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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충우돌 미국 서부 여행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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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동부지역 연수자에게 귀국 직전 여름방학에 떠나는 서부 여행은 일종의 ‘라스트 미션’이다.
설레임만큼 부담도 크다. 짧게는 3주, 평균 한달여 동안 집을 떠나 낯선 서부에서 매일 이동하는
일정을 짜는 일은 예상과 달리 상당한 정교함과 품을 요구하는 작업이다.
 
조지아주 학교들이 다른 주에 비해 한달가량 먼저 여름방학에 들어가는 덕분에 남들보다 일찍
서부 여행계획에 도전했던 나 역시 적지 않은 시행착오를 겪었다. 지난해 8월초에 새 학기를 시작
한 조지아는 올해 5월19일부터 약 70일간의 여름방학에 들어갔다. 아들 녀석의 이른 방학에 맞춰
서부 여행계획도 남들보다 일찍 짜보겠다고 일을 벌였는데 여행 동선과 합리적인 가격대의 숙소
때문에 골머리를 적잖게 앓았다.
 
1.여행 동선을 먼저 확보해야
라스베이거스, LA, 샌프란시스코 등 미국 서부 도시로 수차례 출장을 다녀본 경험이 있지만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 단편적인 출장의 기억은 오히려 방해요인이었다. 서부 여행은 그랜드캐년
옐로우스톤 등 국립공원이 핵심이기 때문에 전체 여행의 동선을 확보하는 게 가장 중요하다. 띄엄
띄엄 일정을 짰다가는 지나갔던 길을 몇번씩 오르내리며 도로에서 시간을 허비하기 십상이다.


나 역시 꼬인 일정때문에 비슷한 지역을 나선형으로 수차례 반복해서 다니는 실수를 범했다. 미국
서부 지역에 대한 밑그림이 없을 때는 연수 선배들의 여행 족보를 구해서 참조하는 게 도움이 된다.
거기에 자신만의 일정,계획 등의 살을 붙여서 차량의 전체 동선을 완성한 뒤 세부적인 계획을 추가
하는 게 좋다.


2. 국립공원 예약은 최소 10개월전
전체 동선을 짠 후 가장 먼저 해결해야할 것은 국립공원 숙소 예약이다. 7∼8월께 미국에 들어오는
연수자들의 첫번째 과제이기도 하다. ‘현지 적응도 안됐는데 무슨 국립공원 예약이냐’고 하겠지만
지내보면 이해할 수 있다. 그랜드캐년,옐로우스톤,요세미티 등 미국 3대 국립공원안의 여름시즌
롯지나 캐빈 예약은 짧게는 6개월,보통 10개월 전에 마감된다. 여름 시즌에 미국 뿐 아니라 전 세계
에서 관광객이 몰려들기 때문이다.


그랜드캐년의 경우 연간 방문객이 500만명에 달할 정도다. 옐로스톤과 요세미티 숙박시설은 여행
출발 6개월전에 예약에 나서도 방을 구할 수 없다. 먼저 예약하는 사람에게 가격 등의 페이버를 주는
게 미국의 예약시스템이다.


여행 출발 3개월전에 그랜드캐년 노스림 숙소 예약에 도전했다가 실패를 맛봤다. 지난 3월 국립공원
예약사이트 (nationalparkreservation.com)에 숙박신청 메일을 보냈다.다음날 돌아온 답변은  “당신
이 신청한 날짜에 가능한 방이 없어 유감이다”는 설명과 함께 “그랜드 캐년 노스림의 경우 캐년 내
유일한 롯지라서 여름 시즌 예약을 위해서는 1년 전에 미리 해야 가능한 날짜를 확보할 수 있다”는
‘친절한’ 설명까지 덧붙여 왔다. 한마디로 올해 6월에 머물 계획이었으면 적어도 지난해 6~7월에는
예약을 신청했어야 원하는 날짜의 방을 구할 수 있다는 얘기였다.


미 서부 여행을 다녀온 사람은 알겠지만 국립공원 바깥의 숙소는 성수기에 가격이 꽤 비싼데다 공원
안까지 접근하는 데 1~2시간씩 걸리는 곳이 적지 않다.


3.주말 민간 숙박도 사전 예약 필수
국립공원내 숙소는 공원 밖에서 오가는 시간과 숙박비를 절감할 수 있을 뿐 아니라 별이 쏟아지는 밤
하늘, 일출·일몰을 대자연속에서 감상할 수 있는 즐거움까지 맛볼 수 있다. 옐로우스톤,요세미티
국립공원 바깥의 민간숙소에서 공원까지 접근하는데 2시간 가량 걸리는 점을 감안하면 상당한 시간을
절약할 수 있다.


숙박비도 성수시 민간 숙박시설보다 저렴한 편이다. 무엇보다 공원안에서 숙박하면서 맛볼수 있는
즐거움은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가치다. 같은 지역에 연수중인 모 공무원은 “국립공원안에서 자면서
여유있게 둘러보면 거대한 자연의 일부분이 돼 있다는 느낌을 받지만 서너시간 둘러보고 사진 찍고
지나치면 ‘내가 세계적인 관광지를 다녀갔다’는 정도”라고 평했다..


미리 예약하면 바가지 요금도 피할 수 있다. 성수기 관광지 바가지 요금은 미국에서도 다반사다. 나
역시 서부 여행 일정 가운데 미처 주말 숙박을 예약하지 않은 탓에 하루 400달러짜리 숙소를 두고
고민해야 하는 상황에 처했다. 반드시 거쳐야하는 지역인데 ‘아차’ 예약을 깜빡한 것이다. 1주일을
남기고 부랴부랴 방을 찾았더니 평소 120달러면 충분한 숙소가 세배 이상 치솟은 가격을 요구했다.
일정을 급변경한 끝에 인근 지역 숙소로 바꿨지만 70달러면 족할 여관 수준의 방에 세배 이상의 가격
을 지불해야 했다.


장기간 떠나는 서부 여행은 선발대가 겪은 시행착오를 최소화하면서 나만의 색깔을 입힌 일정을 짜는
게 가장 핵심인 듯 싶다. 미국 시골마을의 풍경과 인심까지 경험하면서 미국의 속살을 들여다볼 수
있는 로드트립을 위해선 그만큼 사전에 품을 들여야 한다. 8~9월 새 학기 시즌에 맞춰 7월에 미국에
도착해 현지 적응하느라 정신없는 와중에 국립공원 숙박 예약 등 서부 여행계획까지 마련하는 여유를
갖기란 결코 쉽지 않다. 하지만 사전에 지리 공부를 겸해 동선을 미리 그려보는 게 비용 시간 뿐 아
니라 여행의 만족도에도 큰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달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