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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대학교 다니면서 느낀 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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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에서 석사과정을 택한 이유는 해외연수 기간 1년을 스스로에게 자유롭게 맡길 경우, 폐인 생활을
하게 될까 두려워서다. 나는 같이 시간을 보낼 가족과 같이 가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자기주도 학습’
이 되는 스타일도 아니기 때문이다. 


영국의 석사과정은 1년으로 3학기제다. 나는 영어 성적 조건부로 입학허가를 받은 후 IELTS 시험을
4번이나 봤음에도 이를 넘기지 못해 결국 영어 프리세셔널을 들어야 했다. 학교에선 IELTS 평균 7.0
에 쓰기(writing) 7.0을 요구했으나 쓰기 시험 점수 6.5가 최선이었다. 응시료만 100만원을 날렸다.
프리세셔널은 가격이 1,500파운드나 하는 4주짜리 코스였는데, 가격 대비 수업의 질이 그다지 만족
스럽지 않았다. 프리세션 기간을 감안해 비자를 빨리 받을 수 있었던 점이 그나마 도움이 된 정도
였다. 그러나 이는 내가 다닌 학교에 국한된 이야기이고, 다른 대학의 경우 만족스러운 프리세션
수업을 제공하는 경우도 많은 듯 했다. 


내가 다니는 학교에는 워낙 중동계와 중국인들이 많아 ‘영국 학교’를 다닌다는 느낌은 적었다. 캠퍼스
라고는 무미건조하게 생긴 건물 몇 개가 다인데다가 학생식당은 일년 내내 그저그런 음식만 주구장창
나와서 등하교 재미는 덜했다. 그래도 오랜만에 일보와 마감 스트레스에서 벗어나 학교를 다니는 일
은 흥미로운 경험이었다.    


교수와 평등한 관계


첫 수업에서 낯설었던 풍경은 교수를 이름으로 부르는 것이다. 기사작성 수업을 담당한 이는 기자
출신의 젊은 강사였다. 그의 이름은 빈센트였지만 모두들 그를 ‘빈스’라고 줄여 불렀다. 그러던 와중
시에라리온 출신의 흑인 학생이 “Sir”라고 그를 부르자, 그는 펄쩍 뛰며 “절대 다시는 그렇게 부르지
말라(Don’t ever never call me sir)!”며 알레르기 반응을 일으켰다. 빈스가 젊고 만만해서 이름
을 줄여 부른 것이 아니다. 학과장인 할머니 선생님도, 더 타임즈 출신의 딱딱하기 그지 없는 교수
도 다 이름으로만 불렀다. 서로를 이름으로 부르다 보니 의사소통도 훨씬 원활하다고 느껴졌다.
학생들은 조금이라도 궁금하거나 선생과 의견이 다르거나, 선생이 틀린 얘기를 하면 바로 손을 들어
바로 바로 이야기를 했다. 


학교에서도 가급적 학생들의 의견을 듣기 위해 노력했다. 초반부터 학생들은 학교 커리큘럼이나
수업에 이런저런 불만이 많았는데 학교측에서 이를 수용하기 위해 한 두 달에 한번씩 학생대표와
미팅을 가졌다. 학교측은 학생수가 20명에 불과한 우리 과정에서 반대표를 3명이나 뽑도록 했다.
학기초에 학생들 사이에 불만이 컸던 점은 경제나 금융과 관련한 전문성 있는 수업이 부족하다는
점이었다. 그러자 학교측에선 2학기에 부랴부랴 정규 과정 외 특강을 마련해 이를 보완하려고 노
력하는 제스처를 보였다.  


그 외에도 이 미팅자리에서 온갖 불만 및 건의사항을 전달했다. 미팅이 있기 전에는 반대표들이
사전에 단톡방을 통해 의견을 수렴했다. 특정 선생에 대한 불만부터 숙제 양식에 대한 토로까지,
한국학생들이었으면 ‘그러려니’ 하고 넘어갔을 것들도 시시콜콜히 전달했다. 물론 학교에서 불만
을 다 해결해줄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그 중에는 투정 섞인 불만도 있었지만, 이렇게 학생들의
의견을 지속적으로 듣고 반영하려는 학교의 태도가 인상적이었다. 교수 및 학교 행정처와 학생
간의 수직적인 관계 때문에 원활한 의사소통이 힘든 한국과는 대조적인 풍경이었다. 


저널리즘 스쿨에 코딩수업?


수업은 경제기사작성, TV뉴스제작, 언론 윤리, 글로벌 경제 기사 작성 등 4과목이 필수 과목이
고 2개는 선택해서 들을 수 있었다. 선택 과목 중에는 디지털 미디어, 데이터저널리즘, 코딩,
정치경제학 등이 있었다. 나는 데이터저널리즘과 정치경제학을 선택했는데, 신기했던 것은 바로
코딩 수업이었다. 워낙 컴맹인데다 영어 수업을 잘 못 알아 듣는지라 나는 코딩수업은 지레 포기
했고, 실제로 코딩수업을 들은 애들의 숙제를 보니 안 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러나 저널리즘 스쿨에서 코딩을 가르친다는 사실이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이 수업에서는 데이터
를 가공해 뉴스 스토리를 만들어 내고, 이를 멀티미디어 기술을 통해 독자들이 보기 좋게 시각화
하는 기술을 배운다. 예컨대, 각 지역별로 엠뷸런스 도착 시간에 대한 데이터를 수집해 이를 컴퓨
터 프로그램으로 시각화해서 의료복지가 낙후된 지역에 대한 뉴스를 글이 아닌 인터랙티브 그래픽
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디지털 혁명으로 언론 환경은 계속 바뀌고 언론사에서 필요로 하는 인재들도 예전과는 달라지고
있다. 이제 언론사들이 디지털 미디어 기술과 저널리즘 마인드를 겸비한 인재들을 찾는 것은 대
세다. 이에 따라 학교에서도 여러 가지 디지털 멀티미디어 기술 종합세트를 가르치려고 교과 과정
에 신경을 쓰고 있다. 데이터 저널리즘 수업만 해도 100명 가까운 학생들이 들었는데, 담당 교수
는 불과 몇 년 만에 격세지감을 느낀다고 했다. 수업이 개설된 지 4~5년 밖에 안됐는데 초기만
해도 20명 남짓한 학생들이 수강신청을 했다고 한다. 언론사들이 데이터 저널리스트에 대한 채용
을 늘리면서 학생들의 관심도 증가했다. 학기 중에도 파이낸셜타임즈, 텔레그라프 등의 데이터팀
에서 학생들은 대상으로 한 유급 인턴채용 공고가 이어졌다.  


물론 모든 기자들이 디지털 기술을 알아야 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알면 알수록 이를 활용한
다양한 기사를 만들 수 있다는 점에서 나 역시 앞으로 꾸준히 디지털 기술을 활용한 뉴스에 관
심을 가져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학교는 취업 준비하는 곳


영미권이 워낙 실사구시의 전통이 강한 데다 특히 이 과정은 실습위주여서 인지 학생들이 학교
에 다니는 이유는 대놓고 딱 하나, 취직이었다. 그래서 학생들은 수업 과제들도 이력서 쓸 때
첨부할 수 있도록 실전처럼 열심히 한다. 또 이들에게 최우선 순위는 인턴십을 구하는 것이다.
이 곳 언론사들은 공채 제도라는 게 따로 없고 필요할 때 공고를 내서 신입 및 경력직을 채용
하는데, 과거에 이 학생이 어떤 인턴십을 했느냐가 채용에서 상당히 중요한 비중을 차지한다.
 
예컨대 블룸버그의 경우 약 10명의 10주짜리 유급인턴을 채용하고 트레이닝 과정을 거친다. 우리
로 치면 딱 수습기자와 같다. 그리고 10주 후 그 중 3~4명정도를 정식 채용하는 식이다. 그런데
그 유급 인턴 채용에 있어서도 이전 인턴 경력이 상당히 중요하다. 학교에서도 취업지원 센터가
있어 이력서 작성과 모의 면접 등에 대한 상담을 예약해서 받을 수 있다. 그리고 과별로 지속적
으로 현직 기자 및 졸업생들과의 간담회를 마련해 취업노하우 등을 알려주고 네트워킹에 도움을
준다. 


거의 학기가 끝난 지금 상당수의 학생들이 정식 채용됐거나 인턴을 하는 중이다. 한국보다는 취업
시장이 여유가 있는 편이지만 취업스트레스는 여기도 마찬가지다. 다가오는 출근날짜에 스트레스
를 받던 나는 이 친구들을 보면서 “돌아갈 곳이 있다는 게 좋구나”하면서 마지막 방학을 즐기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