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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수생활의 감초 ‘미드’, 한국 대선판에 화두를 던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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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 새해 시정연설이 한창이던 국회의사당 건물이 폭탄테러로 완전히 주저앉는다. 상하원 의원은
물론 배석해 있던 부통령과 각료 전원이 사망자 명단에 오른다. 미국 대통령직 승계법엔 이런 상상
하기 힘든 최악의 상황까지 가정해 정부 요인이 한자리에 모이는 대통령 취임식과 연두교서 행사 당일
각료 가운데 1명을 안전가옥으로 피신시키는 이른바 ‘Designated Survivor’라는 제도적 장치가 있다.


미 ABC방송에서 매주 수요일 방영중인 ‘Designated Survivor’는 바로 이 최악의 시나리오에 처한 미국
을 그린 정치 스릴러 드라마다.




테러의 배후와 대통령직 찬탈까지 기획한 거대한 정치적 음모를 파헤쳐가는 스토리 전개도 압권이지만,
내게 인상 깊었던 건 한 나라의 대통령이란 무엇인가를 넌지시 보여주는 대목이었다.


음모세력이 거사 당일 전략적으로 선택한 DS는 정무감각이 떨어져 테러 직전 대통령으로부터 사실상
해고통보를 받았던 교수 출신 ‘어공(어쩌다 공무원)’이었다. 어쩌다 대통령까지 맡게 된 이 ‘어공’은
탐욕과 음모로 가득찬 워싱턴 정가에서 진정성과 열의로 난관을 헤쳐나가며 진짜 대통령이 되어간다.
난세에 필요한 대통령이란 어마어마한 정책적 식견으로 무장한 현인이나 탄탄한 지지세력을 등에 업은
불세출의 정치영웅이 아니었다. 선의와 악의를 구별해낼 수 있는 건전한 양식과 양심만 있다면 누구든
자리가 사람을 만들어낸다는 메시지인 셈이다.


대선 1주일을 앞두고 문득 이 드라마가 떠올랐다.


광장의 촛불이 제왕 행세하던 대통령을 끌어내렸을 때만해도 이번 대선은 우리가 지금껏 경험하지 못
한 새로운 패러다임을 여는 시발점이 될 것이라 기대했다. 광장을 가득 메웠던 촛불을 목도한 정치인
이라면 적어도 이번만은 진흙탕 싸움이 아니라 명예로운 진검승부를 펼칠 것이라 믿었다. 그게 정치인
의 마지막 양심이라 여겼다.


하지만, 우리네 현실은 드라마보다 더한 참혹한 반전의 연속이다. 박근혜 최순실 게이트라는 대형 폭탄
참사를 당하고도 이 나라 지도자를 자처하는 후보들은 서로 찢어라, 죽여라 외치고 으르렁댄다. 하나의
염원으로 타올랐던 광장의 촛불마저 세갈래, 네갈래 찢겨 서로를 꺼트리려 안달이다.


바라건대 더 이상 영웅을 기다리지 말자. 대신 그 자리에 앉으면 보편적 가치를 위해 일할 수 밖에 없는
그런 대통령직 시스템을 만들어보자.


재정부 출입 시절, 청와대 파견 근무를 마치고 돌아온 과장 한 분과 점심을 먹으며 참여정부 결재시스
템인 ‘이지원(e知園)’에 대한 이런 얘기를 나눈 적이 있다.


“MB는 전임 정부 것이니 쓰지 않겠다 하고, 노 대통령은 봉하마을로 통째로 가져가 문제가 됐지만
‘이지원(e知園)’은 진짜 괜찮은 시스템이었어요. 정책을 기안한 말단 사무관에서 담당 실국장, 장관,
대통령까지 어떤 생각을 갖고 일을 추진했는지 환하게 들여다볼 수 있어요. 결재 과정에서 누가 어떻
게 비틀고 만졌는지도 그대로 드러나요. 대통령이라고 맘대로 정책을 주무르지 못하게 돼 있는거죠.
기록으로 남길 수 없는 일은 아예 하지말라는 거니 누가 장난치겠어요. 대통령도 꼼짝없이 5년간 공무
원 생활하게 만드는 건데 버려지는게 참 아깝네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