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영국에 온 지도 두 달 반이 되어간다. 이제 이곳 생활도 차츰 익숙해지고 있다. 이곳에서의 일상도 사뭇 바쁘게 돌아간다. 일어나면 아이 밥을 하고, 도시락을 싼다. 아이 준비시켜 학교에 보내고, 이후엔 최대한 열심히 집을 치운다. 설거지, 빨래, 청소기 돌리기, 화장실 청소 등 집안 정리를 하면 이미 오전의 절반이 훌쩍 흘러간다. 이후엔 곳곳에서 열리는 세미나에 참석해야 한다. 내가 몸담은 COMPAS 센터 (The University of Oxford’s Centre on Migration, Policy and Society) 세미나는 빠질 수 없고, 정치학과를 중심으로 열리는 여러 세미나들에도 참석하게 된다. 세마나를 따라가려면 이와 관련된 공부를 어느 정도는 해야 한다. 당초 계획했던 박사 논문도 계속 진전시켜야 한다. 사이에 틈내서 운동을 하고, 영어 공부도 조금씩 한다. 그러다 보면 어느덧 저녁 시간. 저녁에는 아이 밥을 챙겨주고 집에서 한숨 돌리거나, 저녁 바이블 스터디를 가거나, 사뭇 흥미로워 보이는 행사나 학술회에 참석한다. 이렇게 하다보면 하루가 참 빡빡하게 돌아간다. 옥스퍼드에는 많은 기회들이 있다. 크고 작은 공연이 많이 열린다. 각 학과마다 계속 좋은 세미나와 학술회를 열고 어서 오라고 손짓한다. 이런 저런 모임들도 많다. 이 속에서 옥스퍼드의 이방인들 만난다. 옥스퍼드 내부자들, 그리고 외부자들 모두를 만나본다.
#동아리가 400개라니!
10월은 영국의 대학들이 공식적으로 학기를 시작하는 달이다. 입학식부터, 신입생 환영회까지 다양한 행사들이 많이 열린다. 그 가운데 가장 흥미로웠던 것은 옥스퍼드 오픈데이였다. 옥스퍼드는 사뭇 폐쇄적인 시스템을 유지하고 있어서, 각 콜리지들은 콜리지 멤버가 아니면 이용하는데 많은 제약을 둔다. 구성원이 아닌 사람은 출입 자제를 어렵게 하고, 구경하려면 소정의 비용을 받는 곳도 많다. 그런데 이날만큼은 외부 사람들에게도 문을 활짝 열어 대학 구경을 시켜준다. 일종의 대학교 입학설명회인 셈인데, 전 세계에서 온 학생들과 부모님들로 매우 붐볐다. 각 콜리지마다 투어를 마련해 각 콜리지의 특징을 설명해주고, 입학하려면 어떻게 해야하는지, 들어와서는 어떤 식으로 대학 생활을 하게 되는지 알려줬다.
다른 유럽 국가들은 물론이고, 미국, 인도, 중국 등지에서 온 사람들이 눈을 반짝이며 이 설명을 듣고 있었다. 나도 이날만큼은 작정하고 여러 개의 콜리지들을 돌며 이 도시를 파악하려 노력했다. 콜리지가 뭘까? 석사를 영국에서 했음에도 불구하고 내내 잘 이해가 안 됐는데, 이번에 이곳에 있으면서 더 정확하게 콜리지에 대해서 알게 됐다. 콜리지는 한마디로 먹이고 쟤우고 기도하고 공부하게 만드는 곳이다. 각 콜리지마다 식당을 두고, (먹인다.) 기숙사를 둔다. (쟤운다.) 그리고 채플을 마련하고 (기도하게 한다.) 도서관과 각 학과별 튜터를 채용해 둔다. (가르친다.) 콜리지 별로 선의의 경쟁을 하며 학생들을 키워나가는 독특한 시스템이 옥스퍼드와 케임브리지대학교였구나. 여기와서야 깨닫는다. 케임브리지에서 석사 과정을 할 때 소속된 콜리지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콜리지는 ‘기숙사 마련해주고 밥도 먹을 수 있는 곳’ 정도라고 생각했던 내가 뭘 몰라도 한참 몰랐구나 깨닫게 된다. 옥스브리지만의 전통적인 교육방식인데, 학문과 삶과 종교를 하나로 연계해 학생들을 교육시키는 방식이 사뭇 독특하다. 잘 맞는 사람에게는 더 없이 좋은 교육 방식이고, 그렇지 않은 사람에게는 좀 답답하게 느껴질 수도 있을 것 같다.
학기 시작 이후에는 ‘fresher’s fair’에 갔다. 우리로 치자면 신입생 동아리 설명회 겸 환영회 같은 곳이었다. 나는 석박사생이 아닌 방문연구원 신분이지만, 또 다른 한편으로는 박사 지망생이기도 하니 여러 동아리들을 알아두면 재밌을 것 같았다. 이곳의 대학본부 격에 속하는 examination hall에서 동아리 설명회를 하는데, 그 규모와 종류에 정말 놀랐다. 동아리가 모두 4백여 개. 온갖 종류의 이름을 붙여서 끼리끼리 모이고 있었다. 각 인종별로 동아리가 있는 것은 물론이고, (한인 학생회는 당연하고, 독일 학생회, 일본 학생회, 인도 학생회 등등 인종별 나라별로 다 모임이 있었다.) 종교별로, 취미별로, 학문별로 별의별 동아리를 다 마련해놓고 있었다. 가장 인상적였던 것은 ‘모든 신을 섬긴다’던 동아리. 심오한 표정의 인도계 학생이 모든 생명 가진 것들의 가장 큰 평화를 위해서 함께 기도하자며 내게 브로셔를 내밀던 순간을 잊을 수 없다. 나보다 한참 어린 친구들이니 그 모습을 보면 좀 귀엽기도 하고, 무슨 이런 것까지 동아리를 만드나 좀 우습기도 했다. 나는 대학원 학생회는 기본적으로 가입했고, 기독교 학생회, 그리고 전부터 관심이 갔던 옥스퍼드 독일 society에도 가입했다. 학부를 졸업한 지 한참됐는데, 다시금 대학의 열정을 가까이에서 느낄 수 있는 것은 참 행복한 일이었다.
# 옥스퍼드의 이방인들.
연구 주제가 이민과 이를 둘러싼 정치적인 역학을 둘러보는 것이다 보니, 관련된 분야의 사람들을 더 많이 만나게 된다. 내 연구 주제를 듣고 한 영국인 친구가 asylum welcome이라는 단체를 소개해 줬다. 이 단체는 옥스퍼드에 온 난민들을 위해 주거와 교육 등 다양한 지원을 하고 있었다. 한번 쯤은 만나봐야겠다는 생각에 이들이 한 주에 한 번씩 무료로 점심을 제공한다는 곳에 찾아가 봤다. 영국 정부는 난민이 들어오면 각 지역별로 배분한다. 당연히 옥스퍼드에 오는 난민들도 있다. 중동 국가 사람들이 가장 많았고, 아프리카에서 온 난민들도 몇몇 눈에 띄었다. 함께 점심을 먹으며 여기까지 온 사연들을 들었다. 한국에서 난민들을 만났을 때와는 달리, 처음부터 영국을 목표로 하고 건너온 사람들이 많았다. 비교적 수월하게 난민 지위를 획득하고, 여기서도 굉장히 안정적으로 주거와 교육을 보장받고 있는 듯 보였다. 단체 대표, 그리고 함께 일하는 봉사자들과 이야기를 나눠봤다. 영국의 이민 정책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냐고 물었더니, 그 전 보수당 정부가 너무 ‘wicked’ 했단다. 노동당이 정권을 잡았으니 조금은 더 달라지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이런 사람들만 보면, 앞으로 영국의 이민 정책은 더 관용적이고 포용적으로 변할 것 같이 느껴진다. 하지만 실상 미디어를 통해서 만나는 영국 사회, 가까이에서 만나는 영국 지인들의 애기를 들으면 이들 속에 깊이 자리한 이민자들에 대한 공포를 더 많이 만나게 된다. 하루는 일요일 아침 bbc 방송을 보는데 한 보수당 인사가 나와서 이민자들로 인해서 영국 사회의 기반이 붕괴되고 있다고 강하게 말해서 깜짝 놀란 적이 있다. 여기 와서 옥스퍼드뉴커머스클럽(옥스퍼드에 새로 온 사람들의 정착을 돕기 위해 옥스퍼드 대학에서 만든 단체다.) 에도 종종 나가는 데, 그곳에 참여하는 영국인 친구들은 대부분 마음이 열려있는 사람들임에도 불구하고, 이민자들에 대해 얘기를 나눌 때면 모순된 생각을 말해서 놀란 적이 많다.
“나는 영국이 더 관용적여져야 한다고 생각해.” 이렇게 말한 뒤에 “그런데 런던 봐. 너무 더럽고 혼란스럽지 않아? 이민자들을 받아들이고 난 뒤부터 그래. 우리는 가장 영국적인 것을 잃어가고 있어.” 이렇게 덧붙이는 식이다. 이 모순이 의아해서 여기서 내 지도교수님으로 있는 COMPAS 센터의 Rob에게 물어봤더니, 영국은 “Britishness”를 잃어가는 것에 대한 큰 두려움이 있단다. 이민자들이 들어와서 본인들이 이제까지 유지해 온 전통을 잃을까봐, 그리고 복지 비용 지출이 과도하게 늘어날까봐. 두려워하는 것이다. 유럽 각국에서 극우정당이 큰 인기이고, 이곳에서도 영국 개혁당과 (reform uk) 나이젤 패라지라는 극우 정치인이 내내 인기다. 겉으로는 관용을 말하고 있기는 하지만, 사실 이들의 마음 깊은 곳에서는 이민자들에 대한 큰 반감과 혐오가 있는 것은 아닐까 생각하게 된다. 사람마다 다를 것이니 일반화할 수는 없다. 하지만 다양성을 추구하고, 관용으로 다른 인류를 품는다는 것은 단순히 인류애에 호소할 수만은 없는 일이라는 생각이 분명히 든다. 이곳에 있는 내내 고민해야 할 문제일 것이다.
#쥐 소동
이렇게 다소 바쁜 일상 속, 나를 가장 괴롭히고 가장 근심하게 만드는 일이 하나 있다. 그것은 바로 죽은 쥐다. 내가 구한 집은 16년 된 아파트, 여기서는 정말 새 집에 속한다. 수백년된 집들이 즐비한데, 16년이라니. 여기서는 완전 새집이다. 시티 센터에서 가깝고, 집도 신축에 속해서 가격도 옥스퍼드 안에서는 가장 비싼 축에 속한다. ‘비싼 만큼 살기 좋겠지.’ 이렇게만 생각했지 이곳에서 죽은 쥐를 보게 될 것이라고는 상상도 못 했다.
내가 사는 아파트는 150세대 정도가 모인 아파트 단지인데, 출입구가 8개, 한 출입구를 20여 세대가 이용한다. 문제는 우리 집 바로 아래층 이웃이 고양이를 키우고 있고, 그 고양이가 집 바깥을 돌아다니는 것을 좋아한다는 점이다. 집 바로 건너편에는 공동묘지가 있고, 거기엔 꽤나 큰 풀숲이 존재하고 있다. 건물은 새것이고, 관리도 잘 되는 편이기에 건물에서 쥐가 나올 가능성은 매우 낮다. 하지만 공동묘지 풀숲에는 간혹 쥐가 있는 것 같다. 고양이는 거기서 쥐를 잡아 우리 가족 포함, 20여 세대가 이용하는 공동 현관문 앞에 던져놓는다. 여기 와서 6주 만에 벌써 네 마리의 죽은 쥐를 현관 앞에서 발견했다. 기절초풍할 노릇이 아닐 수 없었다. 이웃들을 붙잡고 물었다. 괜찮냐고. “너무 싫지만 어쩔 수 없지, 고양이를 쫓아낼 수도 없고, 적당히 피해 다녀야지 뭐.”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그들은 눈살을 찌푸리긴 하지만, 어쨌든 죽은 쥐를 적당히 피해 다닌다.
쥐를 극도로 싫어하는 나로서는 정말 미칠 노릇이었다. 고양이 주인을 만나 담판을 지었다. 고양이 좀 밖에 안 돌아다니게 할 수는 없을까. 그녀는 단칼에 거절했다. 그 고양이는 계속 바깥을 돌아다녀야 살 수 있단다. 벌써 10년 동안 그렇게 살아서 못 막는단다. 공동구역을 관리하는 사무소에 전화했다. 본인들은 청소를 너무 깨끗하게 하고 있기에 더 할 일이 없단다. 거의 일주일을 쥐가 등장하는 악몽에 시달리고, 모든 잎사귀는 다 죽은 쥐로 보이는 지경인데다 현관문을 나서기도 무서워지기에 심각하게 이사도 고려해 봤다. 하지만 대체 지금 어떻게 또 이사를 한단 말인가. 결론은 단 하나! 내가 트라우마를 극복하고 강해지는 것 밖에 없었다.
이 고민을 여기서 만난 친구들과 나눴다. 너무 괴로웠기 때문이다. 그런데 두 명의 친구가 내 마음을 울리는 대답을 내놨다. 중국에서 온 법학과 교환학생 유첸. 내가 정말 좋아하는 친구인데, 이런 조언을 했다. “은혜. 나는 인생의 모든 불운과 행운에는 평균값이 있다고 생각해. 어떤 나쁜 일이 있으면 다른 나쁜 일을 그 일이 막아내고 있는 거지. 너가 쥐를 만난 건 여기서 생길 다른 나쁜 일을 막고 있는 거야. 너는 신을 믿잖아. 너의 신에게 기도해 봐. 그리고 너가 유지하고 있는 행운을 생각해 봐. 쥐가 좀 덜 두렵지 않을까” 27살 밖에 안 됐는데 얼마나 어른스럽게 말하는 지, 이 말에 큰 위로를 받았다. 한쪽의 나쁜 일이 다른 나쁜 일을 막고 있다… 그런데 아무리 그렇게 마음을 추스르려 해도 나의 공포는 쉽사리 잦아들지 않았다.
옆집에 살고 있는 이스라엘 아저씨 eran에게도 고민을 말했다. 너무 무서워서 집 밖에 나가기가 어렵다고. 너도 같은 출입문 사용하는 데 괜찮냐고 물었더니 이렇게 말했다. “죽은 쥐가 왜 무서워. 사람이 이렇게 많이 죽어가는 세상에. 나는 사람 죽는 거 이외에 다른 어떤 것도 무섭지가 않은데.” eran의 가족들은 지금도 이스라엘에 살고 있다. 그는 가족들이 부디 무사하게 살아있게 해달라고 날마다 기도한다고 한다. 그러니 죽은 쥐가 두려울쏘냐. “그래도 더럽잖아. 너 어두울 때 혹시라도 죽은 쥐 밟아서 그 신발 신은 채로 집에 들어간다고 생각해 봐. 너무 더럽지 않아?” 그랬더니 eran이 말했다. “더러운 사람 아직 제대로 못 봤구나. 사람이 쥐보다 더 더러운 경우가 많아. 세상에서 제일 더러운 게 인간이야.”
두 친구의 말을 듣고 나서 나는 조금이나마 안정을 찾았다. 내 두려움은 사실 실체가 없는 가장된 것일 수 있다. 진정하자. 용기를 가지자.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죽은 쥐를 또 발견하게 될까봐 너무 두렵다. 그래도 마음을 가다듬는다. 세상을 보는 다른 방식을 여기서 만난 친구 두 명이 내게 가르쳐준 셈이다.
#노력하는 중입니다.
종종 아이와 함께 얘기한다. 인종과 종교와 출신 국가. 이 모든 것을 내려두고 어떤 사람을 있는 대로 바라보는 것이 가능할까? 이 질문을 서로에게 할 때마다 우리 둘 다 쉽사리 답을 할 수가 없었다. 이상적인 대답을 알고 있지만, 그게 쉽지 않기 때문이다. 이슬람이라서, 흑인이라서, 가난한 나라에서 와서, 전쟁을 일으킨 국가의 국민이라서.. 그래서 저 사람이 그런 것은 아닐까? 나도 모르게 생각하게 될 때마다 반성하고 또 반성한다. 편견을 극복하기 쉽지 않지만, 극복하려고 노력한다. 잘하지 않아도 열심히 하려고 하는 것들이 있다. 영어가 완벽하지 않아도 친구들과 성의껏 영어로 많은 얘기를 하려 노력한다. 맛이 별로 없어도 아이에게 여러 요리를 해주려고 한다. 운동을 못하고 별로 안 좋아하지만 운동을 정기적으로 하려고 노력한다. 쥐에 대한 공포를 극복하기 어렵지만, 극복하려 노력한다. 그런 것처럼 편견을 버리기 쉽지 않아도 버리려고 노력하고 또 노력한다. 그건 자동적으로 되는 게 아니라 노력과 연습이 필요한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사뭇 바쁘게 돌아가는 이곳에서의 일상 속에서 노력의 중요성을 배운다. 노력하는 중입니다. 이렇게 또 연수 과정의 하루가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