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살인적인 환율, ‘집밥의 달인’이 되다: 파리 시내 마트 완전 정복
파리 연수를 시작할 무렵 1,500원대였던 유로 환율은 해를 넘기며 1,700원 중반대를 넘겼다. 숨이 턱턱 막히는 숫자다. 외식 한 번에 손이 떨리는 상황이 닥치자, 자연스레 요리 실력은 일취월장했고 장보기의 달인이 됐다. 다행히 프랑스는 유럽연합(EU) 최대 농업 생산국이자 자급자족이 가능한 나라다. 외식 물가는 공포스러울 정도지만, 장바구니 물가는 상대적으로 안정적이며 선택의 폭도 넓다. 필자가 발로 뛰며 파악한 시내 마트 지형도를 정리해 본다.
파리 시내에는 저마다의 색깔을 가진 체인형 마트들이 촘촘히 박혀 있다.
우선 모노프리(Monoprix)와 프랑프리(Franprix)는 가장 흔하지만, 비교적 가격대가 높는 마트로 분류된다. 식자재부터 의류, 잡화까지 취급하는 모노프리는 PB 상품의 질이 높고, 프랑프리는 소포장이 잘 되어 있어 1인 가구에 적합하다. 실속파라면 Auchan이나 G20, Intermarche를 노려야 한다. Auchan은 이웃 나라 식료품 구색이 좋고, 뒤의 두 곳은 공산품 가격이 확연히 저렴하다.


유기농에 진심이라면 Bio n’cio나 Naturalia가 답이며, 최고급 식자재를 찾는다면 6구 Bon Marche 백화점의 식품관 격인 La Grande Epicerie로 향하자. 후자의 경우 한가지 팁은, 6구 본점보다 16구 분점이 관광객이 적어 훨씬 여유롭다.


프랑스 마트 씬에서 가장 흥미로운 곳은 냉동식품 전문점 Picard다. 야채, 해산물 등 냉동 식자재부터 밀키트, 고급 디저트까지 갖춘 이곳은 프랑스인의 ‘제2의 부엌’이라고도 불린다. 맛의 수준이 예상보다 훨씬 높은 데다, “여기가 프랑스 맞나” 싶을 정도로 친절하고 적극적인 응대로 유명하다.
한인 마트는 K마트와 에이스마트가 양대 산맥이다. K마트는 정육 코너가 강점이고, 에이스마트는 매일 찧는 떡이 일품이다. 특히 루브르 앞 에이스마트는 외국인들로 문전성시를 이뤄 K-푸드의 위상을 실감케 한다. 아시아 야채가 그립다면 중국계 마트인 탕프레르(Tang Freres)도 좋은 대안이다.
2. 골목 상권의 힘, 소매점의 자부심
마트보다 강력한 파리 장보기의 최강자는 ‘동네 상점’이다. 파리의 골목은 생선가게, 와인 가게, 치즈 가게, 정육점이 하나의 생태계를 이룬다. 다만 가격은 대형 마트보다 비싸고, 백화점 식품관보다도 배 이상 비싸기도 하다.
그럼에도 이 상점들이 성황을 이루는 이유는 품질에 대한 신뢰와 단골 문화 덕분으로 분석된다. 재래시장 상권이 대형 마트에 밀려 사라져가는 우리와 달리, 이곳 사람들은 신선한 식재료를 위해 기꺼이 지갑을 더 연다. 지역 주민과 상인이 맺은 이 끈끈한 선순환 구조는 한국인의 입장에서 가장 부러운 지점이었다. 사람들은 매일 아침 8시 동네 빵집에 줄을 서서 당일 먹을 빵을 구입하고, 퇴근길에는 당일 저녁 식사를 위한 식재료를 구입한다.


3. 실패 없는 파리 장보기 치트키
이같이 생경한 프랑스 장보기를 더 즐겁게 해줄 몇 가지 팁을 덧붙인다.
① 바게트의 정석과 ‘불랑제리(boulangerie)’의 조건
바게트 애호가라면? 빵집에서 “윈 트라디시옹, 실부플레(Une tradition, s’il vous plait)”라고 주문해 보자. 천연 효모를 사용해 일반 바게트보다 ‘겉바속촉’의 정석을 보여주는 ‘전통 바게트(Baguette de Tradition)’를 뜻한다. 1993년 제정된 ‘빵 법령’(Decret Pain)에 따라 밀가루, 물, 소금, 효모 단 네 가지만 사용해야 하며, 방부제나 냉동 공정이 절대 금지된다. 이에 당일 생산, 당일 섭취가 원칙이다. 물가 비싼 유럽이지만, 갓 구워낸 바게트의 경우 평균 1.50유로, 한화로 2천원 안팎으로 매우 저렴하니 마음껏 즐기시라.


참고로 프랑스에 와서 ‘빵집 맛집’을 찾는 일만큼 부질없는 일은 없다. ‘동네 빵집’이 가장 맛있다. 다만 한 가지 확인하면 좋은 점은 간판이다. 프랑스에서는 간판에 boulangerie 또는 maison이라는 명칭을 쓰는 것도 법적 요건이 필요하다. 반죽부터 굽기까지 전 과정을 매장에서 직접 수행하는 곳만 이 이름을 쓸 수 있다. 냉동 생지를 받아 굽기만 하는 곳은 일반 상점이다. 한국에도 잘 알려진 Paul, Eric Kayser 등의 체인점이 후자에 속한다. 결론은, 동네 빵집을 가시라. 파리에선 도보 5분 거리마다 한 곳 이상은 빵집이 있다고 한다. 크루아상 등 페이스트리류 애호가라면? 아몬드 크림이 들어간 ‘크루아상 오 아몬드’, 건포도가 씹히는 ‘팡 오 레장’, 커스터드와 초코칩이 조화로운 ‘팡 스위스’ 등은 파리지앵이 사랑하는 변주다.
② 낱개 구매와 샤리오(Chariot)의 생활화
프랑스 마트의 강점은 모든 것을 소량으로 살 수 있다는 점이다. 계란 한 알, 마늘 한 쪽까지 가능하다. 1인 가구로서 음식물 쓰레기를 최소화할 수 있는 최고의 시스템이다. 심지어 비닐로 묶인 생수나 주류도 뜯어서 낱개로 살 수 있으니 주저 말고 다양하게 먹고 마시고 즐기시라.

마지막으로 파리 생활의 필수품은 시장바구니 수레인 ‘샤리오’를 소개한다. 젊은 층은 기피하기도 한다지만, 매일 신선한 식재료를 직접 나르는 파리 장보기 문화에서 샤리오는 든든한 동반자다. 샤리오를 끌고 골목 상점을 누비는 순간, 당신은 비로소 여행객이 아닌 생활인으로서 파리에 녹아들게 된다.
필자의 눈에 비친 프랑스의 장보기는 ‘불편하지만 건강한’ 과정이었다. 앱 클릭 한 번이면 새벽에 문 앞까지 배달되는 한국의 편리함은 없지만, 직접 식재료의 향을 맡고 상인과 인사를 나누며 오늘 저녁 메뉴를 고민하는 시간은 삶의 밀도를 높여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