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으로 연수를 오게 되면 아무래도 자동차 여행을 많이 하게 된다. 일단 가장 쉽고, 둘째 가장 경제적인데다, 셋째 새로운 곳을 찾아가는 재미 또한 흥미진진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자동차 여행은 항상 사고를 조심해야 한다.
조지아주는 마이애미 비치로 유명한 플로리다주와 접해있다. 연수지인 조지아주 아덴스(Athens)에서 자동차로 4시간이면 플로리다주다. 크리스마스를 마이애미에서 보내기로 하고 2007년 12월 아덴스를 출발했다.
사실 플로리다에는 마이애미 비치만 있는 게 아니다. 우리나라처럼 3면이 바다인 플로리다에는 해안가를 끼고 수백개의 비치가 자리잡고 있다. 저마다 으뜸이라 주장하는 탓에 1년에 한번씩 ‘최고의 비치’를 선정할 정도다. 여행의 일정은 플로리다에서 가장 아름답다는 비치를 일주하는 것이었다.
첫날은 플로리다에서 가장 북쪽에 위치한 도시인 잭슨빌(Jacksonville)에서 묵었다. 이곳에서부터 마이애미까진 ‘A1A’라는 해안도로가 쭉 나 있다. A1A만 따라가면 플로리다 동해안의 주요 비치는 모두 볼 수 있는 것이다. 영화나 미국 드라마에서 수도 없이 봤던 플로리다의 비치에 실제로 발을 담가보는 것은 즐겁기만 했다. 어디나 무료로 발을 씻거나 샤워를 할 수 있는 곳이 마련돼 있는 것도 좋았다.
둘쨋날은 잭슨빌 남쪽의 세인트 오거스틴(St. Augustin)에서 시간을 보냈다. 아기자기하게 꾸며진 옛날 집과 성당, 박물관 등이 어울러져 마치 중세 유럽의 한 마을에 와 있는 듯한 착각을 일으킬 정도로 아름다운 도시이다.
중간 중간 볼거리가 많아 시간을 쓴 탓에 마이애미에 도착한 것은 셋째 날 저녁이 다 돼 서였다. 때 마침 보름달이 뜬 덕에 달빛이 부서져 보석처럼 반짝이는 밤바다를 볼 수 있었다.
다음날 아침 마이애미의 기온은 12월말임에도 섭씨 30도에 가까웠다. 많은 사람들이 이미 수영을 하고 있었다. 우리 가족도 대서양 바다에 몸을 던졌다. 이후 미국 최남단인 ‘키 웨스트’(Key West)로 갔다. 키 웨스트를 가기 위해서는 마이애미에서 우리나라로 치면 ‘1번 국도’인 ‘US 1’을 타고 섬과 섬을 잇는 긴 다리를 수십개나 건너야만 한다. 그 중엔 길이가 장장 11㎞가 넘는 것도 있다. 그럼에도 사람들이 키 웨스트틀 찾는 것은 가는 길에 코발트빛 바다색과 눈부신 백사장을 자랑하는 명성 높은 비치들이 줄줄이 자리잡고 있기 때문이다.
키 웨스트에선 또 매일 해가 질 때마다 사람들이 광장에서 모여 선셋 세러머니(Sunset Ceremony)를 갖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키 웨스트에서 일몰을 본 뒤 다시 마이애미로 돌아왔다.
마이애미에서 이틀을 묵은 뒤 이번엔 플로리다 서쪽 해안으로 향했다. 플로리다 서부에서 가장 큰 도시인 탬파(Tampa)엔 2005년 세계 최고의 비치로 선정된 포트 드소토(Fort De Soto)가 자리잡고 있다. 진흙 같이 미세하고 눈 부실 정도로 새하얀 모래 사장은 물론 낮잠을 자거나 고기 구워 먹기 딱 좋은 나무 그늘이 많아 가족들을 위한 비치로는 최고라는 설명에 수긍이 갔다.
그러나 자동차 여행은 예기치 않은 사고를 만나기도 한다.
여행 6일째 되는 날 저녁이었다. 포트 드 소토에 대한 아쉬움을 뒤로 한 채 플로리다 북서쪽 끝 파나마 시티(Panama City)로 향하는 도중 갑자기 자동차 계기판에 ‘체크 엔진’(Check Engine) 불이 들어왔다. 연료나 오일이 아닌 엔진에 이상이 생겼다는 것은 중대 사고일 수 밖에 없다. 8시가 넘어 온 사방이 깜깜한데 인적도 드문 길 한가운데에서 차가 멈춰서는 상황을 배제할 수 없게 된 것이다. 더구나 파나마 시티에 도착하기 위해서는 앞으로도 2시간은 더 달려야만 했다. 중고차를 산 만큼 불안한 마음은 더 커질 수 밖에 없었다. 트렁크에 처박아 두었던 사용설명서를 꺼내 찾아보니 연료 탱크의 뚜껑이 잘못 닫혀있는 경우가 아니라면 곧바로 자동차를 구입한 딜러에게 연락하라고 돼 있었다. 주유소를 찾아 시동을 끄고 연료를 가득 넣은 뒤 다시 시동을 켰지만 마찬가지였다. 불안감은 오히려 더 커졌다. 사실 엔진오일을 교환할 시기가 돼 여행 전에 오일을 교환했어야 했다. 그러나 ‘괜찮겠지’하는 안일함에 엔진오일을 교환하지 않은 채로 여행을 떠난 것이 화근이란 생각이 들었다. 더구나 무려 6일 동안 3,000㎞에 가까운 거리를 달린 통이었다.
주변에서 엔진오일을 교환할 만한 곳은 없었다. 시간도 이미 늦은 데다 크리스마스 연휴인지라 문을 연 곳을 찾을 수도 없었다. 난감하고 당혹스러웠다. 그러나 다른 선택이 없었던 만큼 속도를 줄여서 천천히 차를 몰아 보기로 했다. 차가 서지 않기 만을 기원하며 가슴을 졸이며 운전했다. 천만다행으로 파나마 시티에 도착할 때까지 차는 멈추지 않았다.
그러나 사고는 한번으로 끝나지 않았다. 인터넷을 통해 예약한 콘도를 겨우겨우 찾아 갔는데 사무실 불이 꺼져 있는 것이었다. 너무 늦어 직원들이 퇴근한 것인지 아니면 인터넷 사기를 당한 것인지 분간이 안 갔다. 체크 엔진 불이 들어온 차를 몰고 겨우 사지에서 벗어난다 싶더니만 이젠 아예 잘 곳이 없어진 셈이었다. 황당했다. 혹시 주소를 잘못 찾아왔나 싶어 주변을 한참 돌아 봤지만 주소는 맞았다.
비상연락처를 적어 놓은 메모가 눈에 띈 것은 이렇게 30분을 헤맨 끝이었다. 비상연락처로 전화를 걸자 열쇠는 5분 거리인 ‘웰컴센터’에 가면 받을 수 있다고 알려줬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이곳 파나마 시티의 비치엔 콘도들이 즐비한데 낮엔 콘도 건물마다 사무실이 있어 체크인을 할 수 있지만 밤엔 웰컴센터에서 일괄적으로 체크인을 하도록 돼 있었다.
녹초가 된 몸을 끌고 웰컴센터를 찾아 열쇠를 받은 뒤 다시 콘도로 와 문을 열자 예기치 못한 ‘마지막 사고’가 준비돼 있었다. 넓은 거실과 부엌, 방 2개, 화장실 2개, 백사장이 내려다 보이는 베란다가 호텔 스위트룸을 능가하는 초호화 가구와 시설로 꾸며져 있는 것이었다.
인터넷에서는 사진이 안 나와 있어 전혀 예상하지 못한 일이었다. 대부분 허접한 집기로 채워진 우리나라 콘도와는 차원이 달랐다. 연말에 플로리다에서 120달러를 주고 이 정도 방에서 잘 수 있다는 게 믿어지지 않았다. 체크 엔진 불과 불 꺼진 콘도 사무실로 무너졌던 가장의 체면이 한 순간에 회복된 것은 물론이다. 아침에 일어나 22층 베란다에서 무려 40㎞가 넘는 파나마 시티의 비치를 감상하는 것도 인상적이었다. 더구나 한낮엔 충분히 수영도 즐길 수 있었다. 멕시코만 바닷물은 다소 짰지만 에메랄드 빛은 환상적이었다. 가족들 성화에 다음 일정을 취소하고 하루 더 묵었다. 정비소를 찾아 엔진 오일을 교환하자 체크 엔진 불도 사라졌다.
7박8일간의 플로리다 비치 여행은 이렇게 마감됐다. 자동차 여행 중 불의의 사고를 당하지 않기 위해서는 출발 전 엔진 오일 교환 시기가 됐는지 미리미리 점검하는 것이 반드시 꼭 필요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