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7일 오전 10시 반. 버킷 리스트 하나를 완수하기 위해 지하철에 몸을 실었습니다. 열차 안에는 저와 목적지가 같은 승객들이 여럿 눈에 들어왔습니다. 그들도 제 목적지를 한눈에 알아챈 듯 보였습니다. 그들이 입고 있는 옷과 마찬가지로 제 모자와 재킷에도 큼직한 ‘W(더블유)’가 새겨져 있었기 때문입니다. NFL(미 프로풋볼) 팀 중 워싱턴DC를 연고지로 두고 있는 워싱턴 커맨더스의 마크였습니다.

열차에서 내린 뒤 따로 지도 애플리케이션(앱)을 보며 길을 찾을 필요는 없었습니다. 커맨더스의 유니폼을 입은 수많은 사람들이 같은 방향으로 걷고 있었습니다. 20분가량 걷자 커맨더스의 홈구장인 노스웨스트 스타디움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주차장에선 경기 전 파티를 뜻하는 ‘테일게이팅(tailgating)’이 한창이었습니다. 커맨더스와 경기를 펼칠 뉴욕 자이언츠의 유니폼을 입은 팬들도 함께 어우러져 픽업트럭 옆에 세워진 큰 텐트 밑에서 떠들썩하게 고기를 굽고 맥주를 마셨습니다.
그곳엔 25열까지만 있었다
무난하게 흘러가던 NFL 경기 직관이 예상치 못한 난관에 부딪친 건 티켓을 보여주고 경기장 입구를 통과한 후였습니다. 제 자리는 123섹션의 26열이었는데, 아무리 찾아도 26열이 보이질 않았습니다. 통로 옆에 서서 좌석을 안내하던 직원에게 물어보니 해당 섹션은 25열이 마지막이라는 답이 돌아왔습니다. ‘2차 시장(Secondary Market)’에서 티켓을 사는 바람에 사기를 당했다는 생각이 들며 식은땀이 나기 시작했습니다.
제 표는 2차 시장 중 하나인 ‘틱픽(TickPick)’에서 구매한 티켓이었습니다. 구단이 직접 판매하는 티켓 시장을 ‘1차 시장(Primary Market)’, 여기서 표를 산 사람들이 다시 표를 팔 수 있게 만든 시장을 2차 시장이라고 합니다. 제가 산 표는 리세일(재판매) 플랫폼인 틱픽에 올라온 티켓이었습니다. 공식 판매처에서 티켓을 구입한 사람들이 팔겠다며 내놨던 ‘중고 표’였던 겁니다.
틱픽을 선택한 건 티켓 가격이 공식 판매처보다 저렴했기 때문입니다. 공식 판매처 가운데 하나인 ‘티켓마스터(Ticketmaster)’에 올라와 있는 표들과 비교해 봤더니 좌석 가격이 몇 달러라도 싸게 매겨져 있었습니다. 틱픽에 따르면 월스트리트저널이 여러 플랫폼의 최종 지불 가격을 비교해 본 결과 틱픽의 티켓 값이 가장 낮았다고 합니다.
돈을 더 주더라도 구단에서 파는 표를 샀어야 한다고 자책하며 티켓 오피스를 찾았습니다. 경기 시작이 1시간이나 남았는데도 이미 경기장은 사람들로 가득 차 이동이 쉽지 않았습니다. 마침 스타디움 내부 통로에서 마칭 밴드까지 행진을 시작하더군요. 잠시 멈춰 설 수밖에 없어 틱픽 앱을 열어 티켓을 다시 꼼꼼히 확인했습니다.
앱에 표시된 구입 티켓 정보에는 정확히 ‘26열 8번’이 적혀 있었습니다. 문득 ‘티켓이 사기라면 어떻게 문제없이 입구를 통과했지?’라는 의문이 들었습니다. 입장할 때 보여줬던 QR코드가 찍힌 인터넷 링크를 다시 열어봤습니다. QR코드 옆에 뜬 좌석은 ‘25열 8번’이었습니다. 다행히도 ‘눈탱이’를 맞은 건 아닌 듯 했습니다.

그 이후에는 별다른 문제 없이 옆자리에 앉은 풋볼팬들과 어울려 첫 NFL 경기 직관을 즐겼습니다. 사실 하프타임 전까지도 누군가 다가와 ‘여긴 내 자리야’라고 말할까 마음을 졸였습니다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아직도 왜 티켓 정보와 입장 확인용 티켓에 표시된 열이 달랐는지는 모릅니다. 그저 2025시즌의 첫 개막 경기 중 한 경기를 무사히 자리에 앉아서 봤다는 사실에 감사할 뿐입니다. 환호하느라 서 있는 시간이 더 많았지만 말입니다.
수요에 따라 오르내리는 티켓 가격
커맨더스는 시즌 첫 개막 경기를 큰 점수 차이로 승리하며 기분 좋게 출발했지만 결국 이번 시즌 플레이오프 진출에는 실패했습니다. 하지만 전 여전히 틱픽에 수시로 들어가 값싼 티켓이 뜨는지 살펴보고 있습니다. 10여 년 전부터 응원해 온 뉴잉글랜드 패트리어츠가 드디어 암흑기에서 벗어나 플레이오프 무대에 복귀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패트리어츠가 챔피언 결정전인 슈퍼볼(Super Bowl)까지 올라가는 일이 일어난다고 해도 슈퍼볼을 직관하긴 어렵지 않을까 싶습니다. 2024시즌 슈퍼볼이 열렸던 올해 2월 USA투데이는 슈퍼볼 티켓 가격이 경기 직전까지 평균 4708달러(약 680만 원)를 보였다고 보도했습니다. 2023시즌 슈퍼볼 티켓의 평균 가격은 경기 전날에도 9365달러(약 1350만 원)였다고 합니다.
미국 언론에 따르면 틱픽과 같은 2차 시장뿐만 아니라 1차 시장에서도 티켓에 ‘동적 가격제(Dynamic Pricing)’가 적용됩니다. 수요에 따라 푯값을 수시로 바꿔 이익을 최대화하는 구조이기 때문에 슈퍼볼처럼 수요가 몰리는 경기에는 티켓 가격이 천정부지로 치솟게 되는 것입니다. 물론 인기가 없는 팀의 경기거나 관심도가 떨어지는 경기의 티켓 가격은 반대로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떨어집니다. 커맨더스의 이번 시즌 개막전 경기 푯값도 실제로 경기가 열리는 일요일이 다가오자 가격이 조금 하락하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커맨더스는 다른 팀에 비해 인기가 없는 팀으로 분류됩니다.

동적 가격제는 비싸진 푯값으로 경기 관람을 포기하거나 시야가 더 나쁜 좌석을 고르는 팬들을 만들어낼 수밖에 없습니다. 이를 두고 팬들 사이에서 불만의 목소리가 터져 나오곤 했는데, 최근에는 2026년 북중미 월드컵에서도 동적 가격제가 적용되면서 논란이 커지고 있습니다. 인기 있는 경기나 그라운드에 가까운 좌석의 값이 크게 뛰었기 때문입니다. 1994년 미국 월드컵 조직위원회 위원장을 맡았던 앨런 로텐버그는 최근 로이터통신과의 인터뷰에서 “일부 사람들이 비싼 푯값으로 티켓 시장에서 명백하게 밀려나고 있는 건 안타까운 일”이라면서도 동적 가격제가 불가피하다고 주장했습니다.
동적 가격제로 NFL 경기 티켓은 좌석 위치에 따라 가격이 정말 천차만별이었습니다. 제가 직관했던 커맨더스 경기에서 선수들을 코앞에서 볼 수 있는 ‘명당’은 1000달러(약 140만 원)가 넘기도 했습니다. 평생 한 번이 될지도 모른다며 큰마음 먹고 구입한 제 티켓 가격의 4배가 넘는 수준입니다. 미국 물가를 생각하면 미국인들에게도 적지 않은 금액인데 그 자리들마저 가득 찬 경기장을 보니 미국의 풋볼 사랑을 다시 한번 느낄 수 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