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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동차 사고 처리 요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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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 2600파운드(보험료 포함)을 지불하고 산 차는 운행에 별다른 문제를 낳지 않았다. 주변 사람들도
잘 뽑았다고들 했다. 운이 좋았던 셈이다. 중고차로 마음 고생한 사례들을 간혹 접할 수 있다. 7천
파운드 이상 주고 산 차가 유럽 여행 중 갑자기 서버렸다거나, 스코틀랜드 여행에서 돌아오던 중 고속
도로 위에서 속도가 올라가지 않아 거북이 운행했다거나…

 

운은 그리 길지 않았다. 지난 8월 말 일주일간 스코틀랜드 여행을 떠났다. 일주일 간 주행 거리를
따져보니 무려 2000마일이 넘었다. 물론 차에는 아무런 이상이 없었다. 하지만 두 차례 사고를 경험
했다. 첫 번째 사고는 여행 이틀째 스코틀랜드의 한 도시인 글래스고 주변 고속도로에서, 두 번째
사고는 여행 마지막날 영국 중부의 호수지방(Lake District) 부근 주차장 앞 도로에서 발생했다.

글래스고 사고는 고속 운전 중이긴 했으나 내 차를 보지 못하고 차선을 변경하려던 차가 살짝 부딪
히고 튕겨나간 터라 큰 데미지를 입지는 않았다. 조수석 쪽 문과 사이드미러가 좀 훼손됐다. 두 번
째 사고는 좀 컸다. 내가 달려오는 차를 보지 못하고 우회전 하다가 사고가 발생했다. 차량 왼쪽 앞
범퍼와 조수석 사이드 문이 훼손됐고 보조 헤드라이트 하나가 완파됐다. 나의 사고 처리 순서는 다음
과 같다.

 

a. 한국처럼 상대방과 연락처를 교환하고 사고 부분을 사진으로 찍었다. (목격자를 확보하면 사고
   처리 과정에서 과실 비율을 따질 때 유리하나, 사실 불가능했다. 오히려 목격자들은 빨리 차를
   빼라는 요구를…^^)

 

b. 내가 보기에 첫 번째 사고는 상대방 과실, 두 번째 사고는 쌍방 과실로 판단이 됐으나, 두 번 다
   상대방은 자기는 잘못 없다고 소리를 쳤다.(이건 한국과 마찬가지) 사실 그들이 뭐라고 하는 지도
   알아듣기 힘들었고, 옥신각신하기도 귀찮아서 보험처리하자고 했다. 현장에서 상대방과 감정 낭비
   를 할 필요는 전혀 없다. 영국에선 대형 사고가 아닌 이상 경찰이나 보험사 직원은 안 부르고 불
   러도 안 온다.

  (*나중에 알게 된 건데, 상대방 연락처와 이름, 주소 외에도 반드시 상대편 보험사 이름과 보험
   등록번호를 받아둬야 한다고 한다. 영국은 유심칩을 갈아끼워 통화를 하는 방식인지라 유심 버리
   고 잠적하는 경우도 많다고 한다. 운이 안좋으면 그런 상대방을 만날 수도 있다는 얘기. 또 사고
   를 내고 도망가는 경우도 있다. 많은지는 모르겠으나 주변에 이런 일을 당한 사람이 둘이나 있다.
   블랙박스 설치를 권고하는 이들이 많다.)
 
c. 보험사에 연락을 해야 하는데 자신이 없었다. 사고 관련 정보를 상대방에게 영어로 정확하게 전달
   하지 못할 것 같았다. 또 여행 중이라 사고 처리에 마음을 쓰고 싶지 않았다. 사고 즉시 보험사에
   고지할 필요는 없다.

 

d. 여행 복귀 뒤 가입한 보험사 홈페이지에 가보니 사고 고지(claim) 카테고리가 있었다. 항목별로
   잘 정리가 돼 있었다.(* 이건 그 회사의 고유 양식이 아닌 듯 했다. 다른 보험사들도 똑같은 양식
   을 운영하고 있었다.) 필요한 정보를 자세히 기입했다.

 

e. 온라인으로 고지를 했는데도 이틀이 지나도록 아무런 답변이 없었다. 제대로 접수가 됐는지부터
   의구심이 들었다. 결국 해당 보험사의 사고 처리 담당자에게 이메일을 보냈다. ‘내가 접수한
   사고 봤냐’ 메일을 보내고 나서 보니 집에 우편물이 하나 왔다. 접수가 잘 됐다고 했다. 이틀
   의 대기 시간은 아마도 우편물이 오는 데 걸린 시간이었던 모양. 그 뒤부터는 이메일로 의사 소
   통을 했다. 물론 보험사에서 여러 차례 전화가 왔는데, 모두 이메일로 소통하자, 난 외국인이다
   라고 하니 다들 오케이했다.(* 사실 돈이 걸려 있으니 모두 기록으로 남겨둘 필요도 있다. 호기
   부리지 말고 이메일로 소통하자

 

f. 사고 처리 과정에서 특이한 점 하나는 로펌에서도 연락이 왔다는 것이다. 알고보니 내가 가입한
   보험사와 계약을 맺고 있는 로펌이었다. 그 로펌은 상대방 잘못이 명백해 보이나 잘 인정을 안
   하는 듯 하니 소송을 걸어보자는 거였고 여기에 덧붙여서 인적 보상도 받아내겠다는 제안이었다.
   이 로펌과 여러 차례 이메일을 주고 받은 뒤 난 이 제안을 거절했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 소송에 걸리는 시간이 수개월 걸린다.
   – 상대가 잘못을 인정할 경우 나에게 돌아오는 실익은 자기 부담금(400파운드) 면제와 무사고
     경력 유지이다. 400파운드 아끼자고 수개월간 입씨름을 하는 건 비효율적이라고 봤다. 더구나
     1년 만 머물다 떠날 것이라 무사고 경력 유지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 (* 1년 이상 체류할 경우
     엔 유사고자의 보험료는 수직 상승한다고 한다.)

 

g. 보험사는 차의 사고 수준을 파악하기 위해 점검을 해야 한다고 했다. 안내 받은 정비소에 가서
   점검을 받았다.

 

h. 예상치 못한 선택의 갈림길에 섰다. 점검 결과 수리비 견적이 차 값을 넘어섰다. 보험사는 수리
   는 비경제적이라며 차를 자기들한테 넘기라고 했다. 낭패였다. 견적서를 요구했더니 예상 수리
   비가 2000파운드가 나왔고, 차 값은 사고 전 시장 가치 기준으로 2400파운드로 추정된다고 했다.
   (* 명목 가치는 차 값이 더 높지만 보상 기준에서 적용하는 수리비/차값 비율이 따로 있는 것
   같았다. 웹 서치를 해보니.) 보험사는 시장가치(2400)에서 자기부담금(400)을 차감한 금액을 지
   급하겠다고 했다.

 

I. 갑자기 새 차를 사기가 번거로울 것 같고 또 새 차에 들어갈 보험료(이젠 유사고자가 됐으니 보
   험료가 넉히 2000파운드는 넘을 것 같았다.)까지 생각하니 답답증이 일었다. 다시 메일을 썼다.
   차 손실을 점검한 정비소가 수리비를 너무 높게 책정한 듯하니 내가 다른 정비소에 가서 견적을
   받아보겠다. 그곳에서 차를 수리하면 보상은 어떻게 받나라고 물었다.

 

j. 수리비에서 자기부담금과 함께 사고 후 차 값(* 보험사는 사고 차량을 인수한 다음 다른 자동차
   정비업체에 매각해 자금을 회수한다)으로 추정된 490파운드를 차감한 금액을 지불한다고 했다.
   새차를 구매하는 데 들어갈 비용(보험료 포함)에 견줘 이게 좀더 경제적인 듯 했다.

 

k. 허나 동네 어느 정비소에서도 수리할 수 없었다. 모두 수리비가 차 값을 넘어섰기 때문이다. 이
   때 흥미로운 이야기를 들었다. 아니 내가 오해한 대목을 알게 됐다. 사고 차량을 보험사에 넘긴
   뒤 새 차를 구매할 경우 보험 계약은 그대로 유지된다는 사실이었다. 즉 난 차를 넘기고 받은
   보험금(약 2000파운드)으로 새 차를 사면 되는 것이었다. 보험사에 관련 문의를 넣으니 맞다고
   했다. 아마도 현지에선 상식에 해당하는 사안이어서 따로 고지를 안 해준 모양이었다.

 

l. 지난 10월 11일 보험사가 와서 사고 차를 가져갔다. 사고 발생 시점 기준으로 한 달 보름 정도
   만이다. 처리 기간이 길어서 불편했다는 게 아니라 길어도 된다는 것이다. 사고가 나더라도 당황
   하지 말고 여유를 갖고 대응하는 게 낫다. 사실 보험사는 9월중순부터 차를 가져가겠다고 했으나
   개인적으로 바쁜 일도 있었고, 차 없이는 시장에도 가기 어려운 상황이어서 차일피일 내가 미뤘
   다. 어떤 이들은 이렇게 미루면 보험사들이 보상을 줄이는 등 입장을 바꿀 수 있다며 차 넘기라
   고 할 때 빨리 넘기라고 조언을 해줬는데, 꼭 그럴 필요는 없는 듯 하다.

 

m. 10월 16일(월) 새 차를 구매했다. 이번에는 1회에서 언급한 차구매법 중 세 번째 방법을 택했다.
   오토 트레이더를 통해 후보군을 정한 뒤, 현지 이주민들에게 감식을 받았다. 매장에 가서 선택
   한 매물을 시운전해보고 구매했다. 한 푼도 할인을 받지는 못했다.(* 월요일은 영국 문화에서
   디스카운트를 잘 안 해준다고 함.) 중고차 업체는 같은 매물을 매장에선 2500파운드, 오토트레
   이드엔 2280파운드로 가격을 제시하고 있었다. 나는 2280파운드에 샀다.

 

n. 보험에 가입하지 않으면 차를 직접 집으로 가져갈 수 없다. 통상 중고차 매장에서 바로 보험에도
   가입하는 시스템이다. 다만 이런 방식을 원하지 않는다면 중고차 업체 직원에게 집까지 차를 배
   달해달라고 요구할 수 있다. 업체마다 무료로 딜리버리 서비스를 제공하기도 한다. 나는 신규 가
   입이 아니기에 매장에서 보험사에 전화를 걸어 보장 대상 차 변경을 요청했다. 이전 차보다 배기
   량도 크고 가격도 비싼 터라 보험료 110 파운드를 추가 지불하라고 했다. 온라인 뱅킹으로 지불한
   뒤 차를 집으로 가져왔다. 새로 산 중고차는 2007년식 포드 c-max로 8만마일 운행한 차량이다. 
 
o. 18일 현재 아직 보험사는 보상액을 지급하지는 않았다. 통상 보름 이상 걸린다고 한다. 예상 보
   상액은 2000파운드(사고 전 차의 시장가치 2400파운드 – 자기부담금 400파운드)이다.

요약
 
1. 사고 발생 즉시 보험사에 전화하지 않아도 된다. 차분하게 이메일이나 보험사 전용 온라인 사고
   고지 시스템을 활용하라.
2. 예상 수리비가 차 값을 상회하면 차를 보험사에 넘겨라
3. 새 차를 구매하더라도 보험 계약은 유지된다. 새 차의 가격에 따라 보험료는 일부 환불을 받을
   수도 추가 지불할 수도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