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2일은 미국의 ‘그라운드호그 데이(groundhog day)’입니다. 해마다 이맘때면 펜실베이니아주의 작은 마을 펑서터니(Punxsutawney)에 수천여명의 사람이 모여듭니다. 봄이 언제 올지 예측준다고 알려진 특별한(?) 땅다람쥐인 ‘필(Phil)’을 보기 위해서죠. 20파운드 남짓하는 작은 땅다람쥐인 필이 이날 자신의 그림자를 보면 미국에 이른 봄이 찾아온다네요. 만약 필이 그림자를 보지 못한다면 겨울 날씨가 6주간 더 이어진다고 합니다. 한국에선 생소하지만 미국인들이 130년 넘게 기념해온 전통이죠. 미국 주요 방송사들은 필이 점치는 순간을 생중계합니다. 미국의 학생들은 이날을 즈음해 학교에서 관련 동화책을 읽고 땅두더쥐 만들기를 합니다.
자, 그럼 2024년 펑수토니 필은 어떤 예측을 내놨을까요?
수많은 사람들이 “필!”의 이름을 연호하는 가운데 무대에 오른 필. 필은 두개의 두루마리 종이 앞에서 코를 킁킁대며 이리저리 고개를 돌렸습니다. 이윽고 필은 결정을 내렸고(사실 필은 고개만 갸웃했지만) 사회자는 필이 고른 두루마리 종이를 펼쳐 읽어내립니다. 그리고 즐겁게 외칩니다. “이른 봄이 옵니다!(An early spring is on the way!)”
올해 필의 예측은 현재까지는 적중한 듯 보입니다. 지난달 미국의 평균 기온은 화씨 41.1도(섭씨 5.5도)로 역사상 세번째 더운 2월로 기록됐습니다. 20세기 평균보다 7.2도나 높아진 수치죠. 제가 사는 시카고는 2월 말 화씨 70도(섭씨 21도)의 초봄 날씨가 찾아오기도 했습니다.
필의 적중률은 얼마나 될까요. 필은 1887년부터 봄을 예측해왔지만, 그때부터 미국 전국의 기온 기록을 추적하는건 쉽지 않습니다. 미 국립해양대기국(NOAA)은 필이 얼마나 정확한지 확인하기 위해 미국 전국 기온을 필의 예측과 비교했습니다. 그 결과 필은 지난 10년 동안 30%의 적중률을 달성했습니다. 50%에도 미치지 못하다니 과학적인 근거에 기반한 전통은 아닌셈이죠. 그랬거나 말았거나 미국인들에게 그라운드호그 데이는 봄을 알리는 즐거운 축제입니다.
제가 사는 시카고를 비롯 겨울 기온이 혹독한 미국의 중부, 동부 사람들은 따스한 봄을 고대하며 필의 예측에 더욱 주목하게 되는 듯합니다.
NOAA는 필의 낮은 적중률을 두둔하며 “국가 전체, 특히 미국처럼 지역마다 기후가 다양한 국가에서 봄이 언제 올지 예측하는 것은 쉽지 않다”라고 밝혔습니다. 일기예보는 NOAA 데이터를 봐달라면서요. 전통은 전통으로 즐기자는 얘기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