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녀 생일파티에 진심인 미국 사람들
‘미국에 오면 느는 것은 영어 아닌 요리 실력’이라는 우스개가 있다는 걸 연수 와서 알았다. 영어 익힐 기회는 생각보다 많지 않은 반면 삼시세끼 외식할 수 없는 노릇이니 요리를 많이 하게 된다는 뜻이다. 여기에 어린 자녀가 있다면 미국에 와서 갈고닦을 수 있는 것이 하나 추가될 것이다. 바로 선물 포장 솜씨다.
오미크론 대유행이 수그러들고 날씨가 따뜻해지면서 유치원 다니는 아이가 친구들 생일파티 초대를 받아 오기 시작했다. 5월부터 약 두 달에 걸쳐 받은 초대가 7번. 한 주의 토요일 일요일을 모두 생일파티 참석으로 보낸 적도 있다. 초대를 받으면 카드를 쓰고 선물을 사서 포장한다. 한국에서는 언제부턴가 손수 선물 상자를 포장할 일이 별로 없었는데 이곳에서는 모두 직접 해야 한다.
친구들 생일 선물로 주로 장난감이나 학용품을 산다. 그런 걸 파는 이곳 마트나 할인점에는 포장 코너가 없는 대신 포장지나 리본 같은 재료를 다양하게 판다. 미국인 친구 집에 초대받아 갔더니 각종 포장지와 장식 재료, 테이프와 작업대를 갖춘 ‘선물 포장실’을 따로 갖춰 놓았더라는 이야기도 건너 들었다. 그만큼 선물 주고받을 일이 많다는 이야기다. 한국은 이제 대형 서점에서나 겨우 볼 수 있는 카드 코너가 동네 마트마다 크게 갖춰져 있는 이유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살펴보면 생일카드라고 다 같은 생일카드가 아니다. 아빠 생일, 엄마 생일, 할머니 할아버지 생일, 여자아이 남자아이 생일, 5번째 6번째 50번째 따위 나이별 생일까지 다양한 테마의 카드가 팔린다.
생일에 친구를 초대한다면 소외받는 친구가 없게끔 학급 전체에 초대장을 돌리도록 권고하는 학교도 있다고 한다. 아이가 다니는 학교의 경우 그런 제한이 없어서 보통 10명 내외가 모이곤 했다. 하교 후에 가방을 열어보니 종이 초대장이 들어 있는 경우도 있었지만 요즘은 ‘evite’를 많이 쓴다. 이메일(email)로 보내는 초대(invite)인데, 파티 일시와 장소 같은 기본 정보가 나오고 참석 여부(RSVP)를 회신할 수 있다. 다른 친구들은 누가 오는지도 볼 수 있고 날짜가 다가오면 리마인드도 해준다. 파티가 끝난 뒤에는 그날 찍은 사진을 업로드해서 생일 주인공에게 전달해줄 수 있다.
파티는 대개 비슷한 순서로 진행된다. 아이들이 한참 어울려 놀았다 싶으면 케익을 자르고 음식을 나눠 먹는다. 헤어질 땐 주인공 측에서 그날 참석해준 친구들에게 작은 과자나 장난감 따위가 들어 있는 구디 백(goodie bag)을 답례품으로 준다.
아이들이 함께할 수 있는 즐길거리를 마련하기도 한다. 과자 가게의 쿠키 만들기 클래스부터 실내 스카이다이빙 체험까지 천차만별이다. 극장, 워터파크, 네일스파를 비롯한 많은 곳에서 어린이 생일파티 패키지를 제공한다. 공원 피크닉 테이블에 간식거리를 차려 놓고 소박하게 치를 수도 있지만 시설을 빌릴 경우 초대 인원에 따라 수천 달러 이상이 들기도 한다. 전에는 친구들을 집으로 초대하는 경우도 많았지만 코로나 사태를 겪으며 집에 모이는 것은 아무래도 조심하는 분위기가 됐다고 한다.
아이들이 파티를 즐기는 동안 부모들은 주변에 둘러서서 이야기를 나누게 된다. 영어에 자신이 없고 내성적인 성격인 탓에 처음에는 영 좌불안석이었다. 그러나 거듭 파티에 참석하고 늘 만나는 부모들과 어울리다 보니 이제는 한결 익숙하고 편해진 느낌이다. 처음 미국에 도착했을 때 “아이의 교우 관계를 생각해서 생일파티는 초대받으면 꼭 가라”고 조언해준 지인이 있었다. 그 말도 맞지만 어린 자녀를 둔 연수생 부모의 네트워킹에도 도움이 되는 자리가 아닐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