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목록보기

자동차 서부여행

by

대체로 미국여행을 논할 때 동부는 도시고, 서부는 자연을 보는 것인 것 같다. 특히 서부쪽 여행을 경험했던 많은 사람들이 꼭 가봐야 할 자동차 여행루트로 꼽는 게 그랜드 캐년 일대이고, 다른 하나는 옐로스톤을 끼고 캐나다 밴프, 제스퍼 국립공원을 도는 록키 마운틴이다.

아이들의 겨울방학을 기회로 12월20일부터 1월3일까지 서부여행을 다녀왔다. 사전 준비로 인터넷에 떠 있는 여행기를 뒤져보고, 여행서적도 참고했지만 잘 와 닿지 않았다. 많은 사람들이 겨울 자동차여행은 조심해야 한다고 했다. ‘무식하면 용감하다’고 집에 있는 식량의 대부분을 싣고 겨울 폭풍이 몰아치던 어느 아침에 시애틀을 출발했다.(이날 시애틀은 눈이 6인치 쌓였다는 말을 뒤에 들었다.)

LA, 샌디에고, 라스베가스 등 대도시만 숙소를 예약하고, 나머지 예정 숙박지는 예약하지 않았다. 겨울폭풍이 서부 일대에 몰아친 시기라 예정대로 갈 수 있을지 판단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하늘의 도움으로 대체로 청명한 날씨 속에 장대한 서부의 대자연을 만끽하고 즐거운 마음으로 귀환할 수 있었다.

시애틀 출발부터 도착까지 14박15일간의 여행동안 약 4,800마일(7,700km)를 달렸으니 별의 별일이 다 생겼지만 되씹어보면 하나같이 우리 가족의 추억거리가 될 것 같다. 그랜드 캐년 일대의 유명관광지에 대한 감상은 워낙 인터넷에 많이 떠 있기에 생략했고 후에 자동차로 서부여행을 계획하시는 연수자들이 미흡하나마 참고할 수 있게 되기를 바란다.

시애틀 출발→I-5, 199번 도로 CRESCENT CITY 캘리포니아(505마일, 숙박)→ US 101, CA 1번도로 샌프란시스코(370마일, 이틀 숙박) → I-5 LA, 애너하임(400마일 이틀 숙박) → I-5 샌디에고(97마일 이틀 숙박) →I-8, I-10, I-17, 89번도로 세도나(462마일) → 89번도로 FLAGSTAFF(30마일 숙박) 애리조나→180, 64번 그랜드 캐년 사우스 림(78마일) →64, 89, 160, 163번 도로 KAYENTA(155마일 숙박) 애리조나→163번 도로 나바호 모뉴맨트 밸리(40마일) →163, 261, 95, 275 NATURAL BRIDGES NATIONAL MONUMENT(88마일) 유타→275, 95, 191 MOAB(117마일 숙박) 유타→아치스 국립공원(25마일) →128, 191, I-70, 89, 12번도로 브라이스 캐년 앞(300마일 숙박) →브라이스 캐년→63, 12, 89, 9번도로 자이언 캐년(88마일) →9, I-15 라스베가스(157마일 숙박) → 85, 373, 127, 190번 도로 데쓰 밸리(130마일) →190, 374 BEATTY 네바다(33마일 숙박) 95, 6, 376, 50, 305, I-80, 95, I-84번도로 BAKER CITY 오리건(682마일 숙박) →I-84, I-82, I-90 시애틀(378마일 도착)

서부여행은 사실 먼 길이라도 지루한 줄 잘 모른다. 목적지 관광은 물론이고 가는 과정 자체가 어트랙션일 경우가 많다. 한편으론 어떤 난관이 기다리고 있을 지도 예측을 불허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도로를 달리다 주위 경관에 놀라 여러 번 차를 세우고 카메라 셔터누르기에 바빴던 적이 한 두 번이 아니다. 퍼시픽 코스트 하이웨이 혹은 캘리포니아 1번 도로로 불리는 캘리포니아 해안도로는 절경이다. CRESCENT CITY를 출발해 101번 도로와의 갈림길에 있는 reggett에서 멋모르고 들어선 1번 도로는 태평양 바다와 기암괴석, 해변이 어우러진 환상적인 코스였지만, 구불구불한 절벽코스가 적지 않았고 겨울폭풍 탓에 비바람도 거세 해안 절경을 즐길 여유가 없었다. 특히 샌프란시스코에 진입하기 직전 50여km를 남기고 밤이 되는 바람에 거북이 걸음으로 겨우 목적지에 도착했다. 대개 1번 도로라 하면 샌프란시스코 아래쪽에 있는 몬테레이 17마일을 떠올리지만 쾌청한 날 샌프란시스코 북쪽 약 350km에 달하는 1번 해안도로는 한번 도전해 봄직 하다.

오전에 나바호 모뉴맨트 밸리 관광을 마치고 시간이 남는 바람에 들른 내츄럴 브리지 내셔널 모뉴맨트로 가는 과정은 간담을 서늘하게 했다. 예정에 없던 코스라 사전에 도로사정을 체크하지 않았는데 행로인 261번 도로를 타고 가다 보니 ‘switch back’, 트럭은 올라가지 말 것이라고 적혀 있는 게 아닌가. 아니나 다를까 절벽을 지그재그 식으로 올라가는 도로가 나타났다. 좀 과장해서 90도 각이다. 미끄러지면 낭떠러지다. 이미 절벽도로에 들어선 뒤라 차를 돌릴 곳도 없었고, 방호벽이나 난간도 없이 눈과 얼음으로 덮힌 도로를 거의 시속 5마일도 안되는 속도로 엉금엉금 기어 올라갔다. 내려오는 차는 한 대도 없었고, 올라가는 차는 우리 밖에 없었는데 다 오르고 나서 보니, 꼭대기에서 한 승용차가 내려갈까 말까 망설이고 있는 게 보였다. 오르고 난 뒤 바라본 모뉴맨트 밸리 주변의 대평원은 붉은 먼지 안개 속에 잠겨 있는 몽환적 장면을 연출하고 있었다. 나중에 인터넷을 검색해보니 261번 도로는 꽤나 유명세를 타고 있었다.

아치스 국립공원에서 브라이스 캐년으로 넘어가기 위해 탔던 I-70도로는 INTERSTATE 도로라는 이름에 어울리지 않게 중간에 휴게소에 없어 애를 먹었다. 끝없는 황무지와 높은 산맥이 가로놓인 이 도로는 어느 지점부터 ‘160마일 NO SERVICE’라고 적혀 있었고, 내 차의 기름은 절반 정도 남아있었다. 주유소는 물론이고 인가도 없는 도로 한 가운데서 바닥을 드러내지나 않을까 마음을 졸였는 데 주유소에 도착했을 때 게이지는 한 칸 정도 남아있었다.

데쓰 밸리 일주를 마친 뒤 시애틀 귀로를 어디로 잡아야 할 지 고민이었다. 샌프란시스코 쪽으로 방향을 돌려 I-5를 탈 지, 아니면 I-15로 왔던 길을 되돌아가 솔트 레이크시티를 거쳐 I-84를 타야할 지 고민이었다. 큰 도로가 안전하지만 왔던 길을 또 가야 하는 게 꺼려졌다. 그래서 95-376-305-95로 이어지는 네바다 관통로를 타기로 했다. 인터넷에 이렇다 할 경험기가 없는 점이 꺼림직 하기는 했지만 인터넷으로 찾아보니 날씨나 도로사정이 나쁘지 않았다. 결과적으로 잘 한 선택이었다. 이 관통로는 산맥과 산맥 사이에 형성된 거대한 사막형 분지에 나 있는 평탄한 도로로 우리 가족은 내내 도로 양쪽 설산의 호위를 받으며 즐겁게 북행했다. 2차선 도로라 위험성이 없지 않지만 5, 6시간 동안 마주 오는 차가 10대 정도 밖에 되지 않았으니 이 도로가 얼마나 한산했는 지 짐작할 것이다.

중간에 잠시 스쳐가는 US-50도로는 ATLAS 지도에도 LONELIEST ROAD라는 친절한 설명도 있었다. 더욱이 주도라도 제한 속도가 70마일이나 돼 나는 78마일 정도로 크루저를 놓고 편안하게 오리건에 진입할 수 있었고 순찰차도 거의 눈에 띠지 않았다. 한 순찰차는 80마일을 넘지 않는 내차를 보고 속도를 줄이라는 DOWN 수신호만 할 뿐 잡지는 않았다. 여름이라면 사막지대라 차가 퍼질 우려도 없지 않겠지만 겨울이라 손쉽게 운전할 수 있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잘 알다시피 미국은 널리고 널린 게 호텔이고, INN이고 모텔이다. 그래서 숙소를 잡는 것은 거의 문제가 없는 데 관건은 요금이다. 날씨문제도 있고 해서 여행을 떠나기 전에 우선 엘에이, 샌디에고, 라스베가스 등 대도시만 PRICELINE을 통해 예약을 했다. 3성급 이상만 잡았는데 신년 대목인 12월31일 라스베가스(100달러)를 제외하고는 모두 60달러, 수수료, 세금까지 해서 75불 정도에 호텔이 잡혔다. 특히 디즈니랜드 근처에 잡은 하이얏트는 도착해보니 너무 으리으리해 저 호텔이 맞나 의심이 들 정도였다.

하지만 식사를 자체 해결하려 마음먹은 자동차 여행이라면 2성급 INN이나 모텔이 유리한 듯 싶다. 내 경우 호텔은 아침, 인터넷이 다 유료였고, 8, 10층 등 고층에 방이 잡혀 짐을 옮기기 불편했다. 호텔에서 간혹 킹 베드 하나만 주는 경우도 있어 네식구인 경우 꼭 2 퀸 베드를 요구해야 한다. 또 PRICELINE으로 예약할 경우 2명만 보증을 하지, 그 이상은 못한다는 메시지를 보내오는데 호텔은 걱정할 필요가 없다. 인원수를 묻지 않는다.

INN, 모텔은 하루 70달러 안팎이었는데 이른바 ‘대륙 식사’라는 아침이 제공됐고 인터넷도 느리지만 무료였다. 우리 가족은 염치 불구하고 우유나 주스, 과일, 시리얼, 빵 등을 점심용으로도 갖고 나왔다. 나는 꼭 1층 방을 요구해 짐을 쉽게 옮길 수 있도록 했다. 저녁식사를 빨리 해결하기 위해서다. 피곤한 몸을 이끌고 짐을 오르내리면 쉽게 짜증이 난다.

여행 첫날 예약 없이 간 CRESCENT CITY의 WEST BEST INN은 80달러를 요구해 “겨울폭풍 땜에 다른 여관도 많이 비어있다. 깎아달라” 했더니 잠시 머뭇거리던 종업원이 ‘YOU WIN’이라며 10불을 할인해줬다. 데쓰 밸리 내의 여관은 말로만 INN이지 별장 느낌을 주었고, 평일인데도 방이 없었다. 물어보지는 않았지만 방값도 100달러 이상은 될 성 싶었다. 사막의 밤하늘은 별이 쏟아지기 땜에 인기가 많아 여관잡기가 쉽지 않다. 그 탓에 한 30km 떨어진 읍 수준정도 되는 곳에 방을 잡았다. INN급으로 WEST BEST INN, SUPER 8이 HOT TUB도 있고 시설이 좋았다.

서부의 겨울여행은 운이다.
서부의 겨울여행은 날씨가 제일 문제다. 하루하루가 다르다. 눈이 내리면 관광지 내 도로가 끊기거나 진입로가 차단되는 경우가 많다. 시애틀의 방문학자 중에도 관광 도중에 눈이 내리는 바람에 조난 직전까지 가기도 했다. 여행을 떠나기 전만 해도 그랜드 캐년 일대는 거의 ‘눈’으로 예보됐다. 이번 겨울 폭풍으로 라스베가스 마저도 35년만에 눈이 왔다. 샌디에고에서 만난 한 한국인 가족도 그랜드 캐년을 포기하고 그냥 주저앉았다고 했다.

하지만 우리가 찾아간 그랜드 캐년 일대는 샌디에고에서 출발할 때부터 햇빛이 나기 시작해 1주일 내내 구름 한 점 없는 최고의 날씨로 우리 가족을 반겨주었다. 캐년이나 국립공원 내 도로 곳곳에 눈길이거나 결빙된 곳이 많았지만 2륜구동인 우리 차가 다니는 데 지장이 없었다. 그래서 여행을 떠나기 전날 타이어를 간 것은 매우 잘 한 선택이었다는 생각을 한다. 출발 당일 눈이 쏟아지는 I-5를 달릴 때나 마지막 날 I-84번도로인 오리건 LA GRANDE의 블루 마운틴을 넘는 50km 가까운 눈길 도로 속에서도 미끄러짐이 없었다. 타이어가 좀 오래됐다 싶다면 돈(600-700달러) 생각 하지 말고 과감히 갈고 겨울 서부여행을 떠나기를 바란다.

앞서 아찔한 도로를 언급했지만 되도록이면 예정에 없는 일을 끼워넣지 말고 날씨와 도로사정을 숙소에 들어가서는 매일 수시로 체크를 해봐야 한다.
http://safetravelusa.com, http://www.wrh.noaa.gov, http://www.nps.gov등이 실시간으로날씨와 도로사정, 국립공원 사정을 체크할 수 있는 미 정부의 공식 사이트들이다. 그리고 미국여행 전문가인 나바호킴의 http://cafe.naver.com/navajokim.café, 서부자동차여행사이트인 http://www.usacartrip.com 등 국내 미국여행 사이트의 여행기도 떠나기 전이나 숙소에서 여러 번 읽고 숙지하면 뷰 포인트나 필수정보를 놓치지 않을 것이다.

여행은 고생이지만 할만한 가치가 있다고 새삼 느꼈다. 놀이시설 땜에 거친 샌프란시스코나 LA, 샌디에고 등 대도시를 보면서 숲과 나무, 호수, 산과 바다가 함께 어우러진 시애틀이야 말로 진정한 자연도시라는 점을 재삼 확인했다. 그랜드 캐년 일대의 유명 관광지를 ‘원 샷’에 거의 빠짐없이 본 것은 큰 행운이라는 말을 갔다 와서 많이 들었다. 최고의 관광지인 그랜드 캐년은 정비가 잘 된 곳이라 차치하고라도 브라이스 캐년은 몹시 눈이 많은 동네라 겨울에는 수시로 문이 닫힌다. 여름에 최고 섭씨 57도까지 올라간다는 사막지대인 데쓰 밸리는 겨울이 최적기고 5월을 넘어서면 차가 운행 도중에 퍼진단다. 그러니 이 3곳을 다 보는 데 한 3년 걸린다는 말도 있다. 돌아오고 하루가 지난 뒤 우리가 별 탈없이 통과했던 I-90의 노스 캐스케이드 스노퀄미 패스는 눈사태가 나서 며칠동안 폐쇄됐고, 워싱턴 주의 I-5 일부구간은 전례 없는 홍수로 수십마일이 차단돼 ‘운이 따른 여행’이었음을 절감했다.

물론 기대가 어긋난 경우도 있다. 신년을 라스베가스에서 성대하고 재미있게 보내겠다는 우리 계획은 무참하게 박살이 있다. 경찰이 중심가인 STRIP을 바리케이트로 차단해 유명호텔을 제대로 오갈 수 없었고, 엄청난 인파에 치여 자칫하면 애들이 다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에 각 호텔의 무료 쇼도 구경하지 못하고 일찍 호텔로 철수했다.

대자연의 위엄에 초라함을 느꼈던 내가 위험을 자초한 경우도 없지 않았다. 잘 모르는 길을 달린 것은 차치하고라도, 아치스 국립공원에서 뻔히 눈이 덮힌 바위를 절절 매매 내려오는 관광객을 보면서도 그 바위로 올라가다가 미끄러져 3, 4미터 아래로 굴러 떨어질뻔한 일도 있었다. 그 바람에 우리 딸이 울고불고 난리가 났다. 운동용품을 파는 곳에 가면 타이어 체인 같이 신발에 체인 비슷한 것을 묶을 수 있는 것도 판다. 트레일을 좋아하면 이런 것도 미리 사가면 좋겠다.

사전준비와 수시체크를 잘 해야 하지만 욕심을 내지 않는 것 또한 중요하다. 모르는 길은 웬만하면 가지 말고, 만용도 자제하는 게 겨울여행의 필수덕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