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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과 조선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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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과 조선족

중국 베이징 내 한국인 밀집 지역인 왕징에서 집을 구할 때 한국인 대부분은 ‘한국인 대상 전문 부동산’을 찾게 됩니다.

이 부동산엔 사실 한국인 직원은 거의 없다. 한국말을 할 줄 아는 직원은 차오시엔주(朝鲜族·조선족)입니다.

저를 전담한 직원 역시 조선족이었습니다. 유창한 중국어와 중국 똥베이(东北·동북) 지역 사투리를 들으면 누구나 금방 알 수 있습니다.

전담 직원에게 조선족이냐고 물어봤습니다. 다만, 중국에서 조선족이라는 단어를 사용하는 건 결례냐고 덧붙였습니다. 언론 보도에선 조선족이라는 단어가 차별적이고 낙인찍는 표현이기 때문에 ‘중국 동포’라고 일컫기 때문입니다.

그의 대답은 “저는 조선족이고, 결례가 아니다”라는 거였습니다. “중국 56개 민족 중 하나인데 조선족이라고 부르지 않으면 뭐라 표현할 수 있겠냐”라는 이유였습니다.

한국인 전문 부동산의 조선족 직원들은 베이징 왕징 내 중국인 ‘갓물주(건물주)’와 한국인 세입자 사이 다리 역할을 합니다. 중국어와 한국어를 모두 할 수 있다는 장점을 살려 독특한 산업 부문을 담당하고 있는 겁니다. 저의 전담 직원의 경우 한국산업기술대학교(한국공학대학교) 교환 학생 경험도 있습니다. 이 직원의 부모님은 한국에서 일합니다. 누나는 중국 창저우(滄州·창주)에 있는 현대자동차 관련 공장에서 일합니다. 가족이 모두 중국과 한국의 ‘교집합’ 부분에서 일하고 있는 셈입니다.

베이징 왕징의 한국인 전문 부동산은 직원들에게 숙소도 제공합니다. 베이징 명문대를 졸업하고도 비싼 월세가 부담스러워 고향으로 돌아가는 청년들이 많다는 점을 고려하면, 파격적인 대우입니다.

이런 대우에는 이유가 있습니다. 이들 직원들은 중국에 입국한 한국인들의 거류 신고, 휴대전화 개통, 은행 계좌 업무 등 초기 정착 업무를 상당 부분을 도와줍니다. 이 모든 게 부동산에서 제공하는 서비스에 포함돼 있습니다.

베이징 왕징의 헤어숍에서도 조선족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한국인들이 자주 이용하는 숍을 가니 조선족 선생님을 배정해 준 겁니다. 중국어와 한국어를 구사하며 미용 기술까지 장착한 인재였습니다.

조선족이라고 하면 흔히 영화 속의 거친 이미지를 떠올리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 때문에 혐오하거나 증오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들은 한국과 중국의 틈에서 나름의 영역을 차지하고 생활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한국과 중국의 교집합이라고도 할 수 있을 듯 합니다.