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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틀랜타 연수기2 – 잘못된 것은 따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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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아대(UGA)가 있는 아덴스(Athens)에서 미 남부의 가장 큰 관광 도시 중 하나인 사바나(Savannah)까지는 5시간 정도가 걸린다. 영화 ‘포레스트 검프’의 배경이 되기도 한 사바나는 가지마다 이끼를 주렁주렁 늘어뜨린 아름드리 가로수와 격자형 도로의 각 교차로마다 분수대, 동상, 탑 등으로 꾸며진 크고 작은 정원 광장(플라자)들이 넉넉하면서도 아늑한 매력을 풍기는 도시이다. 1733년부터 지어진 단아하면서도 우아한 유럽풍 집들은 마치 유럽의 한 도시에 와 있는 듯한 느낌마저 준다.

서울에서 장모님이 오신데다 LA에 있던 막내 동생 정민이도 모인 김에 사바나 여행을 떠났다. 인원이 모두 6명이나 돼 승용차로는 다 함께 갈 수 없어 ‘엔터프라이즈’라는 렌터카 회사에서 9인승 밴을 빌리기로 했다. 인터넷을 통해 예약을 한 뒤 약속한 날 아침 엔터프라이즈 사무실을 찾아갔다. 그런데 예상치 못했던 일이 발생했다. 내가 예약한 차가 아직 준비되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원래 그 날 아침까지 다른 사람이 쓰고 반환키로 돼 있었는데 그 사람이 아예 연락도 안 된다는 것이었다.

집에선 장모님과 동생, 가족들이 모두 여행을 떠나기 위해서 기다리고 있을 텐데 막상 타고 갈 차가 없는 상황이 된 것이다. 직원에게 그럼 어떻게 해야 하느냐고 물었더니 매니저를 불러왔다. 30대 초반의 매니저는 미안하게 됐다며 자신들이 가능한 한 빨리 새로운 차를 수배해보겠다고 약속했다. 하는 수 없이 기다려야 했다. 운전면허시험장에서 무려 4시간을 기다려야 했던 악몽이 떠 올랐다.

다행히 악몽은 되풀이되지 않았다. 매니저는 이쪽 저쪽으로 전화를 돌리더니 30분쯤 후에 새로운 차를 찾는데 성공했다고 말했다. 매니저는 그러나 차를 받기 위해서는 다른 차를 타고 10분쯤 가거나 여기에서 30분쯤 더 기다려야 한다고 했다. 난 내가 가겠다고 했고 매니저는 그럼 자기들이 데려다 주겠다고 했다.

사무실을 떠나기 전 요금을 내려고 하는데 다소 화가 났다. 그래서 난 새로운 차를 찾아준 것은 고맙지만 이건 일어나지 말았어야 할 일이었다고 지적했다. 무려 내가 1시간 가까이 허비한 점과 모처럼의 가족 여행이 출발부터 어긋나게 된 점도 강조했다. 가족들은 이번 여행에 대한 기대감에 제대로 잠도 못 잤는데 실망이 크다고 다소 과장도 했다. 매니저는 찬찬히 내 얘기를 들은 뒤 내 생각을 말해 보라고 했다. 난 대뜸 한 20% 정도는 깎아줘야 하지 않겠냐고 제안했다. 내가 너무 무리한 요구를 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할 틈도 없이 매니저는 바로 ‘OK’라며 그 자리에서 가격을 깎았다. 매니저는 또 렌트 시간도 더 넉넉하게 타도 된다며 친절을 보였다. 이럴 줄 알았으면 한 50% 깎아달라고 말해볼 걸 그랬다.

소비의 나라, 미국은 소비자가 왕이다. 따라서 부당하고 잘못된 것에 대해서는 당당하게 따져야만 한다. 사실 내가 내 돈을 쓰는 게 아닌가? 따질 때는 전혀 흥분할 필요가 없다. 차분하게 요목조목 주장하면 웬만하면 다 알아 듣는다.

여행을 다녀와 사진을 뽑으러 월마트에 갔을 때도 비슷한 일이 벌어졌다.

월마트엔 디지털 사진 파일이 담긴 USB나 디스크를 가져가면 바로 사진을 뽑을 수 있는 키오스크가 있다. 키오스크에 USB를 꼽고 사진을 선택한 뒤 출력 버튼을 눌렀는데 아무리 기다려도 사진이 안 나오는 것이었다. 직원에게 얼마나 기다려야 하냐고 물었더니 금방 나오니까 그냥 기다리면 된다고 했다. 처음 사용하는 것이어서 좀 기다려야 하는 줄 알고 한참을 기다려봤지만 사진은 나오지 않았다. 그래서 키오스크 화면을 자세히 보니 ‘리본’이 없다는 메시지가 떠 있었다. 잉크가 떨어진 것과 마찬가지이다. 그래서 직원을 불러 리본이 없다고 말했는데 직원은 그냥 ‘OK’ 버튼을 누르면 될 거라는 것이었다. 물론 ‘OK’ 버튼을 눌렀지만 사진은 나오지 않았다. 다시 직원을 부르자 직원은 그제서야 키오스크를 점검하기 시작했다. 더구나 리본을 바꿔도 사진은 나오지 않았다. 직원은 이곳 저곳을 만져 보며 자기도 무엇이 문제인 지 모르겠다며 고개를 저었다.

키오스크에서 무려 1시간을 허비한 뒤였다. 화가 난 난 점잖지 못한 영어로 언짢음과 불쾌감을 표현했다. 어이가 없게도 키오스크는 전원을 껐다 켜자 정상으로 작동했다. 사진을 다 뽑은 뒤 얼마냐고 물었더니 직원은 ‘No Charge’라고 쓰여진 봉투를 건넸다. 기계가 작동하지 않은 것은 자신들의 책임인 만큼 돈을 안 받겠다는 것이었다. 60달러에 가까운 금액이었다.

이후 미국 연수기간 동안 뭔가 잘못됐다 싶으면 무조건 따지고 보는 습관이 들기 시작했다. 자신의 권리는 자기가 지킬 수 밖에 없다. 결국 주장한 만큼 받게 돼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