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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소심, 오버액션 – 돈 버는 운전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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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장광고 혹은 ‘초의 황제’라는 오명을 뒤집어쓰지 않기 위해 미리 말하자면 내가 소개하는 운전법은 돈을 들어오게 하는 비결이 아니라 불필요한 지출을 막아주는 방법이다. 결과적으로 주머니가 얇아지는 것을 막아주기 때문에 약간 오버해서 이런 표현을 썼다.

미국에서 차를 몰며 지출을 줄이는 방안을 크게 두 가지로 나눠봤다.
첫째는 현지 운전면허를 조속히 취득하는 것이다.
둘째는 ‘범칙금의 덫’을 설치해 놓고 다리 기둥 뒤에 숨어 있는 미국 경찰의 그물망을 벗어나는 방법이다.

운전면허 취득부터 얘기해본다.
한국에서 국제운전면허증을 만들어 미국에 오면 1년 동안 운전을 하고 다니는데 별 문제가 없다. 일부 주에서는 국제운전면허증을 인정하지 않는다고 하지만 내가 사는 미주리주에서 생활하는 데는 아무 지장이 없다. 그러나 현지 운전면허증이 없으면 불편함이 큰 데다 1년에 600 달러 가량의 금전 손실이 생긴다.

국제운전면허증은 일단 사이즈가 크다. 지갑에 안 들어간다. 거기에 한국면허증을 함께 가지고 다녀야 효력이 인정된다고 한다. 또 단순히 운전 자격에 대한 증빙일 뿐 신분에 대한 증명서는 안된다. 따라서 자신의 존재를 입증할 수 있는 여권과 비자를 지니고 다녀야 한다. 그런데 우리가 받는 J-1 비자는 DS-2019라는 서류와 함께 있을 때 완전해 지기 때문에 A4 용지 크기의 DS-2019를 같이 들고 다녀야 한다. DS-2019에는 주한미국대사관에서 찍은 도장이 있고 학교에서 해 준 사인도 있으며 특히 캐나다나 멕시코 같은 곳을 다녀올 때는 꼭 지참해야 할 서류여서 나는 신주단지처럼 떠받드는데 이걸 늘상 갖고 다니면 너덜너덜해져서 마음이 편치 않다. 이 모든 잡다함을 일거에 해결해주는 게 현지 운전면허증이다.

당연한 얘기지만 현지면허증이 있으면 운전에 아무 문제가 없다. 또 거기에 주소 등이 나와 있고 관공서가 여권, 비자, DS-2019 등의 서류를 확인한 뒤 발급해준 증명서이기 때문에 신분증 기능을 한다. 나의 경우 운전면허증을 받고서야 등에 늘 붙어있던 배낭을 떼어낼 수 있었다.

금전 부분은 이렇다. 내가 택한 자동차 보험사는 이 동네에서 제일 싸다고 알려져 있는데 국제면허증으로 가입을 할 경우 현지면허증에 비해 보험료가 훨씬 비싸다. 일단 국제면허증 가격으로 보험을 든 뒤 현지면허시험을 통과하면 잔여 보험기간에 대해 차액을 환급해준다.

따라서 하루라도 빨리 면허를 따면 돌려받는 액수가 커진다. 낡고 값싼 미니밴인데도 6개월 보험료 차액이 300달러가 넘었다. 1년이면 600달러 이상 차이가 난다는 얘기다. 연수생에겐 엄청난 돈이다.

그러니 현지면허를 하루 빨리 취득해야 돈도 절약하고 생활도 편해진다. 한데 면허 취득이 그리 만만치 않다. 앞서 연수를 다녀간 사람들의 글을 읽어보면 한국서 10년 넘게 운전해온 베테랑인데도 주행시험에서 탈락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내가 겪고, 보고, 들은 얘기를 종합하면 대충 운전면허 통과 요령의 윤곽이 잡히는 것 같다.

이곳 면허시험은 3단계다.
1단계는 필기, 2단계는 시력 검사, 3단계는 주행시험이다.
사실 어느 것 하나 얕봐선 안된다.

미주리의 경우 필기시험을 컴퓨터로 보고 즉석에서 합격여부를 판정하는데 한글로 시험을 볼 수 있다. 따라서 사전에 이곳의 법규와 기출문제 등을 훑어보면 어렵지 않게 합격할 수 있다. 기출문제나 법규는 각종 포털사이트에서 ‘미주리주 운전면허’라는 키워드로 검색하면 찾을 수 있다. 다른 주도 비슷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또 현지 면허기관 사이트(www.dor.mo.gov)에 들어가면 상세한 내용을 알 수 있다. 특히 이 사이트에 들어가면 필기시험 뿐 아니라 주행시험에 필요한 내용도 나와 있어 한국에서도 미리 면허시험을 대비할 수 있다.

어쨌든 필기시험은 공부를 해야 한다. 한 가지 유념할 것은 시험 시작 전에 꼭 한글로 시험을 보겠다는 의사표현을 해야 한다. 모 신문사의 K 기자는 이 얘기를 안 하는 바람에 영어로 시험을 봐야 했다.(그럼에도 합격해 주변 사람들을 경악케 했다.)

그 다음이 시력검사인데 이는 모니터 같은 것을 들여다보면서 표지판 등이 화면에 뜨면 그 의미를 말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게 복병이다. 이건 시험관에게 말로 얘기를 해야 하는데 한글이 없다. 따라서 우리에겐 영어시험도 되는 셈이다. 나와 한집에 사는 한 40대 여성은 ‘merge`라는 단어가 생각이 안나 진땀을 흘렸다고 한다. 시력검사에서 떨어졌다는 사람은 못봤지만 애 먹었다는 사람은 여럿이기 때문에 이 역시 대비를 하는 게 마음 편하다.

관건은 주행시험이다. 주행시험은 한번에 붙는 사람이 오히려 적은 것 같다. ‘스톱 사인’ ‘라운드어바웃(roundabout) 통과’처럼 우리에게 낯선 시스템이 도사리는데다 운전 습관에도 차이가 있는 게 주 원인인 것 같다.

또 주행시험에 동승하는 면허시험 경관의 재량권이 절대적이어서 어떤 시험 경관에게 걸리느냐에 따라서도 결과가 확 차이가 나는 듯 싶다.

붙는 사람, 떨어지는 사람, 각각의 해석은 분분한데 다들 정답을 잘 모른다. 나는 이곳서 까다롭다고 소문난 ‘흰머리 여경’한테 걸렸는데도 운 좋게 한번에 붙었다. 그래서 내 요령을 소개해본다.

1년 전에 연수를 와 수많은 사람의 당락을 지켜본 한 공무원의 분석이 결정적 힌트였다. 그의 말은 이랬다. “이상하게 남자들은 첫 시험에 거의 다 떨어지는데 부인들은 한번에 붙는 경우가 많아요.”
‘그래, 아줌마처럼 운전을 해보자!’
몸을 핸들 쪽으로 바짝 당겨 앉고 상당히 조심하는 모습을 보였다. 제한속도보다 5km 정도 느린 속도로 달렸고 교차로를 통과할 때나 신호등을 지날 때도 갑갑할 정도로 안전 운행을 했다. ‘스톱 사인’에선 완전히 멈추고 몇 초 있다 출발했다. 차선을 바꿀 때나 방향을 틀 때 백미러만 확인해선 안되고 직접 고개를 돌려야 한다길래 시험관이 안볼 수 없게끔 머리를 팍팍 돌렸다. “똑바로 후진을 해보라”는 지시를 받았을 때는 앞뒤를 번갈아 보느라 헤드 뱅잉 수준으로 머리를 흔들기도 했다.

이런 ‘왕소심, 오버 액션’ 전법이 먹혔는지 넉넉한 점수로 통과했다. 이런 오버 액션에도 불구하고 그 여경은 “아까 좌회전할 때 한번 고개를 돌려 확인을 안했다”며 2점을 깎았다. 결론적으로 최대한 안전 운전을 하면서, 내가 엄청나게 주변 확인을 하려고 노력한다는 것을 보여주는 게 시험 통과 요령인 것 같다.

다음, 현지 경찰의 단속을 보며 느낀 점이다. 이곳 경찰은 어떻게든 위반을 잡아내서 범칙금을 물리려고 하는 것 같다. 따라서 조금만 방심하면 막대한 범칙금을 이 나라에 헌납하게 되기 십상이다. 여기에 대처하는 요령 역시 ‘왕소심’ 외엔 왕도가 없다는 생각이다.

난생 처음 경찰차의 추적을 받아 가슴이 철렁했던 일부터 소개한다. 이곳에 온 직후에 생긴 사건이다. 현지면허증을 받기 전이다. 뉴욕 여행을 하루 앞두고 필요한 물건이 있어 자정 무렵 아들과 함께 차를 몰고 인근 대형마트로 향했다. 아무 생각 없이 달리다 차를 꺾었는데 갑자기 뒤에서 경광등이 켜지고 사이렌이 울리며 경찰차가 따라붙었다. 주워들은 얘기를 바탕으로 차를 길가에 대고 핸들에 손을 얹고 가만히 앉아있었다. 순간적으로 내가 뭘 잘못했는지 되짚어봤지만 도무지 떠오르지가 않았다. 경찰차는 엄청나게 밝은 서치라이트 같은 것을 뒤에서 한참 동안 내게 비췄다. 기분이 아주 나빴다. 몇십초가 지났을까, 경찰차 문이 열리고 경관이 다가왔다. 나는 운전석 유리창을 내렸다.

“&*$%@#$%.”
내가 영어를 잘 못하긴 하지만 정말 경관이 와서 쏟아내는 말을 전혀 알아들을 수 없었다. 무슨 법률 얘기를 하는 거 같은데 도무지 안 들렸다. 멀뚱멀뚱 쳐다보니까 점차 쉬운 ‘생활 영어’가 나오기 시작했다. 운전면허증, 자동차 보험 등록증 등등 각종 서류를 요구했다.

순간 아찔했다. 집 인근에 있는 마트에 잠깐 들르는 것이라 서류배낭을 안 갖고 나오려 했었던 것이다. 그런데 평소에 한번도 안 그러던 40대 여성이 “가방 안 가져 가냐”며 챙겨주기에 혹시나 하는 마음에 들고 나왔는데 만약 가방을 안 가져왔다면 어떤 일이 벌어졌을지 생각만 해도 끔찍했다. 더군다나 다음날 새벽 비행기를 타도록 예정돼있었는데 신분증이 없다는 이유로 경찰에 붙들려가기라도 했다면 온 가족이 낭패를 봤을 것 아닌가.

가방을 뒤적여 모든 서류를 꺼내주자 경찰은 이를 들고 가 한참 후에야 돌아왔다. 각종 조회를 한 듯 하다. 그러고는 나를 세운 이유를 설명했다.
“당신 차 왼쪽 헤드라이트가 꺼져 있다.”
어이가 없었다. 단지 그 이유로 경광등에 사이렌을 울리며 나를 제지하고 뒤에서 눈부신 서치라이트를 비춰대고 각종 서류를 다 들고 가 조회를 했다는 말인가. 경관이 동승한 아들을 유심히 본 건 안전벨트 착용 여부를 확인하기 위한 행동이었으리라.

“가도 좋다”는 말을 듣고는 기쁜 마음에 “생큐”라고 말하며 돌아왔는데 두고두고 생각할수록 기분이 안좋았다. 꼬투리 하나 잡아서 샅샅이 뒤진 것 같았기 때문이다.
나를 위기에서 건져준 것은 집 앞을 가면서도 국제운전면허와 여권이 든 배낭을 지고 간 ‘왕소심’, 엎어지면 코 닿을 데를 달리면서도 안전벨트를 맨 ‘왕소심’이었던 거 같다.

이후 운전을 하면서 미국 경찰은 ‘왕소심’으로 피할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굳어졌다. 심야에 오가는 차 한대가 안보이는 깜깜한 고속도로를 달리다보면 경광등을 켠채 딱지를 떼고 있는 경찰의 모습을 심심치 않게 본다. 그 암흑 같은 길에서 라이트를 끈 채 숨어 속도위반을 잡고 있는 것이다. 교각 뒤에 경찰차를 숨겨두고 스피드건을 쏘는 모습도 종종 목격된다. 우리 같으면 함정 단속이라고 운전자가 고함을 칠 법도 하지만 미국 운전자들은 그냥 뭐 씹은 표정으로 단속에 응하는 모습이다. 대학 구내에서도 젊은 여성 운전자가 체념한 표정으로 경찰에 붙들려 있는 광경도 심심치 않게 본다. ‘스톱 사인’ 위반 같은 것을 했으리라.

하여간 우리 경찰보다 한결 매정하고 비인간적인 느낌이다. 그 차가운 얼굴과 마주하지 않는 비결은 ‘왕소심’ 운전밖에는 없는 것 같다. 참고로 제한속도를 5마일 초과하는 것까지는 잘 안 잡는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