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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수 중 닥친 날벼락, 코로나 시대에도 알찬 연수생활 보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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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수 중 닥친 날벼락, 코로나 시대에도 알찬 연수생활 보내기

작년 8월 말 연수지인 이곳 미국 워싱턴 D.C에 도착한 이후 가을부터 겨울까지 연수 기간의 절반가량은 거의 매일 연수 기관인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로 출근하다시피 했다. 어렵게 얻은 연수 기간을 헛되이 보내고 싶지 않기도 했고 날씨가 따뜻해지면 여행을 다닐 계획이었다. 그러다 생각지도 못했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난데없이 전 세계를 강타했다. ‘미국은 안전하다’던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말을 믿었다가 주(州)마다 무방비 상태로 심하게 뒤통수를 얻어맞고는 서둘러 락다운 조치에 들어갔다.

미국 대부분의 지역이 사실상 문을 닫으면서 나도 손꼽아 기다렸던 연수지에서의 봄날을 내 아파트에 갇힌 채 맞아야 했다. 창밖 세상은 온통 초록빛으로 물들어 가는데 온종일 집안에 틀어박혀 하루하루 시간을 낭비하는 것 같아 억울해 속이 뒤집어질 지경이었다. 왜 하필 내 연수 기간에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 한탄하다 문득 16년 만에 얻은 귀한 시간을 이렇게 허비해선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조급한 마음에 이것저것 시도해보다 약간의 시행착오 끝에 집안에서도 비교적 알찬 연수 생활을 보낼 수 있는 나름의 노하우를 얻었다.

이제 7월로 접어들면서 곳곳에서 락다운 조치가 해제되기 시작했지만, 안타깝게도 코로나 사태는 한동안 계속될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연수 기간을 낭비하지 않으려 위험을 무릅쓰고 여기저기 여행을 다니다가는 자칫 남의 나라에서 몸져눕는 불상사가 일어날 수도 있다. 백신이나 치료제가 나오기 전까지는 어쩔 수 없이 집 근처에서 연수 생활의 상당 기간을 보내게 될 다음 연수생들에게 내 경험이 조금이라도 도움이 됐으면 하는 바람으로 지난 4개월에 걸친 나의 코로나 락다운 생활을 돌아봤다.

■ 미국 주요 싱크탱크들의 세미나를 내 방에서
락다운으로 미국 대부분의 기업과 각종 기관이 문을 닫으면서 CSIS도 3월 초부터 재택근무에 들어갔다. 거의 매일 아침부터 저녁까지 온종일 다양한 주제로 세미나가 열렸던 곳이라 락다운 직후에는 예정돼 있던 많은 행사가 취소되거나 연기됐다. 워싱턴의 주요 싱크탱크들은 이미 오래전부터 홈페이지나 유튜브를 통해 각종 토론, 세미나, 연설 등의 행사를 실시간으로 중계하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에 락다운 이전에도 곳곳에서 열리는 행사에 일일이 옮겨 다니기 번거로울 때는 종종 인터넷 중계를 보곤 했었다.

락다운 이후에는 주요 싱크탱크들의 모든 행사가 화상으로 진행되면서 오히려 온라인을 통해 접근할 수 있는 행사도 늘어나고 현장 위주에서 온라인 위주로 무게 중심이 옮겨가면서 온라인 콘텐츠들이 질적으로도 개선된 느낌이다. 물론 현장감은 떨어지지만 내 책상 앞에서 편안하게 메모를 하면서 방해받지 않고 토론이나 발제에 집중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주요 싱크탱크들은 홈페이지에 이메일 주소를 등록하면 각종 행사 관련 안내를 사전에 받아볼 수 있다. 미리 달력에 표시해뒀다가 해당 시간에 컴퓨터만 켜면 미국의 내 방에서 뿐 아니라 세계 어디에서든 워싱턴의 여러 싱크탱크가 주최하는 행사를 실시간으로 볼 수 있는 셈이다. 그렇게 일주일에 서너 번은 다양한 주제의 온라인 세미나를 보고 있다. 굳이 워싱턴으로 연수를 오지 않고 미국 타 지역이나 서울에서도 각 분야의 세계적 전문가들의 발제나 토론, 세미나에 참여할 수 있어 관심 있는 이들에게 추천할 만하다.

■ 도서관에서 종이책 대신 전자책·오디오북 빌려 보기
넷플릭스로 그동안 놓쳤던 미드를 정주행하는 것도 집에서 시간을 보내는 한 가지 방법이겠지만 그건 한국에서도 마음만 먹으면 휴일에 얼마든지 할 수 있는 일이라 연수 기간을 그렇게 낭비하고 싶지는 않았다. 대신 한국에서는 구하기 어려웠던 원서가 사방에 널려 있으니 독서를 하면서 영어 공부를 시작하기로 했다.

서울에서는 해외 배송료가 무서워 선뜻 주문하지 못했던 원서들을 아마존의 프라임 멤버십을 이용하면 배송료 없이 주문한 다음 날 바로 받아볼 수 있어서 한동안 책을 사들이는 데 꽤 돈을 썼다. 아마존의 오디오북 앱인 audible에서 오디오북을 구매해 청소나 설거지를 하면서 듣기도 했다. 자꾸 쌓여가는 책이 부담스러워지려던 즈음에 인근 도서관에서 전자책과 오디오북을 대여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종이책의 책장 넘기는 느낌을 좋아해서 전자책을 선호하지는 않지만, 곧 한국으로 돌아가야 하는 연수생 입장에서는 책이 쌓일수록 가져가야 하는 짐도 늘어나는 셈이고 카드 값도 부담스러웠다.

그렇게 도서관에서 전자책과 오디오북을 대여하기 시작했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여러모로 편리했다. 닫힌 도서관에 직접 갈 수 없어도 집에서 대여와 반환이 가능하고 여러 사람의 손길이 닿은 책을 빌려보는 게 솔직히 꺼림칙할 때도 있었는데 그런 신경을 쓸 필요가 없다는 것은 큰 장점이었다. 락다운이 끝나면서 도서관들도 다시 문을 열었지만, 여전히 전자책으로 손이 더 가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미국에서 집을 구하면 가장 먼저 인근 도서관에 회원 등록을 하라고 추천하고 싶다. 도서관과 아마존 덕분에 지난 4개월간 다양한 장르의 책을 닥치는 대로 사십권쯤 읽을 수 있었다. 입사한 이후에는 바쁘다는 핑계로 솔직히 일 년에 책 열권을 읽기가 쉽지 않았는데 독서의 즐거움을 다시 느끼게 된 것은 연수 기간, 코로나 락다운이 준 큰 선물이다.

■ 미국서 영어만 공부하란 법 있나? 유튜브·팟캐스트로 외국어 공부하기
대학에 입학한 이후론 외국어 공부는 사실상 담을 쌓아놓고 지내다시피 했다. 입사 이후엔 바쁘다는 핑계로 영어마저 내팽개쳤다가 20여년 만에 미국에 돌아와서야 입이 굳어버렸다는 사실을 깨닫고 뒤늦게 충격을 받았다. 어차피 영어는 한국에 돌아가서도 언제든 조금씩 다시 공부하면 되겠지만 제2 외국어를 기초부터 충실하게 공부할 기회는 지금이 아니면 다시 오지 않을 것 같았다. 놀면 뭐 하겠나 싶은 마음에 고등학교를 졸업한 이후로는 눈길도 주지 않았던 프랑스어를 다시 공부해보기로 했다.

요즘 같은 인터넷 시대에는 시간만 투자할 의지가 있다면 공부하는 데 필요한 자료는 별도의 비용을 들이지 않고도 얼마든지 가능하다는 걸 알게 됐다. 유튜브에서 ‘프랑스어'(francais)를 검색하니 다양한 프랑스어 학습 동영상이 떴다. 그중에서 초급자용 동영상 몇 개를 골라 반복해서 보면서 단어와 문장, 발음 등을 익히기도 하고 프랑스어로 출간된 청소년용 서적을 주문해 사전을 찾아가며 읽기도 했다. 팟캐스트에도 외국어 공부를 위한 다양한 무료 콘텐츠가 넘쳐났다.

연수 생활을 마치고 다시 회사로 돌아가면 이렇게 외국어 공부에 많은 시간을 할애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렇지만 매일 10분씩만 꾸준히 노력하면 몇 년 뒤 휴가 때 파리의 한 노천카페에서 현지인과 유창한 프랑스어로 대화를 나눌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희망을 품고 어렵게 다시 시작한 외국어 공부를 계속 이어갈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