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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녀 영어 정복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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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만 2년6개월짜리 남자아이


  작년 7월 연수를 처음 왔을 때 우리 네 식구 중 가장 제대로 미국 사회를 경험하는 인물은 의외로
  4살짜리(만 2년6개월) 막내 아들(은수)이었다. 우리 가족이 외식이라도 하러 가면 “나 이거 먹어봤어”,
  새 장난감 사주면 “이거 어린이집에 있어”, 우연히 듣게 된 동요는 따라서 흥얼거리며 “어린이집에서
  배웠어”… 오전 9시부터 오후 5시까지 한국인이 전혀 없는 어린이집에 넣어놨더니 반(half) 미국인
  이 돼가는 거 같아 반가우면서도 낯설 지경이었다.
 
  영어도 외국어를 한다는 의식 없이 툭툭 내뱉는다. 왓 칼라? 그린? 댓츠마인~ 정도는 아주 빨리
  마스터하더니 어느새 ‘땡큐, 해브 어 굿 데이’ 정도도 능숙하게 한다. 아침에 우유 더 마시라고
  하면 ‘노 모어~’ 이러질 않나. 영어발음도 은수가 갑이다. 예스가 아니라 야압 하는데 전혀 한국식
  발음과 거리가 멀고, ‘노’도 그냥 ‘노’가 아니라 ‘노오우’라고 한다. 어린이집의 제일 친한 친구가
  Dominic 이라 우리가 도미닉 도미닉 할 때는 못 알아듣더니, ‘따아아아미닉’ 하니 단 번에 알아
  듣는다.
 
  키즈카페에 가서는 놀이기구를 기다리지 않고 새치기를 하길래 내가 ‘돈 컷인 더 라인(Don’t cut
  in the line)’하니까‘웨잇 히어?(wait here?)’하면서 되묻는 것이었다. 이 아이는 아마도 한국에
  돌아가면 단번에 한국인 유아로 리셋 모드가 될 것이지만, 몇 년 뒤 초등학교 중학교에서 영어수업
  을 받으면서 왜이렇게 내가 이 언어에 익숙한지 스스로 궁금해 할 것이다. (Hopefully!!! 너한테
  들이는 돈이 얼만데… 당연하지.. 응?)
 
  막내아들이 다니는 어린이집은 비싼 만큼 한국 어린이집과 비교해 좋은 점이 몇 가지 있는데,
  첫째는 앱을 통해 하루에 예닐곱 차례 아이의 활동을 알려준다는 것. 간식 몇% 먹었다, 낮잠을
  언제부터 잤고 언제 일어났다, 오늘 학습 활동으로는 뭘 했다(사진 첨부) 등등. 또 앱이나 이메
  일로 선생님에게 무슨 질문을 하더라도 답장이 바로 온다. 또 매일매일마다 교실에 새로운 장난
  감이 비치돼 있다는 것이다. 한국 어린이집은 아이들을 위해 깔려있는 물건은 늘 비슷해 보였다.
  그런데 여기는 자석블럭, 모래놀이, 색종이와 가위 등 놀잇감이 계속 달라지는 것 같았다. 또
  아이를 데려다주거나 찾으러 갈 때 직접 교실 안까지 들어갈 수 있다. 그러면 아이들이 실제 노
  는 모습, 선생님들이 아이에게 하는 행동들을 리얼타임으로 관찰할 수 있으니 어린이집의 투명성
  이 더 올라가는 것 같다.


2.만 6년 6개월 남자 어린이
 
  큰아들은 미국에 오기 전 적응하라는 차원에서 외국인과 1:1 영어회화를 일주일에 한 번씩 시켰다.
  영어 자체는 그리 나아지지 않는 가운데 그래도 파란 눈의 외국인을 마주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은
  많이 사라진 것이 그나마 최대 소득이었다.
 
  막상 미국 초등학교를 집어넣으니 처음엔 모든 게 예상한 대로. 반에 10-20% 정도는 한국말이 가능
  한 한국인(또는 코리언 어메리칸)인데 쉬는 시간에는 얘들하고만 어울리는 것이었다. 학교에서 내
  주는 라이팅 숙제 같은 것은 부모가 100% 써주다시피 했다.
 
  학교 입학 일주일 정도 된 시점이었을까. 큰아들은 학교 급식 시간에 봉지에 담긴 우유가 나오는데
  그걸 혼자 뜯는 게 어려워서 우유를 못 마시고 왔다고 했다. 그래서 우린 ‘Can you please open
  this milk?’라는 영어표현을 가르쳐주면서 이 문장을 외워서 옆에 있는 친구나 선생님에게 말하라
  고 했다. 하지만 그걸 못한 아들은 일주일 동안 그 좋아하는 우유를 못 먹고 집에 돌아왔다.
 
  하지만 얼마 전 아들은 엄마에게 외국어라는 인식없이 하는 아주 자연스러운 영어로 ‘can you open
  this?’ 라면서 과자 봉지를 내밀었다. 6개월 전의 경험이 떠오르면서 감개무량했다.
 
  지금 큰아들은 학교에서 내주는 숙제 대부분을 혼자서 하고 있다. 10페이지 남짓의 짧은 영어동화
  (온라인)를 읽으면 모르는 단어 한두개 정도만 물어볼 뿐. 그렇게 어려워하던 라이팅 숙제와 발표
  도 약간만 도와주면 스스로 써낸다. 우리도 부모로서 짧은 영어지만 웬만하면 많은 의사소통을 영
  어로 하려고 애썼고, 이런저런 이유로 친해진 미국인 할머니에게 주1회 무료로 영어 튜터링을 받게
  하는 등의 노력을 했다. 하루 제한된 시간만큼만 집에서 보는 만화영화는 무조건 자막 없는 영어
  디즈니 애니메이션인데 처음에는 하나도 못 알아듣고 영상만 보더니 이제는 만화 보면서 들었던
  생소한 영어단어를 나에게 물어봐가면서 그 뜻을 조금씩 이해하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