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 미국을 ‘자동차의 나라’라고 부릅니다. 미국에 와보니 이 말이 실감이 납니다. 땅이 넓어서 그런지 도로도 널찍하게 잘 닦여 있습니다. 고속도로는 거미줄 같이 미국의 주요 도시를 사방팔방으로 연결하고, 그런 좋은 길 위를 자동차들이 질주합니다.
동네 마트가 몇 백 미터밖에 안 떨어져 있고 살 물건이 많지 않아도 미국 사람들은 꼭 차를 가지고 갑니다. 걸어서 마트를 가는 사람은 없습니다. 아이를 학교에 데려다 줄 때도 차를 가지고 가야하고 외식이나 쇼핑은 말할 것도 없습니다. 그 정도로 미국에서는 차가 없으면 한 시도 생활하기가 어렵습니다. 그러니 미국에서 운전은 밥을 먹는 것만큼이나 일상적이고 중요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런데 미국에 처음 도착해 차를 인도받고 운전을 시작해 보면 운전이 만만치 않음을 실감하게 됩니다. 한국과 도로체계도 약간 다른 데다 무엇보다 신호체계가 많이 달라서 혼란스러울 때가 많기 때문입니다. 가야 할지 말아야 할지 모르겠는데 뒤에 늘어선 차들이 빵빵거리면 마음은 더 급해지지요. 운전은 익숙하지 않은데도 경찰들은 왜 이리도 많은지, 잠시만 방심하면 딱지를 끊을 위험이 도사리고 있습니다. 한국에서는 경찰 딱지를 우습게보지만 미국에서는 100~200달러라는 상당한 돈이 지출되기 때문에 주의를 기울일 필요가 있습니다.
1. 미국은 비보호 좌회전의 나라
연수자들이 미국에 와서 가장 혼란스러워하는 것이 사거리 교차로에서 좌회전을 할 때입니다. 한국에서는 웬만한 시내 간선도로의 사거리라면 당연히 초록색 화살표로 된 좌회전 전용 신호가 있어서 이 신호가 켜지면 좌회전을 하면 됩니다. 그런데 미국 신호등은 좌회전을 표시하는 화살표(??)의 색깔이 초록색도 있지만 노란색, 빨간색 등으로 여러 가지입니다. 초록색 화살표가 켜지면 좌회전을 하는 것은 한국과 동일해 어려움이 없지만 나머지 화살표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당황하게 되지요.
그래서 제가 미국에서 오래 생활한 교포에게 미국의 교통상황에 대해 물었더니 그 분의 답은 이랬습니다. “미국은 하지 말라는 표시만 없으면 하면 됩니다.” 좌회전을 하지 말라는 빨간색 화살표만 아닌 다른 모든 상황에서는 좌회전을 알아서 하면 된다는 취지였습니다.
U턴도 마찬가지입니다. 한국은 웬만한 교차로에 유턴을 하라는 표시가 있지만, 미국은 유턴 표시가 전혀 없고 도로 바닥에 큰 화살표로 좌회전 표시가 있습니다. 유턴과 관련된 표지판은 유턴을 하지 말라는 NO U-TURN 표시만 있습니다. 저도 미국에 와서 처음 운전을 할 때 유턴 표시를 찾아 헤맸던 적이 있었습니다. 알고 봤더니 노 유턴 표시가 없는 모든 좌회전 상황에서는 유턴을 자유롭게 할 수 있었는데도 말이죠.
좌회전 상황에 나오는 화살표를 간략히 설명하면 이렇습니다.
▶초록색 화살표 : 좌회전 진행
▶빨간색 화살표 : 좌회전 절대 금지
▶노란색 화살표 : 초록색 화살표에서 빨간색 화살표로 바뀌는 중간의 1, 2초가량 아주 짧게 켜집니다.
교차로에 접어들기 직전 노란색 화살표가 켜지면 기본적으로는 정지해야 하지만
노란 화살표가 켜진 1, 2초 안에 교차로를 빠져나갈 수 있으면 진입해도 됩니다.
그러나 신호가 너무 짧아 위험부담이 큽니다.
▶노란색 화살표 점등 : 노란색 화살표인데 깜빡거리는 것입니다.
이 신호는 10~20초가량 긴 편이며 반대 차선에 차가 오지 않으면
알아서 비보호 좌회전하라는 것입니다.
▶좌회전과 관련된 화살표 신호가 안 켜져 있고 그냥 양방향으로 파란색 신호등만 켜져 있는 경우 :
초록색이나 노란색 화살표가 안 켜져 있지만 기본적으로 비보호 자회전이 가능.
반대 차선에 차가 오지 않거나 멀리 온다면 요령껏 좌회전을 하면 됩니다.
그런데 반대 차선에 오는 차를 보지 않고 진행하다간 교차로에서 정면충돌의 위험이
항상 도사리고 있으니 매우 주의를 기울여야 합니다.
미국에서는 비보호 좌회전이 많기 때문에 교차로에서 서로 충돌하는 사고가
종종 일어납니다. 뉴욕 등 대도시는 특히 좌회전 전용 신호가 거의 없고,
파란불에서 비보호 좌회전을 하고 있습니다. 복잡하기 그지없는데
나름 질서 있게 잘들 좌회전을 하더군요. 이는 대도시 교통상황에 적응을 해서
그런 것도 있겠지만 다들 무언의 사인을 주고받으면서 조심하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2. Only 표시를 잘 지켜야 한다
미국의 도로를 주행하다 보면 도로 바닥에 Only 라는 표시를 자주 만나게 됩니다. 교차로에서 우회전을 할 수 있는 맨 우측 차선에 Only가 써 있으면 우회전만 하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차선에서 만약에 우회전을 하려다가 생각이 바뀌어 직진을 하다 경찰에 적발되면 바로 딱지를 떼게 됩니다. 한국 같으면 우측 차선에서 우회전을 하든, 직진을 하든 운전자 마음인데 미국은 절대 그렇지가 않습니다. 설사 우회전 전용 표시를 지키지 않는 사소한 것을 경찰이 잡겠느냐고 생각할 수 있지만 이것도 큰 오산입니다. 미국은 도로 곳곳에, 특히 후미진 곳, 한적한 곳에 경찰이 깔려 있습니다. 그래서 작은 위반이라도 생기면 거의 단속될 가능성이 매우 크기 때문에 법규를 철저하게 지키는 것이 최선입니다.
우회전 전용과 반대로 좌회전 차선에 대기하고 서 있다가 생각이 바뀌어 직진을 하는 것도 당연히 단속 대상이니 주의를 해야 합니다. 미국에서는 차선의 속성대로만 주행해야 하는 것입니다. 직진 차선에서는 직진만, 좌회전 차선은 좌회전만, 우회전 전용은 우회전만, 직진과 우회전 겸용은 둘 다 가능합니다.
별 것 아닌 것 같은 이 내용을 제가 굳이 자세히 설명하는 이유는 제가 미국에 도착한 날 저를 공항에서 마중한 분이 저를 태우고 저희 아파트로 가는 도중에 우회전 전용 차선을 지키지 않다가 실제로 경찰에 걸리는 걸 제가 직접 목격했기 때문입니다. 우회전 전용 차선인데 이를 모르고 직진을 했다가 사거리에서 잠복하고 있던 경찰에게 걸린 겁니다. 다행스럽게도 마음씨 좋은 젊은 백인 경찰이어서 그런지 주의하라고 하더니 봐 줬습니다. 이후에 연수를 온 다른 분들에게 물어보니 경찰이 적발하고도 봐주는 경우는 거의 없다고 하더군요.
3. 한적한 고속도로일수록 경찰 조심해야 한다
미국을 여행하다보면 고속도로(Interstate Highway)를 많이 타게 되는데, 고속도로의 속도 제한은 보통 시속 65마일 정도입니다. 그럼 대부분의 차들은 70마일 정도 달리는 것이 일반적이고, 좀 더 밟는 차들은 75마일, 80마일 정도를 달리는 것 같습니다. 속도 제한을 딱 맞춰서 달리다 보면 다른 차들이 우리 차를 계속 추월하기 때문에 더 달려야 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수도 있는데요, 그러다보면 달갑지 않은 경찰이 따라붙는 경우가 생기곤 하니 주의가 필요합니다.
미국을 다급한 일정으로 여행하는 연수자들은 거의 없기 때문에 고속도로 주행을 할 때 기본적으로 제한속도를 지켜주는 것이 좋습니다. 특히 차들이 별로 없는 한적한 고속도로를 주행할 때는 속도제한을 꼭 지켜야 하는데요, 그 이유는 한적한 도로일수록 잠복한 경찰이 반드시 있기 때문입니다. 제 경험으로는 미국 보스턴에서 캐나다 퀘벡시티로 넘어가는 고속도로가 아주 한적했는데요, “정말 이런 곳이야말로 경찰이 있을 수가 없겠다”고 생각한 순간 어디서 경찰이 짠하고 나타나 앞에 가던 과속차량을 단속하는 걸 봤습니다. 반대로 뉴욕시 근처의 복잡한 고속도로에서는 차들이 평균 75마일 이상으로 쌩쌩 달리는데도 속도위반으로 잡는 경우가 없는 것 같습니다. 수만 대의 차들이 엄청난 속도로 달리기 때문에 이 곳에서 속도위반으로 단속
을 한다면 아마 뉴욕시 교통이 마비될 것 같아 그런지 단속 자체를 안 하는 듯 보였습니다.
그래서 제가 Speed Limit에 대해 터득한 진리는 한적한 도로일수록 속도제한을 꼭 지키고, 북적이는 도로에서는 다른 차들과 같은 페이스로 달리면 된다는 겁니다. 일종의 묻어가는 전략이라고 할 수 있지요.
미국에서는 “튀면 걸린다”는 말도 있습니다. 공원 같은 데 시속 25마일로 제한된 곳에서 30마일로 달리다가 걸린 사람도 있다고 하니 언제 어디서 운전하든 항상 속도제한을 잘 지키는 것이 안전한 미국 생활을 위한 최선의 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