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 온 이후, 자연스레 이곳 TV 방송을 자주 시청하게 된다.
개인적으로 뉴스와 시사 프로그램에 관심이 많아 자주 보는 편이지만, 케이블 채널수만 1백개가 훨씬 넘다보니, 채널 돌리다 눈길 가는대로 골라보는 편이다.
그런데 미국 TV 프로그램들을 보면서, 간혹 미국 사람들을 다시한번 생각하게 된다.
아래 사진은 미국에 도착한지 얼마안돼 TV를 보다가 나도 모르게, ‘으잉!’하는 탄성을 자아내게 만들었던 프로그램이다.
바로 ‘져파디(JEOPARDY)’라는 퀴즈 프로그램이다. 벌써 20년쯤 전인가, 당시 영어회화 공부한다며, 주한 미군 방송인 ‘AFKN’을 볼 때 자주 봤던 프로그램이었다.
20년이 지났지만, 프로그램 포맷도 그대로, 진행방식도 그대로다. 아시는 분은 아시겠지만, ‘따라라라 따라라 따라 따라 따.따.따따따따’ 하는 프로그램 소개음악도 예전 그대로다.
물론 사회자도 그대로다. 다만 이 사회자가 70대 나이에도 계속 프로그램을 진행한다는게 놀라울 따름이었다.
20년전 ‘JEOPARDY’와 비슷한 시기에 자주 봤던 프로그램이 또 있었는데,
그 프로그램도 여전히 똑같은 포맷으로 진행되고 있었다.
바로 이 프로그램이다.
‘휠 오브 포춘(Wheel of Fortune)’이다. ‘Jeopardy’가 과거 장학퀴즈 방식의 프로그램이라면, ‘휠 오브 포춘’은 성격이 다른 가벼운 ‘게임 쇼’다.
‘휠 오프 포춘’ 역시 포맷도 20년전 그대로, 사회자도 20년전 그대로였다. 특히 남성 진행자뿐 아니라, 여성 진행자 역시 바뀌지 않은 점은 정말 놀라웠다. 여성 진행자는 우리 나이로 50대다.
세명, 또는 세팀으로 나오는 참가자들이 원판을 돌려서 게임을 진행하는 방식도 똑같다.
위 두 프로그램뿐만 아니다. 혹시 이 남성 사회자의 얼굴을 기억하는 분은 있는지…
‘American Funniest Home-Video’라는 프로그램 사회자다. 이 사회자 역시 20년과 똑같이 진행하고 있고, 여전히 시청자들로부터 큰 인기를 유지하고 있다.
위에서 언급한 ‘Jeopardy’는 1984년부터, ‘Wheel of Fortune’은 1983년부터 시작돼 벌써 30년이 다 돼가지만, 프라임 타임인 평일 저녁 7시부터 8시 사이에 방송된다.
위 프로그램들 뿐아니라, 부하직원으로 일했던 여성과의 부적절한 관계로 지난해 논란을 빚었던 ‘데이빗 레터맨 토크쇼’를 비롯해 수십년째 방송을 이어가고 있는 미국의 장수 프로그램들은 여러개가 더있다.
한국과 비교해보면 정말 많이 다르다. 우리나라에도 물론 ‘전국 노래자랑’ 등 일부 장수 프로그램들이 있기는 하지만, 미국처럼 20년이 넘게 진행되고 있는 프로그램은 드물다. 아무리 인기있는 프로그램이라도,몇 년이 지나면 시청자들에게 식상해서 시청률이 떨어진다는 이유로 대부분 간판을 내리고 만다. 특히 방송 포맷과 진행자가 바뀌지 않는 것도 차이점 가운데 하나다.
그렇다면, 30년 가까이 똑같은 포맷과 똑같은 진행자로 방송을 하고있는 미국의 장수 프로그램들이 여전히 시청자들로부터 꾸준한 인기를 얻고 있고, 프라임 타임에 방송되는 이유는 뭘까?
언뜻보기에는 너무나 개방적일 것 같은 미국인들 뒤에 감춰진 보수적인 성향 때문일까?
미국 방송사인 WRAL을 방문하는 동안 그곳 기자들에게 이유를 물어봤지만, 대답은 간단했다.
“사람들이 좋아하니까 계속 보는 것”이라는 답이었다.
사람마다 해석이 다를 수 있겠지만, 내 경우 미국인들 내면에 감춰진 ‘묵직함’이라고 보고싶다. 언뜻 영화나 드라마로 보면, 또 실제 그들의 과장적인 어법과 행동으로 보면, 조금은 경박스럽고 가벼워 보이는 미국인들이지만, 그 바닥에는 꾸준하고 쉽게 변하지않는 ‘묵직한’ 그 무엇이 있는게 아닐까 싶다.
반면 겉으로는 ‘점잖고 무거워’ 보이는 것 같아도, 우리 스스로 ‘냄비 근성’이라고 말할 정도로 가벼운 한국인들과 차이점이라 할 수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