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의 제 1 덕목은 안전
지난 해 추수감사절 연휴를 맞아 가족과 함께 여행을 갔을 때 일입니다. 아치스 국립공원을 갔던 우리 가족은 유타주의 상징이자 일몰이 특히 아름다운 델리케이트 아치를 보기 위해 일몰 시간에 맞춰 주변 주차장에 도착했습니다. 주차장에서 목적지까지는 좀 걸어야 한다는 이미 사실을 알긴 했는데 막상 걷기 시작하니 도무지 끝이 보이지를 않았습니다. 어린 아이들과 함께 계속 오르막길을 걸어 올라 가려니 시간도 오래 걸려서 거의 한 시간을 걷고 나서야 델리케이트 아치에 도착할 수 있었습니다. 다른 아치들은 주차장에서 곧바로 볼 수 있었기 때문에 이렇게 시간이 걸릴 것이라고는 예상하지 못했습니다. 어찌됐든 그렇게 도착해서 아름다운 일몰과 함께 아치를 감상한 뒤 되돌아가는 길에 문제가 생겼습니다. 말 그대로 일몰이 돼 버려 주위가 금방 칠흑같은 어둠으로 변해 버린 것이었습니다. 초반엔 함께 내려가는 사람들이 있어 크게 문제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암석으로 이뤄진 트레일은 올라올 때보다 내려갈 때 시간이 더 오래 걸렸습니다. 어린 아이들을 챙기면서 조심조심 내려오다 보니 어느새 저희와 같이 내려가던 사람들은 이미 종적을 감췄고 넓은 국립공원에 저희만 남은 듯 보였습니다. 올라올 때는 길을 알려주는 표지판이 잘 보였는데 밤이 되고 나니 아무런 표지판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손전등도 없어 아내와 함께 스마트폰의 손전등 기능에 의지할 수 밖에 없었죠. 그래도 일단 내려가다 보면 길이 나올 것이라고 생각하며 조심조심 발을 떼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가면 갈수록 이곳이 아니라는 생각이 확고해 지기 시작했습니다. 올라올 때 보이던 지형지물들이 보이지 않고 오히려 길이 더 험해 지는 것이었습니다. 등에선 식은 땀이 나기 시작했습니다. 전화는 물론 데이터 통신도 모두 두절된 상태인데다 운동화 차림의 아이들은 지쳐 갔고 스마트폰도 방전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습니다. 마냥 걸었다가 주차장과 더 멀어지는 것이 아닐까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전전긍긍하던 그 때, 정말 희미한 불빛 하나가 저 멀리서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저거다 싶어 무조건 그 쪽을 향해 걷기 시작했습니다. 저희와 상당히 거리가 있었는데 길을 잘못 들어도 한참 잘못 들었던 것 같았습니다. 그렇게 우여곡절 끝에 불빛이 보였던 곳에 도착하니 원래 저희가 올라갔던 길이 나타났습니다. 그제야 맘을 놓고 주차장을 향해 갈 수 있었습니다. 만약 가던 대로 가보자고 내려갔다면 아마 밤새 영영 드넓은 국립공원에서 야생 동물을 만나지나 않을까 걱정하며 노숙을 할 뻔 했습니다.
그런데 그날의 여정은 그렇게 끝나지 않았습니다. 아치스 국립공원을 떠나 다음 행선지를 향하는 일정이 이런 저런 사정으로 늦어지게 된 것이죠. 그래도 일단 다른 방법이 없으니 차를 몰기 시작했습니다. 야간 운전을 하면서 가다 보니 어느 새 길은 점점 오르막으로 접어들고 있었습니다. 오르막이 멈추지를 않았는데 그제서야 산악 지대로 올라가고 있음을 깨닫게 됐죠. 그런데 심야의 산악 도로에 갑자기 눈발이 날리기 시작했습니다. 처음에는 조금씩 내리길래 뭐 이 정도는 괜찮겠지 하며 차를 계속 몰았는데 가면 갈수록 눈발은 더 거세지고 바람도 세차게 불기 시작했습니다. 앞도 제대로 보기 어려울 지경이었습니다. 체인도 없는 미니밴인데 구불구불한 오르막이 끝도 없이 나왔습니다. 대략 여유가 있을 듯 생각해 주유를 하지 않고 출발했는데 자동차 휘발유도 목적지까지 빠듯할 것 같아 보였습니다. 전화나 데이터통신이 안 터지는 것은 물론이었고요. 잘못 접어든 하산 길의 충격이 채 가시지도 않았는데 또 다시 이런 일이 벌어지니 정말 정신이 반쯤 나갈 수 밖에 없었습니다. 추수감사절이라 그런지 맞은 편이건 같은 방향이건 지나가는 차도 거의 없었습니다. 긴장 속에 두 시간 넘게 달렸고 다행히 산악지역을 벗어나 민가가 보이는 곳에 다다르게 됐습니다. 그제서야 한숨을 돌린 아내와 저는 이제 한 시간 정도만 더 가면 호텔이라는 생각에 다소 안심을 하게 됐습니다. 바로 그 때, 사슴떼가 저희 앞에 툭 튀어 나왔습니다. 급 브레이크를 밟았는데 웬 사슴 한 마리가 저희를 빤히 쳐다보고 있었습니다. 그 뒤로 한 무리의 사슴떼가 도로를 건너갔고 모두 다 길을 건너자 마치 등교길 횡단보도에서 STOP 사인이라도 든 것처럼 저희를 쳐다보던 사슴은 유유히 수풀 속으로 사라졌습니다. 새벽 1시가 넘어서야 예약한 호텔에 도착한 저는 그야 말로 다리의 힘이 풀려 털썩 주저앉을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 이후로도 여행을 떠날 때면 저희 아이들은 그 때 이야기를 합니다. 아마 아이들 머릿속에 잊을 수 없는 기억으로 남은 모양입니다. 불안함이 컸던 만큼 무사히 귀환할 때의 안도감도 컸겠지요. 저의 여행담을 이렇게 장황하게 늘어 놓은 이유는 미국 여행, 특히 국립공원 여행을 할 때 안전에 대한 인식, 사전 조사가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말씀을 드리기 위함입니다.
미국에서의 로드 트립은 우리 나라보다 훨씬 더 긴 구간을 운전해야 하고 산악 구간을 통과하는 경우도 훨씬 많다고 봐야 합니다. 또 국립공원 자체가 워낙 드넓은데다 통신 자체가 두절상태라고 보시면 됩니다. 길을 찾아 가고 안전을 도모하는 것 모두가 여행자의 책임입니다. 무턱대고 그랜드캐년 트레일을 내려 갔다가 밤새 기어 올라오다시피 했다는 분들도 있습니다.
또 일정을 마치고 밤에 운전하는 경우도 많은데 밤 운전 자체가 부담이 더 크기도 하지만 저처럼 산악 지대를 지날 때는 또 다른 문제들이 발생할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웬만하면 여행 일정을 잘 조절해 낮에 이동하시는 것도 고려하시기 바랍니다. 이동 중에 멋진 경치를 감상할 수 있는 도로도 많습니다.
최근에는 국립공원 추락사고도 많은데 지난 해 요세미티 국립공원에서 사진을 찍으려다 추락한 것으로 추정되는 커플이 숨지기도 했고 올해도 국립공원 곳곳에서 추락사 소식이 들려오고 있습니다. 암벽 등반 중에 추락한 경우도 많지만 국립공원에서 조금이라도 더 멋진 사진을 찍겠다는 욕심에 벌어진 일들도 상당수 있습니다.
여행 중 만나는 야생 동물들이 반갑고 신기하기는 하지만 말 그대로 야생 동물이기 때문에 순해 보이는 초식 동물들도 위협을 느끼면 공격을 하는 만큼 가까이 다가가지 않으시는 것이 좋습니다. 곰 같은 친구들은 더 말할 필요도 없겠죠. 참고로 곰은 사람들이 많은 환경을 싫어하기 때문에 등산로에서 동반자들끼리 이야기를 나누면서 다니면 곰이 알아서 피해간다고 합니다. 혹시라도 멀리서 곰을 마주치면 침착하게 몸을 숙이고 천천히 뒷걸음질쳐 멀어지는 것이 좋고 만약 곰이 다가와 피할 수 없는 상황이 되면 양팔로 목을 감싸고 엎드려야 합니다. 재빨리 뒤돌아 달리면서 도망치는 것이 최악의 선택이라고 합니다. 곰보다 빠르게 도망칠 수 없습니다. 곰에게 사용하는 스프레이를 미리 준비하거나 곰이 싫어하는 소리를 내는 벨을 차고 다니는 것도 방법입니다.
여행을 다니면서 좋은 추억을 만드는 것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경험입니다만 혹시라도 사고가 난다면 그것보다 불행한 일도 없을 겁니다. 여행을 떠나기 전에 철저히 대비하시고 여행지의 특성, 이동 경로의 안전을 출발하기 전 꼼꼼히 따져 보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