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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착 2번 하게 된 사연 : 알뜰폰 통신사 갈아타기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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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착 2번 하게 된 사연: 알뜰폰 통신사 갈아타기 등

1년 연수 동안 정착을 2번이나 하게 된, 흔치 않은 경험을 했습니다. 미국으로 건너온 지 얼마 지나지 않아 갑자기 집을 옮기라는 청천벽력과도 같은 통보를 받은 것입니다.
혹시나 저와 같은 경험을 하게 된다면, 얻어낼 수 있는 편의는 다 끌어내 볼 것을 권하고 싶습니다. 을 중의 을인 위치에서 집을 옮기지 않고 눌러앉을 방법은 없었기 때문입니다.

*집 없는 설움 톡톡히 느끼다

이사 온 지 두 어 달 만에 리징 오피스로부터 온 메일은 “아파트 지붕 보수 공사가 실시될 예정이니 내년 3월 31일까지 집을 비워달라”는 것이었습니다. 거주하고 있는 아파트 단지 내에서 마음에 드는 집을 구하지 못하면 계약 기간이 남아 있더라도 별다른 불이익 없이 다른 곳으로 집을 옮겨도 된다는 ‘친절한’ 설명과 함께였습니다. 세상에, 아직 미국에 적응도 제대로 하지 못했는데 무슨 날벼락인가 싶었습니다.
마침 같은 층에 사는 이웃들 몇몇을 만났습니다. 다들 리징 오피스의 결정에 따를 수밖에 없다고 말했습니다. 한 부부는 별도의 페널티가 없는 것만으로도 감사한 일이라고 하더라고요. 공사 시작 4개월 여 전에 통보해준 게 어디냐면서요. 계약서를 꼼꼼히 살펴보니 계약 파기 때 세입자가 낼 비용이 진짜 만만찮습니다. 정작 임대인 관련 조항은 찾아볼 수 없더군요.
지푸라기 잡는 심정으로 생활 지원 기관 이곳저곳에 문의 전화를 해봤습니다. 답변은 대부분 비슷했습니다. 이른 시일 내에 조건에 맞는 집을 찾아 옮기는 방법뿐이다, 어떤 한 아파트는 보증금도 돌려주지 않고 세입자들을 몽땅 내보냈다 등등. 집 없는 자의 설움을 톡톡히 느끼는 순간이었습니다.

아예 다른 아파트 단지로 옮길까도 생각했지만 바로 옆에 YMCA 센터가 있고 가까이 대형 마트들이 줄줄이 있는 입지를 포기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협상 아닌 협상에 들어갔습니다.
절대 을의 위치였지만 감정에 호소하는 방법을 택했습니다. 힘든 처지를 솔직하게 말하니 여러 편의를 봐줬습니다. 가장 먼저 집을 옮기겠다고 결정해줘서 고맙다는 말과 함께 말입니다. 물론 금전적인 혜택은 전혀 받지 못했지만(이사 비용조차도 지원이 안 된다고 하더라고요) 조건에 맞는 아파트 리스트를 뽑아주기도 하고, 렌트비를 조금 깎아주는 제안을 해주기도 했습니다.
그러기를 두 어 달. 마침내 마음에 드는 집이 나와 옮기기로 했습니다. 기존 집에서 한 층 아래 집을 구하게 된 것입니다. 별도의 이사비 없이 혼자서도 짐을 옮길 수 있을 만한 위치였던 게 결정적인 이유였습니다. 이사 기간을 5일이나 주고 한 달 치 월세에 해당하는 보증금을 면제해 준 것도 나름 혜택이었습니다.

하지만 고비는 끝이 아니었습니다. 1월 말 가장 추운 기간에 집을 옮기는 것도 문제였지만, 하필 아이가 오미크론에 감염돼 격리가 필요한 시기까지 겹쳐 정신줄을 잡고 있기가 여간 힘든 게 아니었습니다. 아이 간호를 하면서 수십 차례 집을 오르내린 끝에 혼자서 이사를 다 마친 것도 기적 같은 일이었지만(미국 온 지 단 5개월 만에 무슨 짐이 그리 늘었는지 모를 일입니다) 새집으로 옮긴 이후 새 계약서에 보증금이 과도하게 청구돼 있어 이를 바로잡고 기존의 보증금을 돌려받기까지 또 한 달여가 소요되면서 마음 고생을 심하게 했습니다.
사실, 세입자를 보호하기 위한 정책이나 제도가 미국에 별로 없다는 게 지금도 믿기지 않습니다. 이사비 지원마저 없는 임대인의 횡포에 별다른 항의 없이 그냥 집을 옮기는 시민들의 모습도 적잖이 당황스러웠습니다.

*휴대폰 통신사 갈아타기 쉬워요

집을 옮긴 뒤 문제가 또 터졌습니다. 새집에서는 인터넷은 물론 전화조차 되지 않는 상황이 종종 발생한 것입니다. 세상에나, 같은 아파트인데 전화조차 안 된다니…. 정착 초기부터 T-mobile 선불 요금제를 이용했는데, 미국 땅덩이가 워낙 넓다 보니 통신사 커버리지가 마음에 들지 않는 경우가 종종 있었습니다. 하지만, 게으른 성격에 기존 통신사의 기존 요금제를 그냥 썼는데, 상황이 이렇게 되니 통신사를 옮기는 방법밖에 없었습니다. 찾고 보니 Verizon 계열사 visible과 T-mobile 계열사 mint mobile, AT&T의 h2o 등 다양한 알뜰 요금제 업체가 있었습니다. 알뜰폰 통신사들의 요금 경쟁은 장난 아니었습니다. 새 고객을 유치하기 위한 경쟁이 정말 치열했습니다. 알뜰폰 통신사들 상당수가 신생 업체인 데다가 요금제는 대부분 선불제이고 해제가 쉬워 할인 혜택이 크지 않으면 고객들을 잡을 수 없을 거라고 판단한 거 아닐까 싶습니다. 워낙 다양한 프로모션이 진행되니 그때그때 가격 비교해보고 판단하면 될 것 같습니다.

저 같은 경우엔 고민하던 끝에 visible을 택했습니다. Verizon 계열사인 visible도 통신 범위가 넓다는 평이 많았습니다. 요금제는 하나뿐이었지만, 추천 코드를 받으면 첫 달 요금이 단 5달러인데다 visible 내의 파티(일종의 그룹 할인입니다. 할인요금 적용받을 파티 참여 인원 4명을 직접 모을 수도 있지만, 앱에 올려져 있는 파티를 클릭하는 것만으로 할인 혜택을 받을 수 있으니 별 어려움이 없습니다)에 참여하기만 해도 매월 15달러씩 통신비를 절약할 수 있었습니다. 무엇보다 데이터가 무제한인데다 핫스팟도 잘된다고 하니 통신사를 갈아타지 않을 이유가 없었습니다.
통신사를 갈아타기로 마음먹고 나서 차근차근 단계를 밟았습니다. 우선 자신의 휴대폰이 해당 통신사 시스템과 호환이 되는지를 확인하는 것입니다. 통신사 앱으로 들어가서 휴대폰의 IMEI 번호를 입력하면 금방 확인할 수 있습니다. 혹시나 휴대폰이 unlock 상태인지도 확인해보고요.

새 통신사로 이동한다고 해도 기존 번호를 유지하는 방법이 있습니다. 저 역시 새 번호를 써도 되지만 그동안 여기저기 뿌려놓은 전화번호가 있어 정보 업데이트하는 것도 일이겠더라고요. 그래서 기존 통신사에 전화해 Account 번호와 Pin 번호를 물었습니다. 이들 번호가 왜 필요하냐는 질문에 솔직하게 답변했습니다. 새로 옮긴 집에서 전화가 안 된다고. 그랬더니 미안하다며, 나중에 더 나은 서비스를 마련할 테니 다시 찾아달라고 하더군요. 정중하게 알겠다고 하고 번호를 받았습니다.
번호를 받은 후 visible 앱에 다시 들어가 어카운트 넘버와 핀 넘버를 넣고 이메일주소를 넣었습니다. 이후 번호 이전에 성공했다는 메일이 오더군요. 새 유심은 2~3일 만에 도착했습니다. 유심 활성화하는 방법은 앱 설명 그대로 따랐습니다. 좀 헷갈리는 부분이 있어 전화를 걸었더니 상담원이 친절하게 설명해줘 금방 통신사를 갈아탈 수 있었습니다.

졸지에 정착을 2번이나 하게 됐지만, 이 과정에서 많은 걸 배웠습니다. 당시엔 몸도 마음도 지치고 힘들어 아무것도 하기 싫을 정도였지만 다양한 경험을 쌓으라는 뜻이라 생각하니 이 또한 추억이 됐습니다. 물론, 또다시 겪고 싶지는 않은 추억이지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