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기를 즐겨먹는 사람들 사이에서 미국은 천국과도 같은 나라로 알려져 있습니다. 우리 가족 역시 한국에서 매일같이 고기를 먹고, 맛있는 고깃집을 찾아 다른 지역으로 원정까지 떠날 정도로 고기에 진심이었기에, 미국에서의 육(肉)식도락에 대한 기대가 컸습니다.
하지만 미국 집에 도착하고 마트에서 처음 장을 본 후, 기대는 실망으로 바뀌었습니다. 한 눈에 보기에도 맛있어 보이는 소고기를 구매했지만, 막상 구워보니 기대와 달리 육질이 너무 질기고 냄새도 비렸습니다. 결국 준비한 고기의 절반도 못먹고 비상용으로 가져간 라면으로 저녁을 해결해야 했습니다.
예상과 다른 고기 맛에 당황했던 저는 이튿날 다시 마트를 찾았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고기를 살펴봐도 도무지 감이 오지 않았습니다. 명칭도 생소한데다 한국과 고기를 정육하는 방식이 달랐던 탓에 같은 부위여도 한국에서 봤던 것과는 모양이 달랐습니다. 결국 ‘발품’ 파는 심정으로 생소한 고기 부위를 조금씩 사서 다양한 방식으로 조리해 먹었습니다. 두 달 정도 ‘혀품’을 팔다보니 어느 정도 요령이 생겼고, 6개월이 지나고서는 스스로 정육을 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이렇게 몸으로 부딪히며 체득한 고기 선택 노하우를 공개하고자 합니다.
먼저, 기름진 소고기가 먹고 싶다면 립아이(Ribeye)를 추천합니다. 립아이는 지방이 많은 등심 부위로, 미국 현지인들이 스테이크용으로 가장 선호합니다. 일부 마트에서는 얇게 썬 립아이도 판매하는데, 이것을 사다가 프라이팬에 구우면 한국에서 즐겨먹던 꽃등심 구이와 똑같습니다.
립아이가 너무 기름지다면 숏립(Short Rib)이 적당한 대체재입니다. 한국의 갈비살과 비슷한 부위입니다. 특히 코스트코나 샘스클럽과 같은 창고형 할인마트에서는 뼈채로 썬 숏립을 판매하는데, 이걸 양념에 재워서 구운 게 바로 LA갈비입니다. 플랭크(Flank)라는 부위도 얇게 썰어서 구워 먹으면 한국의 치마살과 비슷한 식감을 느낄 수 있습니다.

미역국이나 무국 등 소고기 육수 기반의 국을 끓이고 싶다면 척(Chuck)이나 브리스킷(Brisket)을 활용할 수 있습니다. 각각 우둔살, 양지에 해당합니다. 저렴한 부위를 모아서 스튜(Stew)용으로 팔기도 하는데, 가성비는 좋지만 확실히 맛은 떨어집니다.
돼지고기는 소고기에 비해 훨씬 난이도가 낮습니다. 삼겹살에 해당하는 포크벨리(Pork Belly)가 현지 마트에서도 널리 많이 판매되고 있기 때문에 잘 모르겠다 싶으면 포크벨리를 구입하면 됩니다. 하지만 미국의 포크벨리는 돼지고기 다른 부위에 비해 비싸고 지방이 너무 많아 부담스러울 수 있습니다. 좀 저렴하고 지방도 적은 부위로는 숄더버트(Shoulder Butt)가 있습니다. 목살과 앞다리살이 연결되는 부분으로, 썰어서 구워 먹어도 좋고, 수육이나 제육볶음 등 다양한 요리에 활용할 수 있습니다. 갈비찜에 주로 쓰이는 폭립(Pork Rib)도 저렴한 부위입니다. 감자탕이 땡긴다면 넥본(Neck Bone)이라는 부위를 활용하면 됩니다.

바비큐 문화가 발달한 미국에선 한국과 달리 손질 전 단계의 대형 고기를 팔기도 합니다. 브리스킷(Whole Brisket)의 경우 최소 4~5kg짜리를 판매하는데, 대용량으로 구매해 직접 손질하면 저렴한 비용으로 2~3주치 고기를 냉동실에 든든하게 채울 수 있습니다. 현지에선 판매하지 않는 차돌박이도 얻을 수 있습니다. 돼지고기 역시 삼겹살이나 숄더버트를 대용량으로 파는데, 손질된 고기를 구매하는 것에 비해 30% 정도는 저렴합니다.

맛있는 고기에 술이 빠질 순 없겠죠. 레드와인이나 위스키도 좋지만 한국인이라면 결국 소주 생각이 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미국에서 한국 소주는 한 병 가격이 7~8달러로, 꽤 부담됩니다. 이런 경우 15달러 정도 하는 페트병 보드카(1.75L)와 물을 1대1로 희석해 설탕이나 인공감미료를 첨가하면 소주와 비슷한 맛이 납니다. 물론 맛이 같진 않지만 가성비를 생각한다면 충분히 감내할 만한 수준의 차이입니다. 한국에서 먹던 것처럼 맥주와 섞는다면 그 차이는 더욱 모호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