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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수 준비의 첫 걸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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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이맘때쯤, 기사를 마감하고 퇴근한 뒤 토익책을 펴는 건 무척 고된 일이었다. 그때마다 LG상남언론재단 홈페이지를 찾아 연수기를 읽어보며 다시 마음을 다잡았다. 마치 연수를 준비하는 것처럼 상상의 나래를 펴면 고단한 몸을 달랠 수 있었다. 돌이켜보면 그때만큼 연수기를 목마르게 읽었던 적은 없었다. 그래서 이 홈페이지를 찾는 이들이 가장 관심을 가질만한, 떠나기전 준비 과정으로 글을 시작하려 한다.

연수갈 곳 정하기

영어권 나라로 가겠다고 정한 뒤 가족 회의에서 결정한 곳은 영국이었다. 연수를 이미 다녀온 선배들의 이야기도 들어보고 이번 연수의 목적은 무엇인가를 곰곰히 따져본 뒤 결정했지만, 사실 마지막까지 미국을 고민하기도 했었다. 영국이 ‘해가 지지 않는 나라’였다가 ‘해가 지고 있는 나라’로 바뀌고 있어 연수지로 매력이 있을지 의구심이 들었기 때문이다. 아마도 마지막 연수기를 쓸 때쯤이면 그 대답을 전할 지 모르겠다.

방문연구원을 신청한 곳은 런던대 ‘SOAS(School of Oriental and African Studies)’였다. 1916년 아시아와 아프리카 연구를 위해 만들어진 대학으로 현재도 제3세계 개발학과 언어에 강점을 가지고 있는 곳이다. SOAS 한국학센터의 방문연구원이 되면 학교 이메일과 도서관 이용 권한, 공동 연구실 등의 편의를 제공받는다. 자세한 내용은 (https://www.soas.ac.uk/honorary-appointments)를 참고하면 된다.

다만 1년 연수 준비에 들어간 비용은 처음에 생각치 못한 게 많았다. 영국 물가가 비싼 것은 알았지만 비자신청비(개인당 449달러)와 영국 건강보험 NHS 1년치 납부금(개인당 1035파운드) 등을 처음부터 내고 시작해야 하는 것을 염두에 둬야 한다. 건강보험료 1년치(3인/약 600만원)를 한꺼번에 내려고 하니 속이 쓰렸지만, 정작 급여명세서에 달마다 떼어가는 한국 건강보험료를 보면 크게 비싼 것도 아닌 것 같다고 스스로를 위로했다. (실제 영국에서 1차 진료기관 GP를 방문한 적이 있는데 따로 진료비를 청구받지 않았다)

연수계획서 작성

갈 곳을 정했으면 연수계획서를 준비해야 한다. 우리 회사의 경우 사내 연수자 선발을 거친 뒤 외부 재단에 지원할 수 있어서, 회사 지원때 내는 연수계획서를 먼저 작성한 뒤 재단 제출용은 내용을 추후 보강했다. 영국 대학에 내는 연구계획서도 이것을 바탕으로 영어로 작성했다.

공부 또는 연수의 주제로 삼을 수 있는 것은 개인에 따라 다양하겠지만, 나같은 경우엔 최근까지 일했던 분야에서 연수 주제를 골랐다. 다른 주제를 준비하기에는 시간이 별로 없었고, 현업 이슈는 연수선발 기간 내내 최신 뉴스를 따라갈 수 있어서 내용을 업데이트하는데 좋았다.

비자 신청

재단 지원이 확정된 뒤 가장 먼저 겪은 어려움은 비자 신청이었다. 비자신청 첫 단계는 준비 서류(결핵검사 결과지 등)를 준비하고 두번째는 온라인 비자 신청서(https://www.gov.uk/browse/visas-immigration)를 작성한 뒤 세번째, 서울 이태원에 있는 VFS(영국비자접수센터)를 방문해 생체 정보(지문, 사진촬영 등)를 입력하는 순서다.

내가 신청한 비자는 Temporary Work – Government Authorised Exchange 비자 (예전 용어로 Tier 5)다. 연수자나 연구자는 Academic visitor 비자를 받기도 하는데, 아카데믹 비자는 자신이 영국 대학에서 어떤 연구를 할 수 있는지 본인이 이민당국에 입증해야 한다. 기자로서의 전문성을 입증하는 자료나 관련 학위, 기사 등 입증할 수 있는 자료가 충분히 필요하다. 반면 Government Authorised Exchange 비자는 대학에서 CoS(Certificate of Sponsorship)를 발급받으면 비자를 받는 데 큰 문제가 없다고 했다. 실제로 CoS를 받는데 시간이 걸렸을 뿐 비자가 나오는 데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CoS는 학교 입학이 허가된 날을 기준으로 3개월 이전부터 발급이 가능해 미리 신청할 수가 없어 기다려야 한다) CoS는 일종의 고용 계약서로 학교가 급여 및 근무시간, 근무 기간 등을 보장한다는 내용이 담겨있는 문서를 말한다. 4월22일에 학교에 신청했고, 6월2일 일련 번호(이게 중요하다!)가 적힌 CoS가 발급되었다는 이메일이 왔다.

이외에도 아카데믹 비자 또는 특파원 비자를 받아서 들어오는 경우도 있다. 다만 방문학자가 아닌 석사과정을 밟기 위해 비자를 신청하는 경우 가족 동반이 안된다는 점을 주의해야한다.

비자를 신청 하기에 앞서 신체 검사는 먼저 해두는 게 일정상 낫다. 서울 신촌 세브란스 병원과 강남 세브란스 병원에 예약을 한 뒤 병원 국제진료실에서 결핵 검사를 받으면 결과지가 집으로 온다.

가족을 동반해 연수를 가는 경우, 비자 신청서를 작성하는 것도 시간이 꽤 필요하다. 아이를 포함해 전부 별도 비자를 받아야 하기 때문이다. 연수를 나가는 사람이 주신청자가 되고, 다른 가족은 ‘동반자(Dependent)’로 신청하는 식이다. 처음에는 복잡하지만 같은 포맷이기때문에 익숙해지면 빠르게 입력할 수 있다. 10년치 해외 여행 기록을 적으라는 등 손이 많이 가는 입력 작업도 있다. 아리송한 질문도 있는데 알아보는 동안 중간중간 저장을 하며 진행할 수도 있다.

비자 반려를 걱정해 전문가의 비자 신청 대행 또는 자문 서비스를 이용할 수도 있다. 반려되면 재신청에 대한 부담이나 일정 변경에 대한 우려가 있어 서비스를 고민해 볼 수 있을텐데, 저를 포함해 올해 연수를 온 분들을 보면, 대학으로부터 CoS를 받으면 비자 신청 반려를 걱정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비자 신청비용 결제와 신청서 작성, 증빙 서류 업로드가 끝나면 VFS 예약을 잡는다. 제 경우 6월 12일 VFS에 가서 여권을 제출한 뒤 6월 20일 비자가 나왔다는 이메일을 받았다. 비자를 급행으로 받기 위해 추가 요금을 낼 수 있는 옵션도 있다. 받은 여권에 비자가 붙어 나오는 게 아니라 비네트라고 임시 여행 증명 같은 게 찍혀져 있다. 이전에는 영국에 입국한 뒤 체류 기간 동안 사용할 BRP(Biometric Residence Permit) 카드로 바꿔야 했다는데, 올해부터는 제도가 바뀌어서 입국한 뒤 E-VISA를 신청해 온라인상으로만 확인한다. (BRP를 받기 위해 우체국 등에서 고생해야했던 연수 선배들의 이야기는 이제 흘러간 이야기가 된 셈이다)

비자가 나오자 가장 큰 고비는 넘겼다고 생각했지만 끝이 아니었다. 짐싸기와 집 구하기… 부서 업무가 빠듯해 출국 나흘전까지 근무한 터라 짐 가방을 쌀 시간은 턱없이 부족했다. 초등학생 등 3인 가족이 나가는 데 필요한 짐은 끝도 없이 나왔다. 빼고 추리고 해서 간신히 대형 캐리어 2개, 이민가방 1개, 단프라 박스 1개, 기내용 캐리어 1개, 그리고 배편으로 보내는 단프라 박스 2개로 짐을 줄여 만들었다. (원래 이민가방으로만 준비했었는데, 전임 연수자가 단프라 박스가 가볍고 더 많은 짐을 넣을 수 있다고 해서 부랴부랴 바꿨다) 출국 전날 우체국에서 부랴부랴 보낸 선편 택배는 영국에 온지 두 달이 넘었는데도 감감 무소식이다. 심지어 한국 국가정보자원관리원 화재로 인해 우체국 DB가 사라지면서, 수에즈운하를 잘 통과했는지 아프리카를 잘 돌았는지 위치 추적도 안된다. 다음 연수기를 쓸 때는 선편 택배가 잘 도착해 있을까? 택배가 도착할 영국 집 구하기와 적응기는 다음편에 이어가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