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옐로스톤 곰에서 플로리다 악어까지 – 미국 여행 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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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의 1년 미국 연수는 여행으로 시작해서 여행으로 끝납니다. 지난해 7월 말 미국에 온 직후 미국 현지 여행사의 패키지 상품으로 동부와 캐나다를 다니며 연수가 시작됐음을 실감했습니다. 그리고 귀국을 앞둔 지금 막 2주간의 서부 자동차 여행을 마치고 돌아왔네요.

여행은 연수에 있어 중요한 부분입니다. 미국이라는 나라는 여행객을 위한 시스템이 워낙 잘 돼있어 비행기를 타든, 자동차를 몰든 즐거운 경험을 하게 될 것입니다. 거기에 준비와 정보가 뒷받침된다면 여행의 즐거움이 말 그대로 2배 이상 될 수 있습니다.

가장으로서 식구들을 데리고 여행지에 도착해서 멍한 낭패감을 볼 때가 종종 있었습니다. 땅덩어리가 워낙 크고 정보는 하나도 없는데다 말도 서투르니 뭘 해야 할지 모르는 거죠. 여기가 명승지라는데 도대체 어디 가서 뭘 보라는 거냐 하는 난감함입니다. 가족들은 ‘대체 알기나 하고 여기를 데려 온 거냐’하는 표정으로 바라봅니다. 저의 암담함을 조금이라도 덜 느끼셨으면 하는 마음에서 여행 체험기를 간단히 정리해봅니다.

1. 패키지 여행

뉴욕, 워싱턴을 비롯해 캐나다 퀘벡, 토론토 등지를 돌아보는 7박 8일짜리 상품을 이용했습니다. 7월말 미국에 도착해서 아이들 학교가 시작하는 8월말까지 비는 시간을 활용하려는 취지입니다. 현지 사정도 모르는 상태에서 여행 계획을 짜기가 어려울 것 같아 한국에서 미리 미국에 있는 한인 여행사를 접촉해 계획을 확정했습니다.

짧은 시간에 많은 명소를 돌아보는 데는 패키지 여행 만한 것이 없습니다. 개인적으로 다니며 같은 것을 보려면 적어도 2배의 시간이 필요할 것입니다. 그러다 보니 새벽부터 일어나서 저녁 늦게까지 차를 타고 다니는 강행군입니다.

가장에게는 여행 일정 등을 짜야 하는 부담이 없어 편리한 측면도 있습니다. 특히 미국 주유소의 다양한 용도 등 향후 여행에 필요한 노하우를 습득하는 데도 도움이 됩니다. 적지 않은 비용과 수박 겉핥기식의 아쉬움은 감수해야 합니다.

2. 플로리다 디즈니월드

– 놀이기구 평가
아이가 있는 가족이라면 대부분 플로리다를 한번은 다녀올 것입니다. 디즈니월드는 필수코스겠지요. 4개 파크로 이뤄진 디즈니월드 역시 워낙 방대해서 아무 준비 없이 가면 멍합니다. 거기는 놀이기구와 쇼가 주 종목이니까 우리 아이들이 내린 평가를 소개합니다. 제한된 시간에 부지런히 봐야 하는 분들에게 도움이 될 것입니다.

*13살 아들
매직 킹덤: 스페이스 마운틴, 스플래시 마운틴
할리우드 스튜디오: 타워 오브 테러, 록 앤 롤러코스터, 자동차 쇼, 판타스믹 쇼
엡콧: 미션 스페이스, 테스트 트랙, 소어링
애니멀 킹덤: 마운틴 에베레스트

*11살 딸
매직 킹덤: 불꽃놀이
할리우드 스튜디오: 타워 오브 테러
엡콧: 테스트 트랙, 소어링
애니멀 킹덤: 마운틴 에베레스트

파크별로는 아이들 둘 다 할리우드 스튜디오를 제일 좋아했고 엡콧이 가장 별로였다고 합니다.
참고로 저는 소어링과 판타스믹 쇼가 가장 좋았습니다. 중학생 아이는 소어링이 그 정도로 재밌지는 않다고 합니다. 할리우드 스튜디오의 자동차 스턴트 쇼도 볼만했습니다. 타워 오브 테러, 테스트 트랙도 스릴 있습니다.

무슨 놀이기구를 이리 시시콜콜 소개하나 싶으실 텐데 막상 가보시면 그 이유를 아실 것입니다.

-패스트 패스와 프론트 오브 더 라인
참고로 디즈니월드에는 패스트 패스라는 시스템으로 인기 놀이기구의 이용 편의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안 가본 분들은 이용법을 걱정하더군요. 막상 가서 한번만 사용해보면 금방 익숙해집니다. 인기가 많은 놀이기구 앞에 가면 패스트패스 기계들이 줄지어 있습니다. 거기다 입장권을 넣으면 패스트패스 라는 티켓이 나옵니다. 그 티켓에는 이 표로 놀이기구를 이용할 수 있는 시간이 써있습니다. ‘1시 30분-2시 30분’ 이런 식입니다. 그때까지 다른 데 가서 줄 서서 타다가 그 시간에 그 놀이기구로 오면 됩니다. 때론 패스트패스 기계에도 줄을 좀 서고, 적혀진 시간에 가도 약간은 기다릴 수 있지만 그냥 줄 서는 것과는 비교가 안됩니다. 가령 줄 서면 2시간 걸리는 놀이기구를 10분 정도 기다려서 타는 것입니다.

가실 파크를 정하시면, 그곳의 놀이기구 중 패스트패스가 있는 놀이 기구 하나를 찍어서 공원에 들어가자마자 그 놀이기구 있는 데로 먼저 가세요. 그래서 패스트 패스를 한번 끊어 보시면 그 다음부터는 쉽게 이용하실 겁니다. 참고로 패스트 패스를 여기저기 끊을 순 없습니다. 하나 끊어놓으면 일정 시간까지는 다음 패스트 패스를 못 받습니다. 추가로 받을 수 있는 시간은 패스트패스에 보면 써있습니다. 패스트패스는 공짜입니다.

패스트패스도 놀이기구 인기도에 따라 상황이 다릅니다. 한가한 놀이기구의 패스트패스를 끊으면 별로 득이 안될 수도 있지요. 반면 인기 놀이기구는 패스트패스가 금방 동나 버립니다. 그러니 먼저 그런 것들의 패스트패스를 끊는 게 유리하겠지요.

제 기억에 파크별로 가장 인기 있었던 놀이기구는 다음과 같습니다.

매직킹덤 : 스페이스 마운틴
애니멀 킹덤 : 마운틴 에베레스트
엡콧 : 소어링, 테스트 트랙
할리우드 : 토이스토리, 록앤롤러코스터

LA에 있는 유니버설 스튜디오를 가보니 ‘프론트 오브 더 라인’이라는 약간 다른 시스템을 운영하더군요. 이는 돈을 더 낸 사람들을 줄의 앞쪽으로 보내주는 식입니다. 돈 주고 사는 패스트 패스라고 할까요. 패스트 패스와 달리 이용시간에 제한이 없기 때문에 훨씬 더 편리하게 사용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값이 많이 비쌉니다. 입장권을 살 때 프론트 오브 더 라인 티켓으로 사면 됩니다.

패스트 패스와 프론트 오브 더 라인 모두 이 티켓을 가진 사람들을 위한 전용 입구가 있습니다. 놀이기구에서 다른 사람과 함께 줄 서지 마시고 전용 입구로 들어가세요.

-그 외 플로리다에서 저희가 갔던 곳을 짧게 평하자면,
* 씨월드: 샤무 쇼(범고래쇼)를 가족 모두 좋아함. 아이들은 씨월드도 좋아했지만 디즈니 월드를 더 좋아함.
* 아쿠아티카: 캐리비안 베이와 비슷한데 규모는 더 작은 듯. 물이 깨끗하고 사람이 적어서 괜찮음.
가족 모두 그런대로 만족.
* 케네디 우주센터: 아이들이 좋아하지 않았습니다. 의미 부여를 해보려 노력해봤지만 시큰둥했습니다.
* 키 웨스트: 키 웨스트 자체는 다들 그저 그렇게 생각. 그러나 키웨스트로 이어지는 바닷길 드라이브는
어른들에게 좋았습니다. 아이들은 바닷길 도중 해변에서 한 물놀이를 그럭저럭 재미있어
했습니다.
* 에버글레이즈 공원: 악어 보는 에어 보트 투어를 가족 모두 좋아했습니다. 다섯 마리 정도를 만난 것
같습니다. 차량 투어를 한 분들은 더 많은 악어를 봤다고 하더군요.
* 아울렛 쇼핑: 아울렛이 여러 군데고 브랜드도 다양합니다. 그러나 플로리다에서의 출혈이 너무 커
그냥 기분만 냈습니다.

3. 크루즈

크루즈를 호화여행으로들 생각합니다. 그러나 미국에서 크루즈는 비싸지 않습니다. 총 여행비를 따져보면 일반 여행과 비슷합니다. 5일짜리 카리브해 크루즈를 체험한 뒤 내린 결론은 “크루즈 여행은 기항지보다는 배가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크루즈 여행은 배 안에서 즐기는 시간과 배가 항구에 정박하는 동안 육지를 구경하는 기항지 관광으로 나눌 수 있는데 그 비중은 8대 2 정도였습니다. 즉 배 안에서 보내는 시간이 훨씬 중요한 거죠. 배가 클수록 시설도 다양하고 재미있습니다. 선실 수준에 따라 가격 차이가 많이 나는데 배 안에서 누릴 수 있는 혜택은 비슷했습니다. 저에게 다시 가라고 한다면 가장 큰 배에 가장 싼 선실을 택할 것입니다.

크루즈는 가장에게 아주 좋습니다. 24시간 무료로 먹을 수 있고 24시간 놀 수 있으니 가장에게 계획이 필요 없습니다. 그냥 알아서들 놀다가 선실로 돌아오라고 하면 됩니다. 크루즈는 그냥 24시간 열려있는 리조트 타운을 바다에 띄워놓은 것이라고 생각하면 됩니다.

참고로 저녁은 가급적 공식 만찬 식당에서 드시고 웨이터가 추천하는 요리를 택하시길 권합니다.

4. 옐로스톤 야생 곰

콜로라도 록키산에서 그랜드 캐년, 라스베이거스, LA, 샌프란시스코를 거쳐 옐로스톤, 러시모어산의 대통령 얼굴 조각까지 이어진 2주간의 서부여행의 압권은 옐로스톤이었습니다. 미국 여행의 마지막 행선지를 옐로스톤으로 정한 게 천만다행이다 싶을 정도로 근사했습니다. 거길 먼저 갔다면 다른 데가 시시했을 것 같았습니다.

옐로스톤은 풍광도 아름답지만 야생동물과의 조우가 가장 흥미로웠습니다. 그 중 압권은 곰이지요. 평소 쥐만 봐도 기겁을 하며 달아나는 아내가 코끼리만한 불곰을 향해 캠코더를 들이밀고 다가서는 모습에서 곰의 마력을 실감했습니다.

그런데 옐로스톤에 가서 며칠을 지냈는데도 곰을 못 봤다는 사람들도 꽤 된다고 합니다. 제가 체득한 한가지 방법은 ‘동물을 보지 말고 사람을 보라’는 것입니다. 야생동물을 본 적이 없는 우리가 그들을 찾아내기란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미국인들은 그런 경험이 많아서인지 잘 찾는 것 같더군요. 동물을 직접 찾기보다는 차를 타고 다니며 미국인들의 이상 행동을 관찰하는 것이 훨씬 효율적이었습니다. 제가 생각해본 미국인들의 행동 양태와 동물 출현의 상관 관계는 다음과 같습니다.

* 도로변에 차량 2,3대가 서 있고 사람들이 비교적 한가한 표정으로 무언가를 촬영한다
: 엘크나 사슴이 풀을 뜯고 있다.
* 차량 5,6대가 서 있고 사람들이 진지한 표정으로 카메라를 들이댄다
: 버펄로가 보이거나 무스가 물속의 수초를 먹고 있다.
* 길 양쪽으로 차들이 늘어서고 수십 명이 흥분한 얼굴로 허둥댄다
: 곰이다. 이런 걸 ‘베어 잼’이라고 부른다. 레인저가 보인다면 거의 100% 곰이 나타난 거다.

곰을 관찰할 때는 축구장 크기 만큼 거리를 둬야 한다는 게 공원 측의 설명이지만 대부분 미국인들은 곰하고 어깨동무라도 할 태세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