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의 자동차보험 가입, 그리고 긴급출동서비스
숙박을 안 해도 되는 거리라면 잉글랜드(웨일즈나 스코틀랜드 등은 제외) 내에선 차를 타고 이동해도 된다는 영국 정부의 발표 며칠 뒤, 드디어 차를 몰고 집을 나섰다. 목적지는 셰익스피어의 생가와 그가 다니던 학교가 있는 곳으로 유명한 잉글랜드 중부의 스트래드 어폰 에이본, 런던에서 차로 2시간 정도의 거리에 있는 작은 소도시이다. 해도 길어졌으니 무리가 되더라도 모처럼 집을 떠나 잠시 둘러보고 저녁에 돌아올 계획이었다.
4시 반쯤 도착해 도심을 대략 둘러본 뒤 저녁 7시쯤, 도심에서 좀 떨어진 위치에 자리한 셰익스피어의 부인 앤 해서웨이의 생가에 도착했다. 입구는 막혀있고 출구만 열려 있는 도시 외곽의 주차장은 울창한 나무들 때문에 해가 남았는데도 좀 어두웠다. 주차장엔 차가 단 한 대도 없었고 인적도 드물었지만 봉쇄조치가 시행되고 있고 저녁이라 그러려니 생각했다. 어정쩡한 정부의 조치처럼 이 곳 주차장도 다른 곳들처럼 형식적으로 대충 입구만 막아놨을 것이라고 생각하며 출구를 통해 주차장으로 진입하는데 순간 뻐버벅하는 섬뜩한 소리가 들렸다. 차에서 내려보니 타이어가 납작해진 채로 차가 주저앉아 있었다. 출구 방향, 그러니까 반대방향으로 차가 진입하면 타이어를 찢어버리는 진입 방지장치를 못보고 들어갔다가 이를 밟은 타이어가 만신창이가 된 것이었다. 말 그대로 눈 앞이 캄캄했다.
서둘러 인근 타이어 가게를 검색했지만 이미 모두 문을 닫은 뒤였다. 결국 가입한 보험회사의 긴급출동서비스를 받기 위해 여기저기 전화를 했지만 한국과는 달리 좀처럼 연결이 되지 않았다. 게다가 외진 곳이라 인터넷이 끊겨서 이메일로 받아둔 보험 증서를 찾느라 갖은 애를 써야 했다. 30 여분 만에 겨우 담당자와 연락이 닿았다. 그는 스페어타이어와 공구들이 차에 없다면 당장 방법이 없으니 일단 런던까지 차를 견인해야 한다고 했다. 비용은 480 파운드, 80만원 정도라고 했다. 더 큰 문제는 견인차에 사람이 탈 수 없으니 그 시간에 가족들이 알아서 런던까지 돌아와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 시간에, 그것도 코로나로 봉쇄된 상황에서 잉글랜드 중부에서 런던까지 대중교통을 통해 돌아간다는 것은 도저히 불가능한 일이었다. 보통 때 같으면 호텔에서 1박을 하고 다음날 차를 고치면 될 일이지만, 코로나 때문에 숙박시설은 문을 닫은 상황이었다.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주변 호텔들에 전화를 했지만 7월 4일에나 문을 연다는 대답들만 돌아왔다. 아이들을 데리고 숲 속 주차장의 펑크 난 작은 차 안에서 밤을 지샐 생각을 하니 암담했지만 다른 방법이 없었다. 집에서 싸온 바나나며 물이 차에 있는 것이 그나마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그 때, 긴급출동서비스 담당자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묵을 수 있는 호텔을 찾았다는 것이었다. 방법을 찾은 뒤 다시 전화하겠다며 전화를 끊을 때만 하더라도 의례적인 말일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30분쯤 뒤 호텔을 찾았다며 전화를 걸어온 것이었다. 30분쯤 걸어 도착한 호텔은 알고 보니 의료진 등 핵심인력(key worker)이나 우리 같은 비상 상황에 처한 사람들만을 위해 특별히 문을 열어둔 지정된 호텔이었다. 우리의 난처한 상황이 예외적으로 호텔을 사용할 수 있는 조건이 됐던 것이다. 보험사 담당자는 호텔 측에 우리의 상황을 설명해 공원 대신 침대에서 하룻밤을 지낼 수 있게 해줬고, 사고 내용을 인계해둘 테니 아침에 견인차를 불러 차를 수리하라고 일러주고는 전화를 끊었다.
내가 가입한 자동차 보험은 인터넷을 통해 온라인으로 가입한 다이렉트 보험이었다. 영국과 유럽에서 긴급출동 서비스를 받을 수 있는 조건으로 가입했는데 780파운드, 120만원 정도를 보험료로 냈다. 한인보험에 가입하면 가격이 훨씬 비싸다고 해서 구글링을 해가며 상당한 시간을 들여 가입했었다. 보험회사 홈페이지에서 묻는 조건들이나 용어들이 워낙 생소해서 일일이 용어들을 검색해 법률 용어 등을 이해해야 했다. 연간 주행거리며 주차장이 실내 인지 실외인지 등 세세한 조건들을 기입하고 결제하면 이메일로 보험증서를 보내준다. 비용을 줄이기 위해 우편으로 보험증서조차 보내지 않았었다.
그런데 보험사 측에서 이메일로 25파운드(4만원 정도)를 환급해 주겠다고 연락을 해왔다. 며칠 뒤엔 실제로 계좌에 돈이 입금됐다. 영국 정부의 봉쇄조치로 당분간 차량을 운행하지 못했으니 모든 가입자들에게 보험금 일부를 환불해 준다는 것이었다.
아무도 없는 공원에 차를 세워둔 것이 영 마음에 걸려서 아침 7시 반쯤 견인차를 불러서 인근의 타이어 수리점으로 가서 찢어진 타이어 1개와 낡은 타이어 1개를 교체했다. 그리고 며칠 뒤, 차를 되팔기 위해 청소를 하다가 차 트렁크의 바닥을 들어올릴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트렁크 바닥을 들어올렸다. 트렁크 바닥 아래에는 비상용 타이어와 타이어 교체용 공구들이 한 번도 쓰지 않은 양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