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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스퍼드 정착기 – 비자 신청, 집 구하기… 그리고 옥스퍼드와 친해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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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8월 출국. 이제 출국한 지도 한 달여. 옥스퍼드 생활에도 조금씩 익숙해지고 있다. 지난 몇 달이 어떻게 흘러갔는지 모를 정도로 숨 가쁘게 시간이 흘러왔다. 연수를 준비하거나 연수 중인 선후배님들에게, 혹은 영국의 생활이 궁금한 분들에게 어떤 글이 도움이 될까. 어떤 부분을 기록으로 남겨야 하는 걸까. 생각하며 지난 몇 달을 곱씹어 본다.

# 연수 이전

2007년 기자 생활을 시작했다. 다들 그러하듯이, 나도 어떤 기자로 나이 들어가야 할까 고민이 많았고, 지금도 많다. 원래 공부 욕심은 있었다. 기자 생활을 하는 내내 스스로 앎이 부족하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다. 학부에서 사회학을 전공했고, 그 공부를 좀 더 이어가고 싶어 기자생활 10년차, 2016년에 석사과정에 지원했다. 한국보다는 외국에서 석사를 꼬옥 해보고 싶었다. 오랜 시간 휴직하는 것이 쉽지 않으니 1년 안에 석사를 마칠 수 있는 영국만을 목표로 두었다. 늘 꿈꿔왔던 옥스퍼드대학교와 케임브리지대학교 사회학과에 지원했다. 운이 좋게도 케임브리지 사회학과에서 오퍼를 받았다. 2016년에서 2017년. 치열하지만 아름다웠던 1년을 케임브리지에서 보냈다. 한국으로 돌아가 복직했다. 다시 학업을 위해 외국에 나갈 수 있으리라고 생각지는 않았다. 2020년 정치부에서 국회와 청와대를 출입했다. 그때 정치를 학문적인 관점에서 제대로 이해하면, 더 나은 기자가 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치부 이후의 부서는 9시 뉴스편집부였다. 오후 2시 출근, 밤 10시 퇴근. 오전 시간이 내게 허락되었다. 정치학과 박사과정에 지원했고, 편집부에 있는 동안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 다시, 영국으로

수료 이후 시사기획 창에 왔다. 45분 다큐멘터리를 만드는 경험은 처음이었다. 짧은 리포트를 만들고 다음 리포트로 넘어가는 호흡과는 전혀 달랐다. 한 주제를 몇 달씩 생각하고, 그것과 관련된 사람들을 수십명씩 만나는 일상. 일과 여가가 구분이 안 되기 시작했다. 눈 뜨면서부터 잠들기까지, 공휴일에도 그 주제만 생각하게 됐다. 생각을 멈추기가 쉽지 않았다. 취재부서에서 일과 학업을 병행하기란 사실상 불가능했다. 조직의 구성원이자 한 명의 기자로, 당면한 취재와 제작을 열심히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학업도 어떻게 해서든 꼭 끝마치고 싶었다. 시간이 필요했다. 해외연수라는 기회가 있구나. 그때부터 자세히 살펴보기 시작했다. 내 관심사, 박사 논문 주제, 그리고 기자로서 하고 있는 현재의 고민을 담을 수 있는 해외에 있는 유수의 기관들을 뒤졌다. 케임브리지의 정치외교학과 방문연구원, 옥스퍼드 이주민센터 방문연구원, 하버드 케네디스쿨에 있는 쇼렌스테인 센터 (니먼 펠로우쉽과는 다른 언론인, 정치인들을 위한 전문 과정이다.) 등이 적당할 것으로 보였다. 세 기관에 방문연구원으로 지원했다. 요구하는 서류들이 꽤 많았다. 자기소개서, 학업계획서, 추천서 등을 요구했다. 케임브리지는 떨어지고, 하버드는 시기가 맞지 않다며 처음부터 난색을 표했다. 옥스퍼드에서는 답이 왔다. 줌으로 면접을 보자고 요청했고, 면접 과정을 거친 뒤에 방문연구원으로 받아들여졌다. 지난해 겨울, 옥스퍼드에서 온 공식 합격 문서를 손에 쥔 뒤에 올해 초 해외연수의 문을 두드렸다. 그리고 참 감사하게도, 기회가 주어졌다. 그렇게 7년 만에 다시 영국으로 오게 됐다.

옥스퍼드 크라이스트 처치 컬리지- 옥스퍼드에 있는 40여개의 칼리지 가운데 가장 화려한 콜리지다. 해리포터 영화 촬영지로도 유명해서 늘 관광객이 많은 편이다.

# 비자 신청, 집 구하기, 아이 학교 등록, 그리고 정착

올해 상반기는 일을 하면서 영국 생활을 조금씩 준비하느라 정말 정신없이 흘러갔다. 합격 이후 제일 먼저 영국 비자 문제부터 알아봤다. 기자가 영국에 가는 데 방문연구원 신분으로 비자를 받기 위해서는 (academic visitor 비자) 여러 입증 절차가 필요했다. 대부분 방문연구원비자는 안식년으로 오는 교수 등 전문적인 학자들이 받기 때문에, 기자들이 방문연구원 비자를 신청하면 좀 의아해한다. 때문에, 본인이 소속된 언론사가 해당 분야에서 왜 이런 연구를 더 필요로 하는지 입증하는 소정의 서류가 필요했다. 그걸 입증하고, 이외 소득증명과 재직증명서 등등 기본적인 서류를 준비하면 비자 신청을 할 수 있다. 준비 과정이 꽤 번거롭고 복잡하기에, 노하우가 잘 갖춰진 대행사를 이용하는 것도 방법인 듯 하다. 나의 경우엔 경험 삼아 스스로 해보자 마음먹고 혼자 준비했는데, 큰 에너지가 들기는 했다.

이후엔 집을 구했다. 집을 구할 때도 선택의 연속이었다. 우선 한국에서 집을 구하느냐, 와서 집을 구하느냐 선택을 해야했다. 각각의 선택에 장단점이 분명했다. 한국에서 집을 구하면 정착의 시간을 줄일 수 있었다. 아이 개학은 9월 초인데 8월에 입국해서 집을 구하면, 집을 구하느라 아이 학교 가는 시간이 미뤄질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었다. (영국은 집 주소가 있어야 공립 학교 지원이 가능하다.) 또 입국해서 에어비엔비를 하는 비용도 줄일 수 있고, 대부분의 집은 1년 계약이기에 출국할 때 한달치 월세를 버려야 할 위험도 줄일 수 있다. 대신 명확한 단점이 있었다. 내가 직접 집을 볼 수 없다는 점. 본인이 직접 집을 안 보고 누군가를 통해서, 그게 현지 지인이든 대행업체든 간에, 다른 누군가가 집을 대신 봐준다는 건 어느 정도의 불확실성이 있을 수밖에 없다. 위성지도를 이용해서 해당 거리를 아무리 검색해도 실제 본 것만 하랴. 페이스톡으로 집을 둘러봐도 어찌 그 집을 정확히 알 수 있으랴. 게다가 여기는 외국인에게는 집을 렌트하는 것을 꺼리는 집주인이 많다. 실물도 안 본 외국인 세입자가 다른 누군가를 통해서 집을 보고 계약한다고 하면 가격 협상의 여지도 거의 없다. 그만큼 더 높은 가격으로 더 안 좋은 컨디션의 집을 구할 가능성이 높아지는 것이다. 현지에 들어와서 집을 구하면 위에 언급한 장단점이 정확히 거꾸로 작동한다. 더 저렴하게 내 맘에 드는 집을 구할 수 있지만, 연수 생활 앞단의 불안정함을 어느 정도 감수해야 한다. 어떤 게 더 나은 선택일까. 입국해서 살펴보니, 여기 들어와서 집을 구했다면 지금 집보다 더 좋은 컨디션의 집을 더 싸게 구할 수 있었을 것이라는 생각은 확실히 든다. 어떤 부동산이 양질인지도 보이고, 어느 입지가 더 나은 입지인지도 정확하게 눈에 들어온다. 이걸 몰라서 그렇게 한국에서 애를 태웠다니! 좀 억울한 마음도 든다. 어쨌든 나의 경우엔 여러 고민을 하다가 한국에서 집을 구하는 것을 선택했다, 7월에 많은 우여곡절을 거친 끝에 영국 집을 미리 계약하고 아이 학교도 미리 배정받고 입국했다. 향후 연수를 준비하는 분들이 내게 이 부분에 대해서 조언을 구한다면, 정말 답하기 쉽지 않은 문제라는 생각이 든다. 이건 정말 개인 성향에 따라서 선택할 문제인 것 같다. 어떤 선택이든 기회비용은 존재한다.

이후엔 공과금 세팅, 그리고 물건 사기가 이어진다. 인간이 살아가는 데는 생각보다 많은 물건이 필요하다!!!!!! 침구류, 식기, 빨래 건조대부터 하다못해 쓰레기통이며 스탠드에 이르기까지. 빈집이 사람 사는 꼴을 갖추려면 정말 많은 물건들이 필요했다. 그렇게 두 팔 걷어붙이고 물건 주문, 짐 정리, 청소를 반복하며 며칠 간의 고된 육체노동을 하고 나니, 점점 집이 자리가 잡히기 시작했다. 아이는 영어가 많이 부족한 편이기에 걱정했지만, 예상보다는 학교에 잘 적응하고 나도 나름대로는 이곳에 잘 적응하고 있는 듯 하다.

옥스퍼드의 공립 학교는 대부분 그리 규모가 크지 않다. 아들이 다니는 학교도 한 학년에 반이 하나 밖에 없다. 다만 구성원의 배경은 정말 다양하다. 전 세계 각지에서 온 연구원들의 자녀들부터 옥스퍼드에 터전을 잡고 오래 살고 있는 로컬에 이르기까지. 동양인, 흑인, 백인이 고루 섞여 함께 공부한다.

# 영국 그리고 옥스퍼드.

다시 영국에 왔다고 하면 사람들은 종종 물어본다. “너 정말 영국 좋아하나봐.!”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 우선 사람들이 가장 많이 연수지로 선택하고, 영국과의 비교자로 여기는 미국. 나는 미국에 ‘제대로’ 가 본 적이 없다. 하와이에 여행간 것이 미국 땅을 밟아본 기억의 전부다. 그러니 그 나라에 비해서 여기가 더 좋다고 말할 수는 없다. 다만, 나는 영국만이 가진 독특한 문화와 분위기를 사랑한다. 이 사회는 간직하고 싶고, 지키고 싶어하는 것이 많은 사회다. 오랫동안 지켜온 것. 그들이 지켜온 문화와 전통, 정치 체제, 오랜 민주주의의 역사, 왕가. 그리고 옥스퍼드 케임브리지 같이 수백년을 이어온 학교들까지. 이 사회는 빠르게 변화하는 현대 사회 속에서 그 속도감을 달리하는 느낌이다. 우리가 이걸 어떻게 지켜가고 있는데! 미국과 우리는 다르지! 하는 문화적인 고고함이 사회 곳곳에서 발견된다. 나는 그들이 가진 이런 가치를 존중한다. 때로 비합리적인 것 같이 느껴질 때도 있지만, 이런 나라도 존재해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사회 곳곳에서 마주하는 영국 특유의 자부심, 그리고 전통에 대한 깊은 사랑을 만날 때면 배울 점이 많은 사회라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케임브리지와 옥스퍼드만이 가진 인터내셔널한 분위기, 학구적인 분위기는 정말 매력적이다. 전 세계에서 온 공부 잘하고, 똑똑한 학생, 연구원들이 참 많다. 그들과 다양한 분야에 대해 얘기 나누다 보면 내 시야가 확연히 더 확장되는 느낌이다. 좋은 강연들, 세미나들도 넘쳐난다. 본인이 챙겨서 공부하기에 따라 얼마든지 좋은 공부를 더 많이 할 수 있다. 고색창연한 레드클리프 카메라 도서관 안에서 노트북을 펴놓고 공부하거나, 아름다운 콜리지 식당에서 밥을 먹는 기분도 사뭇 신기하고 좋다. 물론 나는 이곳에서 이방인이고 잠깐 지내다 갈 것이니 이 사회를 속속들이 다 들여다볼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여기 있는 동안 좀더 이 사회와 가까워지고, 이 곳을 더 깊이 이해하고 싶다.

옥스퍼드 레드클리프 도서관이다. 옥스퍼드의 상징물처럼 여겨지는 도서관인데, 내부는 열람실 겸 도서관으로 쓰이고 있다. 도서관 바깥에는 관광객이 가득하지만, 안에서는 학생들이 공부에 열중하고 있다.

# 욕심과 내려놓음 사이에서

옥스퍼드는 수십개의 콜리지들로 구성된 도시다. 때문에 여러 삶들이 콜리지들을 중심으로 이뤄지는데 나는 방문연구원 신분이다보니 콜리지에 소속되지는 않았다. 참 아쉬운 부분이다. 여기는 도서관이 정말 많다. 각 콜리지별 도서관이 있고, 단과대별로도 도서관이 따로 있다. 이에 더해서 대학본부에서 운영하는 보들리안 도서관들이 따로 있다. 나는 주로 보들리안 도서관에 포함된 도서관에 가서 공부하고, 내가 소속된 센터에 가서 세미나를 듣고 다른 사람들과 교류한다. 내가 소속된 이주연구센터 바로 뒤로는 옥스퍼드 로이터재단이 있다. 로이터재단 펠로우들이 거기서 공부하는 데, 한 주에 한 번씩 무료 세미나를 개방한다. 그곳 세미나는 되도록 빠지지 않고 참석할 예정이다. 세계 각지에서 온 기자들은 어떤 고민들을 하고 있을까. 궁금하고 알고 싶다. 어떻게 하면 조금 더 현지 사회와 가까워질 수 있을 것인가. 요즘 내가 많이 하는 고민이다. 케임브리지에서 석사를 하는 동안엔 케임브리지 대학교 기독교학생회에 들어간 것이 정말 큰 도움이 되었다. 세계 각지에서 온 크리스천들을 만나면서, 같은 신을 보고도 이렇게 다르게 해석할 수 있구나 알게 됐다. 물론 학업이나 생활적인 부분에서도 소소한 도움들을 많이 받았다. 하지만, 여기서는 석박사생이 아니고 방문연구원 신분이기에 나의 위치가 사뭇 애매하게 느껴진다. 또 이번에는 종교적인 모임을 넘어서서, 좀 더 현지 로컬과 친해지고 싶은 마음이 크기에, 어떤 기회가 있을까 계속 눈여겨 보게 된다. 지난주에는 옥스퍼드대학교에 새로운 사람들끼리 모여서 교류하는 옥스퍼드뉴커머스 클럽에 나갔다. 다들 새로 정착하면서 낯설어하는 처지라 어떤 모임보다 친근하고 따뜻하게 서로를 감싸안아주는 느낌이었다. 어떤 연구기관이든 잘 알아보면 새로운 환경을 버거워 하는 사람, 정착하느라 어리바리한 사람들을 도와주는 모임들은 분명히 있는 듯 하다. 그걸 얼마나 활용하느냐 하는 것은 각자 몫에 달린 것 같다. 학업을 잘 이어가면서도 현지 문화를 더 이해하며 더 큰 경험치 쌓기,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육아!! 그 사이에서 잘 균형을 유지하는 것이 이곳 생활의 관건이리라는 생각이 든다.

옥스퍼드에는 운하가 있다. 운하길을 따라 학생들이 조깅을 하고, 주민들이 나와서 쉬는 모습을 종종 본다. 물론 이곳에서의 일상도 안을 들여다보면 사뭇 치열하게 돌아가지만, 이런 모습을 보면 참 평화로워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