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단 홈페이지를 보니 해외연수 공고가 떴네요.
연수를 준비하는 분들의 가장 큰 고민 중 하나가 어느 곳을 택할까 하는 것이겠지요. 현지에서 지내면서 생각해봐도 어느 지역에 머무느냐에 따라 생활의 차이가 클 것 같습니다.
다른 지역이야 잘 알 수 없으니까 제가 살고 있는 미국 미주리주 콜럼비아시에 대한 생각을 말씀드려보겠습니다. 제가 다니는 미주리주립대는 많은 언론인과 공무원이 연수를 다녀갔습니다. 지금도 수십 명이 연수 중입니다. 이 학교는 미국 중부 미주리주의 인구 10만 도시인 콜럼비아시에 캠퍼스가 있습니다. 연수생들은 이 중소도시에서 살게 됩니다. 콜럼비아라는 지명은 미주리 말고도 여기저기에 있어 헷갈립니다. 저도 콜럼비아시에 대학이 있다고 해서 뉴욕에 있는 명문 콜럼비아대와 무슨 연관이 있지 않을까 생각한 적이 있습니다만 전혀 무관합니다. 이곳 콜럼비아시의 중심 도로 이름은 브로드웨이입니다. 미주리에는 캘리포니아도 있고 워싱턴도 있고 심지어 멕시코도 있습니다. 이런 걸 짝퉁이라고 해야 할까요. 하여간 같은 이름이 미국 곳곳에 너무 많으니까 그러려니 하면 됩니다.
이곳을 직접 오지 않은 분들에게 생활 여건을 설명한다는 것이 참 어렵습니다. 듣는 분들도 뜬구름 잡는 느낌일 것 같습니다. 그래서 좀 무리가 있지만 나름의 평가항목을 만들어 점수를 뽑아봤습니다. 우린 점수에 익숙하니까.^^ 학교 점수와 비슷한 감을 주기 위해 10개 항목별 최하점을 5점으로 했고 최고점을 10점으로 했습니다. 최악의 연수지는 50점, 최고는 100점이 되겠네요. 우선 점수부터 뽑아봅니다.
1. 언론인으로서 필요한 공부를 하기에 좋다 – 8점
2. 생활비가 싸다 – 10점
3. 자녀의 학교 교육 여건이 좋다 – 8점
4. 기후가 좋다 – 7점
5. 환경이 쾌적하다 – 9점
6. 대중교통 등 편의시설이 잘 돼있고 다양한 문화생활을 할 수 있다 – 6점
7. 한국 음식점 등이 다양하고 한국 사람들과 도움을 주고받을 수 있다 – 7점
8. 범죄, 사고 등의 우려가 적다 – 8점
9. 골프 등 각종 운동을 즐길 수 있다 – 9점
10. 미국의 명소들을 여행하기에 좋다 – 7점
총점을 내보니 79점이네요. 물론 지난 7월부터 고작 5개월을 지낸 저의 주관적인 판단이니까 이곳을 다녀간 다른 분들의 생각과 차이가 나는 부분도 있을 것입니다. 모든 항목에 가중치를 두지 않았는데 각자가 중시하는 부분에 무게를 두고 보시면 더 도움이 되겠지요. 항목별로 부연 설명을 해 봅니다.
1. 언론인 공부 (8점)
미주리대 저널리즘 스쿨은 올해 창립 100주년 행사를 했습니다. 긴 전통만큼 경쟁력도 인정받는다고 합니다. 다양한 실습과목이 개설돼 있고 연수생들에게도 청강의 문호를 개방합니다. 아시아 센터에도 한국 연수생들이 많이 옵니다. 아시아 센터는 한국인 학자들이 주축을 이루고 있습니다. 또 영어 강의나 관공서 견학 등 다양한 프로그램이 제공됩니다. 제가 등록한 지난 학기 기준으로 연수비는 저널리즘 스쿨이 연간 5000 달러 내외, 아시아 센터가 1만 달러 내외입니다. 양쪽 모두 한국 언론인에게 어드미션을 잘 주는 것 같습니다. (미주리대 국제경제연구소에도 한국 연수생들이 다녀간다고 합니다만 제가 직접 접하진 못했습니다.)
2. 생활비 (10점)
일반 생필품 가격이야 큰 차이가 없겠지만 주거비용이 아주 쌉니다. 한국 연수생들이 많이 사는 방 3-4개짜리 집 월세가 650-700 달러입니다. 한국 기준으로 35평 아파트 정도의 공간은 되는 것 같습니다. 비교적 좋은 동네의 널찍한 집도 월 900달러 정도입니다. 뉴욕 같은 대도시의 30% 정도나 될까요. 연수를 결정할 즈음엔 “평생 한번 연수인데 무리해서 돈 좀 써도 되지 않을까”하는 생각도 했는데 막상 와서 살다보니 돈이 많이 아쉽습니다. 생활비의 중요도가 나날이 커지는 느낌입니다.
3. 자녀 교육 (8점)
두 아이를 중학교와 초등학교에 보내면서 처음엔 염려를 많이 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걱정을 안 합니다. 학교 선생님들 다 좋고 친구들도 괜찮습니다. 고등학교에 가면 불량 청소년들도 있다고 합니다만 저희 아이들은 아무런 어려움 없이 즐겁게 학교를 다닙니다. 한국인 친구들이 너무 적지도, 많지도 않습니다. 둘 다 스쿨버스를 태우는데 버스 안에서도 별 문제가 없습니다. 현지 미국인으로부터 1대 1 영어 과외를 받는 비용은 시간당 20달러 정도입니다. 다만 중학생 이상인 경우, 1년 뒤 한국 생활을 이어갈 생각을 하면 다른 대도시처럼 한국 학교 공부를 병행하기 어렵다는 것이 단점입니다.
4. 기후 (7점)
여기서 여름, 가을을 보냈고 막 겨울에 들어섰습니다. 여름은 무척 덥고 겨울은 상당히 춥다고 합니다. 초겨울인데도 종종 바람이 매섭습니다. 가을 날씨는 좋은데 일교차가 크더군요. 봄에는 토네이도가 온다고 합니다. 기온과 날씨의 변화가 아주 심한 것이 특징입니다.
5. 환경 (9점)
집 근처에서 공장을 못 봤습니다. 교통량도 적습니다. 숲은 많습니다. 집 주위도 공원 같지만 차를 타고 5분 정도만 나가면 온통 푸른색입니다. 집 뒷마당에서 갈색 토끼가 종종 눈에 띄고 인근에선 사슴도 자주 목격됩니다. 문명이 잘 갖춰진 전원생활을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덕분에 벌레도 많습니다.
6. 대중교통, 문화생활 (6점)
우리 집에서 걸을 수 있는 거리에 대중교통이 전무합니다. 시내에서도 택시를 목격한 기억이 가물가물합니다. 부부가 운전을 하지 않는다면 한명은 상당 시간을 집에서 갇혀 지내야 하고 한명은 배우자가 용건이 있을 때마다 기사 노릇을 해야 합니다. 열심히 찾아다니면 나름의 문화생활을 할 수 있다고들 하는데 미국의 다른 대도시와 비할 바는 아닌 것 같습니다. 엄정화가 나오는 우정의 무대 공연을 볼 수 있으니 군대도 문화생활 여건이 괜찮은 편이라고 주장하는 분에겐 할 말이 없습니다만…대형 마트나 쇼핑 몰은 많아서 편리합니다.
7. 한국인 생활 (7점)
콜럼비아에 한국 마트가 하나 있습니다. 쌀, 김치, 라면을 비롯한 생활 필수품을 골고루 팝니다. 하지만 그 집이 문을 닫는 시간엔 못삽니다. 다른 미국 대도시가 어떨지는 몰라도, 한국에서처럼 선호하는 브랜드나 품질을 고를 수는 없습니다. 한국 음식점도 한 개 있습니다. 한국에 살았던 화교 출신이 하는 중국집이 있어 자장면도 먹을 수 있습니다. 다 이렇게 하나씩 있습니다. 어떤 분들은 차로 2시간 거리에 있는 세인트루이스의 큰 한국 마켓을 자주 간다는데, 서울서 장보러 대전 가는 셈입니다. 한국인 교회 두 곳과 한 곳의 성당을 중심으로 한국 사람들의 교류가 이뤄집니다. 여기 정착해 사는 분들까지 합하여 콜럼비아에 한국인이 4백명 정도 있다고 합니다. 마음만 먹으면 한국말만 하며 생활하는 것도 가능할 것 같습니다. 한국 주부들이 단짝으로 다니는 모습도 자주 봅니다. 물론 다른 한국 사람과 거의 교류하지 않고 지내는 분들도 있습니다. 그렇게도 충분히 살만합니다. 인종차별이 없지 않습니다. 외국에서 온 손님이라며 더 따뜻하게 대해주는 경험을 하긴 어려울 것입니다. 반면 백인에겐 따뜻했던 점원이 쌀쌀맞게 돌변하는 경우는 가끔 당합니다. 여기 온 뒤로 한국 사람이 동남아인들에게 못되게 군 것을 반성해야 한다는 자성의 소리를 한국인들끼리 많이 합니다. 하지만 다른 주에 다녀보니 더 심한 곳도 많더군요. 콜럼비아는 그냥 가끔 한번씩 기분이 안 좋은 정도입니다.
8. 범죄, 사고 (8점)
큰 교통사고를 본 적이 없습니다. 접촉사고도 잘 못 봅니다. 도로 매너가 기대 이상입니다. 이곳 미국 사람들이 가장 근사해 보이는 게 운전석에 앉아있을 때가 아닌가 싶습니다. 물론 뉴욕이나 시카고 같은 대도시를 가보니 한국 뺨치더군요. 다만 전반적으로 제한 속도가 높고 신호등 없이 끼어드는 도로가 많아 대형 사고 위험은 상존합니다. 사슴, 오소리, 고양이, 청설모 같은 놈들이 수시로 도로로 뛰어듭니다. 그냥 치라고 하더군요. 피하려다 사고난다고. 길에 이들의 사체가 즐비합니다. 살인, 강도 같은 강력 범죄도 별로 없는 것 같습니다. 특히 한국인들이 많이 사는 동네는 그렇습니다. 왜 그럴까 생각해 봤는데, 한국인들 많이 사는 동네가 시내에서 좀 떨어져 있습니다. 걸어올 수 있는 거리가 못됩니다. 그러니 우범자들이 오기가 어렵습니다. 위에 썼다시피 대중교통도 없으니까요. 자동차를 타고 다니는 기업형 범죄자들이 많다면 피해가 빈발할 수 있겠지만 그러기엔 콜럼비아시 규모가 너무 작고 유흥가가 거의 없습니다. 시내에선 심심치 않게 강도, 절도 소식이 들립니다. 며칠 전엔 시내에 있는 미주리대 캠퍼스 인근에서 승용차에 타려던 여학생 세 명이 권총 강도를 당했다고 대학 당국에서 e-메일을 보냈더군요. 이런 범죄는 대개 밤에 일어나기 때문에 한국 연수생들이 당할 확률은 적습니다.
9. 체육, 야외활동 (9점)
미주리는 광활한 평야지대입니다. 골프장을 만들기 쉬운 여건입니다. 집에서 차로 30분 거리 이내에 골프장이 5개 정도 있는 것 같습니다. 1시간 거리엔 10곳쯤 될 겁니다. 티 타임을 잡기가 쉽습니다. 싼 곳은 그린 피가 15달러 내외입니다. 1년간 부부가 무제한으로 칠 수 있는 연간 회원권이 850달러인 곳도 있습니다. 한국에서 골프는 값 비싼 운동이지만 여기서는 저렴하게 즐길 수 있습니다. 한국처럼 캐디의 도움을 받으며 카트를 타고 다니는 럭셔리한 분위기는 아닙니다. 등 굽은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위태한 자세로 공을 치는 모습도 늘 봅니다. 그런 분들도 저보다 훨씬 잘 칩니다. 적은 돈으로 골프 실력을 늘리고 싶은 사람에게 좋은 곳입니다. 수영장, 헬스 시설 등을 갖춘 스포츠 센터를 온 가족이 1년간 이용하는 가격이 500달러 정도입니다. 산은 없어도 하이킹이나 사이클링을 할 수 있는 숲 속 산책로가 여러 곳 있습니다. 산책로 길이는 무한대에 가깝다고 보셔도 됩니다. 동네 공원에 있는 호수에서 낚시도 가능합니다. 승마도 어렵지 않게 배울 수 있다고 합니다. 그러나 평지여서 스키장이 없습니다. 스키나 스노보드를 기대하는 분들에겐 적합하지 않습니다. 추위가 매서워 겨울엔 골프장이 문을 닫는 날도 많습니다.
10. 여행 (7점)
다른 분들과 저의 의견이 가장 차이날 수 있는 부분인 것 같습니다. 미주리를 다녀간 많은 분들이 “미주리는 미국의 한가운데에 있어 여행을 하기에 아주 좋다”고 얘기합니다. 저는 생각이 좀 다릅니다. 미주리가 미국 중심부에 있는 건 분명한데 인근에 명소가 별로 없고 유명 관광지들이 죄다 멉니다. 뉴욕, 워싱턴, LA, 샌프란시스코, 라스베이거스, 플로리다, 나이아가라, 옐로스톤 등지를 가는데 승용차로 20시간 이상 걸립니다. 최소 왕복 40시간입니다. 일정을 어느 정도 잡아야 할지 상상이 가시겠지요. 취학 자녀를 둔 가정은 긴 연휴나 방학 때가 아니면 이런 곳들을 엄두도 못 냅니다. 이동시간을 줄이려면 비행기를 타야 하는데, 그렇다면 미국 중심부에 있다는 게 별 이점이 아닙니다. 더욱이 비행기를 타려면 2시간 거리에 있는 세인트루이스나 캔자스시티 소재 공항으로 가야 합니다. 탑승 수속 시간까지 고려하면 출발 3시간 이상 이전에 집에서 출발해야 합니다. 여기 온 분들이 연휴를 이용해 꼭 한번은 다녀오는 곳이 있습니다. 시카고입니다. 대단한 관광 명소도 아닌 시카고를 다들 한번씩 가는 이유는 차로 7시간‘밖에’ 안 걸리기 때문입니다. 끝없이 전진하는 강행군 스타일을 별로 안 좋아하는 저와 저희 가족에게는 인근 지역을 아기자기하게 즐길 수 있는 동부나 서부가 오히려 여행에 유리할 것 같다는 생각입니다. 하지만 승용차로 미국 전역을 최대한 다녀보고 싶다는 분들에게는 미주리가 좋습니다. 미국을 네 지역으로 나눠 각각 2주 정도의 일정으로 돌아보는 게 가능합니다. 그러려면 새벽에 강릉 경포대에서 일출을 보고 점심 때 남대문 시장에서 쇼핑을 한 뒤 저녁 때 해남 땅끝마을에 가서 일몰을 보는 식의 여정을 각오해야 합니다. 1년이라는 시간이 자기가 살고 있는 주를 제대로 감상하기에도 짧은 기간이라고 생각하는 저 같은 사람에겐 안 맞는 방식입니다.
연수지 결정에 참고해야할 사안들을 기준으로 미주리대의 여건을 대충 정리해봤습니다. “1년 전으로 돌아가 연수지를 다시 선택할 기회를 준다 해도 미주리대를 택하겠느냐”고 묻는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이럴 것 같습니다. 위의 항목들을 기준으로 여기보다 더 나은 곳이 있는지 물색해 보겠습니다. 하지만 썩 나은 곳을 찾아내지 못한다면 기꺼이 미주리대를 다시 지원하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