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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수기간 중 만난 기자 전문가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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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수기간 동안 경제 전문가 및 유명 기자들과 소규모 좌담회를 가질 기회가 여러 번 있었다. 학교에서는
미국 및 중국, 영국 경제 전문가들을 강의실로 초청하기도 했으며, 해외 유수 언론사 탐방 기회도 마련해
주었다. 특히 개인적으로 뉴욕타임즈, 월스트리트저널, 블룸버그 등 유수 언론사를 방문해 기사로만 봤던
유명한 기자들 그리고 데스크들을 만나 디지털 시대 저널리즘에 대한 고민과 생존을 위한 변화 노력에 대
해 생생하게 들었던 것이 흥미로웠다. 그 중 인상 깊었던 강연을 정리하는 게 나에게도 필요하고, 공유하
면 다른 분들께도 도움이 될 것 같아서 연수 말미에 다시 한번 메모장과 녹음 파일을 꺼내 정리해 본다.


과열되고 있는 미국 경제 – 마크 잔디 무디스 수석애널리스트 


미국 경제 전문가로 외신에 자주 인용되는 마크 잔디 무디스 애널래틱스의 수석 애널리스트는 위트 있고
명쾌한 설명으로 우리들을 사로잡았다. 


잔디는 미국 경제에 대해 상당히 낙관적인 견해를 갖고 있었다. 우선, 실업률 하락으로 실질 임금이 본격
상승하고 이는 소비 증대로 이어질 것이라는 게 낙관론의 주요 근거였다. 현재 미국의 실업률은 4% 초반
수준으로 이는 16년 만에 최저치다. 미국 경제는 2008년 시작된 경기침체에서 벗어나 유례 없이 긴 호황
기를 누리고 있는 중이다. 그는 내년 중에는 실업률이 4% 이하로 내려갈 것으로 예상했다.  실업률 하락
에 따른 실질 임금 상승은 소비 여력을 늘리는 데 도움이 된다.


잔디는 실업률은 떨어지지만 실질임금 상승률이 이에 훨씬 못 미친다는 반론에 대해서도 ‘고령화 효과’를
들어 반박했다. 예전과는 달리 50대 이상 노동인구가 은퇴를 미루고 노동시장에 남아 있는데 이들의 낮은
임금상승률이 전체 임금상승률을 깎아 먹고 있다는 것이다. 대신 20~30대의 임금상승률은 6~7%에 달해
젊은층의 지갑이 두둑해 지고 있어 미국 경제 성장은 당분간 걱정 없다는 게 그의 분석이다.
   
또 하나, 살아나고 있는 주택경기도 낙관의 이유다. 사람들이 다시 집을 사기 시작하면서 건설업자들이
공급을 늘리고 있지만 정작 일손이 부족해 수요를 못 따라갈 정도다. 미국 가구의 3분의 2가 주택을 소유
하고 있어 집값 상승은 소비 회복에도 도움을 주고 있다. 


그러나 역시 ‘양손잡이’ 이코노미스트답게 리스크에 대한 우려도 강조했다.  본인을 완전한 민주당 지지자
(full-blown Democrat)라고 소개한 그는 트럼프가 취임한지 반년이 넘도록 러시아 문제 등으로 인해 제대
로된 경제 정책을 추진한 게 없다고 지적했다.  특히 예측 불가능한 정치인인 트럼프가 무역 전쟁이든 실제
전쟁(북한에 대한 폭격을 포함해)이든지 전쟁을 정치적 돌파구로 삼을 수 있다는 우려도 덧붙였다. 


또 다른 리스크는 미국의 금리인상에 대한 시장의 ‘안일한 태도’를 꼽았다. 연준이 FOMC 회의록 등을 통해
밝힌 금리 인상 계획은 2020년까지 연방기금금리는 3%까지 올린다는 것인데, 유로달러 금리를 보면 시장은
2% 인상만 반영하고 있다는 것이다. “1% 포인트나 갭이 있다는 것은 누군가 한 쪽은 틀렸다는 것인데, 시장
이 틀렸을 경우 금융시장 변동성이 클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그는 개인적으로 주식을 서서히 처분
하고 있다고 귀띔했다.(개인적으로 귀가 쫑긋해 지는 대목이었다.)


그의 강연을 들으면서 미국 경기가 정점을 향해 치닫고 있으며, 한국 역시 연준의 시그널을 살피며 미국의
경기 하강에 서서히 대비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20년차 기자도 전화 울렁증 – 베쓰니 메클레인


연수기간 중에 만난 기자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기자는 ‘희대의 회계 부정 사건인 엔론 건을 파헤친 여기자’
로 잘 알려진 베쓰니 메클레인이었다. 70년생이라고 믿기지 않을 정도로 동안인데다 영화 배우 뺨치는
미모여서 남학생들이 특히 초 집중한 강연이었다. 20년 이상 탐사보도 전문 기자로 일한 경륜에서 뿜어
져 나오는 그녀의 아우라가 강의실을 휘감았다.(외모는 거들 뿐!)


그녀의 저서 ‘The smartest guy in the room’은 다큐멘터리 영화로도 제작됐다. 지금은 베니티 페어에
정기적으로 기고하면서 책을 쓰는 프리랜서 기자로 활동하고 있다.


선배 기자로서 여러 가지 조언을 이야기해 주었는데, 기억에 남는 대목은 본인도 아직 전화 공포(Phone
fear)가 있다는 것이었다. 취재를 위해서는 모르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캐묻고 다녀야 하는데, 막상 전화를
걸기 싫어 미적미적댄다는 것이다. 상대방이 불편해 할 질문들을 던지는 게 싫고, 답을 거절 당하는 것도
싫어서 핸드폰을 들기가 싫은 기자는 나만이 아니었던 것이다. 심지어 20년차의, 저렇게 유명한 기자도
전화 공포증이 똑같이 있다는 걸 알게 되니 한편으로 위로와 안심이 되었다. 


그리고 효율적인 취재는 없다는 그녀의 조언도 와 닿았다. 그녀는 “취재라는 거 자체가 태생적으로 비효율
적” 이라며 토끼굴을 뒤지듯이 하나하나 뒤질 수 밖에 없다고 했다. 그러면서 최근에 자신이 보도한 웰스
파고 가짜 통장 사건과 관련해서도 “그냥 모든 사람에게 전화를 걸었다”고 말했다.


그녀는 출발부터 잡지에서 시작해 지금도 탐사보도 전문 프리랜서이기 때문에 일간지 기자들과 일하는
스타일이 다를 수밖에 없긴 하다. 쓰는 기사의 형식도 다르다. 탐사 보도를 위주로 하되, 기존에 알려진
사건이라도 심층 취재를 통해 독자들이 흥미롭게 읽을 수 있도록 분량이 긴 기사로 재조명한다. 예컨대,
웰스파고가 가짜 통장을 만들어 고객과 투자자를 속였다는 사실이 이미 알려졌다면, 그 은행에 그 동안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기에 그런 사건이 발생했는지를 자세히 보도하는 식이다. 스트레이트 보도로는
알 수 없는 기업의 잘못된 인사 문화, 내부 권력 갈등 등이 빚어낼 수 있는 부정적인 결과를 흥미롭게
써내려 간다.
 
과연 요즘과 같이 매일매일 빠르게 돌아가는 시대에 독자들이 그런 긴 호흡의 기사를 원할까?  라는
질문에 그녀는 “’컨텍스트’를 원하는 독자 수요도 있다”고 대답했다. 공감했다. 나 역시 그런 독자 중
하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