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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바마 실종사건? 트럼프 집권 3주 관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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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 55세. 몸무게 175파운드. 키 6피트1.25인치. 검은 머리 갈색 눈.
큼직한 흰 집(White House)에서 걸어나가는 모습을 마지막으로 목격. 농구와 건강보험을 좋아함.
미스터 프레지던트라는 호칭에 반응을 보임.’


지난 10일 미국 캘리포니아주 샌프란시스코 7번가. 거리 곳곳에 이런 전단이 나붙었다. 실종으로 시작
하지만 오바마 재임시절이 벌써 그립다(missing)는 정치 비판이다. 오른쪽 아래엔 트럼프 얼굴 위로
‘내 대통령이 아냐’라는 깨알같은 저항 메시지까지 담았다.



몇 걸음 떼자 이번엔 한 여성 인권운동가가 “미국의 파시즘을 거부한다!”라는 구호를 외치며 지나갔다.
그 뒤로 反트럼프 피켓을 다리에 걸치고 시위를 준비중인 시민 예닐곱명도 보였다. 트럼프 행정부의
행정명령 효력정지 회복 요청을 기각한 후 뉴스의 중심에 선 제9연방항소법원 주변 풍경이다.



反트럼프 성지(聖地)된 제9연방항소법원


아수라장에서 비상구 불빛이라도 발견한 느낌이었다. 전날 저녁 제9항소법원이 트럼프 행정부의 행정
명령 효력정지 항고를 기각했다는 NBC 나이트라인 앵커 레스터 홀트의 멘트는 짜릿하기까지 했다.
집권 3주만에 무려 10개의 행정명령을 내놓으며 독주해온 트럼프에게 제대로 한방 먹였으니 말이다.
트럼프는 그동안 행정부 수반이 아니라 미국이라는 거대기업 CEO로 취임한 듯 ‘사장’명령을 쏟아냈다.


행정명령은 대통령의 고유권한이지만 의회를 경유할 겨를이 없을 정도의 급박하거나 대통령이 이니
셔티브를 쥘 필요가 있는 꼭 필요한 경우에 사용된다. 적어도 오바마는 그랬다. 오바마는 재임 8년간
모두 277개의 행정명령을 발부했다. 연평균 35개. 트럼프는 3주만에 10개를 넘어섰으니 지금 추세대로
라면 아마 역대 가장 많은 행정명령을 난사한 대통령이 될 전망이다.


그의 트위터에는 자신이 쟁취한 권력에 대한 오만한 인식이 묻어난다. 지방 임명직에 불과한 ‘소위
판사(so-called judge)’라는 자가 전국적인 지지를 받고 선출된 자신의 명령에 제동을 걸 수 있다는
걸 납득하지 못한다.


필자가 속한 UC버클리 교정에서 벌어진 극우매체 브레이트바트 편집자 밀로 야노풀로스 강연 저지
소동 관련해서도 “연방기금 중단?”을 운운하며 협박도 서슴지 않는다. 브레이트바트는 대선기간 자신
의 극우행보에 힘을 실었던 매체다.


수익 저하를 이유로 딸 이반카의 패션 브랜드를 퇴출 조치한 유명 백화점 노드스트롬을 향해 대놓고
“내 딸을 부당하게 취급했다”며 분노의 트윗을 날리기도 했다. 압권은 백악관 참모까지 언론에 나서
서 ”이반카 브랜드 옷을 사주라“고 그 나름의 사태 해법을 내놓는 장면이었다. 공직과 사익간 이해
충돌 금지조항은 차치하고라도 트럼프에게서 스마트폰을 빼앗을만한 당찬 참모 하나 없나 싶었다.
인터넷과 SNS 선거운동의 최대 수혜자였던 오바마는 취임 초기 블랙베리를 끼고 산다는 참모들의
지적에 자신의 트위터 계정을 백악관 대변인실에 넘겨줬다.


이런 와중에 트럼프의 행정명령 내용을 조목조목 뜯어 “근거없다”며 구겨버린 제9항소법원으로 미국
인들의 시선이 쏠리는 건 당연했다.




제9항소법원 출입구에서 만난 한 이탈리아계 중년 여성은 “이 동네에서 27년간 살았지만 이 법원에
직접 들어와 본 건 이번이 처음”이라며 법원 대리석이 이탈리아산이라는 작은 팩트에도 자랑스러워
했다.



‘제9 서커스?’ 미국 헌법정신을 지켜내는 리걸 마인드


서부 해안에 자리잡은 제9항소법원의 기각 결정에 동부 워싱턴D.C. 정가의 반응은 “예상했다”였다.
동성결혼금지법 위헌 판결 등 그간 진보적인 판결로 주목받은 이력 탓이다. 실제 현재 공석인 4명을
제외한 전체 25명의 판사 중 무려 18명이 민주당 출신 대통령이 지명한 판사다.


때문에 공화당 측에선 제9항소법원을 두고 ‘살짝 맛이 간(nutty)’, 항소법원인 서킷(Circuit)이
아니라 ‘서커스(Circus)’라며 노골적으로 폄훼한다. 애초 계획적으로 제9항소법원의 관할지역인
워싱턴 미네소타주에서 소를 제기한 게 아니냐는 음모론까지 제기했다.


이번 트럼프 행정명령을 심리한 리처드 클리프턴, 월리엄 캔비, 미쉘 프리드랜드 3명의 판사는 각각
부시, 카터, 오바마 대통령이 지명한 인물이다. 분류하자면 공화당 1명에 민주당 2명. 과연 지명 당
사자의 정치적 색깔이 판사의 법리를 좌우하는 걸까. 이틀 뒤 이들 판사 3인 중 캔비 판사의 합의부
재판 일정을 확인하고 제9항소법원을 다시 찾아 방청했다.


올해 여든여섯. 백발의 캔비 판사 앞엔 스테인레스 물병 하나와 종이컵 그리고 서류 더미가 가지런
히 놓여 있었다. 손을 턱에 괸 채 정부를 상대로 한 4건의 송사에서 양측 변호인의 말을 진중하게
경청하다 흐름에서 벗어나는 주장만 날카롭게 잡아냈다. “그건 이번 소송을 제기한 이유와 다르지
않나? 왜 갑자기 그 진술이 중요해진건가.” 속사포처럼 쏟아지는 그를 포함한 합의부 판사 3명의
질문 공세에 법정 한복판에 놓인 포디움으로 나서는 변호인들이 딱해보일 정도였다.


캔비 판사는 1988년 미 육군의 게이 병사 입영금지 조치가 헌법정신이 반한다는 판결과 2000년 장애
인 골퍼 케이시 마틴이 PGA 투어에서 골프카트를 타고다닐 수 있도록 관련 규정을 고치도록 판시했
었다. 유튜브를 통해 생중계된 트럼프 여행제한 조치 공개심리에서 정부측 대리인을 당황케 만든 그
의 송곳 질문은 이거였다,


(캔비 판사)  “대통령이 행정명령을 통해 그냥 어떤 무슬림도 들어올 수 없다고 할 수 있나?”
(트럼프 행정부 대리인)  “이번 행정명령의 내용은 그게 아닙니다.”
(캔비) “나도 안다. 행정명령으로 그렇게 할 수도 있는 건가? 그 경우 누구도 이의제기할 수 없는
         건가?”


이민 문제를 넘어 트럼프의 행정명령 통치방식의 위험성에 대한 사법부의 경고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