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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동하는 여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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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동하는 여성

몇 년전 인기를 끈 책, 김혼비님이 쓰신 <우아하고 호쾌한 여자 축구> 책을 읽으면서 당황했던 기억이 있다. 숨차게 뛰어야 하고 땀이 비 오듯 할텐데 어떻게 축구를 할 수 있지? 아니 그보다 애시당초 어떻게 축구를 할 생각을 했지? ‘축구는 남성들의 운동’이라는 편견이 강했던 사람으로서 책을 읽으면서 감동했다.

운동을 멀리 해왔고, 운동이라고 해봐야 요가와 스트레칭이 전부였던 나는 미국 연수 기간 동안 정신 보다는 육체를, 몸을 직접 움직이고 부딪히고, indoor 말고 outdoor형 인간으로 거듭나겠다고 다짐하고 왔다.

스포츠 하는 여성으로 거듭나겠다고 다짐한 와중에 미국의 공원과 운동장, 숲 속에서 마주한 장면 몇가지를 공유해본다.

1. 운동장을 여러 바퀴 뛰고 나서 쉬려는 찰나, 오전 10시 다 되어가는 시간, 백발 할머니 한분이 오신다. 어라? 축구공을 가지고 오셨네? 뒤이어 또다른 나이 지긋해보이시는 중년 여성이 오신다. 점퍼를 벗으니 축구복을 갖춰 입으셨다. 뭘까 궁금했다. 10시 정각이 되니까 백발의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우르르 오셨다. 절반 이상이 할머니들. 대부분 축구화, 축구양말, 머리띠까지 축구 선수로서의 풀세팅을 했다. 매주 금요일마다 동네 공원에서 하는 실버 축구단이었다. 흔들 의자에 앉아 계셔야만 할 것 같은 분들이 움직이신다. 다만, 이 실버 축구는 몇가지 규칙이 있단다. 첫째, 어르신들 건강을 위해 뛰지 않는다. 경보로 공을 몰고 다니신다. 둘째, 머리 보호를 위해 헤딩을 하지 않는다. 이 두가지 원칙만 지키면 나이 들어서도 축구를 할 수 있단다. 멋지다. 할머니 축구. 할머니가 된 나이에도 운동장에 있을 수 있으면 좋겠다.

2. 집 근처에 등산을 하면서 호숫가 풍경까지 볼 수 있는 주립공원이 있다. 매번 쉬운 완만한 코스로만 오갔다. 한번은 어려운 코스가 있는 쪽으로 갈까 말까 망설이고 있었다. 고개를 들어보니 상당히 가파른 코스였다. 혼자서 할 수 있을까 주저하고 있는데 등산 스틱을 양손에 쥐신 할머니 두분이 지나가셨다. 살짝 마음의 충격이 왔다. 환갑은 이미 지나셨을 저 분들도 망설이지 않고 가는데! 가보리라! 운동 초보들은 이럴 때 페이스 조절에 실패한다. 나는 할머니 두분을 제치고 앞서갔다. 쭉쭉 나가다가 결국 숨이 차서 쉴 수 밖에 없었다. 할머니 두분은 이야기를 주거니 받거니 하면서 천천히 가파른 길을 오르셨다. 결국 나중엔 할머니 두 분이 먼저 도착했다. 아. 나도 저 나이 들어서도 등산을 할 수 있는 할머니가 되어야겠다. 그날의 교훈이었다.

3. 또다른 주립공원에서 마주한 장면. 집 근처에 말을 타면서 걷을 수 있는 주립공원이 있다. 도로 표지판에 말이 있길래 관광용 말타기인줄 알았더니 진짜 자기 집에서 말을 실어와 승마를 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이날도 가장 긴 코스를 걷고 있었다. 황금색 풀과 초록으로 우거진 나무들 사이로 구부러진 길에 해가 들면서 저 길 다음에 뭐가 나올지 궁금했다. 그날의 햇빛과 함께 무척 아름답다고 생각해 카메라 버튼을 누르는 순간, 말이 나타났다. 말 안장 위에는 승마용 복장을 갖춘 할머니가 계셨다. 말을 타는 취미 동호회도 아니고 혼자 였다. 할머니 (물론 이모뻘일 지도 모른다)가 때론 나도 무섭다고 느껴지는 주립공원의 깊은 숲속에 혼자서 말을 타고 산책을 하셨다. 나중에 주차장에서 보니 말을 싣고 내리고 다 혼자서 하시고 말이 탄 트레일러를 끌고 혼자서 유유히 주차장을 나가셨다. 미국 할머니 리스펙트!

한국도 점점 여성들이 땀 흘리는 스포츠 영역에 가까워지는 추세이지만, 여성 축구, 여성 등산에 관한 책이 출간된다는 자체가 여전히 여성=스포츠와 거리가 멀다는 반증이다. 어릴 때부터 남녀 구분 없이 축구, 농구를 같이 하는 키즈 클럽이 있는 미국처럼 우리 사회의 여성들도 스포츠에 더욱 가까워졌으면 좋겠다. 일단, 나나 뛰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