 여름 휴가철이 겹친 공항은 예상보다 훨씬 북적였습니다. 게다가 델타 항공은 저에게는 생소한 ‘오버부킹’ 시스템을 운영하고 있었습니다. 좌석 수보다 더 많은 승객을 예약받는 시스템으로, ‘노쇼'(예약한 승객이 탑승하지 않는 경우)를 대비한 방식이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출발하려던 당일은 노쇼가 항공사 예상보다 훨씬 적었던 탓에, 항공사가 승객들 중 자발적으로 비행 일정을 미룰 사람을 모집하는 상황이 벌어졌습니다. 오버부킹 문제를 해결하느라 출발이 1시간 넘게 지연됐습니다.

예정에 없던 경유지에서의 하룻밤

때마침 마이크로소프트 해킹 사태까지 겹치면서 미국 현지 공항 관제 시스템도 원활하지 않았습니다. 이런저런 이유로 결국 애틀란타 공항에 도착했을 때는 예상보다 2시간 이상 늦어진 상태였습니다. 그래도 비행기에서 내릴 때만 해도 ‘아직 시간이 있으니 서두르면 되겠지’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출입국 수속을 기다리는 인파를 보고는 기대를 접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공항 직원에게 시간이 촉박한 상황을 설명하며, 어린아이와 강아지를 데리고 있다는 점을 강조했지만, 공항 직원은 “여기 모두에게 사정이 있다”는 말만 반복했습니다.

결국 우리는 비행기를 놓쳤습니다. 그 순간의 허탈감은 이루 말할 수 없었습니다. 밤 늦은 시각이라 가장 빠른 다음 비행기도 이튿날 오전이었습니다. 결국 우리 가족은 애틀란타에서 예정에 없던 1박을 하게 됐습니다. 연결편을 놓친 승객들을 위해 항공사에서 호텔 숙박과 왕복 택시를 제공해주겠다고 했지만, 사람이 워낙 많았던 탓에 공항과 호텔에서 수속 절차를 기다리는 데에만 3시간 넘는 시간을 허비했고, 새벽 두 시가 다 되어서야 호텔 방에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호텔 내부는 그리 쾌적하지 않았지만, 피로에 찌든 우리 가족은 기절하듯 잠에 들었습니다.

비행기를 놓친 사람이 워낙 많았던 탓에 밤 12시가 다 돼서야 다음 티켓을 예약할 수 있었고, 호텔 체크인을 마치고 방에 들어서니 새벽 2시가 다 되어있었다.

한국보다 더한 ‘택시 뺑뺑이’

이튿날도 순탄치 않았습니다. 항공사에서 제공해준 리프트(Lyft)라고 하는 공유택시가 문제였습니다. 항공사에서 보내준 문자의 링크를 클릭하면 택시 호출 사이트로 연결되고, 비용은 항공사가 결제하는 방식이었습니다. 공항에서 호텔로 갈 때는 밤 늦은 시각이라 별 문제 없었습니다. 그런데 호텔에서 공항으로 이동할 때 예상치 못한 문제가 발생했습니다. 분명히 택시 기사가 콜을 받았는데 아무리 기다려도 오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전화를 걸어도 받지 않거나 “가고 있다”는 말만 되풀이했습니다.

항공사에서 제공해준 공유택시 바우처. 손님이 몰리는 시간대에는 무용지물이었다

택시를 불렀다 취소하기를 반복하며 한 시간 가까이 허비하다 보니, 자칫 비행기를 또 놓칠 수 있다는 불안감이 엄습했습니다. 결국 저는 프리미엄 콜을 요청하고서야 겨우 택시를 탈 수 있었습니다. 한국의 카카오블랙처럼 훨씬 비싼 요금을 자비로 지출해야 했지만, 어쩔 수 없었습니다.

시간이 지나고 알아보니 항공사에서 선결제한 요금제는 가장 저렴한 ‘스탠다드’였던 탓에 ‘뺑뺑이’ 택시만 잡혔던 게 문제였습니다. 출퇴근 시간에는 기사들이 주거지를 돌면서 합승 승객을 최대한 많이 태워 한 번에 시내 중심지로 이동하려 하기 때문에 택시 호출에 성공해도 제때 도착하지 않았던 것이었습니다. 우여곡절 끝에 공항에 도착한 우리 가족은 아침 식사도 제대로 못하고 헐레벌떡 뛰어다닌 끝에 비행기를 탔고, 집을 떠난 지 꼬박 이틀 만에 목적지에 도착할 수 있었습니다.

“미국 여행은 도착이 절반이야!” 공항에 마중 나온 지인의 한 마디에 눈물이 울컥했습니다.

한국에서 미국으로 이어진 48시간 여정 후, 우리집 강아지 ‘순심이’의 성격은 더욱 까칠해졌다.

오버부킹 잘 활용하면 생활비도 번다?

악몽 같았던 출국 과정을 통해 저는 두 가지 중요한 교훈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첫째, 비행기 환승 시, 특히 사람들이 많이 몰리는 공항을 이용한다면 환승 시간을 최소 4~5시간 이상으로 설정해야 안전하다는 것입니다. 제가 겪은 상황은 굉장히 예외적이지만 폭증하는 항공 수요를 감안한다면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일이기도 합니다. 둘째, 만약 오버부킹 문제가 발생한다면 일정 변경도 고려해볼 만하다는 것입니다. 저희 가족의 일정이 꼬인 첫 단추가 오버부킹이었습니다. 오버부킹 항공편은 연착 위험이 크고 승객 입장에서 쾌적성도 떨어집니다. 해외 연수와 같은 장기 여행에서 반나절이나 하루 정도 일정을 미루는 것은 큰 무리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더욱이, 오버부킹이 발생한 항공사는 일정을 변경해주는 승객들에게 보상을 제공하는데, 꽤 쏠쏠합니다. 델타 항공의 경우 공항 인근 호텔 숙박, 왕복 차편, 그리고 미국의 주요 마트나 쇼핑몰에서 현금처럼 쓸 수 있는 3000달러(1인당) 상당의 바우처를 제안했습니다. 아이가 조금만 더 나이가 많고 강아지도 없었다면 저는 망설임 없이 일정을 조정했을 것입니다.

부디 저의 불행했던 시행착오가 되풀이되지 않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