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목록보기

영국이야기(물가)

by

11. 만만찮은 물가



영국의 물가는 결코 만만찮습니다. 그러나 처음 이곳에 도착해선 착각하기 딱 알맞습니다. 천원, 만원 단위에 익숙하던 우리의 관념이 1파운드(2천원), 10파운드 등으로 표시된 가격표를 보면서 물가의 심각성을 망각토록 하는 탓이죠. 실제 첫 쇼핑 때 식료품을 중심으로 시시한 것 몇 가지 사고 나서 계산을 하니 19.80파운드. 언뜻 생각하기엔 ‘한 이 만원 썼나’ 했는데 오면서 생각해보니 ‘글쎄 4만원이지 뭡니까’. 조금 살다보면 관념의 차이가 극복되면서 비로소 물가의 실상이 구체적으로 느껴지기 시작합니다. 아내의 말로는 식료품 가격은 한국의 2-3배라고 생각하면 된다고 합니다. 빵이나 우유, 감자 등 영국의 주식용 식료품은 한국과 비슷한 수준이지만 야채류, 과일류, 쌀, 과자 등은 정말 비쌉니다. 달걀의 경우 12개 짜리가 1.99파운드 이상, 어른 주먹만한 배추가 1.50펜스, 오이 1개 1파운드 이상 등등. 아이를 데리고 동네 구멍가게에 가서 알사탕 몇 개만 집어도 5파운드가 훌쩍 넘어갑니다. 영국이 섬나라인지라 이곳에 오기 전 수산물 가격은 아주 쌀 줄 알았는데 그것도 그렇지 못합니다. 영국인들에게 아주 인기 있는 군것질 거리-훌륭한 주식역할도 합니다만-가 바로 fish & chips인 탓에 생선, 특히 대구류의 가격은 아주 비쌉니다. 아울러 EU내 어획쿼터 배정 때문에 수산물의 공급이 수요를 따라잡지 못해 가격은 전체 수산물 가격은 한국보다 훨씬 비쌀 수 밖에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북해유전의 상당한 지분을 가진 산유국이면서도 영국의 기름 값도 한국보다 비쌉니다.(차구입편 참조) 공산품의 가격도 엄청납니다. 휴지의 경우 한국의 3배를 생각해야 하며 칫솔, 치약 등 생필품 가격도 장난이 아닙니다. 책 값 역시 빠지지 않습니다. 웬만한 대학 교재는 30파운드가 넘습니다.



여기다 자동차세에다 TV 라이센스까지 추가하면 질립니다. 자동차세는 6개월 단위로 나눠 구입해도 되는데 연간 180파운드입니다. TV 라이센스의 경우 정확히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만 90파운드가 넘습니다. 처음 이사 들어와서 전 세입자 이름으로 TV 라이센스 청구서가 왔길래 모른 척 돌려보냈더니 한달 후 경고장이 날라 왔더군요. 당신 주소지에서 분명히 TV를 시청하고 있는 것을 알고 있는데도 TV라이센스를 내지 않았다며 언제까지 안내면 벌과금 1천파운드를 물리겠다고 엄포와 함께 말입니다. 바로 우체국에서 가서 자진신고 한 뒤 TV라이센스를 샀습니다. 저 처럼 학생 신분이 아니고 visiting scholar, research fellow 자격 등으로 연수 오는 분들이 기억해야할 세목이 있습니다. 바로 council tax입니다. 우리로 치면 주민세 쯤에 해당되는데 이 세수로 치안비용, 오물처리비용 등 자치단체의 운영기금을 삼는 탓에 이 액수도 엄청납니다. 세액은 동네별로 다릅니다. 엑시터의 경우 동네를 집 시세별로 8가지 밴드로 나눠 비싼 주거지역 주민이 더 많이 내는 방식입니다. 우리 집은 C밴드에 속하는데 1년치 tax가 무려 829.27파운드 였습니다. 우리 돈으로 1백60만원이 넘는 셈이죠. 학생의 경우 학교에서 재학증명서를 떼 우편으로 city council로 보내면 전액 감액해줍니다만 다른 신분의 경우 반드시 내야 합니다. 내지 않을 경우 벌과금도 문제지만 거주자 주차권이 발행 안돼 차를 마음놓고 주차할 수도 없습니다.



통신비용도 적잖은 부담이 되는 항목입니다. 전화서비스 업체는 BT와 Eurobell이 있는데 대개의 경우 BT를 사용합니다. 인터넷 때문이죠. BT가 제공하는 BT openworld Surftime의 경우 한달에 15.30파운드만 내면 오후 6시부터 다음날 오전 8시까진 무한대로 인터넷을 사용할 수 있습니다. 물론 전화선을 이용한 것이라 한국의 초고속 인터넷을 사용한 분들껜 적잖은 짜증을 유발합니다. BT 역시 ADSL서비스도 제공하는데 한달 35파운드 정도-기억이 정확하지 않습니다- 여서 엄두가 나지 않습니다. 아무튼 지난 1월 우리집 전화요금 내역서를 한번 보죠. 영국내 통화료가 9.04파운드, 인터넷 사용을 포함한 장비임대료(우리의 기본요금으로 생각하면 됩니다)가 54.87파운드, 부가세 11.84파운드로 모두 75.75파운드 였습니다. 한화로 15만원이 넘는 액수입니다. 여기엔 국제전화 요금은 빠져 있으니 정말 가공할 수준이죠. 공중전화기의 통화료도 한 통화에 최소한 20펜스, 4백원 가량됩니다.



그렇다고 겁부터 먹지는 마십시오. 비싼 물가를 피해 가는 요령도 있거든요. 먼저 buy 1, get 1 판매방식을 적극 활용하십시오. 영국의 유명 슈퍼체인에 가면 항상 buy 1, get 1 상품이 있습니다. 말 그래도 하나를 사면 하나는 덤으로 주는 것이어서 반액으로 사는 셈이죠. 장기간 둬도 변질우려가 없는 상품들 휴지, 칫솔, 치약 등을 비롯해 식료품을 이 세일 때 사면 큰 도움이 됩니다. 따라서 집에 들어오는 광고 전단지를 꼼꼼히 보고 있다가 어느 슈퍼에서 buy 1, get 1 세일을 한다고 하면 계획쇼핑을 하면 지출을 줄일 수 있습니다. 또 하나의 방법은 카부츠(car boots) 세일을 이용하는 것입니다. 카부츠란 우리가 흔히 트렁크라고 부르는 차 뒤쪽 짐칸을 일컫는 말인데 여기다 물건을 싣고 와 판다고 해서 생긴 말입니다. 미국의 벼룩시장을 연상하면 됩니다. 엑시터의 경우 매주 일요일 시 외곽의 가축시장 공터에서 대규모 카부츠 장이 섭니다. 이곳에 가면 영국 사람들이 살인적인 물가를 어떻게 지혜롭게 극복하고 있는지를 한눈에 알 수 있습니다. 조금 과장을 보태서 없는 물건이 없습니다. 조그마한 나사못부터 가재도구까지 다 나와 있습니다. 우리 생각엔 어떻게 저런 것 까지 팔까라는 생각이 드는 입던 속옷까지 있습니다. 물론 한 켠엔 떠돌이 전문 장꾼들의 좌대도 있습니다만 대다수 좌대는 정말 필요없는 물건을 처분하려 나온 평범한 영국 시민들의 것입니다. 당연히 가격이 파격적으로 쌉니다. 제가 여기서 구입한 물품으로 최신 전화기 1파운드, 손 청소기 2파운드, 중고 카세트 녹음기 2.5파운드, 와인잔 세트 1파운드, 애들 동화책 20-30펜스 등등입니다. 다른 분들의 경우 책상, 책장, 의자, 그릇세트 등 여기서 장만한 가재도구로 완전히 새 살림을 차리더군요. 이곳 시장은 연수를 끝내고 돌아가는 분들께도 유익합니다. 관리인들에게 장소 임대비조로 2.5파운드만 내면 누구나 좌대를 설치, 자신의 물건을 처분할 수 있는 탓에 귀국을 앞둔 분들의 경우 이곳에서 그동안 사용하다 버리기 아까운 물건을 처분, 짭짤한 수입을 챙겨갑니다.



전화비와 관련해선, 아무래도 가장 큰 부담이 되는 국제전화료를 아끼는 방법은 BT의 2002 서비스에 가입하는 것입니다. 이 서비스를 이용하면 한국의 경우 분당 9펜스(180원)에 국제전화를 이용할 수 있습니다. 이 서비스에 가입하려면 0808 177 2000 또는 020 8537 0000번으로 전화해 신청한 뒤 요금은 신용카드 나 debit card로 미리 결재하면 됩니다. 그러나 싼게 비지떡이라는 말처럼 이 전화의 경우 통화품질은 상당히 떨어집니다. 또 가끔 먹통이 되는 경우도 있어 급할 땐 정말 짜증납니다. 이 땐 help line인 020 8201 3387로 전화해 한바탕 욕을 퍼부으면 빨리 조치를 취해주기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