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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인과 거짓말 그리고 미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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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중간선거를 앞두고 미국에선 두 정치인의 거짓말 추문이 화젭니다
민주당 소속으로 상원의원 출마를 준비중인 코너티켓주 검찰총장 리처드 불루멘탈과 5선 하원의원으로 역시 상원의원 출마를 공언한 마크 커크 의원이 주인공들입니다. 두 사람 모두 있지도 않거나 하지도 않은 군 경력을 거론했다가 집중포화를 맞고있습니다.

불루멘탈씨는 2008년 봄 한 연설에서 자신이 베트남 전에 참전했다고 말했습니다.
가족을 전쟁터에 보낸 사람들과 참전용사들이 모인 기념식에섭니다. 거짓말입니다.
심지어 이런 말까지 합니다.
자신을 포함해 베트남전에 참전했다 돌아오는 군인들에 대한 고국의 냉담하고 적대적인 반응을 경험했다고 합니다. 귀국 참전용사 대열에 불루멘탈은 물론 없었습니다.

불루멘탈씨는 베트남전이 한창이던 시절 다섯 번에 걸쳐 징병연기를 신청했습니다.
마지막 징병연기를 신청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자 베트남 전에 가지 않아도 되는 국내 해병 예비대에 배속되고 여기서 훈련과 지역사회 사업에 동원된 게 답니다.

한 언론사의 취재로 거짓말이(비록 2년 전 일이지만) 들통나자 불루멘탈씨는 잘못 말했다(misspoken)라고 합니다. 자신이 국내 예비대에서 지역사회(Nofolk)사업에 동원돼 일한 것을 베트남전에 참전한 것으로 혼동했다는 겁니다.

그냥 잘못했다 하고 용서를 구할 일이지 말도 안되는 변명이 또 화를 불렀습니다
불루멘탈씨는 베트남전에 참전했다는 말을 한 번이 아니라 이곳 저곳 연설에서 여러차례 언급한 사실이 언론의 추가 취재로 드러났습니다. 한 정신과 의사의 진단대로 자신이 진짜 베트남전에 참전한 것으로 믿지않고서야 상식적으로 이해가 되지 않는 거짓말 퍼레이드입니다.

군경력 거짓말로 원치않는 언론의 주목을 받은 또 한사람의 정치인은 공화당 소속 하원의원 마크 커크 의원입니다. 실제 해군 첩보장교 출신인 커크 의원은 자신의 군 경력을 십분발휘, 하원 외교안보 위원회에서 활동했습니다. 문제는 커크 의원이 자신의 군경력에 사족을 달았다는 것입니다. 커크 의원은 1990년 이라크전 때 실전에 참여했다고 말하면서 이라크 상공에서 이라크군의 대공포화를 경험했다고도 했습니다. 하원의원 가운데 1차 이라크전에 참전했고 그것도 실전에 참전한 사람은 자신이 유일하다고 떠벌이기 까지합니다. 역시 거짓말입니다.

커크 의원은 자신의 실전경험이 거짓으로 드러나자 그런말 한 적 없다고 잡아떼면서 문제가 더 커졌습니다.커크 의원이 자신의 말을 부인하자마자 미국 방송사들은 커크 의원이 의사당에서 동료 의원들을 상대로 자신의 실전경험을 이야기하는 모습을 화면으로 그대로 보여준 것입니다.

업친데 덮친 겪으로 커크 의원은 자신이 해군 첩보장교로 있을 때 올해의 최고 첩보장교 상을 수상했다고 말합니다. 역시 거짓말입니다. 문제가 커지자 커크 의원은 “최근 나의 해군 기록을 다시 검토해본 결과 잘못 알려진 것이 있었다” 라고 말합니다. 역시 깔끔하게 잘못했다고는 말하지 않습니다.

그동안 미국사회는 정치인들의 엄격한 도덕성을 요구해왔습니다. 특히 군 문제나 가족 문제에 관해선 더욱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고, 하물며 거짓말을 했다면 이는 정치적 사망과 바로 연결돼 왔습니다.

그런데 이상한 일입니다.
명백한 거짓말이 드러났지만 블루멘탈씨는 지역 여론조사에서 부동의 1위를 달리고 있습니다. 커크 의원 역시 공화당 내 탄탄한 지지를 기반으로 오바마 대통령의 전직인 일리노이주 상원의원 자리에 가장 근접한 후보로 꼽히고 있습니다. 거짓말이 들통난 두 사람이 상원의원 선거에 나서지 않기로 했다는 소식은
아직 들리지 않습니다.

군대에서 조국을 위해 봉사하는 것을 무엇보다 특별히 여기고 존경하는 미국문화에서, 그래서인지 대통령을 비롯해 조그만 직이라도 갖고 있는 사람이라면 어떤 공식석상에서도 복무중인 군인들에 대한 존경의 언급을 빼놓지 않는 미국에서 군 경력을 갖고 거짓말을 한 유력 정치인들이 뻔뻔스럽게 고개들고 다니는 현상이 미국인들에게도 꽤 이상했나 봅니다. 갖가지 TV 대담 프로그램과 신문의 의견란을 통해 다양한 분석이 쏟아지고 있는데 공통적인 이야기는 이렇습니다

먼저, 거짓말을 한 정치인들은 자신이 잘못했다고 절대 이야기 하지 않고 단지 실수나 오해가 있었을 뿐이라고 해명하는데 이는 깨끗이 거짓말을 인정하고 여론의 처분을 기다리던 과거 정치풍토와 달라진 것이라고 합니다. 그러고도 버틸 자신이 있다는 이야깁니다.

무슨 이야기냐 하면 오바마 대통령 취임 이후 미국 사회가 극단의 이데올로기로 갈라지는 모습을 보이고 있는데 이런 토대에서 대중들은 눈앞에 벌어진 거짓말이라는 팩트보다 자신이 믿고 싶고 듣고 싶어하는 이야기를 들려주는 정치인을 옹호한다는 것입니다. 정치인들이 뻔히 드러날 거짓말을 하고도 당장은 살아남을 수 있는 토양은 그 누구도 아닌 바로 미국 유권자들이 제공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물론 이같은 풍토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다수 유권자들의 정치 냉소와 무관심을 불러오는 부작용을 낳고있다고 지적합니다..

두 유력정치인의 거짓말로 뜨겁던 미국 언론도 언제 그게 큰 문제였냐는 식으로 라면 냄비처럼 금새 식어버렸습니다. 적어도 겉으론 그렇게 보입니다.

엄격한 도덕성을 요구하는 미국의 정치문화도 결국 사람 사는 데가 다 그렇지 뭐 하는 식의 논리로 설명이 가능한 걸까요? 미국도 이념적 지지만 굳건하면 거짓말해도 꿋꿋이 정치판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그런 곳일까요?

그래서 나는 오는 11월 미국 중간선거에서 오바마의 국정운영이 어떻게 평가받을 지, 요즘 한창 뜨고있는 미국의 뉴 라이트 세력이 얼마나 미국민에게 평가받을 지 보다 거짓말 한 유력정치인들이 과연 지금 분위기대로 살아남을 수 있을 지가 더 궁금합니다.

그 결과를 보고 과연 정치 선진국이라는 미국에서 무엇을 배울 수 있을 지 그때가서 고민해 보려고 합니다.

정직하기란 세상 어디서고 어려운 일일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