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싱턴DC 존스홉킨스 국제관계대학원(SAIS)에서 연수하고 있는 한국경제 정종태입니다. 이곳에 온지도 벌써 두달이 지나갑니다. 그동안 집 구하고, 차 사고, 운전면허 취득하고, 살림살이 장만하고, 각종 유틸리티 서비스 개통하고, 아이들 초등학교 등록하고 등등으로 정신없이 지나갔습니다. 사실 처음 한달은 정말 정신없이 시간이 흘렀고, 어느 정도 여유가 생긴 뒤로는 아이들 학교 개학전 멀리 캐나다 여행까지 다녀오는 여유도 부렸습니다. 지금은 나름대로 익숙한 일상을 보내는 중입니다.
내년에 연수를 준비하는 분들은 대략 지금쯤이면 어느 곳으로 연수지를 정할까를 놓고 고민을 하게 됩니다. 혹시라도 워싱턴DC를 마음에 두고 있는 분들을 위해 이곳에서의 연수생활에 대해 전해드릴까 합니다. 물론 개인적인 느낌, 그것도 두달간의 경험을 바탕으로 한 것인 만큼 감안하고 읽으시길 바랍니다.
1. 주거지
워싱턴DC로 연수오는 분들은 대부분 버지니아나 메릴랜드주에서 DC와 가까운 도시에 주거지를 정합니다. DC에 직장을 둔 사람들이 거주하는 베드타운입니다. 저의 경우는 버지니아주 패어팩스카운티에 속해있는 비엔나라는 곳에 살고 있습니다. 바로 옆 동네인 맥클레인과 함께 주재원, 연수자들이 꽤 많이 사는 동네입니다. 패어팩스카운티는 미국 전역에서도 손꼽히는 부자동네입니다. 며칠전 현지 신문에서 가구당 연 소득 기준으로 미국에서 두 번째로 높은 카운티라는 기사를 읽은 기억이 납니다. DC에 근거지를 둔 정치인과 교수, 공무원, 외교관 등도 주로 이곳에 살고 있다고 합니다.
부자들이 사는 동네인 만큼 주거환경은 무척 쾌적합니다. 주변에 공원과 숲들이 그야말로 널려있습니다. 또 자체 교육 예산이 많아 교육환경 역시 매우 우수하다고 합니다. 그래서인지 이곳으로 조기 유학온 한국 아이들이 무척 많습니다. 실제로 제 아이들이 다니는 초등학교에도 한 반에 한국 아이들이 3-4명은 됩니다. 아이들이 개학한 지 한달 밖에 안됐지만 현재까지는 학교에 대해 불만을 느껴본 적은 없습니다. 학교 시설도 우수하고, 교과 과정도 매우 다양하고, 학생 한명 한명한테 쏟는 관심도 상당합니다. 특히 아이들 안전에 관한 한, 지나칠 정도입니다. 다인종 국가여서인지 소수 인종에 대한 배려도 각별합니다. 다행히 아이들도 둘다 쉽게 적응해 지금은 애들 입에서 “학교 가는 게 재밌다”는 말이 나올 정도입니다. 특히 둘째 아이는 한국에서 영어를 거의 안하고 왔는데도 놀랍도록 빠른 적응력을 보이고 있습니다.
각종 생활 인프라도 무척 잘 돼 있습니다. 아마 미국 다른 주들도 비슷하겠지만 교육청에서는 주민들을 위한 각종 평생교육 서비스를 제공합니다. 당연히 외국인들을 위한 영어교육(ESL)도 거의 무료로 진행합니다. 영어교육은 주변에 가까운 미국 교회나 성당, 도서관에 가도 거의 매일 다양한 프로그램이 준비돼있습니다. 무료 강의이지만 강사들 수준도 괜찮다고 합니다. 주로 DC에서 은퇴한 전직 공무원, 학자, 교사, 연구원 등이 강사진을 이루고 있습니다. 한마디로 지역 커뮤니티가 잘 갖춰져 있습니다.
공공 도서관도 무척 잘돼있습니다. 한국도 대도시는 공공 도서관 시설이 꽤 좋지만, 이곳에 비할 바는 못됩니다. 패어팩스에는 동네마다 도서관이 있는데, 가령 제가 사는 집에서 자동차로 20분 거리에 있는 도서관이 5곳이나 됩니다. 도서관에서는 정기적으로 북 세일을 하는데, 이것을 잘 활용할 필요가 있습니다. 며칠전에는 아이들 책과 제가 읽을 책들을 거의 20권 가까이 골라 샀는데, 34달러 밖에 안됐습니다. 아주 횡재한 기분이 들더군요.
집 렌트비는 비싼 편입니다. 제가 살고 있는 아파트 처럼 공동주택은 주로 저처럼 단기 연수자들이 선호하는 곳인데, 월 2000달러 내외를 줘야 합니다. 주재원이나 외교관, 국제기구 파견 공무원들은 평균 3년이상 근무하는 만큼 보통 아파트보다는 넓은 정원이 달린 싱글하우스나 타운하우스를 선호하는데, 월 3000달러 안팎에 달합니다. 물론 재정적 여유가 있는 연수자들은 싱글하우스나 타운하우스에 살며 미국식 전원생활을 즐기기도 합니다. 하지만 싱글하우스나 타운하우스에 살면 불편한 점도 많다고 합니다. 미국 집들은 대부분 오래된 것들이 많아 손볼 곳이 많이 생기고, 잔디도 수시로 깎아줘야 해 불편함이 이만저만 아니라고 합니다. 특히 집안일을 해본 적이 없는 한국 남자들은 고생할 각오가 돼있어야 합니다. 물론 재정이 넉넉한 일부 주재원이나 공무원들은 이런 집안 일들도 모두 사람을 사서 처리하더군요. 특히 IMF나 월드뱅크, IDB와 같은 국제기구에 파견나온 공무원들은 월가 IB뱅커들에 버금가는 고액의 연봉을, 그것도 달러 베이스로 받기 때문에 아주 호사스런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그분들이 이 말을 들으면 펄쩍 뛰겠지만…
아파트도 나름대로 장점이 있습니다. 우선 헬스장이나 수영장, 실내 농구장, 실내 골프연습장 같은 공동시설을 갖추고 있어 편리합니다. 저의 경우 외부로 팩스로 보내거나 많은 분량의 문서를 프린트할 때도 아파트내 비즈니스센터에서 처리합니다. 물론 거주민은 모두 무료입니다. 안전 면에서도 싱글하우스보다는 낫습니다.
이곳 비엔나에서 워싱턴DC 중심까지는 지하철로 30분, 차를 몰고 가면 20분이면 도착합니다.(안막힐 경우) 하지만 도로 인프라는 형편없을 정도입니다. 특히 고속도로는 곳곳이 공사중이고, 도로 곳곳에 패인 곳이 많아 운전에 상당한 주의가 필요합니다. 도로 인프라가 엉망인 것은 미국 전역이 마찬가지라고 합니다. 도심으로 오가는 주요 도로는 정체도 극심합니다. 특히 출퇴근 시간에는 서울 도심 저리가라 할 정도입니다.
2.연수기관
워싱턴DC로 연수온 분들은 대부분 DC내 학교에 적을 두고 있습니다. 제가 있는 SAIS와 조지타운대가 연수생들이 가장 선호하는 곳입니다. 물론 해마다 학교 정책이 조금씩 바뀌기 때문에 연수생 숫자는 매년 다를 수 있습니다. SAIS는 최근 들어 기자들에 비교적 관대하기 때문에 올해의 경우 저를 포함 5명이 연수중입니다. 조지타운대는 연수 조건이 매우 까다로워졌다고 합니다. 물론 SAIS도 연수를 책임지는 관계자한테 직접 들은 얘기인데, 내년부터는 기자보다는 학자 출신이나 연구원 위주로 받겠다고 하더군요. 갈수록 쉽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아마도 연구성과를 내는 데 학자가 훨씬 낫기 때문이겠죠. 조지워싱턴대나 아메리칸대, 인근 버지니아의 조지메이슨대학에도 연수오는 분들이 적지 않게 있으니 SAIS나 조지타운이 여의치 않으면 이곳으로 문을 두드리면 될 듯 합니다.
SAIS는 존스홉킨스(본교 캠퍼스는 메릴랜드주 볼티모어에 위치) 국제관계대학원으로 국제관계, 국제정치 등의 분야에서 상당한 권위를 인정받는 곳입니다. DC가 정치 1번지인 만큼 워싱턴 정가와도 상당한 밀접한 네트워크를 형성하고 있습니다. 최근 들어서는 국제경제 분야에서도 상당한 영향력을 갖고 있다고 합니다. 특히 2008년 금융위기 이후 해법이 주로 뉴욕 월가에서보다는 DC내 행정부와 의회, FRB에서 나오고 있기 때문에 SAIS가 이런 분야에 꽤 깊숙이 개입해 관련 연구결과를 내놓고 있다고 합니다. 교수진도 학자 출신외에 국제기구나 행정부, 금융기관에서 경험을 가진 분들이 꽤 많습니다. 이곳 대학원생들도 미국내 유수의 대학 학부를 마친 후 DC의 정가나 행정부, 국제기구 등에 진출하기 위해 이곳을 선택한 엘리트들이 많습니다. 아시아 유학생들은 별로 눈에 띄지 않은 반면 유럽 출신 학생들이 꽤 많은 것이 인상적입니다.
SAIS는 DC 중심부에 위치해 백악관이 걸어서 10분 거리입니다. 주변에 재무부 등 행정부와 의회는 물론 각종 국제기구, 싱크탱크들이 몰려있어 SAIS에 있으면 마치 세계 정치 경제의 심장부에 있는 느낌이 들기도 합니다. SAIS의 장점은 특히 주변에 있는 싱크탱크를 쉽게 활용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브루킹스와 피터슨국제경제연구소 등 세계적인 싱크탱크들이 바로 옆에 있습니다. 헤리티지도 멀지 않습니다. 저의 경우는 피터슨에서 열리는 세미나에 자주 참석하는 데, 지난주의 경우는 이창용 전 G20 기획단장(금융위 부위원장, 현 ADB 수석이코노미스트)이 연사로 나와 세계경제 전망을 주제로 참석자들과 토론을 벌였습니다. 엊그제는 이곳 싱크탱크들의 최근 핫 이슈중의 하나인 ‘중국의 부상과 위안화의 기축통화 가능성’을 주제로 FT의 유명한 칼럼니스트인 마틴 울프가 나와 참석자들과 열띤 토론을 가졌습니다. 이들 싱크탱크에 미리 연락해 회원으로 등록을 요청하면 세미나가 있을 때마다 친절하게 이메일로 초청장을 보내줍니다.
SAIS는 다른 대학과 달리 연수자들한테 개별 연구실을 제공합니다. 컴퓨터와 전화기, 기타 편의시설이 갖춰져 있어 개인적으로 짬나는 시간에 책을 읽거나 사람을 만나거나 쉬기에도 아주 적당한 공간으로 활용하고 있습니다.
한국에 관심있는 대학원생과 1대1로 매칭해주는 영어 커뮤니케이션 프로그램도 활용할 수 있습니다.
다만 SAIS에서 듣는 강의는 웬만한 각오를 하지 않으면 듣기 쉽지 않습니다. 우선 학부가 아닌 대학원 강의라 개론 수준의 강의는 전무하고, 대부분 아주 구체적인 분야를 다루는 강의가 많습니다. 한 클래스 당 학생 숫자도 10여명 내외로 대부분 토론식으로 수업을 진행하기 때문에 영어에 익숙하지 않은 연수자들한테는 결코 쉽지가 않습니다. 제가 듣는 강의는 첫 시간에 원탁형 강의실에 학생이 불과 6명만 앉아있는 것을 보고 적잖이 당황한 적도 있습니다. 물론 본인이 마음먹고 열심히 참여한다면 그만큼 얻는 것도 많을 수 있습니다. 청강은 대부분 연수자들한테도 문호가 열려있지만 일부 교수들은 비지팅은 아예 수강을 못하도록 막는 경우도 있습니다.
대학이 아니더라도 싱크탱크나 국제기구 연수도 가능합니다. 저의 경우 당초 싱크탱크를 몇 곳 접촉해 그중 한곳과 연락을 주고받으며 서류를 주고받은 결과 3개월간의 연구 프로젝트에 참여하는 연수기회를 얻었는데, 비자문제가 해결되지 않아 SAIS로 등록하긴 했습니다. 가령 브루킹스의 경우도 올해 비지팅 팰로우로 한국 중국 일본 몽골 4곳 나라를 대상으로 공개 선발했습니다. 이번에 선발돼 와 계시는 분(마상윤 가톨릭대 교수)에 따르면 기자들도 충분히 기회를 얻을 수 있다고 합니다. 연구기관에서 선발되면 적지 않은 연구비를 지원받는 혜택도 있습니다. 생각이 있으신 분들은 과감히 문을 두드려보시기 바랍니다.
3. 여행지
여행은 연수자들한테 빠질 수 없는 중요한 항목입니다. 여행 측면에서의 워싱턴DC는 결코 나쁘지 않은 것 같습니다. 연수전 일부 동료 선후배들은 미국 전역을 여행하기에는 중부 콜로라도 같은 곳이 가장 최적이라며 적극 권유하기도 했지만, 두달동안 살아본 바로는 DC도 여행하기에 그리 떨어진 곳은 아닙니다. 물론 서부는 워낙 멀어 웬만해선 가기 힘들지만 다른 곳은 마음 먹으면 그리 어렵지 않게 다녀올 수 있습니다. 저의 경우 현지 도착해 초기 정착을 마무리한 후 동북부와 캐나다를 여행했는데, 무리없이 다녀왔습니다. 버지니아에서 출발해 펜실베니아-버팔로-나이아가라-토론토-킹스턴-몬트리올-퀘백을 거쳐 캐나다 동쪽 끝인 노바스코샤까지 올라갔다가 미국 메인주를 들러 동부 해안을 타고 보스턴-뉴욕-버지니아로 내려오는 열흘 이상의 여행이었는데, 모든 게 새로운 경험이었습니다. 운전만 거의 4000마일(6400킬로)을 했으니, 평생 못다한 운전을 한꺼번에 다해본 셈입니다.
이곳 연수자들은 보통 겨울에는 남부지역(올랜도와 마이애미 등)을 주로 다녀온다고 하는데, 어차피 일주일 이상 여행이면 자동차 운전으로도 충분하다고들 합니다.
제가 사는 버지니아 주변에도 찾아보면 여행지가 널려있습니다. 30분 거리에 세난도어 국립공원이 위치해있고, 또 무엇보다 이곳이 식민지 개척이나 독립전쟁, 남북전쟁 등 미국 역사의 한 복판에 위치하고 있기 때문에 역사 유적지가 곳곳에 많습니다. DC안에 있는 각종 박물관 미술관 등은 말할 나위가 없습니다. 여행에 관한 한, 아직 경험이 일천한 관계로 충분히 경험을 해본 후 나중에 별도로 글을 올리겠습니다.
간단하게 종합 정리하자면 워싱턴DC는 연수지로서 여러 가지 장점을 가진 곳입니다. 주거지는 시골의 전원생활에 버금가면서도 미국 수도가 바로 옆에 있어 조금만 부지런하면 세계가 돌아가는 사정을 쉽게 엿볼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한적한 전원생활을 마음껏 즐기며 1년간 유유자적하게 재충전의 시간을 보내고 싶다는 분은 콜로라도나 남부같은 사시사철 날씨좋은 곳으로 가도 나름대로 의미가 있을 듯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