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 생활을 하면서 경찰서, 국회, 정부 부처 등을 주로 출입했다보니 영어 쓸 일이 거의 없었고, 안 그래도 좋아하지 않았던 영어 공부를 바쁘다는 핑계를 대며 멀리 했습니다. 그러다 이번에 미국 연수를 준비하면서 회사 입사 후 16년 만에 처음으로 토익 시험을 봤습니다. 정상 업무를 하면서 단기간에 토익 점수를 대학생 시절 언론사 입사 준비하던 때 수준으로 끌어올려야 했기에 마음고생이 심했습니다. 그래서 이 참에 연수를 계기로 ‘평생의 숙제’ 같은 영어와 조금이나마 가까워지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연수 경험이 있는 언론사 동료들의 이야기대로 미국 연수가 곧 영어 실력 향상을 의미하는 건 아니었습니다. 영어 쓸 일이 가장 많은 시기는 듣던 대로 집구하고 자동차를 사고 은행 계좌를 열고 전기 회사에 서비스를 신청해야 하는 첫 달 뿐이었습니다. 이후엔 첫 달만큼 영어 쓸 일이 확연히 줄어들었습니다. 특히 영어로 장시간 ‘말할’ 기회를 만드는 일은 갈수록 드물게 됩니다. 그렇기에 미국에 살고 있음에도 영어에 자주 노출되려면 영어를 쓸 환경을 만들기 위한 노력이 필요했습니다.
이미 연수를 다녀간 언론계 동료들과 지인들의 경우를 보면, 미국인에게 한국어 가르치기, 대학 수업 청강, 싱크탱크 세미나 참석 등 다양한 방법을 활용하고 있었습니다. 저는 연수 기간 1년 동안에는 적어도 무언가에 얽매이지 않고 지내고 싶었기에 비영리기관에서 한국어를 가르치는 일이나 대학 수업을 청강하는 일은 고민 끝에 선택지에서 제외했습니다.
대신 부담 없이 다닐 수 있는 ESOL(English for Speakers of Other Languages) 겨울 코스를 수강했습니다. 그리고 공영 라디오 채널 하나를 골라서 시간 날 때마다 꾸준히 들으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혹시라도 비슷한 고민을 할 미래의 연수생들이 있다면 도움이 되길 바라며 제 경험을 소개합니다.

ESOL 수업 듣기
저는 1월부터 3월까지 약 10주 과정으로 진행되는 ESOL 수업을 수강하고 있습니다. 페어팩스(fairfax) 카운티 교육청 산하 평생교육기관에서 진행되는 수업입니다. ESOL 수업은 봄, 여름, 가을, 겨울로 나눠서 1년에 4번의 코스로 진행됩니다.
ESOL 수업을 들으려면 미리 정해진 날짜에 수업을 들으려는 장소를 찾아가 레벨 테스트를 거쳐야 합니다. 1시간여에 걸쳐 읽기, 말하기, 쓰기 시험을 보고, 그 자리에서 어떤 레벨의 수업에 등록하면 되는지 결과를 곧바로 알려줍니다. Beginning, Intermediate, Advanced 3단계가 있고 단계마다 low/high로 다시 구분됩니다.
매주 이틀간 저녁에 2시간30분씩 진행되는 수업을 들을 수도 있고, 매주 월~금 5차례에 걸쳐 오전에 3시간씩 진행되는 수업을 들을 수도 있습니다. 저는 주5회 오전 9시부터 낮 12시까지 진행되는 수업을 듣고 있는데, 수업료는 10주 코스에 330달러 정도입니다. 주 2회 저녁 7시부터 9시30분까지 진행되는 수업은 수강료가 165달러입니다.
제가 배정된 반에는 총 13명의 친구들이 있는데, 멕시코, 페루, 볼리비아, 엘살바도르, 터키, 시리아, 예맨, 스페인, 우크라이나 출신입니다. 미국인과 결혼해서 미국에 살게 됐거나, 배우자가 미국에서 근무하게 되면서 미국에서 잠시 살고 있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대부분 영어 말하기 실력이 수준급이고 이디엄도 자유자재로 활용하는 친구들이라 토론할 때 감탄하며 듣고 있을 때가 많습니다.
선생님은 세계 각국 대사관에서 20여 년간 근무하면서 한국을 비롯해 무려 8개국에서 살았던 경험이 있는 분입니다. 정치 외교 현안에 대한 이해가 뛰어나고 각국 미 대사관에서 근무하면서 언론 담당을 해본 경험도 있는 분을 운 좋게 만났습니다.
그 덕분에 수업 시간에 커리큘럼에 얽매이지 않고 트럼프 행정부의 이민자 정책, USAID 폐지 등 미국 내에서 논쟁거리인 여러 현안에 대해 자유롭게 의견을 교환하며 토론하기도 합니다. 그럴 때마다 중동 문제나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종전 협상에 관해 중동 국가, 우크라이나 출신인 친구들의 이야기를 직접 들을 수 있는 점이 흥미진진합니다.
ESOL 수업에서는 미국의 각종 기념일을 다뤄서 Groundhog day, Valentine‘s day, Presidents’ day, black history month 등에 대한 이해도 높아졌습니다. 미국인들이 흥미진진하게 시청하는 ‘슈퍼볼(Super bowl)’도 수업의 한 주제였고, 덕분에 외국인 친구들과 어느 팀이 이길지 내기를 한 뒤 미식축구 경기와 광고, 중간 공연까지 재미있게 챙겨보기도 했습니다.

ESOL 수업을 신청하게 된 계기는 게을러지기 쉬운 겨울 동안, 매일 아침 정해진 시간에 일어나서 하루 12시간을 좀 더 짜임새 있게 쓰기 위한 루틴을 만들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런데 막상 수업을 들으면서 생각지도 못한 세계 각국 출신의 귀한 친구들까지 얻게 되었습니다.
ESOL 수업은 독해, 문법에 강한 한국인들의 경우 ‘High advanced’ 클래스에 배정받더라도 다 아는 내용을 다룬다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당연히 대학 강의를 듣는 것 같이 밀도 있는 수업도 아닙니다. 하지만 하루를 짜임새 있게 보내고 미국에 사는 세계 각국 외국인 친구들을 사귀고 캐주얼한 영어 대화를 매일 이어갈 수 있다는 점에서 분명 유용한 것 같습니다.
라디오 활용하기
영어 뉴스 듣는 시간을 늘리는 데 활용하기 좋은 수단으로 미국의 공영 라디오 채널인 ‘NPR(National Public Radio)’을 ESOL 선생님에게 추천받았습니다. 이후 자동차의 FM 라디오 채널 주파수를 88.5로 바꾸고 운전할 때마다 NPR 방송을 들으려 노력하고 있습니다. 라디오 채널에서는 미국 내 현안에 대해 전문가를 섭외해 진행자가 인터뷰를 하기도 하고, 미국을 비롯한 세계 각국 뉴스를 라운드업해서 들려주기도 합니다.

휴대전화에 NPR 앱을 깔아두고 집에서 요리를 하는 등 자투리 시간이 날 때 뉴스를 틀어놓으려 노력하고 있기도 합니다. 뉴스를 듣다가 관심 있는 기사가 있으면 앱에서 영문 스크립트를 찾아볼 수 있어서 유용합니다.
라디오를 알람으로 활용할 수도 있습니다. 저는 매일 아침 7시30분에 휴대전화 시계 알람 대신 NPR 뉴스가 흘러나오도록 설정해 뒀는데, 잠결에 영어 뉴스가 귀에 잘 들어올 리는 없지만 적어도 ‘내가 지금 미국에 있구나’라는 사실을 인지하며(?) 하루를 시작하게 해 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