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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은 금융 선진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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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


영국 런던은 전세계적인 금융 중심지로 유명하다. 세계 각국의 금융 분야가 런던에 모여 있고, 내가
사는 캐나다워터 바로 옆이 금융 중심지인 카나리 와프(canary warf)다. 히드로 공항에 도착하면 카
나리 와프 전경을 담은 광고영상을 볼 수 있다. 런던 시내에서 멀리서도 citi 은행 간판이 보일 정도
로 금융 관련 고층빌딩이 모여 있는 곳이기도 하다.


단순히 고객 입장에서 보자면 우선 우리나라에 비해 결제 방법이 간단하다. 전세계적으로 우리나라만
고집한다는 공인인증서 시스템이 없다. 인터넷뱅킹을 위해서는 비밀번호 두 단계만 거치면 바로 로그
인이 가능하다. 계좌이체의 경우에도 수신인을 미리 지정해놓으면 별도의 비밀번호, OTP, 보안카드 등
의 절차 없이 거래가 실행된다. 우리나라에서 고객들이 공인인증서를 별도로 관리하고 매번 갱신해야
하는 번거로움 등을 생각하면 확실히 영국의 금융시스템은 절차가 간편했다.


영국은 보안을 0순위로 여기고, 금융사고가 발생하면 우선적으로 사고발생 은행에서 책임을 지는 시
스템이다. 사고가 발생하면 우선 고객에게 사고 발생 만큼의 금액을 넣어주고, 뒤처리는 은행의 몫
이라고 한다. 우리나라보다 상대적으로 보안이 너무 철저한 이유는 그 때문이었다.


하지만 영국이라고 해서 모든 은행 처리 절차가 합리적인 것만은 아니었다. 오히려 우리나라보다 뒤
떨어지거나 까다로운 부분들도 분명히 존재했다. 은행 계좌를 트는 일은 집 구하기보다도 더 어려울
뻔 했던 분야다. 처음에 특히 적응이 되지 않은 부분은 은행계좌를 트기 위해서는 반드시 사전에 날
짜와 시간 약속을 은행에 직접 가서 잡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계좌 한번 트려고 은행을 두 번이나
직접 방문해야 한다는 것이다.


또 영국에서는 어딜 가든지 거주하는 주소가 적힌 렌트 계약서를 요구했다. 그것도 종이로 된 서류
를 반드시 요구한다는 것은 정말 답답한 일이었다. 처음에 학교에서 학생증과 은행용 레터를 받기
전까지는 임시거주 주소 밖에 없어 은행 계좌를 트기가 어려웠다. 그런데 집을 구한 뒤에도 은행 계
좌 트는 일은 쉽지 않았다. HSBC 지점을 두 번이나 방문해 약속 날짜와 시간을 잡았지만, 부동산에
서 렌트 계약서를 전자문서 형식으로 발부해 전자서명을 했는데, 직접 친필로 사인한 문서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결국 시간 낭비만 하고 빈손으로 나오고 말았다. 다른 은행에서는 관리비 영수증 같
은 것까지 요구했다. 다행히 학생증만 있으면 은행계좌를 터주는 산탄데르(santander) 골드스미스
지점에서 계좌를 만들 수 있었다.


영국의 은행은 번호표가 없어 줄을 서서 한참을 기다려야 한다. 산탄데르 은행계좌는 계좌에서 유지
비용이 5파운드씩이나 빠져나가는 조건도 있었다.


멀쩡히 쓰던 현금카드가 갑자기 정지되는 일은 더더욱 황당한 일이었다. 초기에 핸드폰 개통을 하기
위해 debit 카드를 쓰려고 했을 때 웬일인지 카드가 먹히지 않았다.(영국에서는 12개월 이상 장기로
핸드폰 계약을 하려면 신용카드 또는 debit 카드로 등록을 해야 한다. 여권 등 신분증을 복사하는 등
신원도 철저히 검사한다.) 매장 직원은 카드에 문제가 있는 것 같다며 은행 지점에 가보라고 했다.
처음에 은행 직원은 카드에 문제가 없다고 했다. 하지만 매장에서 아무리 시도하려 해도 “은행지점에
방문하라”는 메시지가 올라와 재차 지점을 방문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자 은행직원은 서비스센터에
문의해 거래가 정지된 카드를 풀어줬다. 은행 직원에게 어찌된 일이냐고 따져물었다. 하지만 그 직원
은 오히려 나를 이상한 사람 취급하며 고객의 보안이 top priority라며 조금만 이상한 낌새가 발견되
면 카드를 정지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고객에게 확인 절차도 없이 카드를 무조건 정지하고 직접 은행
을 방문해 해결하라는 태도는 여전히 납득이 가지 않는다. 더 황당한 것은 나중에 카드 거래 시도가
인터넷 문제로 잘 안되었을 때는 확인 전화가 오기도 했다는 것이다. 카드 이용에 의심되는 부분이
있으면 확인 전화를 하는 제도가 있음에도 간혹 카드를 고객에게 통보도 없이 정지한다는 것은 이해
할 수 없는 일이다.


은행에서 직원마다 기준이 다른 경우도 있었다. 한번은 현금 카드를 잃어버려 전화로 신고를 하고
새 카드 발급 신청을 했다. 은행 방문 첫날, 직원은 새 카드가 발급될 때까지는 현금 인출을 하려면
여권과 계좌 디테일을 직접 은행에 가지고 가야 하고, 당일 100파운드 한도까지 인출할 수 있다고
했다. 너무 적은 금액이었고 100파운드씩 뽑기 위해 매일 와야 한다는 것이 불편했지만, 어쩔 수 없
었다. 그런데 이튿날 방문했더니, 다른 직원은 하루에 최대 300파운드를 뽑을 수 있다고 했다. 직원
마다 현금 인출 한도가 고무줄처럼 늘어났다 줄어든다는 것인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물론 우리나라
에서도 고객들이 황당한 경우를 겪는 일은 분명 존재할 것이다. 하지만 영국이 금융 선진국이라는
환상이 존재했던 탓인지 좀 실망스러웠던 기억들이다.


통신


핸드폰은 영국에 살면서 가장 애증의 대상이 된 물건이다. 영국에서 핸드폰을 개통하는 방식을 애초
에 숙지하지 못한 잘못도 있지만, 핸드폰 판매 매장에서 충분히 고객에게 설명해주지 않은 탓에 시행
착오를 제대로 치른 분야다.


영국에서 주로 쓰는 통신사는 EE, Three, O2, Vodafone, giffgaff 등이 있다. 유럽에서는 12개월 또는
24개월 약정을 하는 한국과 달리 심카드를 주로 이용한다. 핸드폰 기기만 있으면 심카드를 12개월
계약하거나, 선불용(pay-as-you-go) 심카드를 구매해 갈아끼워 사용한다. 다만 유럽여행이 잦은 경
우라면 해외에서 데이터 서비스(feel at home) 이용이 가능한 three 통신사를 이용할 것을 권장한다.


문제는 12개월 계약을 한 경우에 발생할 수 있다. 12개월 계약을 한 뒤에 중도에 해지하는 것은 자살
골이나 다름없다. 해지 비용이 나머지 잔여개월수에 대한 모든 비용을 지불하는 것보다도 비싸다. 그
러다보니 처음에는 그저 쉽게 생각하고 해지를 요청했다가, 계산을 해본 뒤 번복해야 하는 상황도 발
생할 수 있다. 내 경우가 그랬다. 특히나 계약사항에 대해서는 영업점을 방문해서는 해결하기가 힘들
다. 직원들도 전화를 통해 서비스센터에 문의해야 하고, 고객도 전화를 걸어 상황을 설명하거나 변경
을 요청해야 한다. 반드시 전화를 통해 security Test를 통과해야 하는 등 장시간을 통화해야 하는
번거로움과 전화비용마저 고객이 부담해야 하는 어이 없는 상황을 겪고 보니 그저 황당하고 분할 따름
이었다.


이보다 더 큰 문제는 해지한 뒤에 기존에 쓰던 번호를 그대로 유지해 타 통신사로 옮기려고 할 때 발
생한다. 유럽에서는 PAC Code라는 제도가 있는데, 쉽게 말하면 핸드폰 번호 라인을 가질 수 있는 권
리다. 이 권리를 고객에게 양도한 뒤, 고객에게 타 통신사로 스스로 옮기도록 하는 것이다. 고객이
PAC Code를 요청하면 기존 번호를 그대로 타 통신사로 옮겨 유지할 수 있다. 하지만 PAC Code를 요구
하는 순간, 해지된 번호는 다시 되살릴 수 없다. 한 달 이내에 타 통신사로 PAC Code를 옮기지 못하면
기존 번호는 그냥 사라지게 된다. 내 경우는 PAC 코드를 요구한 탓에 결국 해지 요구를 번복할 수 없어
그 비싼 해지 비용을 고스란히 날릴 수 밖에 없었다;;


영국에 오래 살 생각이 아니라면 12개월 계약보다 조금 비싸고 조건이 안좋더라도 반드시 pay-as-you-
go 유심칩을 구매하거나 1 month-rolling 단기계약을 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