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에게 신분증의 대명사는 주민등록증이지만 미국인에게 신분증(photo id)의 대명사는 운전면허증(driver`s license)이다. 그래서, 미국 도착후 나의 첫 과제를 운전면허증 따는 것으로 삼았다. 서울에서 국제면허증을 만들어오기는 했으나 그것은 한달가량의 임시용일 뿐, 그것으로 신분증을 삼을 수는 없다. 내가 알기로는 많은 경우, 한달 이상 미국에 체류하는 자가 국제면허증으로 운전하는 것은 미국 국내법상 허용되지 않는다. 그런 경우 제대로 미국 면허를 따야 한다는 것이다. 운전면허증에는 미국 집 주소가 나와 있으므로, 그것을 바탕으로 지역 재활용센터 출입증, 동네 공립도서관 이용증, 지역 퍼블릭골프장 이용증 등 많은 것을 쉽게 신청할 수 있다.
운전면허증을 관리하는 관청은 DMV (Department of Motor Vehicles)라고 한다. 구글에 `New Jersey DMV`를 검색하였다. 결과는 다음과 같았다. (뉴저지 대신 각자 자기가 사는 주 이름을 넣고 검색하시면 된다.)
사이트를 보면, Online Driver`s Manual이 있다. pdf버전으로 다운로드를 받았다. 그런데 막상 받아보니 10개 챕터 160 페이지 분량이나 된다. 다 읽고 시험공부하듯 외우자니 부담스러웠다. 그래서 주위한국분들한테 물어보았으나, 당시 내 주위에는 미국에 오래 산 분들 뿐이어서 오히려 별 신통한 답변을 들을 수 없었다.
“운전면허 시험 문제집이 있다던데?” 라고 말들은 많이 했지만 막상 갖고 있거나, 정확히 어디서 구할 수 있는지 말해주는 이를 만날 수 없었다. 요령이 안통하면 정공법을 취할 수 밖에. 며칠 출장 와 있다가 가는 것도 아니고 1년간 생활을 할 것이므로, 제대로 시험을 보기로 마음먹고 공부에 나섰다. 요점정리 노트도 만들고 중요한 부분은 줄도 쳐 가며 외우기 시작했다. (시험에 잘 나오는 문제 몇가지는 다음 글에 소개해 드리도록 하겠다.) 그리고는 구글에서 찾은 DMV사이트에서 `location` 메뉴에 들어가 우리집에서 가까운 DMV사무소 위치를 찾았다. 잠깐 참고로 말하자면, 미국의 큰 기관이나 회사/상점의 웹사이트는 대부분 `locations` 또는 `Store Locator`라는 메뉴를 갖고 있다. 여기에 자기 집 주소나 zip code를 입력하면 가까운 지점 위치와 가는 법을 알려준다.
검색결과, 내가 시험을 볼 수 있는 곳은 Lodi (`로다이`로 읽음)에 있는 DMV사무소였다. 알고 보니 예닐곱개 되는 뉴저지 DMV사무소는 각자 처리하는 업무의 종류가 다른데, 이 로다이 사무소가 가장 규모도 크고 처리하는 업무의 범위도 넓었다. 집하고도 그중 비교적 가까운 사무소여서 Lodi에서 시험을 보기로 마음먹었다.
그런데, 운전면허 시험은 그냥 가서 볼 수 있는 게 아니다. 신청서를 접수시키는 게 또한 큰 일이라, 구비서류도 복잡하고 만만치가 않았다. 이제부터의 설명은 뉴저지 주의 케이스인데, 미국은 워낙 지방자치가 활성화된 나라이므로 다른 주에서는 규정이 다를 수 있음을 감안하고 읽어주시기 바란다.
위에 인용한 dmv 사이트 메뉴 중 `6 point ID verification`이라는 것이 보이시는지. `6 포인트 검증 시스템`이란, 구비서류의 종류별로 각각 점수를 매겨, 합산했을 때 6점 이상이 되어야만 운전면허 응시 자격을 주는 제도이다. 미국 시민권소유자, 시민권 소유 청소년, 영주권자, 각종 단기체류자 등 워낙 응시자의 종류가 많기 때문에 생긴 제도라 한다. `6 point` 웹페이지에 들어가 보면 우리같은 연수자가 챙겨갈 수 있는 서류들에 대한 예시가 나온다.
이 링크에 가서 각자의 처지에 따라 객관식으로 보기를 선택하면 어떤 서류를 갖추어야 `합계 6포인트`가 되는지 알려 준다.
http://www.state.nj.us/mvc/Licenses/DocumentSelector/index.htm
설명을 하자면, 다음과 같다.
먼저, 6포인트를 구성하는 카테고리가 있다.
먼저 `Primary ID`는 6점 중 4점을 구성하는 주(主)신분증이다. 우리의 경우 여권이 이에 해당된다. 정확한 영문 규정은 “Foreign passport with INS or USCIS verification and valid record of arrival/departure (Form I-94)”라고 되어 있는데, 미국 입국시 출입국심사관리가 스탬프를 찍어 여권에 붙여주는 하얀종이(=I-94)와, 그것을 뒷받침해 주는 학교 서류들을 가져가면 된다. 한국에서 비자받을 때 쓰라고 미국 학교에서 보내준 DS-2019는 매우 중요하며, 항상 여권과 같이 갖고 있어야 한다. J-1비자를 받은 연수생이 합법적으로 체류할 수 있는 근거가 바로 I-94와 DS-2019이기 때문이다. 이 DS-2019는 미국도착후 연수기관(즉,학교)의 International office에서 담당자의 서명날인을 받아두어야 제대로 효력이 발생한다는 점도 잊지 말자.
여권과 DS-2019외에, 학교에서 왔던 Admission Letter도 챙겨가도록 하자. 미국 일선공무원들은 별로 친절하거나 융통성이 있지도 않거니와 사람마다 일처리하는게 제각각인데, 간혹 이 admission letter까지 보여달라는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admission letter가 담겼던 편지봉투도 챙겨가도록 한다. “법적으로 여권과 I-94, DS-2019만 있으면 되지않느냐”고 창구에서 따져봐야 별 소용 없다. 미심쩍으면 일단 다 챙겨들고 집을 나서는 게 최선이다.
자, 어쨌든 이렇게 하면 요건 중 첫번째, `At least one primary ID`를 해결한 셈이다.
다음은 `one secondary ID`를 챙겨야 한다. 여기에는
가 해당된다.
연수자 본인은 면허시험 응시전에 학교에 가서 ID카드를 만들었다면 그것으로 해결된다 하겠다. (이 글을 쓰면서 좀 미심쩍은 것은, 내가 면허증을 받던 2008년 8월 당시에는 이렇게 일이 간단하지 않았던 것 같다는 것이다. 그동안 규정의 보완이 있었나보다.)
연수자의 배우자는 1 point ID중에서 두가지를 규정에 맞게 갖추어 가면 된다. 미국은행 현금카드나 신용카드, 의료보험 카드 등이 해당되니까, 일단 뭐든 챙겨 가도록 하자. DMV에 들어가면 일단 면허신청서를 쓴 뒤 6 points 서류를 제대로 챙겨왔는지 심사하는 데스크로 가게 되는데, 이것저것 서류를 들이밀면 직원들이 이건 된다, 이건 안된다 얘기를 해 준다. 6 points에 해당되는 건 아니지만 한국면허증과 이를 번역한 국제면허증도 꼭 챙겨 가자. 이걸 제출하지 않으면 실기시험까지 새로 봐야 할지도 모른다.
여기서, Social Security Card와 Bank Statement에 대해서는 좀 부연할 필요가 있겠다.
`소셜 시큐리티 넘버`는 다들 들어서 아실텐데, 우리의 주민등록번호와 일부 같지만 한편 다르다. 개인식별번호로 쓰일 수 있다는 점에서는 주민등록번호와 같은데, 그 쓰임새는 보다 제한적이다. 우선, 미국에서 근로하고 세금내는 사람이 아니면 기본적으로 소셜시큐리티 번호가 주어지지 않는다. 기본ID는 운전면허증을 쓰므로, 소셜시큐리티 번호가 없다 해서 `주민등록번호 없는 한국인`같은 처지가 되는 것은 아니다. 미국사람들은 주로 개인신용(-돈 잘 갚는 사람인지-) 조회시에 이 번호를 쓰며, 그 외에는 웬만해선 이 번호를 요구하지도 않고 제시하지도 않는다. 소셜시큐리티 넘버 뿐 아니라, 운전면허증 번호 달라는 곳도 거의 없다.
언론인 연수자의 경우, 소셜 시큐리티 넘버를 받을 수도 있고 받지 않을 수도 있다. 내 경우, 일단 필요한건 다 해보자는 생각으로 구글에서 Social Security Office를 찾은 뒤 location을 웹사이트에서 확인하고 직접 찾아갔었다.(New Jersey Bergen County의 Social Security Office는 Hackensack-해켄섹-이라는 타운에 있다. 버겐 카운티 법원과 교도소가 있는 행정타운이며, 대형할인점 Costco, Target등이 있어서 갈 일이 많은 곳이다.)
여기에 여권과 학교서류, 기타 주소지 증명자료(Proof of evidence-이 글 뒷부분에서 설명) 등을 제시하고 소셜 시큐리티 넘버를 받을 수 있는지 문의하였다. 창구직원은 내게 “미국에서 일을 하느냐”를 물었다. 나는 “하지 않지만, 학교에서 일을 할 수도 있다”고 답했다. (J-1 비자를 받고 입국한 visiting scholar의 경우 보통은 근로행위를 하지 않는데, 간혹 학교에서 강의를 한다거나 부설연구기관에서 연구활동을 하면서 보수를 받는 경우가 있다. 즉, J-1비자는 미국내 근로행위가 원천금지된 비자는 아니다. J-2는 근로행위가 불가하다고 알고 있다.) 직원은 내 여권번호와 SEVIS(미국 국토안보부에 등록하는 외국인 정보)등을 조회해 보더니 “너는 일을 할 수 있으므로 social security number발급 대상이 된다. 다만 행정처리에 최소 8주가 걸린다.”고 말했다. 그래서 “나는 오늘 운전면허 신청하러 갈건데, 그렇다면 레터를 한장 써 달라.”고 말했더니 `여차저차한 사정으로 이 신청인은 곧 소셜 시큐리티 넘버를 받을 것임`이라는 레터를 내 주었다. 와이프의 경우 아예 소셜시큐리티 넘버 발급 대상이 되지 않아서 이 레터도 받지 못하였다. 나의 소셜시큐리티 넘버는 정말로 7주 후에 종이 카드에 찍혀 집으로 날아왔다.
(주) 내 경우는 이 레터를 DMV에 제출하여 1 point로 인정받았다. 그런데, 나보다 한달 늦게 면허를 신청한 우리동네 한국 의사 연수자의 경험은 또 달랐다. 그의 경우 미국 대학 부설 병원에서 연구를 수행하며 월급을 받는 신분이었으므로 소셜시큐리티 번호 발급 대상인 것은 맞았다. 그래서 내 경우처럼 “발급대상인데 시간 좀 걸릴듯” 하는 레터를 받아서 DMV에 제출했는데, 면허시험 신청을 받아주지 않더란다. 이유인즉슨 “그렇다면 소셜시큐리티 번호를 받아서 와라”라는 것이었다. “다른 사람은 그냥 받아줬다던데?”하고 따져도 소용 없는 일. 꼼짝없이 몇주 기다렸다가 시험을 봐야 했단다. 역시 사람은 줄을 잘 서야 한다.
자, 아무튼 이렇게 해서 2point ID 또는 1 point ID 두가지를 갖췄다면 그다음은 proof of address를 챙길 차례다.
Proof of Address는, `실제 이 주소지에 사는 사람인지, 서류상 주소만 옮겨놓은 것인지`를 입증하는 서류를 말한다. 그래서 항목 중에 보면 `집 임대 계약서(lease or rental agreement)`가 있는 것이고, utility bill이나 bank statement, tax bill or correspondence 등이 요구되는 것이다. Utility bill이란, 전기/수도/가스 등의 고지서를 말한다. 뉴저지 버겐카운티의 경우 PS E&G라는 회사에서 전기,가스,수도 서비스를 제공한다. bank statement는 은행의 월말 계좌 결산서, tax bill or correspondence는 세금 관련 당국의 고지서를 뜻한다. 세금이야 우리는 미국 납세자가 아니니까 상관이 없는데, 약간의 문제가 utility bill과 bank statement에서 발생한다. (주) checking account는 개인수표-personal check-나 credit card, debit card등을 통해 매일 생활비용을 결제하는 계좌이다. savings account는 이자를 목적으로 하는 저축성 계좌이다. 둘 간의 자금이체는 인터넷을 통해 자유롭게 할 수 있다.)
에너지회사나 은행이 고지서(statement 또는 bill)를 발송해주는 것은 매월말이다. 집계약하고 수도 전기 끌어쓰다가 한달 지난 다음에 면허시험 보러 가는 경우가 아니라면 (물론, 그런다고 안되는 건 아니다. 아무 문제 없다. 좀 불편할 뿐이다.) 뭔가 다른 방법이 필요하다. 나의 경우, PS E&G의 요금납부 담당 사무소(Hackensack에 소재)를 찾아가서 우리가 가입자임을 확인하는 컴퓨터 화면 hard copy print를 받고, 은행에서도 그날 현재의 계좌잔고를 증명하는 computer screen hard copy를 받아서 DMV에 냈는데, 결과적으로는 인정을 받지 못했다. `에너지회사나 은행이 우편으로 당신 주소지에 보낸 월말 결산서`를 갖고 와야만 한다는 것인데, 우체국 소인이 찍힌 봉투까지 있어야 한다니 어쩌겠는가. 결국 신용카드와 관련해 은행에서 우리집(=새로 얻은 미국집) 주소로 날아왔던 우편물을 하나 찾아내 제시함으로써 6 points의 관문을 통과할 수 있었다.
(주) 한국에서 미국 은행계좌를 미리 여는 방법이 있다. HSBC가 거래고객에게 이 서비스를 제공한다. Citi나 Bank of America등 국내에 지점이 있는 다른 은행들도 아마 비슷한 서비스를 하지 않나 생각된다. 우리 부부는 HSBC와 거래가 있어서 HSBC 미국 계좌를 한국에서 미리 열었고, 여기에 연계된 카드도 미리 만들어갖고 왔다. 서울 삼성역 근처에 있는 HSBC지점에서 각종 서류를 작성한 뒤 며칠 지나자 미국의 콜센터에서 전화가 걸려왔고, 미국 어디서 무엇을 할 것인지 등 신상과 관련된 몇가지 질문에 답했더니 계좌와 카드를 열어 주었다. 물론 미국에 도착한 뒤 계좌와 카드를 개설하는 게 일반적이긴 한데, 내 경우 이렇게 함으로써 초기정착에 필요한 날짜를 며칠 줄일 수 있었다.
지금까지 설명한 6 points ID관련서류와 한국면허증을 제출하고 필기시험장 입장 허가를 받는데만도 최소 30분, 길면 1시간쯤 걸린다. 줄이 꽤 긴데다, 사람마다 6 points 서류와 관련해 온갖 경우가 다 벌어지기 때문이다. 장황하게 설명했는데, 요약하자면 다음과 같다.
– DMV 사이트를 찾아서 운전자 매뉴얼을 받아 공부한다.
– 필요서류도 DMV사이트를 보면 알 수 있다.(뉴저지의 경우 6 points ID)
– 여권과 한국운전면허증은 물론, 본인의 미국내 체류에 관련된 모든 서류를 다 챙겨가 보자. 레터 종류라면 우체국 소인이 찍힌 봉투째 갖고 가자.
시험 체험기는 다음 글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