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자가 해결된 뒤 두번째로 마주하는 문제는 연수기간 동안 지낼 ‘집’이다.
연수기들을 읽어도 정답을 구하기 어려운 것은 연수를 가기 전에 집을 구할 것이냐, 현지에 도착해 지내면서 집을 구할 것이냐다.
답이 어려운 것은 첫째, 연수 지역에 대한 사전 정보가 없으니 어디서 집을 구할 지가 막막하다. 예를 들어 서울 내에서 이사를 한다고 해도 어느 지역으로 가야할지 예산과 교통, 교육여건 등 고려할 게 많은데, 영국의 부동산 시장에 대해서는 아는 게 하나도 없었다. 구글 맵으로 런던 지도를 펼쳐놓으면 한숨만 나왔다.
둘째, 어디서도 문제지만 어떻게도 문제였다. 한국에서도 믿을만한 부동산 중개소장님을 찾는 게 일인데, 영국의 누구와 함께 일을 진행할 것인가. 특히 영국은 미국보다 연수자들이 적어, 이전 연수자를 통해 부동산 관련 정보를 확보하기가 쉽지 않았다.
결국 맨 땅에 헤딩하는 수 밖에 없었다. 일단 백방으로 영국에 살아본 경험이 있거나 영국에 사는 사람을 찾아 헤맸다. 추천받은 지역도 제각각이었다. 주거비용이 높은 런던을 먼저 제외하니, 거리가 먼 버밍험을 추천받기도 했고 그 다음은 캠브리지, 그 다음은 런던의 서북부 등 다양한 지역이 나왔다.

이리저리 알아보는 우여곡절 끝에 런던의 서남쪽에서 집을 찾기로 결정했다. 런던 중심과 그리 멀지 않아서 학교를 가야할 때나 주말에 나들이 갈 수 있는 거리 등을 감안했다. 물론 이전 연수생의 글을 보면 충분히 런던 내에서도 여건에 맞춰 거주할만한 곳을 찾은 경우도 있다.
또 검토했던 것은 한인 이주대행업체였다. 이곳은 집구하기부터 전기, 가스 등 연결, 아이 학교 지원까지 해주는 곳이었다. 수소문해 접촉했지만 우리는 비용 대비 효과를 자신할 수 없어 고용하지 않았다.
그래서 밤새 아내가 고생했다. ‘라잇무브’라는 영국 부동산 스마튼폰 앱을 깔아 검색을 하기 시작했다. ‘네이버 부동산’이나 ‘직방’처럼 부동산 매물이 올라오는 곳인데, 이곳에서 마음이 드는 물건을 찾아 담당하는 부동산 에이전시에 연락해야 했다. 일반적으로 집을 구하는 과정은 부동산 에이전시에 연락해 ‘뷰잉'(눈으로 보는 점검) 날짜를 잡고, 집 상태나 위치가 마음에 들면 계약을 하고 싶다고 의사를 전한 뒤 집주인의 결정을 기다리는 방식이다. 런던에서 집을 구하는 동영상 등을 본 바 경쟁이 치열해 ‘뷰잉’ 하기도 어렵다고 하던데, 런던 교외의 가족 단위가 사는 집의 ‘뷰잉’ 경쟁은 동영상 보다는 어렵지 않았다.
그러나 착착착 할 수 있는 과정은 아니었다. 무엇보다 그곳이 경기도 어디라서 집을 보고 올 수 없지 않은가. 다행히 코로나19 이후 집을 직접 찾는 대신 부동산 에이전시가 ‘온라인 뷰잉’을 해주는 게 활성화되었고, 집 내부를 동영상으로 찍어서 집상태를 확인할 수 있게 해줬다. 물론 한정된 화면으로 보여주는 동영상이니 궁금한 것을 다 해소하기 어렵긴 했다. 또뷰잉을 신청한다고 다 볼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인기 지역의 매물은 물어보기도 전에 빠르게 사라졌다.
이 모든 일련의 과정을 시차가 정반대인 영국 사람들과 해야했으니, 발 벗고 나선(답답한 남편 대신) 아내가 잠도 못자고 이메일을 기다리거나 ‘왓츠앱’으로 소통하거나 답답하면 직접 전화를 걸어야 해 고생을 많이 했다. 당시에 얻었던 팁은 부동산 에이전시에 이메일을 보내면 답장을 받을 확률이 높지 않았다. 집이 마음에 들면 전화를 해야 뷰잉이라도 할 수 있었다. (반면 한국에 있는 우리에게 적극적으로 세일즈 하는 부동산 에이전시 역시 있었다)
매물을 찾다보니 영국의 부동산 시장도 한국의 부동산 시장과 크게 달라보이지 않았다. 도시의 중심부, 업무 지구와 가까운 곳이나 부촌, 그리고 이른바 ‘역세권’이라 할 수 있는 곳이 월세가 높았다. 런던의 경우, 교통비를 나누는 기준이기도 한, 도시 중심 1존부터 6존까지 커다란 방사형 형태로 도시가 형성되어 있다. 6존으로 나갈수록 집 월세는 싸지만 대신 출퇴근 시간이 오래 걸리고, 기차삯 부담이 커진다. (물론 6존이어도 교통비는 오이스터 카드 등을 쓸 경우 하루 16.3 파운드 초과 부담되지 않도록 제한된다) 아마도 전세계 어디를 가도 대도시권은 비슷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집 계약 마지막까지 애를 먹인 것은 평판 조회였다. 집주인이 계약을 하겠다고 동의하면 부동산 에이전시에서 레퍼런스 체크를 하겠다면서 링크를 보내준다. 그곳에는 재정 상황과 과거 거주 형태 등을 꼬치꼬치 묻는 질문들이 많았다. 한국 직장의 재직증명서 제출 정도로 끝나지 않고, 직장 인사 담당자 연락처나 현재 살고 있는 서울 집의 관리비 명세서, 집을 얻는데 도움을 준 한국 부동산 중개소 연락처까지 요구했다. 영국 평판확인 회사가 어떻게 확인하겠다는 건지 모르겠는데, 실제 영국 회사는 한국의 부동산 중개사무소 소장님에게 이메일을 보내기까지 했다. 레퍼런스 체크를 까다롭게 하면서 출국 열흘 전에 간신히 계약을 마쳤다.
집세는 6개월치 선납. 영국에 연수 와 있는 공무원들도 나라의 재정지원 증명에도 불구하고 보통 1년치 월세를 한꺼번에 낸다는 것을 보면, 크게 불리한 조건으로 계약한 것 같지는 않다.
집 월세가 높고 레퍼런스 체크를 강도높게 하는 것을 보면 영국 부동산 시장은 수요자 보다 공급자 중심일 것이다. 영국 역시 수요자인 젊은 세대가 집값이 큰 폭으로 오르며 내 집을 마련하기 어렵다는 우려가 크다. 코로나19 이후 집값과 물가가 크게 올랐기 때문이다. 매달 월세를 내면서 집을 사기 위한 목돈을 만들기 어려운 상황이다.

더구나 런던은 각종 규제로 주택 공급이 많지 않아 주택이 부족한 도시다. 이에 영국 정부는 ‘New Towns’를 개발해 수십만호를 공급하고, 주변 임대 시세보다 80% 이하 싸게 제공하는 ‘affordable housing’을 뉴타운 내 40% 이상 만들겠다는 계획을 내놨다. 하지만 대규모 토지를 수용해 개발하는 한국식 신도시 조성도 어려운데 영국 역시 주택 공급난에서 단기간에 벗어나기는 어렵지 않을까.
이곳에서 만난 이들은 대부분 세입자가 많아 그들의 신세를 들을 수 있었다. 아이의 학교 친구네는 아버지 홀로 돈을 버는데, 집을 살 만큼 돈을 모을 엄두를 내지 못한다고 했다. 월세가 높아 저축할 여력이 없다고 했다. 부동산 가치만 고공행진을 하고 자산의 양극화가 커지는 상황은 한국의 다가올 미래일까.
어쨋든 집을 구했으면 전기, 가스회사 등에 연락해야한다. 한국은 에너지 공급회사가 독점적이어서 이사를 하면서 공급회사를 고를 수 없지만, 여기는 소비자가 공급자를 정할 수 있었다. 이사왔다고 신고하면 주민세(Council Tax)도 내는데, 한국의 경우 주민세는 사람을 기준으로 내는데 반해 영국은 집에 따라 부과하는 부동산 세금에 가깝다. 그렇다고 부동산 보유세 개념은 아니고 집에 실제로 거주하는 사람이 내는 세금으로, 집주인이건 임차인이건 거주하면 낸다. 우리 집 같은 경우는 C밴드에 속해 연간 2247파운드를 내야한다고 공지 받았다.

다시 첫 질문으로 돌아가면 한국에서 가능하면 집을 구해놓고 출발하는 게 좋다. 비행기를 타고 오는 동안의 불안감과 도착 뒤 한정된 기간 안에 집을 구해야한다는 불안감을 생각하면, 한국에서 해볼만한 도전이다. 물론 에어비앤비 등으로 임시 숙소에서2주 정도 지내며 집을 구하는 것도 방법이다. 눈으로 직접 보면 ‘온라인 뷰잉’으로는 가늠할 수 없는(우리 집의 경우도 입주 뒤 여러 곳을 손봐야 했다) 집 상태를 확인하기도 좋을 것이다. 집 주소가 있어야 배정 받은 아이 학교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더 빨리 집을 구해야한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학교가 방학 중에는 사실상 입학업무를 중단해 8월 초중순에 지원하는 것은 큰 의미가 없기도 했다.
한국에서 집을 구한 덕분에(주소를 확보할 수 있으니) 출국 전 부랴부랴 보낸 선편택배(화물선에 실어보내는)는 10월27일에 드디어 영국 집에 도착했다. 8월6일에 한국 우체국에서 부친 뒤 두달 반만에 빨간 조끼를 입은 영국 우편 배달부가 가져왔다. 겨울옷과 전기장판 등이 늦지 않게 보급된 셈이다. 주소만 있으면 전세계 어디에나 물건을 보낼 수 있는 물류망, 전세계 공급망의 힘은 이렇게 확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