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ime flies. 지난 주말 `지난 6개월 동안의 연수기를 써 보내라`는 요청이 공교롭게도 몇 시간을 사이에 두고 LG상남언론재단과 회사로부터 날아들어 이 말을 절감케 했습니다. 순간 `다시 그 재미있는 지옥으로 돌아가겠군`이라는 기대와 `벌써 이 재미없는 천국을 떠나란 말야?`라는 섭섭함이 교차했습니다. “적응할만 하면 돌아간다더니…”라는 독백도 절로 나오더군요.
최근 워싱턴 D.C. 쪽으로 연수오는 언론인들이 꾸준히 늘고 있습니다. 하지만, 매번 워싱턴의 사정을 물어오는 연수 준비생들이 있습니다. 몇 자 적어 도움을 드릴까 합니다.
#워싱턴 연수의 장단점
지난 7개월간의 경험에 비친 워싱턴 연수의 가장 큰 장점은, 미국의 정치*외교의 흐름을 손쉽게 접할 수 있다는 점입니다. 수업은 물론 주변의 각종 세미나 등이 이런 주제와 연결이 돼 있어서 오히려 이외에 다른 얘기를 듣기가 어려운 형편인 곳이 워싱턴입니다.
필자가 다니는 존스홉킨스 대학 국제대학원(SAIS)에서만도 학기 중에는 크고 작은 컨퍼런스가 거의 매일 열리다시피 합니다. 여기에 카네기 재단과 브루킹스 연구소가 바로 옆 건물이고, 기업연구소(AEI)가 걸어서 10분 거리 안에 있어서 이 4곳의 컨퍼런스에만 참가하기도 쉽지 않습니다. 지난 달 미국 국내 언론에 크게 보도된 에드워드 케네디 상원의원의 미군 이라크 철수 주장, 북한을 방문하고 돌아온 톰 랜토스 하원의원의 북핵 문제에 대한 언급 등이 모두 SAIS에서 있었습니다.
마음만 먹으면 수시로 한반도 관련 전문가들을 만나 얘기할 수 있는 것도 장점입니다. `Two Koreas`의 저자인 돈 오버도퍼, 이젠 석학으로 대접받는 프랜시스 후쿠야마, 최근 동아일보에 기고하고 있는 켄트 칼더, 국무부 한국과장 출신인 데이빗 브라운 등등의 교수들을 엘리베이터에서 심심찮게 마주칠 수 있습니다.
개인적으론 지난 달 북한이 핵무기 보유를 선언했을 때 공부 겸 특파원에게 토스할 목적으로 이들을 개별적으로 찾아가서 `당신의 reaction이 뭐냐`고 물었죠. 노령으로 구부정한 채 교정을 지나가는 오버도퍼 교수를 쫓아가 “북한의 의도가 뭐라고 생각하느냐”고 질문했더니 “Who knows?”라면서 “중국의 적극적인 역할을 요구한 게 아니겠느냐”고 하더군요. 그리곤 바로 “더 이상 할 말이 없다”면서 코멘트를 사양하더군요. 한국말을 잘 알아듣는 데이빗 브라운 교수는 “I am not ready to comment”라고 하면서 “한국어 원문을 읽어본 뒤 대답하겠다”고 답변했습니다. 하지만 이것은 어디까지나 표면적인 대답일뿐, 칼더 교수의 조교에게 물었더니 “그렇지 않아도 좀 전에 세 교수가 만나서 북핵 문제에 대한 의견을 주고받았다”면서 내용을 전해 주더라고요. 한번은 길거리에서 아시아 재단 선임연구원인 스콧 스나이더를 마주쳐 인사를 나눈 적도 있습니다. 한참 영어로 인사하고 명함을 건넸더니 왈, “언제 점심이나 하죠”라고 한국말로 해서 한참 웃었습니다.
지난 대선 때는 물론 부시 후보가 일방적으로 비판받는 상황이었지만 학교 내에서 대선 결과에 대한 예측과 향후 파장 등에 대한 토의도 다양하게 벌어지는 것을 보았습니다. 대선 개표 방송 때는 학장의 주관 아래 방송을 보면서, 맥주를 마시면서 학생들과 토론하는 시간을 갖는 장면이 인상적이더군요.
#최고의 자녀 교육 환경
빼놓을 수 없는 장점 중 하나가 자녀 교육입니다. 초등교육이라면 미국 어느 곳이나 비슷하겠지만, 중등 교육은 이곳 워싱턴 주변의 버지니아주 패어팩스 카운티나 메릴랜드주 몽고메리 카운티가 미국에서 1, 2위를 다투고 있습니다.
제가 사는 패어팩스 카운티는 한국인들 사이에선 `미국의 강남`으로 불리는 곳입니다. 한국인들이 하는 학원도 많고, 한국 학생들의 특성을 잘 이해하는 가정교사(tutor)들도 많아서, 이곳 특파원들은 “아이 하나 교육만으로도 연수의 혜택을 누리고 있다”고 놀릴 정도입니다.
지난 해 우리 학생들이 `문제해결 능력`에서 1등을 했다는 보고서가 나와 전 세계적으로 화제가 된(미국에서도 한참동안 그 보고서 결과에 대한 논란이 있었습니다) 적이 있지만, 이곳 교육의 핵심은 아이들에게 끊임 없이 생각을 한다는 것입니다. 그냥 `남의 글 참고해서 쓰기`나 `수학 문제 답 찾아내기`가 아니라 `자기 자신의 생각을 자기의 글로 표현하기` 또는 `문제 풀기의 과정 보여주기`를 원합니다. 설령 답을 잘 못 내더라도 그 과정에서의 시도가 좋았다면 평가를 하더군요. 교사가 `good try`라고 적어 놓은 것을 종종 보게 됩니다.
하지만, 이 때문에 아이를 돌보는 일이 장난이 아닙니다. 저의 경우 지난 해 9월에 개학하고, 집사람이 귀국하고 나서부터는 `역(易)기러기`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집사람이 계속 일을 해야 하는 상황이어서 아이와 함께 교포 집에서 하숙하고 있습니다. 하숙비가 한 달에 2,100달러인데, 그래도 교포들은 비싼 게 아니라고 하더군요. 다른 곳에 비해 집값이 비싸다는 게 가장 불편한 점입니다). 초등학교 5학년인 아들과의 지지고 볶는 생활은 `KISS AND RIDE`로부터 시작해서 하교 후 아이와 숙제하기를 거쳐 저녁 시간 PTA 참여(처음에 몇번 나가다 말았지만) 등 학부모 활동으로 끝납니다.
준비물은 또 왜 그렇게 많은지…. 컴컴해진 뒤에 아이 실험도구를 구하러 차를 몰고 무작정 나간-모래에 얼음 덩어리를 얹어서 빙하의 이동과정을 실험하는 것인데 인근 공사판에 가서 모래 좀 달라고 했죠. 경찰기자 때 아무 데나 용감하게 들어가던 버릇이 도움을 준 것 같죠?-일이며, 패션쇼를 한다고 해서 한복을 찾느라고 제가 쇼를 했던 기억이 우선 떠오릅니다(최근 애만 데리고 오는 연수생들이 종종 눈에 띄는데 절대 권하고 싶지 않습니다. 차라리 혼자 오십시오)
#이것만은 꼼꼼이 준비하자
지난 해 7월 27일, 이곳(집은 버지니아 주 비엔나)에 온 뒤 아내에게 한 말이 떠오릅니다. 저에게 운전을 맡기길래 “난 공부하러 온 거야. 운전 연수 온 게 아니라구.” 집사람이 뒤집어지더군요.
처음 1~2개월은 운전 연수를 한 게 맞을 겁니다. 운전 외에 아이와 저의 학교 등록을 하는 등 적응하는 게 일이었죠. 집 가까운 곳에 있는 교육청에서 초등학교 5학년 아들의 학교를 등록하고, 연수 기관에 적을 달아놓은 뒤 운전 면허를 따기 위해 DMV(department of vehicles)에서 면허시험 치르고, social security 번호를 도착 뒷날 신청하고 두 달 가까이만에 받는 등….
모든 게 다 시행착오를 거치게 돼 있지만, 좀 더 빠르게 적응하려면, 위에 있는 4가지, 즉 ▲자녀 학교 등록 ▲연수 기관 등록 ▲운전 면허 등 자동차 관련 업무 그리고 ▲소셜 시큐리티 넘버 등 기타 업무는 사전에 철저히 준비해야 한다는 게 저의 결론입니다.
자녀 학교 등록 때는 진단서 등 건강에 관련된 서류(자세한 내용은 전임자들이 다 소개하고 있습니다)를, 그리고 운전 면허를 위해서는 사전 시험 준비를 철저히 하는 게 좋을 것 같다는 생각입니다. 특히 버지니아주 패어팩스 카운티는 교육 및 운전 면허발급에 관해 매우 까다롭게 굴기 때문에 각별한 주의를 요망합니다. 운전 면허는 무조건 책으로만 공부할 게 아니라, 버지니아 DMV(dmvnow.com)에서 제공하는 운전면허 시험 연습(sample test) 문제를 여러 번 풀고 가면 도움이 될 것입니다.
#어설픈 예술가가 되느니 정확하고 성실한 기술자가 되자
영어 공부는 영원한 숙제인 것 같습니다. 매주 화~금까지 매일 수업도 듣고, 세미나에도 참석하고 있는 데도 귀가 여전히 고통스럽습니다. 이곳에 있는 한 선배는 “영어가 크게 늘 것이라는 생각은 버려라”고 조언할 정도입니다. 정말 부단한 노력 없이는 불가능한 게 영어 정복인 것 같습니다.
제 발음을 교수가 가끔 못 알아들을 때가 있는데, 그 때마다 정확*정밀성으로 정평이 난 스위스의 기능공들의 신조를 앞세우곤 합니다. `어설픈 예술가가 되기 보다는 정확한 기술자가 되겠다’는. 정확하기만 하면 되지 유려할 필요가 있느냐고 말이죠. 동료 연수생들은 그래도 제 혀가 유독 더 구부러지고 있다고 핀잔입니다. 미리 영어 공부를 해두시려면 WWW.VOANEWS.COM을 활용하시길 권합니다. 이곳은 아주 느리게 뉴스를 읽어주는 동시에 스크립트까지 제공하고 있습니다. 개인적으론 캡션이 나오는 영화 프로그램을 사서 열심히 보는 것도 듣기 능력 향상과 생활영어 배우기에 매우 유용하다는 판단입니다.
#나는 낫을 갈고 있는가?
인터넷을 통해 국내 소식을 접하면서 혼자 편하게 지내는 것 같아 동료들에게 미안하게 느껴진 게 한 두 번이 아닙니다. 그 때마다 전 이런 우화를 떠올리며 스스로를 위로하고 또 다른 한편 경계하곤 합니다.
수도원의 수사 두 명이 보리 베기를 하고 있었습니다. 한 수사는 쉬지 않고 종일 보리를 벤 반면, 다른 수사는 50분 일하고 10분 쉬면서 일했습니다. 누가 더 많이 베었냐구요? 쉬면서 일한 수사의 작업량이 더 많았다는 겁니다. 종일 일만 한 수사가 열받아서 물었습니다. “당신은 어째서 종일 쉬지 않고 보리를 벤 나보다 더 많이 일을 했소? 무슨 남모를 비결이라도 있소?” 그러자 그 수사, “쉬는 시간에 저는 낫을 갈았을 뿐입니다”라고 대답했다는 것입니다.
남은 5개월, 잘 마무리하겠습니다. 낫을 던져 놓는 일이 없도록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