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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수지와 물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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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는 요즘 천정부지로 치솟는 물가 때문에 걱정하시는 분들이 많으시죠. 미국으로 연수 계획을 세우는 기자들도 하우스 렌트비 등 미국 물가가 어느 정도일지 궁금할 것입니다. 저도 미국으로 오기 전 미국 물가에 대한 걱정이 적지 않았습니다. 아무래도 빠듯한 예산(?)에서 잦은 가족 여행 등을 생각하면 머리가 복잡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연수지를 선정할 때 물가도 중요 고려 사항이었습니다. 특히 미국은 주(state)와 도시(city)에 따라 물가가 천양지차여서 연수지를 어디로 선택하느냐에 따라 생활비가 크게 차이 납니다. 예컨대 뉴욕 등 대도시로 간다면 미국 중부의 어느 도시마다 배 이상의 생활비가 들어간다고 봐야겠죠. 그렇다고 자녀 교육을 도외시한 채 물가가 싸다는 이유만으로 시골에 가서 살 수는 없으니 이래저래 고민이 커집니다.

제가 연수지로 선택한 ‘메트로 애틀란타’에 대해 이야기하겠습니다. 제가 연수를 받고 있는 조지아대(University of Georgia)는 애틀란타에서 차로 1시간 가량 떨어져 있습니다. 거리로는 60마일(100km) 정도입니다. 여기 사람들은 메트로 애틀란타 생활권으로 봅니다. 하지만 한적한 대학 도시여서 대도시의 혼잡함은 없습니다. 반면 물가는 뉴욕 등 대도시에 견줘 절반 수준입니다. 특히 애틀란타 인근의 둘루스와 스와니 등은 LA와 뉴욕에 이어 세 번째로 큰 한인 상권이 형성돼 한국 물건들이 저렴한 가격입니다. 조지아주 인근 테네시주와 앨라바마주에 사는 한인들이 한국 물건을 사기 위해 이 곳으로 몰려오기도 합니다.

그럼 구체적으로 물가가 어느 수준인지 볼까요. 연수에서 가장 큰 비용을 차지하는 것은 바로 하우스 렌트입니다. 조지아대가 위치한 에덴스(Athens)시의 경우 아파트 한 달 렌트 비용이 1000달러(관리비 제외) 안팎입니다. 보통 방 3개와 거실, 부엌, 화장실 2개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단지 공용시설로는 수영장과 헬스클럽 등이 있습니다. 단독 주택(방 3개, 거실, 부엌, 화장실 2.5개, 차고, 정원)은 이보다 약간 더 비싸다고 보면 됩니다.

조지아대로부터 차로 15분가량 떨어진 왓킨스빌(Watkinsville)시의 경우 단독 주택의 한 달 렌트비가 1200달러 내외입니다. 에덴스시보다 다소 비싼 편이지만 한국에선 보기 힘든 100여평 규모의 큰 마당을 이 곳에서는 그 가격에 흔하게 볼 수 있습니다. 정원에서 바베큐 파티를 열며 남부 특유의 여유로운 전원 생활을 즐길 수 있습니다. 뉴욕 등 대도시의 타운하우스와 비교하면 렌트비가 3분의 1 수준에 불과합니다.
집값이 싸다고 교육 여건이 나쁘거나 치안이 허술한 것은 아닙니다. 특히 왓킨스빌은 조지아대 관계자들이 많이 살고 있어 자녀 교육에 관심이 높은 편입니다. 또 흑인과 남미 출신자들이 드물고, 주로 백인들이 삽니다. 남부에서는 좀 드문 경우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제 딸이 다니고 있는 초등학교의 1학년 학생 중 동양인은 제 딸이 유일합니다. 전체 학생 중에서도 한국 학생은 2명밖에 없습니다. 학교 내에서 우리말 하기가 어려운 구조입니다.

자녀 과외비는 다른 주(State)의 사정을 잘 모르니 이 곳의 수준만을 알려드리겠습니다. 초등학교 교사 출신 선생의 영어 과외비가 1시간에 25달러 정도 합니다. 물론 가장 실력이 뛰어난 선생이 기준입니다. 다양한 운동과 레크레이션 활동 등을 포함한 3시간짜리 ‘애프터스쿨(After School) 프로그램’이 하루 15달러로 한 주에 75달러합니다. 계산하면 자녀 1명에게 한 달에 400달러 정도가 지출되는 셈입니다. 이것만 하더라도 자녀의 스케줄은 오후 6시까지 꽉 찹니다.

생활비는 다른 주와 거의 비슷할 것입니다. 다만 한국인 상권이 크게 형성된 만큼 한국 물건이 좀 싸다는 점에서 차이가 날 것입니다. 또 플로리다주와 가까워 겨울에도 과일과 야채 가격이 저렴한 편입니다. 40파운드(18kg) 짜리 경기미가 27달러이니 좀 싸다고 할 수 있죠. 골프피도 18홀 기준으로 보통 30달러 안팎입니다. 특히 조지아대 골프장은 이보다 더 쌉니다. 다만 카트 없이 골프백을 끌고 다녀야 한다는 것이 전제 조건(?)입니다. 재미있는 것은 이 곳의 골프장과 골프연습장들이 수시로 가격과 규정을 바꾸는데 그 이유가 한국 사람들 때문이라고 합니다. 36홀을 도는 분들이 흔한 데다, 연간 회원권을 악용하는 사례가 많은 탓입니다.

제가 이처럼 세세하게 연수지 물가를 나열한 까닭은 조금 더 발품을 팔면 생각지 못한 좋은 연수지를 찾을 수 있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대부분의 기자들이 ‘일단 떠나는 것’에 만족하지만 막상 도착해서 보면 날씨와 물가, 자녀 교육, 주변 자연환경 등 연수지에 대한 아쉬움을 한번쯤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한번 정해진 연수지를 바꾸기가 쉽지 않은 만큼 국내에 있을 때 미리미리 발품을 파는 것이 후회하지 않는 연수의 첫 출발이 될 것입니다.

PS>최고의 연수지는 어디일까요. 본인의 마음에 꼭 드는 곳이 아마 최고의 연수지가 아닐까 합니다. 모든 조건을 충족시키는 곳은 없겠지만 가족 안전에 걱정이 없고, 물가가 싸서 가족여행을 한 번 더 가게 만드는 곳, 또 교육 여건과 주변 자연환경이 좋아 자녀 공부와 성장에 도움이 될 만한 곳이라고 생각합니다. 시간에 쫓겨 연수지를 허겁지겁 선택하는 최악의 수는 피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