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 미친 거 아냐?”
그렇다, 마트의 물품 진열은 가지런함, 정갈한 것이 옳다. 매장 청결도 기본이다. 그런데 이건 한국에서 건너 온 고객의 눈으로 봤을 때 도가 지나친 것 같다. 어떻게 야채까지 각을 잡고, 줄을 세워서 진열하느냐 이 말이다. 배추도, 대파도, 양상추도, 이름 모를 초록색 채소도, 가로와 세로, 오와 열을 맞추고 있다. 야채 진열의 이면에서 북한 열병식이 보일 정도다. 기다랗고, 동그랗고, 저마다 제멋대로 생긴 야채를 이렇게 조화롭게 진열하려면 매장 직원의 특별한 열정이 필요하다.
미국의 마트 브랜드 ‘퍼블릭스’에 대한 얘기다. 내가 사는 노스캐롤라이나 캐리의 퍼블릭스만 유독 이러는 걸까? 다른 퍼블릭스도 마찬가지다. 야채를 각 잡는 마당에 다른 공산품 진열을 평범하게 할 리가 없다. 웰치스(Welch’s) 브랜드가 가지런히 보이도록 병을 줄 세워 놓은 모습이 가관이다. 제품을 사려고 병 하나를 빼면 어느새 이빨 빠진 곳을 메우고 완벽한 대열이 갖춰진다. 냉장고에 진열된 과일주스도 알록달록 물감을 조금씩 짜놓은 파렛트처럼 보인다. 하나 가져가면 직원이 짜증내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완벽하다. 한국 편의점을 이렇게 진열하면 알바한테 시급 더 주라고 한다.
퍼블릭스의 제품 진열은 분명한 브랜드 콘셉트다. 마트 간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한 치열한 노동이다. 저렴한 공산품을 살 땐 월마트에 가면 된다. 양이 좀 많아도, 양질의 먹을거리를 살 땐 코스트코에 가면 된다. 고민할 필요가 없다. 하지만 이도저도 아니면 자기만의 독특한 색깔이 있어야 한다. 퍼블릭스는 그 색깔을 제품 진열에 칠하고 있다. 그러니 선을 넘는다 싶을 정도로 야채의 각을 잡는 것이다. 마트 전체를 완벽하게 진열해 고객에게 그 완벽함의 이미지를 주입한다. 그러지 않으면, 고객은 순식간에 푸드라이언, 홀푸드마켓, 해리스티터, 타겟, 알디, 월마트 네이버후드로 발길을 돌릴 수 있다.
퍼블릭스가 이러니, 다른 마트는 가만히 있으면 망한다. ‘트레이더 조스’는 그래서 마트 입구에 일단 꽃을 잔뜩 갖다 놓는다. 노스캐롤라이나의 겨울은 한국보다 춥지 않아서 그런지, 한겨울에도 어디선가 꽃을 가져와 입구에 진열해 놓고 판매한다. 고객은 입구에 들어서는 순간 꽃향기에 홀린다. 꽃의 화사한 색깔에 시선을 빼앗긴다. 매장 공간이 다른 마트보다 크지도 않아서, 마치 작은 축제 현장에 들어서는 느낌이다. 제품의 가격표 또한 꽃처럼 알록달록, 심지어 글씨체까지 ‘깔맞춤’이다. 가끔 다양한 색상의 예쁜 에코백을 저렴한 가격에 한정판으로 판매해 고객이 광고판처럼 들고 다니도록 만든다.
트레이더 조스는 또 쇼핑할 때 고객을 가만히 두지 않는다. 매장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말을 붙여주는 전담 직원이 있다. 어떤 제품을 찾니? 제품에 대해 궁금한 거 있어? 맥주 코너 앞에서 라거를 살까, 에일을 살까 고민하는데, 직원이 말을 걸어줘서 라거를 카트에 담는 식이다. 계산대에선 가끔 땡~ 하고 종소리가 울린다. 직원끼리 소통하는 방식이다. 계산대에서 도움이 필요하니 와달라는 뜻이다. 무전기로 부르지 않는다. 계산하러 가면, 세상 가장 행복해 보이는 직원이 반겨준다. 직업적으로 행복해 보이는 게 아니라, 행복한 사람을 계산대에 배치하는 걸까 생각이 들 정도다. 이 모든 것은 오직 하나의 콘셉트, “우리 매장에서 쇼핑하는 것은 즐거운 일이야!”를 고객에게 각인하기 위한 것이다.
장사 잘하는 업체만 얘기한 것 같으니, 기괴한 쇼핑카트 얘기를 하나 덧붙여야겠다. 미국의 할인 의류, 가정용품 판매업체인 ROSS 브랜드 얘기다. ROSS에 처음 간 날, 퍼블릭스에서 느낀 시각적 충격을 쇼핑카트에서 느꼈다. 카트에 부착해 놓은 기다란 봉, 저게 도대체 뭐냐 이 말이다. 카트에는 하나도 빠짐없이 2미터도 넘어 보이는 봉을 붙여 놓았다. 이런 카트는 처음이었고, 고객에게 대체 무슨 도움이 되는 것인지 알 수 없었다.
이 기다란 봉은 쇼핑카트를 매장 밖으로 갖고 나가지 못하게 하는 장치라는 것을 나중에 알게 되었다. 카트를 매장 밖으로 끌고 가면 봉 끝부분이 출입문에 걸리게 되어 있다. 그래서 봉을 저렇게 길게 붙여 놓은 것이다. 기괴한 길이는 그 나름의 목적을 갖고 있었다. 하지만 그 길이 탓에 매장을 둘러보면 진열된 의류 위로 봉이 툭 튀어나온 희한한 진풍경을 볼 수 있다. 때문에 고객 입장에선 자신의 위치가 노출되고, 업체가 제품 도난 방지를 위해 봉을 붙인 건가 생각하게 되며, 결국 날 잠재적인 범죄자로 취급하나? 의심을 하게 된다.
한국에선 ROSS처럼 불쾌한 기분을 들게 하는 매장을 가본 적이 없다. 그렇다고 퍼블릭스의 미친 정리쇼나 트레이더 조스의 축제 분위기를 느끼게 해준 마트 또한 경험한 적이 없다. 이마트나 홈플러스, 롯데마트, 그 어디를 가도 그들이 강조하는 브랜드 콘셉트를 느끼지 못했다. 모두 “우리가 더 싸다”고 외칠 뿐, 차이점은 크지 않다. 그래서 동네 마트 구경하는 재미가 미국만 못한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