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으로 해외연수를 정한 또다른 이유는 바로 석사과정이 1년 과정이라는 점이다. 미국은 대부분이 2년
과정이고, MBA 과정도 최소 1년반 정도의 시간이 소요되므로 선택에 제약이 있었다. 준비과정에서 무엇
보다 힘들었던 것은 첫째는 영어, 둘째는 영국석사에 대한 정보 부족이었다. 처음에는 무작정 ‘영국 유학
박람회’에 가서 열심히 귀동냥을 했었다. 그제서야 비로소 영국이라는 나라가 얼마나 한국과 교류가 없
고 먼 나라인지를 실감했다. 모든 것이 새롭게 느껴졌었다. 그 때문인지 유학박람회에서 얻을 수 있는 정
보는 유학 준비를 위해 턱없이 부족했다. 그 때부터 인터넷 등을 통해 차근차근 정보를 모아갔다.
무엇보다 가장 고군분투했던 부분이 IELTS라는 영어테스트였는데, 영국 대부분의 대학원에서는 Overall
7.0 이상의 실력을 요구한다. 이 정도 실력은 TOFLE로는 IBT 100 이상이라고 하는데, 단순 비교는 어렵
다. IELTS는 무엇보다 speaking 시험을 실제 영국인 면접관이 1대1 방식으로 치르기 때문이다. 내 생각
으로는 시험관이 주관적으로 채점하기 때문에 더 점수가 공정하지 않을 수 있다는 생각이다. IELTS 역시
TOFLE과 마찬가지로 listening, reading, writing, speaking 등 네 분야로 나뉘는데 어느 한 분야라도
점수가 낮으면 대학원에서 받아주지 않는 경우도 있다. 영어 점수를 위해 한번에 25만원이나 하는 시험
을 6차례 이상 보았고, 학원비도 만만치 않게 들었다. IELTS를 공부해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공감하는
정말 애증의 시험이었다.
어렵사리 획득한 IELTS 점수를 가지고 영국 대학원에 지원하는 것도 만만한 일은 아니다. 지원서와 자기
소개서, CV(이력서) 등을 전부 영어로 작성해야 하고, 게다가 친분이 있는 대학교수 또는 회사 상사를 통
해 추천서까지 작성해야 한다. 영국에는 아르바이트로 영어 지원서, 추천서 등을 대신 작성하거나 첨삭해
주는 한국인 또는 영국인들도 있다. 내 경우에는 영어로 직접 작성한 원서를 현지 대학원생 그룹을 통해
첨삭하는 과정을 거쳤다.
영국 대학원들은 지원서 제출 조건만 맞으면 지원하는데 제약은 없다. 내가 선택한 학교는 런던대 골드
스미스 칼리지(Goldsmiths college, University of London)였다. Media & Communication 학과에 세계
적인 석학인 James Curran 교수가 직접 강의를 하는 것도 장점이었고, 커뮤니케이션 학과도 수준급이
라는 얘기를 들었기 때문이다.
영국의 학기는 9월에 시작해 가을학기, 봄학기, 여름학기 등 3학기로 나뉜다. 1년 동안 미국 석사과정의
2년치를 한번에 압축적으로 진행한다고 보면 된다. 가을학기, 봄학기에는 필수와 선택 과목까지 각 학기
별 60학점, 논문학기인 여름 학기에 60학점(논문)까지 총 180학점을 이수해야 한다. 처음 런던에 도착해
학교를 둘러보니 캠퍼스 크기는 아담했지만 college green이라는 넓은 잔디밭이 있고, 건물에는 담쟁이
넝쿨이 올라가 있어 예뻤다. 유학생을 배려하는 정책과 환경들도 기대 이상이었다.
영국의 교육과정은 한국 못지 않게 치열하다고들 한다. 하지만 한국과 다른 점은 개별 학생들의 수준에
맞는 맞춤형 교육이 가능하다는 점이다. 초중고 정규과정에서는 기본적으로 Tutorial 과정을 통해 1대1
수업이 이뤄진다고 보면 된다. 이런 전통은 대학까지 이어진다. 대학에서도 기본적인 강의 이외에 Tuto-
rial(교수와의 면담) 시간을 갖는 것이 일반화돼 있다. 각 과목마다 5~6000단어 분량의 Essay(part time
은 3000단어)를 통해 평가하는 시스템인데, 원하는 만큼 교수와의 면담을 통해 Essay 방향을 정하고 개
별지도를 받을 수 있도록 돼있다. 강의 시간 역시 일방적인 주입식 강의는 찾아보기 힘들다. 강의 이후
에 동일한 시간만큼의 세미나 시간이 있고, 세미나 준비를 위한 Reading material의 분량이 상당하다.
Reading을 통해 소화한 내용과 강의 내용을 바탕으로 세미나가 이뤄진다.
한국에서 교수를 만나 상의하는 일이 너무나도 어렵게 느껴졌던 것에 비하면 영국은 교수와 학생과의
관계가 수평적이었다. 한국에서 학생들이 ‘교수님’이라는 호칭을 쓰면서 깍듯이 대하는 것에 비하면
버릇 없다고 느껴질 정도다. 자기 의견을 자유롭게 개진하고 교수의 발언에 반박하는 일도 다반사였다.
그만큼 토론 문화가 활성화 돼 있는 것이다. 영국 학생들은 강의 시간에도 궁금한 점이 있거나 자기
의견이 있으면 주저없이 입을 열었다. 한국을 비롯한 중국, 일본 학생들은 처음에는 꿀 먹은 벙어리처럼
다른 학생들이 말하는 것을 지켜보는(?) 경우가 많다. 아마도 주눅이 들어서 그런 것이겠지만, 동양과
서양의 다른 문화 탓도 있는 것 같다. 나도 처음에는 이들의 토론에 끼어들기 위해 열심히 노력했지만,
쉽지 않았다. 무엇보다 영국 학생들처럼 빠르게 말하기 어려웠고, 발음에 적응이 안된 탓인지 실전 영
어가 부족한 탓인지 생각보다 잘 들리지가 않았다. 뉴스를 듣거나 IELTS 시험을 볼 때는 그래도 잘 들
린다고 생각했는데, 뉴스처럼 또박또박 말하는 학생들은 거의 없었다. 처음엔 좌절했지만 지금은 그나
마 무슨 얘기를 하는지는 알아들을 정도가 되었다.
무엇보다 중요한 논문의 경우, 12,000~15,000단어를 요구한다. 이 과정은 기본적으로 주제 선정부터
개요작성, Research skill workshop까지 가을학기부터 봄학기 여름학기 전반에 걸쳐 꾸준히 진행된다.
특히 지도교수가 선정되는 봄학기부터는 본격적인 논문 작성 과정에 들어간다고 보면 된다. 지도교수
와의 1대1 면담을 통해 주제부터 개요, 글쓰기 첨삭까지 이뤄지는데 개인지도 식으로 꼼꼼히 진행되는
점이 마음에 드는 점이다. 본인이 원하는 주제를 선정해 실행 가능한 방식의 Research를 할 수 있도록
지속적으로 독려해주는 부분이 인상적인 부분이다.
그럼에도 마지막 논문 작업은 상당한 진통 과정이 따르는 것 같다. 1년 만에 석사과정을 마무리하겠다
고 선택한 길인만큼 끝까지 무사히 마쳤으면 하는 바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