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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료도로에 얽힌 에피소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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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 와서 첫 여행을 떠났을 때의 일입니다.
나이아가라 폭포를 시작으로 캐나다 토론토와 몬트리올, 퀘벡을 여행한 뒤 다시 미국으로 넘어와
버몬트주와 뉴욕 등을 거쳐 집으로 돌아오는 일정이었습니다. 제가 살고 있는 노스캐롤라이나에서
나이아가라까지는 자동차로 10시간 넘게 걸리기 때문에 여행 첫날 일단 버지니아에서 하루 숙박을
했습니다. 다음날 아침 버지니아 숙소를 출발하기 전 나이아가라까지 시간이 얼마나 걸리는 지
알아보기 위해 구글 지도를 검색해보니 약 8시간이 걸린다고 나왔습니다. 오전 8시쯤 차에 올라타
내비게이션에 목적지인 나이아가라 숙소(캐나다쪽 호텔)를 입력했습니다. 내비게이션이 계산한 도착
예정 시간은 4시였습니다. 구글 지도에서도 8시간 걸린다고 나왔고 내비게이션도 4시 도착이라고
나왔으니 늦어도 오후 5시쯤에는 나이아가라 숙소에 도착할 수 있겠다는 생각에 여유롭게 운전대를
잡았습니다.


그렇게 한참을 달리다 보니 뭔가 이상하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왠지 차가 잘못된 방향으로 가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잠시 차를 세우고 지도책을 펼쳤습니다. 지도를 보니 잘못된 방향으로
가고 있는 게 확실했습니다. 나이아가라 쪽으로 가려면 출발 지점에서 거의 정북 방향으로 가야
하는데 북동쪽으로 가고 있었던 겁니다. 다시 차 시동을 걸고 내비게이션을 새로 맞췄습니다. 역시
도착 예정시간이 4시로 나왔습니다. 저는 고개를 갸웃하며 내비게이션을 들여다 보다가 저도 모르게
‘앗~’ 하고 비명을 질렀습니다. 도착 예정시간인 ‘04:00’ 바로 옆에 쓰여있는 영문으로 된 작은
글씨가 ‘pm’이 아니라 ‘am’이었던 겁니다. 그리고 그제서야 이게 어떻게 된 일인지 깨달았습니다.


평소 내비게이션에 유료도로를 회피하도록 설정을 해놓았었는데 여행을 떠나면서 이 설정을 바꿔
놓지 않았던 겁니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도착 시간이 4시라고 나왔기에 설마 그게 새벽 4시일 거라고
는 생각도 못하고 내비게이션이 안내하는 대로 달려온 것입니다. 아무튼 뒤늦게 이 사실을 깨닫고
내비게이션을 다시 맞춰 출발했고 저희 부부는 어둑어둑한 저녁이 돼서야 국경을 통과할 수 있었습
니다.


그런데 사건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습니다. 이번엔 내비게이션의 유료도로 회피 설정을 해제한 게
화근이었습니다. 캐나다 여행을 마치고 다시 미국으로 넘어와 뉴욕을 여행한 뒤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었습니다. 뉴저지에서 유료도로 구간에 진입하게 됐습니다. 그런데 진입 게이트에서 티켓을 뽑으
려고 하는데 티켓 발매기가 보이지 않았습니다. 실수로 이지패스(EZ PASS) 전용 차로로 들어선 것
이었습니다. (이지패스는 뉴욕과 뉴저지를 비롯한 북동부 여러 개 주에서 운영하고 있는 유료도로
통행료 결제 시스템으로 우리나라의 하이패스와 유사한 것입니다.) 차를 다시 뒤로 뺄 수도 없는
상황이어서 어쩔 수 없이 그냥 통과했습니다.


그리고 얼마 뒤 요금소가 나왔습니다. 요금소 직원이 티켓을 달라고 하기에 사정을 설명했더니
“티켓이 없으니 최대 구간 요금에 해당하는 8달러를 내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8달러를 내면서
“혹시 나중에 요금 청구서가 또 날아오는 거 아니냐”고 물었습니다. 그랬더니 그 직원은 “당신이
요금을 안 내고 달아난 게 아니라 요금을 냈기 때문에 만약 청구서가 날아오면 영수증을 잘 보관하고
있다가 그 영수증 사본을 보내면 된다”고 말했습니다. 그 말을 듣고 일단 안심하고 집으로 돌아갔
습니다.


그로부터 약 한 달 뒤, 불길한 느낌의 편지 한 통이 집으로 배달됐습니다. 편지 봉투에는 ‘EZ PASS’
라는 글자가 큼지막하게 적혀 있었습니다. ‘올 것이 왔구나’ 하는 생각에 봉투를 조심스레 뜯었습
니다. 봉투 안에는 ‘이지패스 전용 차로를 무단으로 통과했으니 해당 요금과 함께 벌금 50달러를
지불하라’는 통지문이 들어 있었습니다. 요금을 안 내고 달아난 것도 아니고 실수로 전용 차로를
통과했을 뿐인데 벌금까지 내라니… 억울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지인에게 상황을 설명하고 조언을
구했습니다. 지인은 “이의신청서를 보내면 된다. 당시 상황을 자세히 설명하고 요금 영수증 사본과
함께 보내면 해결될 것이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래서 이의신청서를 작성해 보냈습니다. ‘초행길이
어서 전용 차로인지 모르고 들어섰으며 실수로 통과한 것을 깨닫고 나서 곧바로 다음 요금소에서
최대 구간 요금을 지불했으니 선처를 바란다’는 내용이었습니다.


그리고 약 2주일 뒤, 이지패스측으로부터 다시 한 통의 편지가 날아들었습니다.
“당신의 이의신청서를 검토해 봤으나 실수라고 하더라도 위반한 것은 명백하므로 벌금 50달러는
내야 한다”는 내용이었습니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50달러 수표를 반송용 봉투에 담아 보냈습니다.
지금에 와서 돌이켜보면 고작 벌금 5만 원 때문에 왜 그렇게까지 마음을 졸였을까 싶지만, 당시엔
벌금 50 달러가 마치 50만 원처럼 느껴졌던 게 사실입니다.    


그리고 몇 달 뒤, 이번엔 플로리다로 떠나게 됐습니다. 첫 번째 여행 때 유료도로에 얽힌 안 좋은
기억이 있다 보니 이번엔 사전 조사를 철저히 했습니다. 인터넷 검색을 통해 알아 보니 플로리다에도
유료도로가 많다는 사실을 알게 됐습니다. 플로리다에선 ‘선패스(Sun PASS)’라는 이름의 유료도로
결제 시스템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경우 ‘하이패스’ 하나면 전국에서 통용되지만 미국은 주마다 서로 다른 요금 징수
시스템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노스캐롤라이나는 퀵패스(Quick PASS), 조지아는 피치패스(Peach
PASS), 이런 식입니다. 따라서 뉴저지에서 이지패스 카드를 차량에 장착해 다니던 사람이 플로리다
를 방문하게 되면 여기선 이지패스 카드를 쓸 수 없고 새롭게 선패스 카드를 구입해야 하는 것
입니다.


그래서 제가 플로리다에 들어서자 마자 가장 먼저 한 일은 선패스 카드를 판매하는 마트를 찾아가
카드를 구입한 뒤 차량에 장착한 것이었습니다. 일단 선패스 카드를 장착하고 나자 어떤 도로를
만나든 두려울 게 없었습니다. 특히 플로리다의 유료도로 가운데 어떤 구간에서는 요금을 징수하는
직원이 한 명도 없고 모든 차로에 무인 카메라만 설치돼 있는 곳들도 있기 때문에 선패스를 구입하는
게 여러모로 편리한 선택이라 생각합니다. 


참고로 서부의 고속도로엔 동부처럼 특정구간 전체가 유료인 곳은 거의 없고 일부 차로(주로 1차로)에
한해 유료화한 곳이 더러 있습니다. 바로 익스프레스 레인(express lane)이라는 것입니다. 우리나라로
치면 버스전용 차로와 비슷한 개념인데 이 차로는 무선 결제 장비를 장착한 차량만 통과할 수 있습니다.
또 카풀 레인(carpool lane)이라는 것도 있는데 이 차로는 유료는 아니고 차량에 2인 이상 타고 있으면
이용할 수 있습니다. 이처럼 미국은 지역마다 도로 체계가 다르기 때문에 낯선 곳을 처음 여행할 때
에는 그 지역의 도로 체계에 대해 사전에 확인해 보는 게 좋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