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은 사교육의 천국이야.” 실제 와 보니 맞는 말이었다. 그 사교육이라는 게 국,영,수가 아니라 스포츠
와 각종 예체능이라는 게 다를 뿐이었다. 아이들이 배울 수 있는 게 얼마나 많은지 축구, 농구는 기본이고
(여자팀도 따로 있다), 하키, 럭비, 승마, 테니스 등 아이들을 전문적으로 가르치는 프로그램이 차고 넘쳤
다. 그 중 택한 건 체조. 한국에서 배우기 쉽지 않고, 기초 근력을 다지기에 적합하며, 발레만큼이나 여자
아이들의 자세 교정에 좋다는 이유였다.
한데 거의 두 달 기본 코스가 끝나갈 무렵 아이가 다쳤다. 학생 중 한 명이 텀블링 중 착지를 잘못 해 아이
의 다리를 가격한 것. 코치가 다른 파트의 동작을 봐주고 있는 사이 벌어진 일이었다. 코치는 대수롭지 않
게 ‘얼음 찜질을 해 주면 괜찮아 질 것’이라고 했지만 아이는 밤새 울었다. 다음날 서둘러 정형외과를 찾아
가니 종아리뼈가 부러졌다고 했다. 통 깁스 5주, 반 깁스 4주 진단을 받았다.
순간 가슴에서 불덩이가 일었다. 명백히 체육관의 잘못이라고 판단했다. 코치의 관리 감독 소홀, 사고 당
시 안일한 대처, 뭣보다 아이가 울고 갔는데도 전화 한 통 없는 게 괘씸했다. 미국은 소송의 나라라고 하
지 않았나. 가만 있을 게 아니라는 생각에 변호사와 상담을 했다. 그런데 뭔가 반응이 뜨뜻미지근했다.
요약하면 1) 소송을 한다 해도 행정 처벌을 기대하긴 어렵고 2) 설사 이긴다 해도 배상금 범위를 당장 가
늠할 수 없고, 3) 그 과정이 1년, 아니 몇 년이 더 걸릴지도 모른다는 답변이었다.
그 와중에 체육관 측의 태도는 단호했다. ‘sorry’는커녕 원칙을 제시했다. 치료비 중 나의 보험으로 커버
되지 않는 나머지를 지급하겠다는 것이었다. 허나 이미 한국에서 들고 온 보험이 치료비로 10만 달러까지
커버되니 사실상 의미가 없는 말이었다. 다른 변호사를 수소문해 물어도 역시나 소송까지는 무리라는 반
응이었다. 오히려 체육관 측이 그나마 성의를 표시했다는 해석했다. 그리고 이번엔 그 내막을 자세히 들
을 수 있었다. 바로 ‘웨이버(waiver: 우선 면제)’ 였다.
“아이 거기에 등록하실 때 무슨 서류에 사인 하셨죠? 그게 웨이버라는 거예요. 운동을 하다 다쳐도 법적
책임을 제기하지 않는다, 뭐 그런 말이 들어가 있죠.”아차 싶었다. 등록 서류에서 머리가 어지러울 만큼
긴 영어 문장을 제대로 보지도 않고 그저 펜을 끼적댔으니 기억조차 희미했다. 찰나의 침묵을 눈치챘는지
변호사가 말을 이어갔다. “사실 그걸 누가 다 읽겠어요. 여기 미국은 피트니스 센터에 등록할 때도 그런
게 있어요. 저도 솔직히 안 읽고 사인해요. 어차피 안 하면 아예 다닐 수가 없는 거니까.”
그러면서 자신의 경험담도 들려줬다. 아이가 유아체육시설에서 발가락이 부러졌는데도 ‘개인 상해 전문
변호사’와 상담하니 소송까지는 무리수라는 조언을 들었단다. 미국에서 ‘웨이버’란 교육하는 자, 혹은
학교를 포함한 교육강습기관이 의도적으로 법적 책임을 피할 수 있는 권리다. 그래서 아이라면 방과 후
활동이나 여름 캠프, 현장학습 같은 프로그램을 할 때 이에 대한 보호자의 동의가 필수다. 여기엔 활동
이 어떤 것이며, 어떤 위험성을 지니고 있는지, 그럼에도 자발적으로 참여하기로 결정했고, 부상 및 손
실에 대한 전적으로 개인이 진다라는 내용이 들어간다.
기관에 따라 부상으로 장애가 생기거나 사망해도 면책을 내세우고, 심한 경우엔 소송이 금지되며 만약
이를 위반할 경우 모든 비용을 부담할 것이라는 항목이 들어가기도 한다. 여기에 실효성 있는 보험 가
입을 필수로 내세우는 곳도 있다. 이 웨이버의 효력은 미국에선 각 주법을 따르지만 40여 개가 넘는 주
에서 보편적으로 인정을 받는다고 한다. 매사 ‘누가 책임질 것인가’에 민감한 이곳 사람들에겐 불가피
한 제도일까. 실제로 학교 현장학습조차 교사가 특정 학생을 통제할 수 없다고 판단되면 제외시킬 수
있는 권리가 있을 정도니 말이다.
그래도 사인 하나 했다고 모든 책임을 뒤집어 써야 한다는 게 믿어지지 않아 이와 관련된 판례를 뒤져
봤다. 간혹 소송을 벌여 이긴 경우들이 존재했다. 가령 아이가 야구 캠프에서 코치가 시범 삼아 휘두
르는 배트에 맞아 입을 다쳤는데, 이 경우 미시시피 대법원은 원고 측 손을 들어줬다. 웨이버에 지도자
의 행동으로 유발될 수 있는 위험 요소를 제대로 명시하지 않았다는 이유에서다. 루이지애나주에서는
현장 학습 차량 전복사고로 숨진 학생에 대해서도 배상을 인정했다. 만약 그 곳을 가지 않았을 경우의
대체 프로그램이 없었기 때문에 강제성이 있었다는 점 때문이었다. 이 외에도 웨이버의 문구나 표현이
모호한 것은 없는지, 공익적 활동에 참여한 것인지, 사고가 기관 측의 고의적 잘못으로 인한 것이었는
지 등이 입증되면 상황은 충분히 달라질 수 있었다.
이쯤 되자 마음이 엎치락뒤치락 했다. ‘정말 소송을 해봐?’ ‘아니야 연수 끝날 때까지 결론도 안 날 텐데…’
깁스를 한 아이를 태워 휠체어를 밀 때마다 번민에 휩싸였지만 결국 나는 변호사의 조언대로 체육관과 합
의로 사건을 마무리 지었다. 치료비를 일정 부담하겠다는 태도 자체가 일정 부분 과실을 인정하는 것이기
에, 치료비 외에 잃게 된 기회 비용을 알려 위자료 명목의 배상을 요구했다. 물론 이 모든 것은 물론 아이
가 다시 정상적으로 걷고 뛰게 된 뒤에 이뤄졌다.
공교롭게도 합의의 마지막 절차 역시 사인이었다. ‘합의금 지불 이후 같은 사안으로 더 이상 책임을 묻지
않겠다’는 글귀가 또렷했다. 이번엔 정독 뒤에 펜을 들었다. ‘signature here’, 가 결코 가볍지 않은 문구
임을 알기에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