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복 1500km 나홀로 운전 도전기
미국 생활에서 자동차는 필수라고 하지요. 한국에서 주말 출퇴근 때나 가끔씩 자가용을 이용했던 저로선 낯선 땅에서 운전에 도전하기가 겁이 났는데요. 미국에 도착하자마자 중고차부터 사서 끌고 다니다보니 지난 10월 나 홀로 장거리 운전에도 도전도 하게 됐습니다.
제가 사는 버지니아에서 캐나다령 나이아가라까지는 편도 750km, 쉬지 않고 달렸을 때 7시간 30분이 걸립니다. 처음엔 엄두가 나지 않았지만 도전해보니 운전자만 약간의 희생(?)을 감수한다면 동행자들(저의 경우 어머니와 딸이었습니다)에게는 가장 편리한 여행 방법이 아닌가 싶습니다. 기름만 넣으면 되니 비행기나 기차보다 훨씬 저렴합니다. 운전을 하다보면 주 경계를 넘나들며 미국의 다양한 풍경을 볼 수 있다는 이점도 있습니다. 버지니아에서 메릴랜드, 펜실베이니아, 뉴욕 주를 거쳐 나이아가라까지 가는 여정 자체도 흥미로웠습니다.
사진 설명 : 육로로 캐나다 국경을 넘을 때의 모습. 사전에 Arrivecan 앱을 설치해 필요한 항목을 입력해놓으면 입국심사가 빨라진다
여행 첫날, 호텔 체크인 시간에 너무 늦지 않기 위해서 아침 6시 정도에 출발했습니다. 집 근처 주유소에 들러 기름을 가득 넣었습니다. 미국 주유소는 대개 휘발유 등급을 3개로 나눠 놓는데요. 평소에는 가장 싼 기름을 넣고 다녔지만 이번에는 가장 높은 등급의 기름을 넣었습니다. 장거리 운전 때는 차에도 좋은 기름을 넣어주라는 주변의 조언을 따랐습니다. 기분 탓인지 차도 좀 더 부드럽게 나가는 것 같더군요. 출발 전날에는 타이어 공기압도 체크하고 공기를 빵빵하게 채웠습니다. 잘 찾아보면 타이어 공기압 체크와 공기 주입을 무료로 할 수 있는 주유소들이 있습니다.
네비게이션은 Waze를 이용했습니다. 도로에 멈춰선 차나 경찰차, 공사 중인 구간, 로드킬된 동물이 있을 경우 실시간으로 알려주는 기능이 있어서 편리합니다. 여담으로 버지니아에서 나이아가라까지 가는 동안 사슴, 토끼, 다람쥐, 새 등등 로드킬된 동물을 20마리 넘게 본 것 같습니다. 거리 단위를 ‘마일’이 아닌 ‘킬로미터’로 설정해둘 수도 있습니다. 다만 인터넷이 안 터지는 지역에서 갑자기 길 안내가 중단되는 아찔한 상황이 있을 수 있으니 미리 구글 오프라인 지도를 다운받아 놓는 것을 추천합니다.
자동차 크루즈 기능도 장거리 운전을 수월하게 해줍니다. 도로별로 제한속도가 조금씩 달라지는데 그때마다 속도만 설정해놓으면 발은 자유로워지고 핸들에만 손을 올리고 있으면 되니 한결 편합니다. 그럼에도 운전을 하다보면 ‘가도 가도 끝이 없다’는 탄식과 한숨이 나옵니다. 미국 고속도로는 스케일이 남달라서 한번 도로에 들어서면 “직진으로 200km 가라”는 네비게이션 안내가 나오기도 하는데 2시간 가까이 동일한 고속도로에서 직진만 해야 하는 상황을 마주하면 아찔합니다.
사진 설명 : 나이아가라에서 만난 무지개
미국 고속도로에는 한국과 같은 휴게소가 따로 없습니다. 운전을 하다보면 주유소와 식당이 표시된 표지판이 보이는데 필요할 때 고속도로에서 빠져나가면 됩니다. 고속도로 주변에서 제일 흔하게 만날 수 있는 식당은 Taco Bell, Chick-fil-A, Mcdonald’s, Wendy’s, Burgerking 같은 프랜차이즈 패스트푸드 음식점들입니다. 주유소나 음식점에 들를 때 화장실에 가고 잠시 바람 쐬며 스트레칭도 해줍니다.
운전 2, 3시간이 지나면 아이가 몸을 비틀며 지루해하고 힘들어하기 시작합니다. 저 같이 어린 아이가 있는 경우, 장거리 운전의 최대 변수는 아이의 컨디션 같습니다. 이때를 위해 준비한 비장의 카드는 유튜브 동영상이었습니다. 아이가 좋아하는 영상을 다운로드 받아놓은 아이패드를 카시트 맞은편에 장착해주었습니다. 아이는 평소 조금만 보라고 잔소리 듣던 영상을 실컷 볼 수 있으니 신나 합니다. 적어도 영상을 보는 동안에는 아이가 투정을 부리지 않아 운전에 온전히 집중할 수 있습니다.
나이아가라까지 가면서 쉰 시간은 도합 1시간 남짓이었던 것 같습니다. 육로로 캐나다 국경을 통과할 때는 마침내 다 왔다는 생각에 안도했습니다. 이틀 후 다시 같은 길을 되돌아 집으로 갈 생각을 하니 막막했지만요. 나이아가라 여행을 마치고 집에 돌아오니 이웃들이 “You made it”이라며 축하(?)해줬습니다. 미국인들에게도 장거리 운전이 쉬운 일만은 아닌가 봅니다. 나이아가라의 웅장한 폭포는 역시 감탄을 자아냈고, 왕복 15시간의 운전도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